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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몇살이냐면요..' 400명 이끄는 지점장님의 놀라운 나이

조회수 2020. 9. 21. 17: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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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동기들보다 늦었지만..입사 7년만에 400명 이끄는 지점장 됐죠
이은정 뉴코아아울렛 산본점 지점장
아동복 MD 거쳐 30대 중반, 입사 7년 만

‘퇴사 후 세계 여행’, ‘퇴사 후 창업’ 등 퇴사 후 삶에 주목하는 시대. 서점가에는 ‘퇴사하겠습니다’, ‘희망 퇴사’ 등 퇴사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퇴사가 유행이라지만 직장인으로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뉴코아아울렛 산본점 이은정(34) 지점장도 그렇다. 처음엔 동료보다 늦었지만 열심히 일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앞에 서 조직을 이끌고 있다.


최소 십몇 년 이상 근무한 중장년층이 맡는 지점장 자리를 30대 중반의 8년 차 직장인이 꿰찼다. 전국 50명의 지점장 중 가장 막내 기수다. 뉴코아아울렛 산본점은 유동인구 4만명이 넘는 신도시 핵심 상권이다. 이곳에서 이 지점장은 120개 브랜드 판매 전략을 짠다. 그가 이끄는 직원 수만 400명에 육박한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인 셈이다.


숙명여대에서 경영학과 식품영양학을 복수 전공했다. 2011년 7월 이랜드 그룹에 입사했다. 패션 브랜드 티니위니 영업담당으로 시작했다. 유통사업부를 거쳐 2018년 4월 지점장 자리에 올랐다. 첨에는 동기들에 비해 승진이 느렸다. 주임으로 승진해야 할 시기에 승진 기회를 놓쳤다. 이 지점장은 “승진 시기에 다른 사업부로 이동을 해 승진 대상에서 빠졌다”며 “이후 스스로에게 더 박차를 가했던 것 같다”고 했다. 승진 시점을 6개월씩 단축해 동기들 중 첫 번째로 지점장 명함을 달았다. 

출처: jobsN
이은정 뉴코아아울렛 산본점 지점장

“반나절 이상 시외버스 안에서 보냈죠”


이랜드에는 ‘3×5 CDP(Career Development Path) 제도’가 있다. 5단계로 나눠 3년마다 진급이 가능한 제도다. 신입에서 시작해 5단계 마지막은 ‘임원’이다. 15년 만에 사원에서 임원으로 ‘압축 성장’이 가능한 셈이다. 2018년 매출 9조3600억원을 기록한 이랜드는 80여개 계열사를 둔 대형 패션·유통업체다. 빠른 성장에 기민하게 대응할 젊은 피를 지닌 임원이 필요하다. 신입사원에게는 ‘성과만 내면 조기 승진할 수 있다’는 동기를 준다.


신입사원 때부터 대형 프로젝트를 맡는다. 이 지점장도 입사하자마자 ‘티니위니 강남 메가샵’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메가샵이란 한 매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의류·잡화를 살 수 있는 대형 매장을 말한다.


“브랜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큰 프로젝트였어요. 1개월 동안 이 프로젝트에만 매달렸습니다. 팀장급 선배를 중심으로 5~6명이 한 조를 이뤘습니다. 길거리에서 대학생을 붙잡고 설문조사하고, 매장에서 직접 일했습니다. 판매, 포장, 창고 정리, 박스 나르기, 마네킹 옷 갈아입히기 등 모든 현장 업무를 경험했어요.”


기존 강남 매장에서 일주일 동안 파일럿 매장을 운영해 전주 대비 매출이 12% 성장하는 성과도 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이 지점장이 속한 팀이 금상을 받았다. 

출처: 이은정 지점장 제공
신입 시절 모습.

