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원했던 승무원을 포기했더니 오히려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6: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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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 생각 안 해봤는데"..승무원 꿈꾸던 청년의 선택은
에어아시아 기내 면세팀 유민준씨
기내 면세점 매출 4배로 끌어올린 신입사원
오랫동안 승무원 꿈꾸던 새로운 길 도전

‘항공사’ 하면 승무원이 먼저 떠오른다. 승객을 가장 가까이서 서비스하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사에는 다른 기업처럼 승무원 말고도 여러 직종이 있다.


에어아시아 기내팀 유민준(29)씨는 기내 면세점 식품·키즈(kids) 상품 바이어다. 홈쇼핑으로 치면 상품 MD다. 그는 원래 승무원을 꿈꿨다. 어릴 때부터 꿈을 향해 나아갔다. 경상대에서 독일어문학을 공부했다. 토익 910점, 캐나다 어학연수 1년, 공항서비스직 인턴, 학교 홍보팀 활동이 기본 스펙이다.


누구보다 간절히 꿈꿨지만 쉽지 않았다. 여러 항공사에 원서를 냈으나 연달아 탈락했다. 과감히 승무원의 꿈을 접고 홍보팀 인턴에 응시했다. 2016년 11월부터 6개월 인턴 근무 후 정규직으로 전환, 본사에서 근무한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승무원 지망생이었을지 모릅니다. 길이 없다고 좌절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보세요.”


에어아시아는 아시아 최대 저비용항공사(LCC)다.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뒀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항공 서비스 조사 기관 스카이트랙스(Skytrax)가 주는 ‘세계 최고 저비용항공사 상’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2017년 사업보고서 기준 매출은 97억1000만 링깃(약2조7000억원). 본사 직원수는 약 2500명이다. 한국에선 창업자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이 박지성 전 축구선수가 뛰었던 축구클럽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구단주로 유명하다. 외항사는 항공사 입사를 꿈꾸는 취준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유씨에게 업무와 복지, 현지 적응, 취업 비결을 들었다. 

출처: 유민준씨 제공
에어아시아 기내 면세팀에서 일하는 유민준씨. 식품·키즈(kids) 상품을 담당한다. 에어아시아 본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다.

면세 식품·키즈 코너 매출 4배 ↑


유씨는 에어아시아 말레이시아와 에어아시아 엑스(장거리 운행) 전 노선의 기내 면세점을 담당한다. 식품·키즈 상품의 매출, 재고량 등을 매일 확인한다. 새 상품 발굴도 그의 몫이다. 상품을 들이기까지 절차가 복잡하다. 면세품은 운반할 때도 전용 창고와 트럭을 두고 특별 관리를 한다.


“식품은 특히 규정이 까다롭습니다. 저희는 식품업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유명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5월에 정관장 판매를 시작합니다. 재료 분석증, 건강 증명서, 제품 보증서 등 ‘안전 식품’임을 보여주는 여러 증명서가 필요했어요. 기간이 길어지면 자칫 흐지부지될 수가 있습니다. 끝까지 놓지 않은 덕분에 동남아시아 항공사에선 처음으로 정관장을 기내 면세점에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기내 면세점은 출국장 면세점, 시내 면세점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특성상 전문적인 마케팅이 어렵다. 종류도 적어 매출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식품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식품보다 술이나 화장품, 향수가 인기 품목이기 때문이다. “저희 기내에서도 식품이 주목받진 못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간식 위주였고, 종류도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유씨는 식품도 경쟁력을 갖추면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지금까지 5억명 이상의 승객이 에어아시아에 탑승했습니다. 매년 승객 수가 늘고 있어요. 특색 있는 상품 종류를 늘리면 반응이 좋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2017년 7350만명이, 2018년엔 8300만명의 승객이 에어아시아를 이용했다.


팔리지 않는 상품을 내리고 새 상품을 물색했다. 말레이시아와 주변 국가 대표 상품을 찾아 나섰다. 이전에 없던 한국 제품도 넣었다. ‘허니버터 아몬드’가 대표적이다. “명동에서 중국 여행객이 허니버터 아몬드를 박스째로 사간다는 걸 알았어요. 말레이시아에서도 한류 붐을 타고 한국 제품 선호도가 높았습니다.”


