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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은 없고 불안했어요”…걸그룹 접은 ‘더씨야’ 멤버의 근황

'아이돌' 포기하고 제2의 직업 찾은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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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출신 연극배우 허영주씨

초.중.고 학생들에게 희망 직업을 물어보고 답을 세보면 가수나 연예인이 늘 상위권이다. 선망의 대상이고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다는 인식도 강하다. 하지만 아이돌만큼 위험부담이 큰 직종이 없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이 분석해보니 지난 10년 간 총 400여 팀이 아이돌로 데뷔했지만, 정작 한 해에 한 두 팀만 살아남아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아이돌 연습생 숫자를 100만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걸그룹 ‘더 씨야’의 멤버였던 허영주(26) 씨는 성균관대 연기학과 1학년 재학 중에 유명 엔터테인먼트사와 연습생으로 계약하고 8개월 후 아이돌로 데뷔했다. 현재는 걸그룹 생활을 접고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아이돌로 활동할 때의 이야기와 제2의 직업을 찾아 연극배우를 시작하게 된 과정을 들어봤다.


- 조금 전 연극 공연 연습을 마쳤다고.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최선을 다해 연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체홉, 여자를 읽다’라는 연극에서 여자 주인공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연기하는데, 에피소드마다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신이죠. 이번 연극이 두 번째 작품이예요. 함께 연기하는 선배님들이 도와주시고 계셔서, 저도 무대에서 늘 즐겁게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허영주씨

출처jobsN

- 연극을 본 관객들의 평이 좋다. 걸그룹 출신인데, 연기는 어떻게 하게 됐는지.

“대학에서 연기학과 철학을 전공했어요. 걸그룹으로 데뷔할 때 휴학을 하기도 했지만 그 이외에는 늘 학업을 병행해왔어요. 걸그룹 활동이 지지부진했을 때부터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기와 철학에 대해 책도 많이 읽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어요. 학창시절부터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의 작품을 제일 좋아했는데, 마침 제가 하고 있는 연극이 그 작가의 작품이에요.”


- 아이돌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걸그룹으로 데뷔하게 됐나.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과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가수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 해봤어요. 원래 꿈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죠. 고등학교 때 싸이월드에 제 사진과 글들을 올리고 있었는데, 싸이월드 메인 화면에 소개된 적이 있어요. 근데 그걸 보고 여러 연예기획사에서 연습생을 해보지 않겠냐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재능이 있을까라는 호기심에 그쪽으로 진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진학을 위해 대학교를 알아보던 중 연기학과가 눈에 들어왔죠. 고3때 연기학원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성균관대 연기학과에 합격하고 대학을 다니던 중에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던 한 기획사에 연기 연습생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식으로 계약하지 않은 연습생 신분이었어요. 당시 연예기획사에서는 연습생들을 가수로 데뷔시키는 경우가 많았어요. 케이팝 열풍이 불고 있을 때이기도 했고, 한 번에 성공해서 돈을 벌기에는 아이돌 그룹이 유리했기 때문이죠.


배우 전문 기획사라서 들어갔는데, 연기보다는 걸그룹을 만들어서 데뷔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이럴 바에는 걸그룹을 전문으로 키우는 기획사에 정식으로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용감하게 MBK 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갔어요. 티아라, 다비치, 이효리, 옥주현 등이 있는 대형 기획사였죠. 저에 대해서 소개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과 꿈에 대해 설명했더니, 대표님이 그 자리에서 계약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연습생으로 7년 계약을 하고 데뷔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8개월 후에 ‘더 씨야’로 데뷔했습니다.”

걸그룹 ‘더 씨야’의 멤버였던 허영주

출처jobsN

- 남들보다 데뷔가 빠른 편이었는데, ‘더 씨야’ 활동할 때는 만족스러웠는지.

“운이 좋았어요. 연습생 생활을 1년 채 안 하고 데뷔했으니, 남들보다빠른 편이었죠. 고된 트레이닝 끝에 꿈꿔왔던 아이돌이 됐으니 무척 기뻤습니다. 무대에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니 꿈만 같았어요. 누구나 데뷔 하고 무대에 설 때는 스타가 되는 걸 꿈꿔요. 정상의 자리에 있는 스타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거라고 다짐하죠. 그런데 대중의 인기를 얻고 스타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기획사에서 새로운 곡을 줄 때까지 기다리고, 스케쥴이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기대감과 현실이 주는 허탈감이 상충하면서 우울한 날도 많았어요.”


