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 나던 샤워기에서 갑자기..해외에서 더 난리난 초대박 상품

조회수 2020. 9. 18. 15: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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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 연구원과 식품 MD가 만든 '이것', 2년 만에 100만개 팔았어요
비타민샤워필터 만드는 '에이치이공일'
먹는 물 다음은 '씻는 물' 시장
각 분야 베테랑 4명 모여 공동 창업

수도꼭지를 틀자 쏟아지는 물과 함께 상큼한 자몽 향기가 퍼진다. 수돗물을 틀었을 때 나는 비릿한 ‘염소’ 냄새는 없다. 수도꼭지 근처를 보니 한뼘만한 필터가 끼워져 있다. 스타트업 ‘H201(에이치이공일)’이 만든 ‘비타민 샤워필터’다. 녹물 등 중금속을 걸러내고 잔류염소를 없앤다. 이대성(38) 대표(CTO·기술최고책임자)가 5~6년 간 연구 끝에 개발했다.


에이치이공일은 이 대표와 하경수(33) 대표(CEO)가 2016년 9월 공동 창업한 비타코퍼레이션이 전신이다. 이 대표는 국내 유명 정수기 회사 연구원이었다. 하 대표는 온라인 커머스 쿠팡에서 식품 MD로 일했다. 이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비타민 샤워필터는 출시 2년 만에 100만개를 팔았다. 주문생산 플랫폼 카카오메이커스에서만 12만개가 팔렸다. 쿠팡·텐바이텐·핫트랙스·신세계 백화점과 롯데·신라면세점에도 입점했다. 2018년 매출은 50억원. 올해는 100억원을 예상한다. 16개국에서 이 회사 샤워필터를 쓴다. 해외에서 매출 80%가 난다.


‘전세계 샤워문화를 바꾼다’가 사명이다. 최근 공동 창업자로 정치열(43) CDO(디자인최고책임자)와 조재현(44) CSO(전략최고책임자)가 합류했다. 4명의 공동 창업자는 “곧 버전 2.0을 내놓는다”고 밝혔다. 새로운 도약을 앞둔 이들을 만났다. 

출처: jobsN
(왼쪽부터) 정치열 CDO, 하경수 CEO, 이대성 CTO, 조재현 CSO. 네 사람은 각 분야 베테랑들이다. 정 CDO는 VKR 디자인 대표, 로커스 총괄 AD 등을 거쳤다. 조 CSO는 미미박스 부사장, 그루폰 코리아 부사장, 로켓인터넷 코리아 부사장 등을 지냈다.

'씻는 물' 틈새시장 노려 대박


우리나라와 주요 국가는 정수할 때 염소를 이용한 ‘염소소독법’을 쓴다. 문제는 물 속에 남은 염소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이다. 아토피를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물이 더러울수록 염소 사용량이 늘어난다. 노후된 상수도관에서 흘러나오는 ‘녹물’도 문제다. 수도관은 최소 20년이 지나야 교체한다. 이런 우려 때문에 해외 여행을 할 때 샤워필터를 챙기는 이들도 늘었다. 특히 유럽 국가 중에는 수돗물에 석회 성분이 많다. 이 때문에 ‘물갈이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에이치이공일은 이런 틈새 시장을 노렸다. 비타민 샤워필터는 먼저 세디먼트 필터로 중금속 등 불순물을 걸러낸다. 세디먼트 필터란 약 500억개 그물망이 엮인 섬유조직이다. 그 다음 필터 속 고농축 비타민 겔(gel)이 물에 녹으면서 산화환원돼 잔류염소를 없앤다. 여기에 보습 성분과 향을 가미해 기분을 좋게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물이 쏟아지는 찰나에 일어난다. “오래 전부터 비타민C가 염소 제거를 위해 사용됐어요. 비타민C와 염소가 만나면 물과 염화수소로 분리돼 깨끗한 물이 되는데 이를 산화환원이라 합니다. 또 피부 보습, 노화 방지, 미백 등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이 CTO)


기존에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연수기’가 있었다. 10여년전 유행을 탔다. 염소와 불순물을 없애고 피부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설치가 까다롭고 한꺼번에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또 세척이나 교체가 힘들어 유행은 금세 식었다. 