이때 인연으로 티니위니 영업담당으로 일했다. 지역별 매장을 돌아다니며 관리하는 업무다. 어느 매장에 어떤 상품을 보낼 건지부터 행사 기획, 프로모션, 인테리어까지 관여한다. 당시만 해도 여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보통 영업직은 남성 위주였고 ROTC(학군사관) 출신을 우대했다.


“고객은 주말에 주로 쇼핑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도 매장에 자주 나갔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 시간 없이 일했어요. 제가 담당하는 매장은 주로 지방에 있었습니다. 하루에 충청도와 강원도를 왔다 갔다 했어요. 반나절 이상을 시외버스 안에서 보냈죠.”


남대문 새벽 시장 출근 도장 찍어


2년 후 유통사업부로 이동했다. 뉴코아아울렛 송파점 숙녀층 담당으로 일했다. 이전에는 ‘티니위니’ 브랜드 하나만 담당했다면 이젠 30개의 브랜드를 관리해야 했다. 여러 브랜드를 조합해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또다시 2년 후인 2015년 특정매입 아동복 MD로 이동했다. 대개 홈쇼핑이나 소셜커머스에서 MD는 상품기획자를 뜻한다. 하지만 이랜드에서 MD는 고객이 원하는 브랜드를 발굴해 아울렛에 입점시키는 것이 주 업무다. 전국 50개 점포의 아동복층 브랜드를 관리했다. 이 지점장이 본격적으로 역량을 발휘한 시기다.


MD는 이랜드 본사와 브랜드 그 사이에 있다.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도 MD의 몫이다. “한번은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론칭한 키즈 브랜드를 저희 매장에 입점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본사에서는 아무리 유명 브랜드라도 검증되지 않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죠. 가격대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전 ‘반드시 입점시키겠다’는 입장이었어요. 새로운 구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 봤습니다. 결국 몇몇 점포에서 시험해보기로 했어요. 처음 오픈하는 날 매장에서 현장 직원과 함께 판촉을 했어요. 사실 MD가 직접 물건 파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고객 반응을 보기 위해서 그날은 두팔 걷어붙이고 판매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출처: 이은정 지점장 제공
유통사업부 특정매입 MD 시절.

반대로 입점하지 않으려는 브랜드가 있다면 끈질기게 협상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무턱대고 찍기만 하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관심 있을 만한 협상 내용을 가져가야 해요. 예를 들어 매장이 리뉴얼을 한다든지, 모델(시험) 점포로 반응을 본다든지 상대방이 지금 갖고 있는 니즈(Needs)를 파악하고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2015년 이랜드가 앰버아동복과 협업해 내놓은 아동복브랜드 티트(TITE)를 개발할 때 이 지점장이 참여했다. 월 1억원의 매출을 낼 만큼 반응이 좋았다. 하루 3000만원의 매출을 낸 적도 있다. “한 층에 많으면 60개 브랜드가 들어가요. 평균 30개 정도입니다. 개수가 많다고도 볼 수 있지만, 당시 엄마들 사이에선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욕구가 컸습니다. 특히 북유럽 감성이 뜨는 시기였는데 마땅한 브랜드가 없었어요.”


시장 조사를 위해 남대문 시장 아동복 거리로 출퇴근을 했다. 새벽 시장에 나가 발품을 팔았다. 엄마 고객들을 붙잡고 ‘어떤 옷을 원하는지’ 물었다.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뭐든 빠르다지만, 아동복만은 남대문 시장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모든 트렌드가 있으면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곳이에요. 아동복이 주로 원색 계열이 많은데, 이제는 엄마들이 천연에 가까운 색 혹은 무채색을 선호했어요. 품질도 당연히 좋아야했구요. 또 유통에서는 디자인이 예쁘다고 끝이 아닙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 능력·물류 등 공급망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랜드만의 특성도 살려야 했다. “‘집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점포’가 저희가 추구하는 특징입니다. ‘백화점’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주택가가 아니라 시내 중심가에 있습니다. 큰맘 먹고 쇼핑을 하러 나가야 하죠. 반면 이랜드 점포는 대부분 우리 지역에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고객이 자주 방문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고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해요. 어쩌다 한번 사서 입히는 게 아니라, 예쁜 옷은 부담 없이 입힐 수 있는 가격대여야 하죠.” 

