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즘 ‘자식들에게도 안물려준다’는 사업에 뛰어든 34살입니다

실리콘밸리도 혀를 내두르는 '제조업'에 도전한 이유
jobsN 작성일자2019.04.01. | 8,687  view
펀드매니저 출신, 바스버거 창업 경험
2030 감성과 5060 경험 만나면 제조업 부흥
소비자가 감동하는 제품 만들겠다

IT와 콘텐츠 산업이 산업 패러다임을 주도하면서 '제조업의 위기'란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을 이끈 50대 이상 창업자들은 떠나고 젊은 세대는 고된 제조업을 기피한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가업 승계는 꿈꾸기 힘들다. 최근 대박을 터트린 스타트업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스마트폰 속 애플리케이션을 만든 곳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조차 '하드웨어는 어렵다(Hardware is hard)'는 비관론이 대세다.


허지욱(34) 허킨스(Hurkins) 대표는 2015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전자 제품을 기획·디자인하고 제조한다. 공장이 중국·베트남이 아닌 ‘대구’에 있다. 대표 제품은 LED 캠핑용 랜턴 ‘스타알파’와 헤드랜턴 ‘오빗’. 2만~3만원 저가품이 주류였던 캠핑용 랜턴 시장에 5만~9만원짜리를 내놨다. ‘제품 값한다’는 입소문을 타고 이후 제품도 반응이 좋다. 미국·유럽·일본·대만으로도 팔린다. 2018년 국내에서만 10억원의 매출을 냈다. 2019년엔 50억원을 예상한다.


허 대표는 2011년 펀드매니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에셋플러스, 맥쿼리 자산운용 등에서 3년 반을 일하다 그만뒀다. 2014년 시리얼 아이스크림 ‘바스티유’·수제버거 바스버거를 지인 3명과 공동 창업했다. 바스버거는 광화문·여의도 등 직장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이마저도 뒤로하고 제조업에 몸담기로 결정했다. ‘세상에 없거나, 있어도 일상 속에서 함께하지 못했던 기기를 재탄생시킨다’가 회사 철학이다.

허지욱 허킨스 대표

source : 허킨스 제공

메커니즘으로 소비자에게 감동을


허킨스 제품을 직접 돈을 주고 사서 써 본 ‘내돈 내산’ 리뷰가 많다. ‘압도적인 밝기와 배터리’, ‘배터리 용량과 밝기는 괴물인데 디자인도 예쁘다’고 평가한다. 마치 텀블러처럼 생긴 캠핑 랜턴 ‘스타알파’의 가격은 5만원대. 더 크고 밝은 ‘스타기가’는 9만원대다. 호기심에 사보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제품만 좋다면 가격이 좀 높아도 캠핑 마니아는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2015년 당시 캠핑 시장이 성장하고 있었어요. 저가품에 소비자는 질릴 대로 질린 상황이었습니다. 또 첫 아이템을 고심할 때 어느 정도 규모의 시장에 뛰어들 것이냐도 중요해요. 중견기업·대기업이 이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분야에선 저희가 아무리 잘해도 힘들 거라 봤습니다.”


‘스타알파’의 경우 손잡이에 매달린 랜턴이 360도로 돌아간다. 허킨스가 특허 낸 기능이다. 방향에 구애받지 않고 사물을 비출 수 있다. 최대 밝기는 2000루멘. 보통 캠핑용은 1000~1500루멘 정도다. 오랫동안 꾸준히 밝기를 유지한다.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어워드’에서 2018년 본상을 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도 허킨스 제품이 등장했다. 스키어들이 설원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장면에서 머리에 낀 헤드랜턴이 허킨스의 ‘오빗’이다. 기존 랜턴은 빛이 특정 지점을 집중적으로 비추었다. 오빗은 머리나 허리에 착용하면 180도로 탁 트이게 비춘다. 국내 헤드랜턴 중 가장 용량이 높고 밝다. 빛을 환하고 넓게 비추기 위해 특수광학렌즈를 개발했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스키어들이 설원을 가로지르며 내려오는 장면. 머리에 낀 헤드랜턴이 허킨스의 ‘오빗’이다.

source : SBS 평창 동계 올림픽 개회식 영상 캡처

“시제품만 100번 넘게 만듭니다. 양산에 들어가기까지 무수히 많이 시행착오가 있어요. 오빗만 해도 렌즈 하나가 붙어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9겹이에요. 그 속에 들어가는 접착 방법, 배광 기술이 무수히 많고 복잡합니다. 소재와 디자인의 차별성도 자신 있어요. 그런데 핵심은 ‘소비자 효용’입니다. 한국은 중국·베트남과 원가 경쟁에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얼마나 소비자가 이 제품에 감동을 느끼게 하느냐가 중요해요. ‘메커니즘(제품의 작용 원리)’으로 소비자에게 감동을 주자는 게 저희 철학입니다.”