출처: H201 홈페이지
에이치이공일 샤워필터를 설치하는 모습. 수전 접합부를 분리해 샤워필터를 돌려 끼워넣으면 된다.

이 대표는 애초 샤워필터를 개발할 때부터 '보급형 연수기'를 목표로 했다. 이치이공일 샤워필터 가격은 하나당 3만5000원. 4인 가족 30~45일 사용분이다. 연수기와 달리 세척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오랜 시간 힘을 들여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고객 리뷰를 보면 ‘향이 나는 샤워’를 경험한 이들의 만족도가 높다. 벚꽃향, 샤려니숲향, 우디향 등 종류가 다양해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다.


“커머스에서 재구매율이 44%가 넘습니다. 보통 커머스에서 한 상품의 재구매율이 한자릿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예요. 기존에는 없던 ‘향이 나는 샤워’를 경험한 고객들의 만족도가 확실합니다. 향은 전담 조향사분과 함께 향을 만듭니다. 같은 자몽향이어도 다른 회사와 다르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 CEO)


안전성도 확보했다. 방부제를 전혀 쓰지 않았다. 향료를 뺀 모든 성분은 100% 식품 원료다. 식품을 만들 때 쓰는 성분으로 먹어도 무해하다는 뜻이다. 반려동물을 위한 펫(Pet)용은 수의사와 협업해 만들었다. 또 국내용과 수출용이 다르다. 국가마다 그곳 수질 환경에 맞게 제품을 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기온과 습도가 높아요. 이런 점을 고려해 제품의 수분함량을 높였습니다.” (이 CTO)


타기업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는 자신감 있어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를 졸업 후 2002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정수 필터·공기청정필터를 연구했다. 2010년 퇴사 후 정수기·공기청정기 사업을 했다. 하지만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먹는 물 다음은 ‘씻는 물’ 시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생수를 사먹고 정수기를 이용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어요. 이젠 수돗물 마실 생각은 차마 못하죠.” (이 CTO)


연구원일 때 잠깐 시도했던 ‘샤워필터’ 아이템을 다시 떠올렸다. 처음에는 비데 필터를 개조해 물에 비타민C 가루를 넣는 정도였다. 2012년 이 아이템을 발전시켜보기로 했다.

출처: H201 인스타그램
비타민 샤워필터.

우선 비타민이 물 속에서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며 녹아야 했다. 하지만 가루를 넣으면 비타민이 초반에 집중적으로 녹아 나오다 나중에는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형을 ‘겔’타입으로 바꿔 해결했다. 여기에 보습제를 추가해 피부 보습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 과정에만 3~4년이 걸렸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정수하고 피부 보습에 도움이 되는 것만으로는 차별점이 없었어요. 쓰는 사람이 직접 효용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욕실에 놓인 디퓨저를 보고 아로마 효과로 기분 전환·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을 떠올렸어요.” (이 CTO)


시제품을 만들어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반응이 좋았다. “이전에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를 가져가도 반응이 시큰둥했어요. 그런데 샤워필터는 ‘좋다’, ‘이게 뭐냐’는 반응이 즉각 나왔어요. 창업에도 적합한 아이템이었습니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에 비해 자본금이 들지도 않았어요. 또 기기는 국가마다 전압이 달라서 해외수출이 애로사항이 많은데, 샤워필터는 이런 걸 고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수전 규격은 일본을 빼고 전세계 국가가 동일해요. 해외에서도 먹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이 CTO)


사업화하기 위해 정부에서 창업 지원금 1억원을 받아 설비를 갖췄다. 제품에는 자신 있었다. 사용해 본 사람마다 반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을 공대생·연구원으로 산 이 대표는 제품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이때 하 대표를 만났다. “저도 이 대표님이 준 샤워 필터를 써보고 관심을 가졌어요. 제품의 본질을 바로 느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 CEO) 

출처: H201 홈페이지
(왼쪽부터) 베트남 드럭스토어와 백화점 등에 입점한 모습. 중국 홈쇼핑에서도 소개했다.

