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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친구들이 월급 적다고 놀리면, 전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가진 여권 부러워하는 사람 많지만··· 책임 막중한 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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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은 공항에서 줄 안 선다는 말은 절반만 맞아요. 공무를 수행 중인 장관급 이상 인사에게만 주는 혜택이거든요. 일반 외교관은 주재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체포할 수 없는 ‘불체포 특권’이 있어요. 이런 혜택은 폼 내라고 주는 게 아닙니다. 외교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라는 상대국의 배려죠.


그는 2018년 12월 임용한 ‘새내기 외교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1학번으로 2017년 9월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에 합격했다. 11개월 동안 국립외교원 연수를 마치고 작년 12월부터 외교부 국제법률국 영토해양과에서 근무 중이다. 안한별(29) 외무사무관을 만났다.

안한별 외무사무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출처안한별 외무사무관 제공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외교부 국제법률국 영토해양과에서 일하고 있다. 영토해양과는 독도 영유(領有·자기의 것으로 차지하여 가짐) 관련 외교 정책을 연구하고 수립하는 부서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독도 관련 국제회의에서 어떤 발언이 오가는지 모니터링한다. 또 필요한 경우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독도 현안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밝히고 관련자를 설득하기도 한다.


‘동해’(East sea) 표기 확산을 위한 전략도 연구한다. 아직까지는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는 나라가 더 많다. 그래도 최근 정부와 시민 단체의 노력으로 동해라고 표기하는 곳이 꾸준히 늘고 있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초등학생 때 처음 알았다. 용인한국외국어대학교부설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꿈이 외교관이라고 했다. 호기심은 있었지만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외교관을 할 생각은 없었다. 공부를 꾸준히 오래 해야 하는 고시 생활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1학년 수료 후 2012년 외교부에서 인턴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보조 인력을 채용한 것이다. 고시는 못 하겠지만 인턴이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자기소개서를 9번이나 고쳐서 지원해 합격했다. 3개월 동안 회의 참가국 공관과 연락해 참석 일정을 조정하는 등 행정 업무를 맡았다.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묘한 설렘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막상 국가기관 소속으로 일해보니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짜릿함을 안겨줬다. 하지만 여전히 ‘고시’라는 장벽은 부담스러웠다. 어설프게 도전했다가 시간만 날릴 것 같았다.


2014년 학교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준비반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당시 실장이던 형이 ‘너처럼 생각 없는 애들이 막상 공부 시작하면 잘 하더라’면서 받아줬다. 첫 1년은 공부를 안 하고 동료들을 지켜봤다. 고시생들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기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옆에서 고시 생활을 지켜보니까 나도 해볼만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도전도 안 해보고 포기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합격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은 1~3차로 나뉜다. 일반외교 기준 1차에서는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헌법 시험을 본다. 2차는 논술 시험과 전공평가로 국제정치학·국제법·경제학 3과목을 본다. 3차는 면접이다. 일찍 합격하는 사람은 2년 만에 붙는다. 보통 3~4년 정도 공부한다. 나는 2015년 처음 1차 시험에 응시했는데 답안지 마킹 실수로 탈락했다. 2016년에는 1차 시험에 통과했지만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2017년 세 번째 도전만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는 주 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재외공관 연수 과정을 거쳤다.

출처안한별 외무사무관 제공

-하루 몇 시간이나 공부했나.


“1·2차 시험 사이 3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 이때는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했다. 토·일요일에는 이틀 합쳐 10시간 공부했다. 일주일에 최소 60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다른 동료들보다 공부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나머지 9개월은 공부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했다. 하루 4~5시간 공부한 날도 많았다. 스쿼트와 팔굽혀펴기로 체력 관리도 했다.”


-외교관을 하려면 연수원 생활도 거쳐야 한다고.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합격 후 국립외교원에서 연수를 받는다. 나는 5기로 11개월 동안 연수원 생활을 했다. 영어집중과정·행외시합동연수과정·재외공관연수과정·본부연수과정 등이 있었다.


영어집중과정 3주 동안은 영어만 쓸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국제회의·토론·소셜라이징 4과목을 들었다. 소셜라이징 수업 때는 외교관이 사교적 행사에서 어떤 영어를 써야 하는지 배웠다.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외교관을 초청해 실전 연습도 했다.