허킨스 제품 원가는 중국산 대비 5배가 넘는다. “소비자 효용이 먼저입니다. 스타트업으로서 돋보이려면 제품력 뿐이에요. 중국에서 OEM을 하라는 문의가 많이 오는데 저희 원가를 듣고 놀랍니다.“


서울 성수동 디자인 연구소에서 4명, 대구 공장에서 20여명이 일한다. 서울에서 디자인을 하고 시제품을 만들어 대구로 보낸다. 대구 공장에서 3명의 기계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제품을 만든다. 30~40년 경력을 지닌 베테랑 기계 엔지니어들이다. A/S도 대구에서 전담한다.


“2030세대의 감성·감각과 5060세대의 기술·경험이 만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저희 엔지니어 이사님들께선 80~90년대 우리 산업을 이끌어오신 분들입니다. 제조업 기술은 청년이 총명하다 해도 절대 못 따라갑니다. 어디를 어떻게 깎아야 할지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을 우리 앞선 세대는 알고 있어요. 다만 우리나라는 과거 조선업·중공업 등 B2B 위주로 컸습니다. 지금은 B2C 산업이 대세인데 디자인·감성이 필요한 것들이에요. 젊은 디자이너들은 애플·다이슨 등 감성을 내세우는 제품을 보고 자랐습니다. 제조업이 위기라 하지만, 2030 디자이너와 우리 선대 엔지니어가 협업한다면 분명 엄청난 효과를 낼 겁니다.”

캠핑 랜턴 스타알파. 배터리는 삼성 갤럭시 S9을 6번 충전할 수 있는 용량이다.

source : 허킨스 제공

최고의 직업, 승승장구하는 외식업 뒤로하고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금융학과 국제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2009년 졸업 후 박사 공부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렵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가세가 기울었다. “무엇보다 자기 선택권이 있는 직업을 원했습니다. 아버지 영향으로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호주는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빨리 한국에서 일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군대에 다녀와 에셋플러스에 입사했다. 글로벌 기업 자산을 운용했다. “세상을 배우는 데 최고의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업무 자체가 온전히 공부입니다. 세계 경제·산업을 늘 공부해야 합니다. 업무 강도가 높다고 하는데, 실은 다들 공부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좋은 직업을 그만둔 이유는 ‘창조자’가 되고 싶어서다.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꿈꿨습니다. 투자자는 참조자일 뿐 창조자는 아니니까요. 좋은 사업이 있으면 뛰어들어야겠다고 늘 고민했습니다.”   

허 대표는 "학창 시절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 양성 과정이 멋있어 보였고 그 길을 걷고자 마음 먹었다"고 했다. 발렌베리는 금융·항공·통신·가전 분야 계열사를 거느리는 스웨덴 가문이다. 5대째 가족경영을 하고 있다. 후계 경영인 자리에 앉으려면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혼자 힘으로 대학을 졸업 할 것. 해군사관학교(군대)에서 정신력을 기를 것. 부모 도움없이 세계 금융 중심지에 진출할 것.

source : 허킨스 제공

2014년 사표를 던졌다. 외식업 테이스터스를 창업했다. 첫 사업 아이템은 소프트 아이스크림가게 ‘바스티유’. “포스퀘어,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가 태동하던 시기였습니다.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어요. 맛과 품질은 당연히 갖춰야 하고, 이젠 ‘SNS에 올리고 싶은 아이템’이 주목받을 거라 봤습니다. 당시 사무실이 여의도였는데, 문득 사무실 창밖을 보니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는 모습이 아이스크림 같았어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고급화해서 SNS에 올리고 싶게끔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태원에 문을 연 바스티유는 맛과 디자인 덕분에 입소문이 났다. 내친김에 바스버거를 열었다. 바스버거 역시 승승장구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고민이 컸다. “창업자가 4명이라는 건 의사결정자도 4명이라는 뜻입니다. 의사결정이 느릴 수밖에 없었어요. 다음 단계로 가려면 시스템을 갖춰야 했어요. 고민하다 ‘페이팔 마피아’를 떠올리며 찢어지기로 했습니다.” 페이팔 마피아란 ‘페이팔’ 출신의 창업가들을 말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유튜브를 만든 채드 헐리와 스티브 챈 등이 대표적이다. 

