"아침대용 선식을 물 아닌 두유에 타먹으면.." 의외의 결과

조회수 2020. 9. 18. 15: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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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집착 사회'에 대한 영양학 박사의 조언
남기선 풀무원 식품기술원 박사
영양학 박사가 바라보는 음식과 다이어트

먹방·쿡방의 시대. 한편에서는 먹거리에 열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체중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영양학 박사인 남기선(56) 풀무원 식품기술원 센터장은 “요즘 들어 사람들의 ‘맛’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며 “‘맛있는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남 박사는 임상영양학 전문가다. 음식을 먹었을 때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한다. 1985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석사를 땄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위스콘신대에서 영양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연구교수 등을 거쳐 2008년 풀무원기술원에 입사했다. 풀무원기술원은 풀무원 연구개발(R&D) 센터다. 남 박사와 5명의 연구원이 함께한다. 풀무원이 기치로 내건 바른 먹거리 개념과 식품 영양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아이와 어른 대상으로 식생활에 관한 강의도 한다.


보통 식품영양학 하면 대부분 영양사나 교사를 생각한다. 남 박사처럼 식품 회사에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식품 회사에서 연구원을 뽑는다면 식품공학 전공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남 박사의 커리어, 그리고 영양학 박사가 보는 음식과 다이어트에 대해 들었다. 

출처: 풀무원 제공
남기선 풀무원 식품기술원 박사.

워킹맘의 사회생활


캠퍼스 커플이었던 남편과 1987년 결혼과 동시에 유학을 떠났다. 첫째를 낳으면서 경단녀가 될 수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학업을 이었다. 박사 과정을 졸업하는 데 6년이 걸렸다. 남 박사는 CLA(Conjugated Linoleic Acid) 관련 기술 특허를 낸 인물이다. 원래 항암 효과가 있는 지방산으로 알려진 CLA가 지방 합성을 줄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CLA로 새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199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명문대 스펙과 박사 학위 등 커리어만 보면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육아와 병행하며 사회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귀국 후 남편을 따라 광주에서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때가 하필 IMF 위기 때라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시간 강사로 일했어요.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서 서울에 있는 동생이 갑자기 광주로 내려오기도 했죠.” 


1년 반 만에 서울로 이사했다. 남 박사는 연구소와 대학 등 3~4군데를 거치며 10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정규직으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거의 없어요. 대학 교수직에 지원을 해도 제한이 많았어요. 해당 학교에서 서울대 출신 교수가 특정 비율을 넘으면 안 된다든지, 논문은 최근 3년간 발표한 것만 된다든지 제한이 있었죠.”


풀무원에 입사했을 때 나이는 40대 중반이었다. “식생활 연구소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걸 맡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식품 회사에서 영양학 박사를 뽑아 뭔가를 해보려 한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어요.”


웰빙 바람이 불면서 건강한 음식, 바른 먹거리에 대한 수요는 있었지만 개념은 명확지 않았다. 남 박사는 입사하자마자 ‘바른 먹거리’의 원칙과 방향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내 몸뿐만 아니라 자연을 생각해 식소비를 하는 로하스 식생활 지침도 만들었다. 이는 지금까지 풀무원이 제품을 만들 때 유념하는 원칙들이다.

출처: 풀무원 공식 홈페이지
요리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모습.

탄수화물 많이 먹는 한국인, 당에 신경 써야


남 박사는 2012년부터 혈당부하지수(Glycemic Load·GL·지엘)를 연구하고 있다. 지엘이란 식품을 먹었을 때 혈당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나타내는 수치이다. 지엘 수치가 낮은 음식은 혈당을 많이 올리지 않고 식욕 조절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이전에는 ‘다이어트’하면 열량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무조건 적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지방을 금기시했다.


