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도 깜짝 놀란 한국 영화관 팝콘, 그 뒤에는..

조회수 2020. 9. 21. 17:5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지금까지 이런 팝콘은 없었다 이자는 셰프인가 미소지기인가

한국인은 세계에서 2번째로 극장에 많이 간다. 한 사람당 일 년에 4.25번 영화관에 간다. 영화 산업이 발달한 미국(3.5회)·인도(1.5회)·중국(0.8회)보다 많다. 1위는 아이슬란드(4.3회)다.


영화관은 공기가 다르다. 물씬 풍기는 팝콘 냄새 때문이다. 요즘 극장 간식은 예전보다 다양해졌다. 한국 극장 간식에 외국인들도 깜짝 놀라고 간다. 팝콘·콜라·핫도그·나쵸 정도가 전 세계 통하는 영화관 간식이다. 김밥·치킨·튀김범벅 등을 맛볼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출처: 유튜버(@영국남자 Korean Englishman) 캡처
유튜버 영국남자는 한국의 팝콘을 외국인에게 소개했다.

최근 영화 ‘극한직업’ 개봉일에 내놓은 극장 간식이 있다. CGV ‘BBQ 직화구이 치킨’이다. 영화 극한직업은 형사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치킨을 튀긴다는 스토리다. 영화에 열광한 천만관객은 치킨을 덩달아 많이 샀다. 대히트였다. 그런데 이 치킨을 개발한 사람이 알고 보니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 르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 셰프 출신이다. 그는 10년간 영화관 관객들을 사로잡는 메뉴를 개발해왔다. 지금까지 팝콘·김말이·오징어·만두 등 셀 수 없이 튀겨왔다.


유일하게 알던 프랑스어는 ‘파리바게트’

어느 날 갑자기 드라마에 꽂혀 “유학갈래요”


이홍철(41) cgv f&b 과장은 홍익대학교 경영학과에 1996년 입학했다. 1년 뒤 한국에 IMF 사태가 났다. 여러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그걸 보고 기술을 배워야겠다 결심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MBC 드라마 '호텔리어'를 방영하고 있었다. 그 드라마에 끌려 공익 근무 중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주방에서 접시를 닦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요리사였다. 불앞에서 여러 재료를 갖고 창작물을 만드는 요리사가 가장 멋진 직업 같았다. 그날 아버지를 찾아가 “프랑스에 요리 공부하러 가겠다. 유학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출처: jobsN
셰프출신으로 10년간 극장 팝콘 메뉴를 개발해온 이홍철 과장.

“프랑스어는 파리바게트밖에 몰랐어요.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잖아요. 가서 공부하면 최고의 요리사가 될 줄 알았던 거죠. 순진하고 무모했던 시절이었어요. 어이가 없으셨던 아버지는 10년 계획서 가지고 오라 하셨어요. 바로 다음날 전체 계획을 발표했죠. 아버지 허락이 떨어지자 학교를 자퇴했어요. 2000년 생활비 약 400만원을 갖고 프랑스 몽펠리에 지방으로 갔습니다. 3개월 어학연수를 했어요. 프랑스 요리학교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는 명성에 비해 입학이 그리 어렵지 않아요.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모두 기회를 줍니다”


2019년 기준 르 꼬르동 블루 학비는 교과과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기초 수준의 학생이 요리만 배우는 요리 디플로마는 2만8850유로(약 3000만원), 제과 디플로마는 2만2800유로(약 2931만원)다. 요리와 제과를 같이 배우는 과정은 18개월 기준으로 5만1650유로(약 6640만원)다. 이홍철 과장은 요리와 제과를 함께 배웠다. 20년 전 르 꼬르동 블루 한 학기 등록금은 1000만원 정도였다. 한 달 평균 생활비와 집세로 160만원 정도 썼다. 기숙사에 살았고 요리학교에 다녀 식비 등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유튜브 @Le Cordon Bleu Paris 캡처
파리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 실습장면.

당시 이 과장은 기초도 갖추지 못했다. 동기 중 어린 시절 전문학교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많았다. 그래도 초조해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배우다 보면 점점 실력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 모르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책을 뒤지면서 공부했다. 초콜릿과 크루아상 종류가 수십 가지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배웠다.


엘리제궁 수석 셰프였던 교수가 눈여겨보던 수제자

여자친구 부름에 한국으로 귀국


문제는 1년 요리 과정을 이수한 다음에 생겼다. 그의 거취에 대한 문제였다. 그는 성실하고 묵묵해 동료들에게 좋은 평을 들었다. 전담교수도 일자리를 제안했다. 교수는 조금만 실수해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정도로 깐깐한 완벽주의자였다. 프랑스 엘리제궁에서 수석 셰프를 지냈던 실력자였다. 이홍철 과장에게 조수직을 제안했다. 졸업 후 약 10개월 동안 프랑스 엠베세더 호텔에서 주방보조를 했다. 그러나 한국에 있는 여자친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002년 귀국했다.