또 특색 없는 과자 대신 말레이시아 올드 타운 커피, 태국의 김과자 등을 넣어 차별화했다. 기존 10개 내외에 불과했던 종류를 35개로 늘렸다. 결과는 성공적. 2018년 월 1000만원 미만이던 매출이 2019년 들어 4000만원으로 4배로 늘었다. “이전보다 종류가 늘긴 했지만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선 부족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새 상품을 발굴할 예정입니다.”

출처: 유민준씨 제공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 기내 면세팀 동료들과 함께.

자유로운 분위기 속 업무는 칼같이


공식적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근무시간은 한국과 다를 바 없지만 상사 눈치를 보느라 야근하는 일은 없다. 출퇴근 시간도, 장소도 구속하지 않는다. “대다수 동료들이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에 출근해 아침 식사와 커피를 즐깁니다. 또 업무 시간이라고 한자리에 못 박은 듯 앉아 있지 않아요. 식당이나 카페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너무 자유로운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들 업무를 칼 같이 처리해요.”


근무 복장도 자유롭다.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인턴 첫날 동기들과 모두 정장 갖춰 입고 갔는데 오히려 다른 동료들이 저희를 이상하게 봤어요.”


사무실은 칸막이 없이 도서관 열람실처럼 뻥 뚫려있다. 토니 회장 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엔 임원분들이 지나가다 말을 거시니까 긴장이 됐어요. 임원도 동료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휴가 일수는 1년에 20일. 주 5일을 보장한다. 말레이시아는 공휴일이 많은 편이다. 종교와 인종별로 기념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모든 주가 쉬는 연방 공휴일과 주별로 일자가 다른 공휴일이 있다. “2019년 주말을 제외한 공휴일을 계산해보면 약 20일 정도입니다.” 

출처: jobsN
한국에서 만난 유민준씨.

본사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바로 옆에 있다. 시내와 공항 간 거리가 우리나라 서울과 인천국제공항 거리만큼이다. 개인 용무를 처리하기 위해 멀리까지 나갈 필요가 없다. 회사 안에 모든 시설이 있다. 휴게실이나 카페는 물론, 미용실·우체국·마사지 공간·피트니스 클럽·물리치료실 등이 있다. ‘항공사 복지의 꽃’이라고 부르는 무료·할인 항공권 혜택도 있다. “짧은 거리는 1년에 최대 16장을 무료로 쓸 수 있습니다. 이외에 1년 내내 90% 할인 가격이에요.”


외국인 직원에게는 의료비도 지원한다. “회사에서 일종의 ‘의료 카드’를 발급해줍니다. 시내 병원에서 카드만 보여주면 검진·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 섞여 있어 배려는 당연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지만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있다. 인구의 약 60%를 말레이인과 소수 민족이 차지하고 그다음 화교(30%), 인도인(8%)이 많다. 대부분 국민이 영어를 할 줄 안다. “인종·문화가 워낙 다양해 다들 포용력이 큽니다. 처음 들어온 직원이 영어를 좀 못해도 개의치 않아요. 또 식당에는 모든 인종과 종교를 배려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있습니다.”


급여를 구체적으로 밝히긴 힘들지만 ‘한국 중소기업 수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한국 중소기업 대졸 신입 평균 월급은 223만원이다. 대신 말레이시아는 한국보다 물가가 낮다. “한국 스타벅스 음료가 4000원대인데, 말레이시아에선 2000원대입니다.”


거주 비용도 낮다. 유씨는 월세로 33만원을 낸다. 전세 개념은 없다. 보증금은 한 달 치 월세의 2배. 시내와 공항 중간 지점인 ‘사이버자야(Cyberjaya)’에 산다. IT 기업이 몰려 있어 ‘말레이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한국처럼 보증금을 몇백, 몇천씩 내지 않아도 되니 사회초년생에게 좋습니다. 월세 20만~30만원 정도면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 콘도에서 지낼 수 있어요. 전기·수도세도 적습니다.”

출처: 유민준씨 제공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과 함께 페르난데스 회장은 대표적인 친한파 사업가다. 한국 대학생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고, 자서전 출간 때도 한국에 방문했다.

단 외국인 근로자는 첫 달부터 6개월까지 상당한 소득세를 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 근로자를 ‘비거주자’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비거주자’에게 소득세로 급여의 28%를 떼 간다. “6개월 이후 소득세율이 확 낮아집니다. 또 소득세 말고는 공제 항목이 거의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에도 연말정산이 있어서, 첫 6개월간 떼어간 소득세를 다음 해 4월에 환급을 받습니다.”