“다이어트에는 열량뿐만 아니라 '혈당 관리'도 중요합니다. 당을 급격하게 높이지 않는 식단을 먹어야 합니다. 다이어트할 때 백미보다는 통곡물을 먹으라는 얘기 많이 들어보셨죠. 같은 양을 먹어도 통곡물이 혈당을 덜 올립니다. 음식은 우리가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대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근도 날 것과 삶은 것의 대사 작용이 달라요. 몇번 씹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누구는 똑같은 밥을 먹어도 혈당이 160이나 올라가지만 다른 사람은 120밖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직장인의 최대 적 '뱃살'을 줄이기 위해선 당분이 높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 당분이 높은 음식이 뱃살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고당분 음식을 먹는다 → 체내 혈당이 급격히 오른다 → 혈당을 내리기 위해 인슐린 과잉 분비된다 → 탄수화물이 빠르게 조직으로 이동하면서 혈당이 급격히 떨어진다 → 떨어진 혈당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식욕이 촉진된다 → 조직으로 운반된 필요 이상의 포도당이 중성지방으로 바뀐다 → 내장 지방형 비만을 유발한다.

다이어트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혈당 지수를 뜻하는 지아이(Glycemic Index·GI)를 들어봤을 것이다. “지아이는 섭취량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실제 그 식품을 먹었을 때 혈당 변화량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지엘은 지아이에 섭취량을 반영해 지아이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를 줘요.”


남 박사가 지엘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실험체로 삼았다. 토요일 아침이면 공복에 혈당을 쟀다. 콜라 한잔을 마시고 바로 혈당을 체크한 뒤 30분 후, 1시간 후, 2시간 후 이런 식으로 혈당 추이를 곡선으로 그렸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는 같은 열량의 주스를 마시고 같은 방식으로 혈당 곡선을 그리는 식이었다. 바늘로 손가락을 수백번은 찌른 셈이다.


“재밌는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다양한 선식 가루를 실험했는데, 어떤 액체에 타먹느냐에 따라 혈당이 달랐어요. 두유보다는 물이 열량이 낮겠죠. 물은 열량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혈당 곡선을 보면, 선식 가루를 물에 타먹었을 때보다 두유에 타먹었을 때 혈당이 훨씬 적게 올라가서 완만한 곡선을 그렸습니다. 이처럼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지방, 단백질과 같이 먹었을 때 GL이 어떤지도 실험했습니다.”


남 박사는 2013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2017년 ‘GL 예측 모델’ 만들었다. 음식의 GL을 추정하는 산식인 지엘 추정치(eGL)를 말한다. “eGL이 낮을수록 좋습니다. 음식 한 가지를 먹었을 때 eGL이 10이하면 낮고, 20이상이면 높다고 봅니다. 하루 세끼 식사량은 120을 넘으면 하이 지엘이라 합니다.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단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한국인은 하루 평균 180~220을 섭취합니다. 상당히 높은 편이죠. 한국인이 지방을 많이 먹지 않고 겉보기에 말랐는데도 대사 질환이 많은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eGL을 고려한 식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2-1-1’ 식사법을 만들었다. “식단에서 채소를 두배로 늘리는 게 중요합니다. 채소, 탄수화물, 단백질 부피를 따졌을 때 2:1:1이에요.”

출처: 풀무원 공식 홈페이지
eGL 계산식,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의 eGL, 2-1-1 식사법 예시. 당류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 수박의 지아이(GI)는 72로 높은 편이지만, 수분 함량이 높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은 한두 조각 정도다. 그래서 수박의 지아이(GI)는 높지만 1회 섭취량까지 고려한 지엘(GL)은 낮다. 수박처럼 1회 섭취량이 적은 음식은 탄수화물 함량이 많지 않으니 지아이(GI)가 높더라도 혈당이 많이 오르지 않고 인슐린도 많이 분비될 필요가 없다. 이와 반대로 지아이(GI)가 낮더라도 1회 섭취량에 탄수화물 함량이 많으면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된다.

