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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힘들다'는 말 나오는 분야에서 기적의 실적

조회수 2020. 9. 21. 17: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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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뻔한 전통술 시장, 아버지 뜻 이어받아 일으키고 있습니다

고(故) 배상면 전 국순당 회장의 호는 우곡(又麯). ‘또 누룩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누룩은 술을 만들 때 쓰는 발효제. 막걸리의 원료로 쓰인다. 고 배상면 회장은 1952년부터 대구에서 양조장을 경영했다. 1955년 ‘이화(花)’라는 약주를, 1960년에는 쌀을 원료로 만든 ‘기린소주’를 내놨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전통술 시장을 살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전통술 시장을 일으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1996년 ‘배상면주가’를 설립한 배영호(61) 대표. 1997년 약주 ‘산사춘’을 출시해 2005년 누적 판매 1억병을 돌파했다. 또 2010년에는 인공감미료를 쓰지 않은 ‘느린마을막걸리’를 내놨다. 2018년 배상면주가의 매출은 222억원. 2017년(166억원)보다 34% 늘었다. 최근 부침을 겪고 있는 전통술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적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전통술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배영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배영호 배상면주가 대표.

-원래 꿈은 뭐였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나왔다. 특별한 꿈은 없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한 달 동안 유럽에 다녀왔다. 유럽에서 다양한 양조장을 둘러봤다. 여행 전까지는 양조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전통있는 와인 양조장을 둘러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국에서 유럽의 와인 부럽지 않은 전통술 시장을 키워보고 싶었다.”


-배한산업(현 국순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육군 중위 전역 후 1983년 아버지가 이끌고 있던 배한산업에 입사했다. 술은 만들지 않고 막걸리의 원료인 누룩만 만들 때였다. 전통술은 크게 약주·소주·막걸리로 나눌 수 있다. 당시엔 희석식 소주만 팔렸다. 희석식 소주는 95% 순수 알코올인 주정(에탄올)에 물과 감미료 등을 넣어 만든다. 전통 소주에는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또 숙성 과정에서 다양한 향을 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누룩만 만들어서는 전통술 시장을 일으킬 수 없었다.


입사 후 아버지와 함께 다시 전통주 개발에 나섰다. 1989년 첫 작품 ‘백세주’를 내놨다. 백세주는 찹쌀로 만든 발효술이다. 허브·인삼을 넣어 감미로운 맛을 낸다. 백세주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약주 시장 규모를 3000억원대로 키웠다. 국순당 전무이사로 있다가 1996년 배상면주가를 세우면서 독립했다. 현재 국순당은 형인 배중호 대표가 이끌고 있다.”

출처: 배상면주가 제공
느린마을막걸리

-그 동안 무슨 일들을 했나.


“전통술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첫 10년은 약주 사업에 집중했다. 1997년 산사춘을 출시했다. 2005년 출시 8년 만에 1억병 판매를 달성했다. 2007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주류품평회에서 명품주로 선정받았다.


약주 다음은 막걸리였다. 2010년 ‘느린마을막걸리’를 출시했다. 일반적으로 막걸리를 만들 때 단맛을 내기 위해 ‘아스파탐’이라는 인공감미료를 쓴다. 인공감미료를 쓰면 어떤 제품을 먹든 맛이 비슷비슷하다. 1960년대 산업화 전에는 감미료를 쓰지 않았다. 근대화 과정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 인공감미료나 각종 첨가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전통 제조 방식을 따르고 싶었다. 느린마을막걸리는 물·쌀·누룩만으로 만든다.


소비자도 우리의 노력을 알아봐줬다. 느린마을막걸리는 ‘2017 우리술품평회’ 탁주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2019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탁주부문 대상을 받았다. 2018년 느린마을막걸리의 매출은 45억원이었다. 2017년보다 53% 올랐다.”


-주류 개발에도 직접 참여하나.


“맛·향·목넘김·취하는 기분 4가지 요소가 술맛을 결정한다. 이중 향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술은 잘 못 마시지만 코가 예민해 향은 잘 맡는다. 배상면주가에서 만드는 술은 모두 내 코를 한 번씩 거쳐가는 셈이다.”

/jobsN

-경영철학이 있다면.


“'더 좋은 것'보다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한다. 어딜 가든 나보다 앞서가는 사람은 있다. 그런 경쟁은 피해야 한다. 남과 다른 시장을 찾으면 기회가 생긴다. 전통술에 주목한 이유도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길을 낸다는 게 나만의 경영철학이다.”


-전통술 업계가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어떻냐고 물으면 항상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통술 시장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불황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지금은 주류 시장 전체에서 전통술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시장 규모는 6000억원 정도다. 적어도 1조원은 넘어야 시장에 활력이 돌 것이라고 본다.


우리 회사는 2015~2017년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8년부터 1990년대생 중심으로 전통술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가 유행하면서 연 매출이 20~30%씩 오르고 있다. 작년 영업이익 4억6000만원을 달성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꿈이 있나.


“한국 전통술에 대한 세계적인 표준을 만들고 싶다. ‘막걸리’나 ‘소주’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 제품이 생각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술을 만드는 게 목표다. 또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술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해석해 선보이고 싶다. 요즘은 트렌드의 교체 주기가 짧아졌다. 소비자가 한 제품에 싫증내는 속도도 빨라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대응할 수 있는 주류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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