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3만9900원', 그 목소리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

조회수 2020. 9. 18. 15:5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파워레인저 뮤지컬 '핑크' 목소리 주인공, 지금은 면세점에서 방송합니다
두산타워 방송실 박현미씨 인터뷰
성우 출신으로 뮤지컬·홈쇼핑 등 활약

“지하 1층 남자 화장실에서 발견한 검정색 LG 휴대전화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하 1층 남자 화장실에서 검정색 LG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고객님은 1층 안내데스크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쇼핑할 때 한 번은 들어봤을 목소리다. 그리고 자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부모라면 방송실에서 가슴을 졸인 경험도 있을 것이다. 4월 5일 찾은 서울 동대문 두타면세점에서도 이런 방송이 이따금씩 울려퍼졌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때로는 녹음을 하고 기계로 재생을 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박현미(40)씨. 연극 배우와 홈쇼핑 내레이션 등을 맡아온 성우다.


하지만 그는 10여년 전 어린이들을 위한 영웅을 연기하기도 했다. 2007년 어린이 뮤지컬 ‘파워레인저 트레저포스’에서 ‘핑크’ 역할을 하는 성우로 활약했다. 트레저포스는 전대물(戰隊物) 파워레인저의 30번째 시리즈다. 그 외에도 인형극과 홈쇼핑, 컬러링 회사 등에서 활약했다.


4월 5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방송실에서 박씨를 만나봤다. 연극배우를 꿈꾸다 성우로, 다시 방송실 직원으로 조금씩 커리어를 전환해온 과정을 듣고 싶었다.

출처: 두타면세점 제공
4월 5일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방송실에서 박현미씨가 분실물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연극배우 출신인데.


“고교 졸업 후인 1998년 극단 ‘공연중’에 들어갔다.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을 주로 공연했다. ‘삼바의 모험’, ‘내 짝 동그라미’ 등의 작품을 공연했다. ‘아름다운 사인’이라는 작품에서는 스태프로 일했다.


하지만 인형극 배우를 오래하지는 않았다. 본래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려고 합격까지 했는데,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이 모자라 포기하고 바로 사회에 들어섰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도 지치고 해서 2000년에 결혼하고 이후 아이도 낳았다.”


-이후 성우로 진로를 전환했다.


“연기는 하고 싶었는데, 남들 앞에 나서기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 성우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가 있었다. 그래서 KBS 아카데미 등을 다니면서 꾸준히 공부했다. 이후 프리랜서 성우로서 내레이션과 낭독 등을 했다. 장애인을 위한 소설 낭독이나 영화해설을 15년째 투잡으로 하고 있다.”


-홈쇼핑에서도 일했는데.


“내레이션 전속 성우로 일했다. ‘삼만구천구백원’, ‘있을 수 없는 가격’ 등의 대사를 하면서 시청자들의 주문을 유도하는 역할이었다.” 

출처: CH PLAY 제공
박현미씨는 뮤지컬 '파워레인저 트레저포스'에서 핑크(오른쪽에서 둘째)의 목소리를 맡았다.

파워레인저 뮤지컬 출연…컬러링 녹음도 맡아


-파워레인저 뮤지컬을 맡게 된 이유는.


“2007년 롯데월드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파워레인저 트레저포스’에서 액션신 등을 맡는 배우와 별도로, 무대 하단에서 목소리를 전담할 성우를 뽑아 출연하게 됐다. 15일 동안은 라이브로 연기했고, 나머지 15일은 성우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공연했다.


-어떤 역할을 맡았나.


“핑크는 정의감이 많고, 두뇌명석한 조연급 배우다.”


-홈쇼핑이나 인형극 등 다른 장르와는 발성법이 다를 것 같은데.


“일단 다른 장르와 달리 기합 소리가 많다. 또한 마이크를 사용한다. 이 때문에 성대를 모아주고, 코를 거쳐서 두성으로 멀리서 말하듯 발음한다. 소리를 잘 지르기 위해 힘을 내야 한다고 해 고기도 따로 사먹기도 했다. 또한 공연 중간 중간에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이 때문에 오디션 때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더라. 당시 활동하던 4인조 그룹 버블시스터즈의 ‘버블송’을 불렀다.


반면 홈쇼핑은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 귀에 꽂힐 수 있도록 뾰족한 소리로 가격을 강조하고, 힘있게 임팩트를 준다. 연극은 소극장에서 마이크 없이 한다. 복성으로 소리를 내되, 소극장 끝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인형극에서는 1인 다역이 기본이다. 공주를 했다가 악당으로 바로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이 때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면.


“컬러링(통화연결음) 업체에서 일한 적이 있다. 1시간에 컬러링 멘트 1000개씩 녹음했다. 이 때 교회와 절이 가장 어려웠다. 경쾌하게 ‘맛도 최고! 풍부한 양의 중국집’을 말하다가 ‘부처님의 자비’를 차분하게 녹음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종교기관 컬러링은 최대한 엄숙하고 성스럽게 하기 때문에 더 신경썼다.


“도시락 싸오며 자리 지키지만 고객 돕는다는 자부심”


-두타 방송실에 입사하게 된 이유는.


“방송실은 3명이 정원이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 나 역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3년 일한 뒤, 결원이 나서 기존 동료들의 추천으로 2015년 정직원으로 입사했다.”

출처: 두타면세점 제공
박현미씨.

-정직원과 아르바이트의 차이는.


“아르바이트는 방송만 하고, 정직원은 방송실 운영과 관련한 내부보고 등 사내 업무를 함께 한다.”


-근무 시간은 어떻게 되나.


“3교대다. 현재 나는 오전 10시30분~오후 5시에 일한다. 다음 근무자는 오후 5~11시 일한다. 새벽 근무자는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일한다. 3인 근무자의 합의에 따라 근무 시간을 조정한다.”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다면.


“지갑을 잃어버린 분이 있었다. 300만원이 들어 있어서, 찾으면 사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고객이 지갑을 들고 찾아오자 받고는 그냥 가더라.(웃음)


면세점에서 외국인 고객들이 여권을 잃어버리는 일도 가끔 있다. 가슴을 졸이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안타까웠다. 다행히 다들 여권을 찾아서 출국했다.”


-외국어로도 방송을 하나.


“물론이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안내 방송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어는 발음 과외도 받았다.”


-방송실 직원으로서 직업병이 있나.


“쇼핑을 하러 가면 안내 방송이 나오는지 살펴본다. 방송이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듣는다. 발음이나 마이크 상태, 멘트할 때 태도 등을 살핀다.”


-이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


“나는 성우 공부를 하다가 진로를 변경한 케이스다. 하지만 방송실에서 일하면 내 색깔대로 매장에 내 목소리가 나가고, 손님들에게 편리함을 준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물론 애로사항도 있다. 두타 방송실은 당직자 1명이 책임지는 구조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 대한항공 인천공항 카운터에서 ‘우리 손님이 여권을 두고 왔다고 한다’는 긴급 전화가 오기도 한다. 근무 중 식사는 도시락을 싸와서 한다. 재미와 보람이 있지만, 책임감이 필요한 직업이다.”


-향후 계획은.


“일과 별도로 유튜브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성경 낭독을 하고 있다.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평안을 주는 성경 말씀을 목소리로 전하고 싶다. 성경 낭독을 끝내면 불경 낭독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글 jobsN 이현택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