‘맛’ 집착 사회...3주만 건강하게 먹어보자


그는 작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식생활 관련 책 8~9권을 냈다. 1년에 한번꼴로 책을 쓴 셈이다. 최근에는 ‘식사혁명’이라는 교양과학서를 썼다. 음식이 인류 진화에 미친 영향, 맛과 육식, 대체 단백질 등에 관한 내용이다. “책 쓰기에 돌입하면 주말에는 글쓰기에 올인합니다. 과학 기자 한분께서 윤문해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과생이어서 글쓰기에 자신이 있진 않았어요. 원래 작가분을 구하려고 했는데 결국 구하지 못하고, 모두 직접 썼습니다. ” 

출처: 풀무원 제공
남기선 풀무원 식품기술원 박사.

남 박사는 ‘먹는 것’에 대해 관점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한다. 특히 ‘맛’에 집착하는 모습에 우려를 나타낸다. “원래 먹는다는 건 영양분 공급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맛’은 부차적인 문제였죠. 더이상 음식을 영양 때문에 먹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맛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나아가 ‘많이 먹는 것’에 열광하는 시대입니다. 맛은 혀가 아니라 뇌가 판단합니다. 한 사람의 ‘맛’에 대한 선호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사회문화적 영향이 큽니다. 태어난 후 어떻게 먹었고, 학습했냐에 따라 달라요. 아프리카 한 부족은 쥐고기를 치킨처럼 뜯어먹어요. 우리에게 먹으라고 하면 먹지 않겠죠. 우리나라에서 쥐는 더럽기도 하고,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이걸 정말 맛있어서 먹는지, 맛집을 찾아다니고 먹방에 열광하는 문화 때문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수많은 다이어트법이 생겨나고 유행을 탄다. ‘이것만은 지켜야 한다’는 식습관을 꼽는다면 과식을 피하는 것이다. “과식은 백해무익합니다. 이거 하나만은 피해야 합니다. 최근 간헐적 단식이 유행인데, 간헐적 단식도 여러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간헐적 단식의 핵심은, 이전에는 음식을 습관처럼 먹었다면 이제는 배고플 때 먹자는 겁니다. 인간은 원래 배고플 때 먹었어요. 하지만 음식이 넘쳐나면서 배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고, 스트레스 받아서 먹었죠. 저도 ‘입이 궁금해서’ 먹을 때가 있어요. 매끼마다 과식하지 않고 저녁을 6~7시 전에 끝낸 뒤 야식을 먹지 않는다면, 그게 간헐적 단식입니다.”


남 박사는 ‘노블 다이어트’를 주장한다.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거나, 특정 식단이 있는 건 아니다. 귀족(noble·노블) 다이어트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현대인으로서 음식을 먹을 때 ‘맛’만 생각하지 말고 내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단백질’하면 육식만 고집하는데 다른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서 섭취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육식을 하지 말고 채식을 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육식주의’만 선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통곡물이 좋다고 아이와 노인에게 100% 통곡물을 강요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내 식생활이 정말 이대로 괜찮은지 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먹방'은 유튜브와 TV방송에서 인기 있는 소재다. 원래 먹방은 '맛있게 먹는 것' 또는 '많이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콘텐츠 경쟁이 심해지면서 그치지 않고 자르지 않은 산낙지나 생고기를 통째로 먹는 등 자극적인 소재가 등장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남 박사는 "우리 몸에는 자동섭식조절장치가 있는데, 음식을 먹다 배가 차면 그만 먹도록 만든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옆에서 먹으라고 부추기거나, 많이 먹는 걸 칭송하는 환경에서는 자동섭식조절장치가 서서히 기능을 잃는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는지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다. “음식을 먹고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튀긴 음식, 인스턴트식품을 먹을 때도 있죠. 아예 먹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건강한 식습관을 갖고 싶은데 의지대로 안된다면 3주만 건강하게 먹어보는 건 어떨까요. 입맛을 바꾸려면 10일에서 3주가 걸립니다. 식습관은 한번의 생각, 한번의 행동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꾸준히 바꿔나가다 보면 할 수 있어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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