행·외시합동연수는 3주 동안 국립외교원 연수생과 행정고시 합격생들이 함께 업무를 배우는 과정이다. 천안 우정공무원연수원에서 합숙 생활을 했다. 외교관은 외교부뿐만 아니라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일한다. 부처간 벽을 낮추기 위해 이런 연수 과정을 거친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이해’, ‘성 관련 비위 사례’ 등에 대해 배웠다.


지금은 4주로 늘어난 재외공관 연수를 나는 1주일 동안 받았다. 이때는 해외 공관으로 파견을 가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 경험해본다. 나는 스위스 제네바에 다녀왔다. 주 스위스 한국 대사관은 수도인 베른에 있다. 제네바에는 세계무역기구(WTO)·UN 유럽 본부 등이 있다. 나는 이들 국제기구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주 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일했다.”

국립외교원 연수생 시절 주한독일외교관들과 친선 축구대회를 열었다.

출처안한별 외무사무관 제공

-일정 비율로 연수생을 탈락시켰다고 들었다.


“우리 전 기수인 4기까지 일정 비율로 연수생을 탈락시켰다. 정원 35명 중 10% 이상 떨어뜨린 적도 있다. 어렵게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에 통과하고 연수원 생활도 1년 했는데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탈락 후 다시 시험을 봐서 외교부에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제도 때문에 연수원생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다. 연수원생 절반이 심리상담을 받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들었다. 내가 합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무공무원법이 바뀌었다. 우리는 3학기 과정을 이수했다. 1학기가 끝날 때 외교원 측으로부터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임용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 탈락자는 나오지 않았다.


시험 예상문제 위주로 공부하다가 2학기 때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를 읽고 토론하거나 뮤지컬 동아리를 만들어 공연도 했다. 나는 축구 동아리 만들어서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외국 외교관들과 축구 경기도 했다.”


-외교관 혜택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은 UN 국제위원회 검토를 거쳐 1961년 채택했다. 176개국이 이 협약을 따른다. 비엔나협약은 ‘외교관 신체는 불가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교관은 주재국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체포할 수 없다. 외교관인줄 모르고 체포했어도 신분을 확인하는 즉시 풀어줘야 한다. 그렇다고 범죄에 대한 처벌까지 면해주는 것은 아니다. 본국으로 소환해 자국법으로 처벌한다. 다른 나라에 있는 외교 공관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태국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관에 불이 나도 공관이 거부하면 소방관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면세 혜택도 있다. 주재국 정부에서 관세·소비세·부가가치세 등을 환급해준다. 또 유명무실해진 혜택도 있다. 비엔나협약 제26조 ‘이동·여행의 자유’는 주재국이 외교관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조항이다. 현재 외교관의 이동의 자유를 막는 나라는 없다. 비엔나협약이 생긴 1960년대 냉전 시기에 소련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조항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외교관여권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다. 외교관여권 소지자는 공항에서 줄을 서지 않고 짐 검사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공무를 수행 중인 장관급 이상 인사에게만 주는 혜택이다. 일반 외교관에게는 비엔나협약에 따라 재판 관할권 면제 등의 혜택만 주어진다. 이런 혜택은 외교관이 폼을 내고 다니라고 주는 게 아니다. 외교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라고 상대국이 배려해주는 것이다.”

안한별 외무사무관 제공

-야근도 많나.


“8시~8시30분 사이에 출근한다. 급하게 끝내야 하는 일이 없으면 퇴근은 오후 6시쯤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선배가 남아 있으면 퇴근을 못 했다고 들었다. 새벽 2시에 선배한테 전화가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경화 장관님이 취임한 뒤 합리적으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평균 퇴근 시간은 6시보다는 늦은 편이다. 시급한 일이 있으면 새벽까지도 일하는 부서가 많다.”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외교정책을 연구하는 동시에 세미나를 열면 회의장 예약부터 도시락 구매까지 모든 세부적인 일을 맡는다. 또 퇴근하기 직전에 외교 사안이 발생하면 자정이나 새벽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일해야 한다. 중요한 약속을 1년 전에 잡았더라도 당일 30분 전에 취소해야 할 때가 있다. 외무사무관으로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불만은 없다.”


-외교관을 꿈꾸는 청년에게 한 마디.


“외교관이라는 꿈 자체만큼 어떤 외교관으로 일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공직자로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들은 내 월급이 낮다며 놀리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대기업 사장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며 받아친다. 기업이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의무이고 특별한 권리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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