제품 개발 중인 허 대표와 직원들. 세상에 없거나, 있어도 소비자에게 효용을 주지 못했던 제품에 주목한다.

source : 허킨스 제공

베테랑 엔지니어들과 지지고 볶아야 좋은 제품 나와


제조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기기라면 뭐든 좋아했습니다. 집에 널려있어요. 차 사면 그 안에서 일주일을 살 정도였습니다. 아이폰 3가 나왔을 땐 이리저리 만지고, 얼굴에 비비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죠.”


CEO라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을 갖춰야 했다. 본격적으로 제조업을 공부했다. 제품 디자인·구조 설계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전문가들을 찾아가 ‘과외’를 부탁했다. ‘못한다’는 거절에도 몇 번이고 끈질기게 찾아갔다. 전문가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찾아가 2시간씩 집중 과외를 받았다. 그렇게 1년을 배웠다.


“제조업이 어렵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양산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죠. 양산하기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협업,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했습니다. 이래서 제조업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구나 싶었죠.”


2016년 첫 캠핑 랜턴을 판매하기까지 베테랑 엔지니어들과 1년을 ‘지지고 볶았다.’ 대구 공장 베테랑 엔지니어는 원래 허 대표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엔지니어 이사들이었다. 허 대표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스카우트했다. 

대구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모습.

source : 허킨스 제공

“처음엔 엔지니어분들이 저를 쉽게 신뢰하지 않았어요. 소통이 힘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사업 경력이 있고, 공부를 했다지만 몇십 년 일한 베테랑 분들 입장에서는 애송이였을 겁니다. 제가 대표라고 함부로 해선 절대 안 됩니다. 끊임없이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어요. 지금도 엔지니어들과의 소통이 가장 어렵습니다. 소재나 부품을 사서 예시로 보여드려요. 또 고객 의견을 토대로 말씀드립니다.”


아이디어는 일상 속에서 나온다. 헤드랜턴 ‘오빗’은 낚시를 하다 떠올렸다. “기존 랜턴 시야가 한정적이어서 불편했습니다. 스트랩처럼 만들어서 머리에 끼면 좋겠다 싶었어요. 아주 단순하게 기존 조명을 이용해서 만든 뒤 난지공원에서 켜봤어요. 바로 절망했습니다. 빛이 퍼져서 앞이 하나도 안보였어요. 그때 빛을 모으는 광학배광기술에 눈을 떴습니다.”


오빗은 아웃도어용으로 만들었지만 산업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의도치 않은 곳에서 빛을 봤다. “전기 하시는 분들, 카센터에서 일하는 분들이 찾습니다. A/S 할 때 제품을 받아보면 페인트나 기름이 굉장히 많이 묻어 있어요. 해외 포르셰, 폭스바겐 공장에서도 씁니다.” 

시제품 부품들.

source : 허킨스 제공

낯선 나라에서도 찾아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대신 온라인 판매에 집중했다. 처음부터 아마존 판매를 염두에 뒀다. “기업이 크는 요건 중 세계화가 중요합니다. 테스트로 아마존에 오빗만 내놨는데, 지금은 월 1억원씩 팔립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 여기저기서 연락이 옵니다. 아르메니아·크로아티아 등 낯선 국가도 있어요.”


아직까진 회사 규모가 작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허 대표가 관여한다. 제품 스펙 설명 하나도 직접 쓴다. 시작은 ‘캠핑용 랜턴’이었지만 그의 관심이 아웃도어 산업에만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출시한 ‘스마트서포터’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한달만에 1억 6000만원어치가 팔렸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제품 생산 전 아이디어를 공개한 뒤 일정 수량 이상 신청이 들어오면 만드는 방식이다. 소비자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물건을 아이디어만 보고 산 셈이다. 그만큼 제품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다.

먼 미래를 정해놓진 않았다. 철학은 확실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을 소위 말하는 ‘덕후’, ‘빠돌이’라 할만큼 좋아하는데요. 이들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류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제품을 계속 만들 계획입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jobsN 더보기

해시태그

Recommended Tags

#유튜브

    Top Views 3

      You May Lik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