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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이나 쇼가 아닙니다, 이건 살인범 잡는 과학입니다”

“최면은 ‘레드 썬’이 전부? 7시간 동안 집중해 기억 되찾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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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쯤이었어요. 군산 바닷가의 한 도로에서 목이 잘린 시신이 발견됐죠. 사건 당시 피해자와 술을 마셨던 직장 상사가 용의자였어요. 그런데 알코올성 기억상실증 때문에 자신이 후임을 죽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죠. 본인도 답답했는지 기억을 찾고 싶다고 했어요. 최면수사로 사건 당시 기억은 물론 범행 도구까지 찾아냈어요. 그 사람은 징역 10년형을 받고 복역중입니다.”


1600건. 지금까지 그가 참여한 최면수사 횟수다. 이중 150건은 살인사건.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7시간까지 최면 상태에 있는 사람의 기억을 되살려내는 일을 한다.

박주호 경위.

출처jobsN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북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에 근무 중인 박주호(45) 경위. 1991년부터 2004년까지 해군본부 수사관으로 복무한 그는 장성급 간부의 군 범죄에 대한 기획 수사를 맡았다. 2004년 3월 중사로 전역한 뒤 2006년 7월 경찰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 2기 특채에 합격해 14년째 경찰로 일하고 있다.


-전역한 이유가 궁금하다.


“상사 진급을 몇달 앞두고 군복을 벗었다. 능력이 없던 건 아니다. 해군·해병대 수사관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 평가를 했다. 그 평가에서 늘 1등이었다. 복무하는 동안 법학·경찰행정학·심리학 등 직무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 군 복무를 하면서 경남대학교 법과대학 학사와 동아대학교 경찰법무대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당시 범죄심리학 수업을 해달라는 한 대학교의 요청을 받고 시간강사로 일할 수 있느냐고 헌병대장한테 물었다. 그랬더니 ‘네가 무슨 강사냐’며 조용히 일이나 하라는 말을 들었다.


동아대 로스쿨 지도교수님을 찾아가서 고민을 털어놨다. 교수님은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군대 밖으로 나와서 꿈을 펼치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듣고 전역을 결심했다.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고 이 분야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전역 후 전주대학교 상담심리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살인사건을 예로 들면 현장에는 두 가지 종류의 증거물이 나온다. 지문·족적·혈흔 등 눈으로 볼수 있는 유형증거물과 범죄자만의 범행 수법이나 표식과 같은 무형증거물이 있다. 현장에서 유형증거물을 채취해 분석하는 사람이 CSI(Crime Scene Investigation·과학수사) 현장감식 요원이다. 무형증거물을 수사하는 사람을 프로파일러라 한다. 나는 현장감식과 강력범죄자 프로파일링 두 가지 다 하고 있다. 또 법최면 수사와 몽타주 제작도 한다.”


-최면의 원리가 궁금하다.


“최면은 사람을 신체적 이완 상태로 만들어 무의식에 있는 기억을 깨우는 일이다. 먼저 최면 대상자에게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라고 말한다. 잠 잘 때를 생각하게 하면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호흡이 안정적으로 바뀌면 치매 등 뇌질환을 진단할 때 쓰는 EEG(electroencephalogram·뇌파도) 검사를 한다.


의식 상태의 뇌파를 베타파라고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단계인 전의식 상태 뇌파는 알파파라 한다. 또 무의식 상태는 세타파다. 최면 상태에서는 주로 세타파가 나온다. 대상자의 뇌파가 세타파인 것을 확인하면 무의식 속에 있는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유도문을 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호흡에 집중하십시오’, ‘당신은 호흡을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최면 단계별로 정해진 유도문이 있다. 이를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뇌파의 변화를 지켜본다.”


-최면은 어떻게 배웠나.