하 대표가 제품 디자인과 패키지에 이런 저런 제안을 했다. 내친 김에 공동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지금 비타민 샤워필터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샤워필터’가 낯선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사용하기까지 장벽이 높아요. 그런데 일단 써보면 만족도가 높습니다. ‘첫 구입’을 이끌어 내는 게 중요했어요. 저희 제품을 보면 마치 화장품 같아요. ‘화장품 같은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한 겁니다. 역설적이게도 샤워필터처럼 보이지 않길 원했어요.” (하 CEO)


보통 중소기업 제품은 패키징이나 브랜드에 신경을 쓰지 않아 '조악하다'는 평을 듣는다. 쉽게 말해 겉모습에 가려 기술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주변에서 저희 제품을 보고서 주변에서 '왜 그렇게까지 신경쓰냐'고 했어요. 하 대표가 말했지만, 저희 제품은 사용하기 전에는 진가를 느끼기 힘듭니다. 초반에 브랜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성적을 내기 어려웠다 생각합니다.” (이 CTO)

출처: H201 홈페이지
카카오메이커스와 협업해 만든 시리즈 중 하나인 비타민 샤워필터_벚꽃 에디션. 이외에 제주도 에디션도 있다. 비타민 샤워필터_벚꽃 에디션은 카카오메이커스에서만 12만개가 팔렸다. 전체 상품 중 가장 많은 누적 판매량이다.

2017년 1월 시장에 등장한 샤워필터는 그해 단숨에 7억8000만원어치가 팔렸다. 백화점·드럭스토어 등에서 먼저 입점 제안이 왔다. 해외 현지 유명 백화점, 편집숍에도 입점했다. 일본 로프트(Loft), 도큐핸즈(Tokyu Hands)가 대표적이다.


에이치이공일이 문을 연 샤워필터 시장에 40여개 후발주자 업체가 생겼다. 대기업도 뛰어들고 있다. “정수기 회사, 화장품 업체, 방향제 업체에서 보면 어려워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레시피’를 안다고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요. 비타민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흔히 채소를 끓이면 비타민C가 파괴된다는 소리 들어보셨죠. 열에 약하고, 빛을 보면 안됩니다. 산소랑 만나면 갈변 현상이 일어나요. 그만큼 예민합니다. 여기에 향과 보습 기능까지 넣어야합니다. 비타민이 특정 성분과 만나면 색이 변해서 자칫 곰팡이가 낀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저희 샤워필터도 초반에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또 비타민을 얼마나 균일하게 녹게 만드느냐도 중요해요. 겔로 만든다고 모두 균일하게 녹진 않습니다.” (이 CTO)


“회사가 망하는 이유를 따지면 수천개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고객과 신뢰를 쌓아가느냐 입니다. 샤워 필터 선두 기업답게, 저희가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타사는 쉽게 흉내내지 못할 겁니다.” (조 CSO)

jobsN

전세계 샤워문화를 바꾼다


에이치이공일은 5월 ‘버전 2.0’ 제품을 내놓는다. 정 CDO가 제품 디자인과 감성을 한번 더 차별화했다. ‘샤워는 상상하는 것’, ‘샤워 그 이상의 가치’라는 카피(copy)를 만들었다. 리브랜딩을 위해 9~10개월 동안 고객 지적 사항을 바탕으로 제품 디자인과 구조, 내용물을 분석했다.


제품을 '많이 파는 것'에서 끝내지 않겠다는 포부다. “샤워가 단순히 씻는 행위가 아니라, 샤워를 하며 위로 받고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생활 양식으로 자리잡을 겁니다. 저희 샤워필터는 ‘향이 좋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밤길을 걸으면서 맡은 푸릇한 풀냄새, 제주도 여행 때 맡은 귤냄새 같은 향을 떠올릴 수 있죠. 여기서 한발자국 나아갈 예정입니다.” (정 CDO)


욕실 공간의 애플, 다이슨을 꿈꾼다.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로 연결할 예정이다. “공산품이 아니라 뷰티와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 경쟁 중입니다. ‘제조사가 이런 서비스를 한다고?’ 놀라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에이치이공일이 만들었다’ 하면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목푭니다. 지금처럼 신뢰를 쌓으면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하 CEO)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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