EPF(Employees Provident Fund)라는 사회보장제도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비슷하다. 외국인 근로자는 의무 가입사항은 아니다. 에어아시아에선 모든 직원이 EPF에 가입했다. “저희가 급여의 11%를 내고 회사에서 15% 더해 납입합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떠날 때 돌려받을 수 있어요.”


해외 취업을 준비할 때 ‘취업비자’ 때문에 골치 아픈 경우가 많다. 근로 계약을 맺은 회사가 '스폰서'로 나서는 게 중요하다. 이 스폰서가 취업자 대신 비자를 신청하기 때문이다. 에어아시아도 외국인 직원의 비자를 알아서 처리한다. “갱신해야 할 시기에도 회사가 알아서 처리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출처: 유민준씨 제공
에어아시아는 ‘2018 월드 트래블 어워즈(World Travel Awards, 이하 WTA) 그랜드 파이널’에서 6년 연속 ‘세계 최고 저비용항공사 상’을 받았다.

방향 조금만 틀어 새로운 길 도전했으면


유씨는 어릴 적부터 승무원 말고 다른 꿈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에어아시아에도 승무원으로 지원했다 탈락한 경험이 있다. 연이은 탈락에 좌절하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에어아시아 인턴 공고를 봤다. ‘이번에도 안되면 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이었다. 서류 합격 후 한국 사무소에서 면접을 봤다.


승무원 준비 경험은 어디 가지 않았다. 면접에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면접관이 ‘새 노선을 개발한다면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다.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내 승무원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을 떠올렸다. “제가 부산 출신이고, 평소 싱가포르에 가보고 싶었어요. 부산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직항이 없었습니다. 뉴스에서 들은 바로 싱가포르는 일반석 수요가 충분했어요. 에어아시아도 일반석 위주이기 때문에 부산-싱가포르 직항 노선을 만들어도 좋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출처: 유민준씨 제공
인턴 근무 시절. 동료 인턴들과 함께.

인턴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3개월 동안 영어 때문에 애를 먹었다. 영어 회화는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영어만 쓰며 일해야 하는 환경에 처하자 난관에 부딪혔다. “발음과 억양이 천차만별입니다. 미국식, 영국식은 물론 말레이시아식, 중국식, 필리핀식 등 각각의 억양을 알아듣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어휘도 문제였습니다. ‘로드 팩터(load factor)’가 탑승률을 뜻해요. 회의 때 이런 전문 용어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누가 제게 말을 걸까 봐 식은땀을 줄줄 흘렸죠. 비즈니스 메일을 쓸 때도 어떻게 시작해서 끝맺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표현을 그때 체감했어요.”


해결 방법은 ‘질문’밖에 없었다. 동료를 붙잡아 묻고 또 물었다. “이곳에선 여러 번 묻는다고 ‘그것도 모르냐’고 타박하지 않아요. 또 먼저 다가와 가르쳐줍니다.”


첨엔 애를 먹었지만 이내 강점인 성실성·꼼꼼함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회사 정보를 한데 모아 놓은 데이터 시트가 없었어요. 상사와 함께 데이터를 만들었습니다. 또 나라마다 공항 코드가 다른데, 이것도 달달 외웠어요. 의무는 아니었지만 조금이나마 업무에 도움이 될까 싶었습니다.”


그가 말레이시아에서 일한다 했을 때 가족과 지인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한국서 취업이 안되니 외국으로 도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덜 알려진 편이라 위험하지 않냐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출처: 유민준씨 제공
오거돈 부산 시장이 3월 말 아세안 순방을 하며 에어아시아를 찾았을 때 유민준씨가 통역으로 나섰다. 인턴 시절 홍보팀에서 일했기 때문에 회사를 잘 알고 부산 출신이라는 연결점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턴으로 성실히 근무하며 정규직 전환된 이후 우려는 사라졌다. 2년 넘게 근무한 그에게 말레이시아 취업, 생활 등을 묻는 이들이 늘었다.


“한국인이 외항사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많습니다. 승무원은 장수생이 많은데, 좀만 방향을 틀어 다른 길에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한국인이 여러모로 감각이 뛰어나 마케팅, 디자인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인사팀에선 한국인 직원을 뽑을 때 정보를 줄 수 있겠죠. 또 스펙 쌓기에 집중하기보다 일단 지원해봤으면 합니다. 에어아시아에도 채용 시기가 아니지만, 콜드 메일을 보냈다가 입사한 사례가 많습니다. 당장 뽑지 않더라도 나중에 인사팀에서 먼저 연락하기도 해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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