“2002년 해군으로 복무하던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최면 교육을 받았다. 당시 30명이 최면 교육을 받았다. 절반이 국정원 요원, 나머지는 경찰이었다. 나는 국방부 대표로 교육에 참석했다”

박주호 경위 제공

-최면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최면수사관과 대상자 사이의 친밀감을 뜻하는 ‘라포 형성’(Rapport Building)이 중요하다. 최면 대상자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학연·지연·혈연·흡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만일 최면 대상자가 서울 출신이라면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닌 시절을 말하면서 연결점을 찾는다. 거주지도 다르고 나와 달리 흡연도 안 한다면 취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 사람이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참 좋았다’고 하면 나는 ‘나도 가봤는데 함덕이랑 협재가 좋더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떻게든 공통 분모를 찾아내 그 사람에게 다가가려 한다. 이렇게 유대감을 쌓은 상태에서 조건화 과정에 들어간다.


조건화는 최면을 위해 30~40분 동안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가령 뺑소니 사망사고를 목격한 중년 남성에게 최면을 건다고 하자. 본업이 있는데 형사들이 자꾸 조사를 받으라며 연락을 해온다.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며칠 뒤 다시 전화해 세 시간 동안 최면수사를 받으라고 한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날 땐 이미 잔뜩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그러면 나는 ‘죽은 아이가 여중생인데, 아버님도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계시지 않냐’면서 설득한다. 지금 피해자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가냐고 한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힘들겠지만 한 번만 나를 믿어달라고 한다. 그러면 그의 태도가 바뀐다. ‘그래, 여기까지 온 거 한 번 해볼게요’라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본격적으로 최면에 들어간다.”


-대상자가 최면 상태인지 어떻게 아나.


“호흡 패턴이나 뇌파 변화를 확인한다. 최면 상태에서는 알파~세타파가 나와야 정상이다. 의식 상태에서 대답하면 베타파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최면수사를 받는데 뇌파가 계속 베타파를 가리킨다면 허위로 진술하는 것이다. 그러면 수사를 중단한다. 거짓말탐지기를 써보면 허위최면반응이었던 게 맞다는 걸 알 수 있다.”


-최면이 비과학적인 기법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는 최면을 떠올리면 ‘레드 썬’만 생각한다. 미신이나 ‘쇼’(show)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사실 최면 기법은 전 세계적으로 역사가 깊다. 1950년 영국의학회에서 최면을 치료기법으로 인정했다. 1970년 WHO(세계보건기구)도 최면을 유용한 치료 수단이라고 했다. 미국은 최면 치료를 병원에서도 활용한다. 우리나라만 최면을 오락 수단으로 오해한다.”


-수사를 하면서 힘든 점은.


“수사를 오래 했다고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사건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인사건 피의자가 알코올성 기억상실 상태에서 사람을 죽였다면 자신이 시체를 어디에 유기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또 피의자는 피해자나 목격자와 달리 수사에 협조를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최면수사 자체가 어렵다. 이럴 때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박주호 경위 제공

-우리나라 최면수사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최면수사 기술은 선진국 못지않다. 하지만 수사 절차나 규칙에 대한 매뉴얼은 보완이 필요하다. 미국은 1950~1960년대에 최면수사를 도입했다. 미 연방법원규칙에서는 최면수사에 대한 절차와 규칙을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9년부터 최면수사를 하고 있다. 50년 늦게 시작했으니 상대적으로 덜 체계적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바뀔 것이라 본다.”


-일 하면서 뿌듯할 때는.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을 못 잡으면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다. 나는 프로파일러로서 범죄자 행동을 분석한다. 연령대·거주지·혼인 여부 등을 추론해 강력계 형사에게 전달한다. 프로파일링 결과가 형사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반대로 내가 분석한 자료 덕분에 범인을 일찍 검거하면 뿌듯하다. 범인이 연쇄살인범이라면 2·3차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도운 셈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꿈은.


“군 시절을 포함 수사 경력이 25년 정도다. 종종 대학교에서 교수로 와 달라고 한다. 이미 간 사람도 많다. 프로파일러 전문수사관은 40여명. 이중 3분의 1이 국가정보원이나 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아직은 현장에서 뛰고 싶다. 현장 경험을 더 쌓아서 내 노하우를 수사관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경찰을 그만둔다면 심리치료 전문가로 일하고 싶다. 최면수사를 할 때는 최면치료상담도 같이 한다. 성폭행 피해 여성이나 가정폭력 피해 학생은 트라우마가 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기억을 하나씩 지울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450명 정도 심리치료를 했다. 범인을 체포한다고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이 받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의 상처가 사라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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