출처: 이은정 지점장 제공
지점장 취임식에서,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했다


뉴코아아울렛 산본점도 이 지점장이 맡은 이후 실적이 좋다. 패션 브랜드에선 모든 지점을 통틀어 매출 1위를 달성한 브랜드가 5개나 있다. 3일 만에 1억9000만원의 매출을 낸 적도 있다. 대형 지점에서도 내기 어려운, 기존에 없던 실적이다.


발령받은 첫 출근 날 현장에 내려가 고객에게 의견을 물었다. “산본점은 40~50대가 많기 때문에 사이즈를 44, 55에서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하게 구성해야 합니다. 66, 77 사이즈를 더 많이 진열해두면 고객이 직원을 따로 불러야 하는 번거로움도 줄일 수 있어요. 실제 고객께서 주신 의견을 바로 반영했습니다.”


‘상품이 맨날 똑같다’는 의견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지하철역 안에 있다는 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지나가는 고객의 시선을 단박에 붙잡을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했다.


이 지점장은 산본점을 ‘52주 앵커 주제전’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1년은 52주다. 매주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상품을 골라 모아 고객에게 보여주는 식이다. 흔히 ‘입학 시즌 대전’, ‘봄 시즌 대전’ 등이 있다. 

출처: 이은정 지점장 제공
산본점에서 ‘52주 앵커 주제전’ 운영 이후 고객들이 줄을 선 모습.

“기존에는 카테고리 별로 각자의 공간에서만 상품을 팔았어요. 사전 기획 없이 각자 영역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모든 브랜드가 한 행사에 참여하는 ‘주제전’을 제안했을 때 반대 의견이 있었어요. 브랜드마다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주기가 달라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효율적으로 갖추려면 운영 방식을 바꿔야 했습니다. 3개월 전 주제를 정하고, 제가 브랜드별로 직접 협상해 상품을 확보했어요.”


이 지점장은 이런 행사를 어쩌다 한번 열리는 대형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화’했다. 다음주에는 어떤 주제로 이벤트가 열릴지 고객이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한 행사장에서 매주 억대 매출을 기록했다. 산본점에서 상품을 사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고객도 있다.


빠르게 지점장 자리에 오른 그는 이랜드그룹 채용 시기 때 채용 도우미로 나가기도 한다. 신입사원 교육 과정에도 참여한다. “‘재밌게 일하지만 쉽게 덤비진 말라’고 말해요. 여기서 ‘재밌다’라는 말을 듣고 쉽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저는 목표 지향적이고, 항상 최고를 목표로 하는 ‘최상주의자’였어요. 입사 전 인성검사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유통업계에 적합한 성향이에요. 매번 다른 프로젝트에 도전해야 하고, 그 결과로 얻는 성과 덕분에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무수히 많은 스트레스가 있는 ‘극한 직업’입니다. 도전을 즐기고 성과 내기를 즐기는 성향이라면 유통업에 뛰어들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출처: 이은정 지점장 제공
(왼쪽부터) 대학 재학 시절, 이랜드 신입사원 교육 과정에 교관으로 참여했을 때. 이 지점장은 대학 재학 시절 아나운서를 꿈꿨다. "대학생 때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여러가지를 하고 싶었어요. 4학년이 돼서야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내가 누군지'를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게 중요해요. 다행히 저는 제 성향이 어떤지 빨리 파악해 졸업하자마자 취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빠른 승진’이 목표는 아니었다. “늘 스스로 동기부여를 했어요. 올해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매년 정했습니다. 그 동기부여에 ‘지점장이 돼야겠다’는 직책보다는, 어떻게 성과를 낼지에 초점을 맞췄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해당됩니다. 앞으로는 동료와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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