“한국에 온 뒤로 조선호텔 베이커리 달로와요와 SPC 계열사인 르노트르에 근무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우고 왔다고 하면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어요. 경제가 어려운 때에 호의호식하면서 편하게 요리를 배운 줄 알죠. ‘한식도 모르면서···’라는 반응도 있었고요. 그게 콤플렉스였나 봐요. 호텔 요리사로 3년 정도 근무한 다음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 한식 조리사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어요”

출처: 유튜브 @나름TV 캡처
이홍철 과장은 프랑스요리·한식·제과제빵 분야를 모두 배웠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사진은 먹방BJ '나름'이 극장 간식을 리뷰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때는 한식 전문가 과정을 마친 뒤였다. CJ CGV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는 이홍철 셰프에게 극장 간식 메뉴 개발자를 제안했다. 엔터테인먼트와 요식업을 결합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생활과 음식을 결합해 새로운 즐거움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별다른 고민 없이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팝콘 낱알 종류 300여개···“미묘하게 맛달라 일일이 테스트”

영화 ‘극한직업’과 함께 탄생한 극장 치킨 메뉴


2010년 2월 출근하자마자 들었던 질문을 잊지 못한다. “다른 극장 팝콘 맛과 우리 회사의 팝콘 맛이 어떻게 다른가”였다. 대답하지 못했다. ‘팝콘이야 그냥 튀기면 그뿐이지’ 싶었다. 그는 10가지 넘는 크루아상 페이스트리 반죽 종류를 날마다 만들던 사람이었다. 비주류 디저트라 생각했던 팝콘이었다. 그 벽에 부딪혀 좌절할 줄은 몰랐다.

출처: 각 사 공식 홈페이지 캡처
(왼쪽부터)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의 극장 메뉴들.

“극장은 어린아이들도 오고 데이트하는 연인도 오잖아요. 예전에 일하던 베이커리는 대략 누가 빵을 사는지 예상할 수 있었어요. 단팥빵·찹쌀도넛은 나이 든 세대, 피자빵 고로케같이 기름진 건 10·20대 이런 식이었죠. 입맛에 맞게 빵 맛을 좋게 하면 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고민에 빠졌습니다. 팝콘을 집었을 때 손에 묻는 기름양·팝콘 냄새·양념 등 많은 걸 생각해야 했죠. 옥수수 낱알 종류가 300여가지 있는 거 아세요? 생산지에 따라 크기·수분량·질감이 달라요. 또 옥수수 껍질에 금이 간 경우도 있어요. 탈곡할 때 많이 부딪히면 낱알이 충격을 받아 깨져있거든요. 그런 옥수수 알은 팝콘으로 튀겼을 때 훨씬 많이 부풀고 크기가 일정치 않아요”


그는 “매년 하나씩 새롭게 알아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팝콘을 튀기는 오일로 2012년부터 코코넛 오일을 쓴다. 트랜스지방이 가장 낮고 손에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지방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 우리 몸에 각종 심혈관질환을 유발한다. 또 코코넛 오일은 기름 쩐내가 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는 관객은 많지 않았다. 설문조사를 하면 ‘고소하다’ 정도의 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끈질기게 메뉴를 개발해나갔다. 음식만이 아니었다. 아예 팝콘 진열장 전체를 뜯어고쳤다고 한다.


“막 튀긴 팝콘이 진열장에만 두면 눅눅해졌습니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해보니 열기 때문에 통 안에 습기가 생기더군요. 해답을 박물관에서 찾았어요. 유물 보관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죠. 에어컨과 제습기를 동시에 가동해요. 정해진 습도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전국 극장의 팝콘 진열장을 바꿨죠”

출처: CJ CGV 커뮤니케이션팀 제공
팝콘의 바삭함을 유지하기 위해 진열장을 손 본 이홍철 과장.

무모한 도전을 했던 때도 있었다. 2013년 시도한 ‘와사비팝콘’이 대표적인 예다. 와사비팝콘은 색깔이 초록색이었다. 관객에게 테스트를 해보니 “가뜩이나 어두운 곳(극장)에서 곰팡이 먹는 기분이다”라는 반응이었다. 7가지 양념을 원하는 대로 섞어먹는 ‘셰이크 팝콘’도 마찬가지다. 극장에 데이트하러 온 연인들은 아무도 팝콘 봉지 흔드는 걸 원하지 않았다. 팝콘·콜라 말고 다른 시도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온 때는 2017년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하고 고민했다. 분식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메뉴가 떡볶이 양념에 버무린 ‘튀김 범벅’이다.


“처음 ‘튀김 범벅’을 내놓자 많은 네티즌이 걱정했어요. 뜨거운 국물을 어떻게 어두운 장소에서 먹느냐는 거였죠. 그런데 막상 출시하니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국물이 있는 게 아니고 떡볶이 양념을 바짝 졸여 튀김에 코팅하는 정도로 덮어놨습니다. 아이가 있는 부모들도 모두 안심하고 사주더군요. 팝콘·나쵸 말고 한국식 메뉴가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식혜 음료도 처음으로 내놨어요. 처음으로 기존 메뉴의 경계를 넘고 나니 상상력이 더 풍부해지더군요. 치킨 메뉴를 떠올린 것은 1년 전부터입니다. 오랫동안 공들여 영화 ‘극한직업’ 개봉에 맞게 극장에서 치킨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출처: 유튜버 프란·노리 캡처
유튜버들이 CGV 극장 간식을 리뷰하고 있는 모습.

치킨 판매는 15개 극장에서 설 연휴 동안 테스트 기간을 거쳤다. 같은 기간 동안 신메뉴가 가장 많이 팔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장에서도 팝콘보다 치킨을 훨씬 좋아했다.


“10년째 극장에서 팝콘만 바라봤죠. 이젠 치킨까지 만듭니다. 매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커요. 또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원가가 계속 비싸진다는 점도 어렵죠. 어떻게 앞으로 또 아이디어를 부풀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극장에 오는 분들은 모두 즐거움만 안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극한직업을 가진 제가 세상 고민을 전부 짊어질 테니까 말이죠”


글 jobsN 김지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