- 걸그룹 활동을 하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을 때, 당사자가 느끼는 심정은 어떤가.

“심적인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소속된 회사에 매일 나가긴 하는데,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기다리는 날이 많았으니까요. 회사에서 정해주고 만들어 주는 스케쥴만 할 수 있다보니, 기다리다 지쳐갔어요. 현실적으로는 걸그룹 활동을 하며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었어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어 방송에도 출연하고 행사도 나가는데 제게 들어오는 수입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기까지 회사에서 투자하는 금액이 워낙 많다보니, 데뷔 이후 벌어들이는 돈이 소속사가 지출한 투자금을 넘지 못하면 결국 멤버들이 가져갈 수 있는 수입이 없는 형태로 계약해요. 방송에 나오고 노래가 상위권에 랭크되면 주변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아요. 그런데 수입이 없으니 잘 지낸다고 주변에 연기를 해야하나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데뷔하지 못한 연습생들과 아이돌 활동을 하며 가수가 됐던 사람들 중에서도 스타가 돼서 연예계에 남는 숫자는 극히 일부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사회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을 못 이룬 것에 상실감을 느껴요. 어린 나이부터 하나의 꿈만 바라보고 노력해왔기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해 준비해 놓은 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면 방황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습니다. 카페에서 일하거나 플로리스트, 인터넷 방송 BJ를 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는 친구들도 있었죠. 그런 모습을 보며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기초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학교에서 연기학과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극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

출처본인제공

- 걸그룹 활동을 접고 연극배우의 길로 나가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걸그룹 활동은 2015년도까지 했고, 소속사와의 계약은 2017년도에 끝났어요. 좀 쉬고 싶기도 했고 생각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 CF를 찍고 받은 출연료로 여행을 떠났어요. 미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필리핀, 마카오 등을 다녀왔습니다. 내가 진짜로 무얼 좋아하고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처음에 아이돌을 하게 된 이유부터 생각해봤어요. 아이돌을 준비하던 다른 친구들은 하루종일 춤추는 모습을 모니터링하고 다른 가수들의 음악과 몸짓까지 공부하곤 했는데, 저는 그런 치열함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배우가 되기 위해 거치는 단계로 생각하고 뛰어든 건 아닌지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이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새로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도와주는 소속사가 없으니, 내 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나씩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연극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 작년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데뷔했다.

“제 스승이었던 교수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시인 백석을 기억하다’의 여주인공 역할이었죠. 30명 넘게 오디션을 봤는데 연출 감독님이 저를 낙점해 주셨어요. 당대 최고의 기생이었던 ‘자야’를 연기했습니다.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를 했는데, 같은 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였어요.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호흡부터 연기 동선까지 지도해 주셨어요.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생각으로 연극 무대에 섰습니다.”


- 이번에 연기하는 ‘체홉, 여자를 읽다’에 대해 말해달라.

“러시아의 대표 극작가인 안톤 체홉의 작품이에요. 최고의 연기자와 스텝들과 함께 만들고 있어요.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는데, 제가 세 가지 에피소드에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각각 시골소녀, 불륜에 빠지는 유부녀들을 연기합니다. 체홉의 연극은 정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정답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많아요. 이 연극도 보고 난 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연극 '체홉, 여자를 읽다'

출처본인제공

- 연극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는 표정이 무척 즐거워보인다. 만족하는지.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걸그룹 활동을 할 때는 일하는 과정이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수동적으로 일했고 늘 결과에 집착했으니까요. 그땐 어려서 일을 하며 즐기는 방법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일하는 과정이 행복해요. 소속사가 없어서 일하는데 어려움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 아이돌로 살아오면서, 그리고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극적인 순간보다는 항상 팬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걸그룹으로 음악 순위 프로그램 무대에 섰을 때, 상위권 팀들을 위한 팬들이 항상 무대 앞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그때 저 뒤에서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무대에 선 나를 보고 플래카드를 흔들며 응원해주는 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합니다. 일본 활동을 잠깐 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생긴 일본 팬들이 제 연극을 보러 대학로까지 찾아와주시기도 했어요.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힘이에요.”


- 연기자로서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 앞으로 꿈이 있다면.

“대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할 때는 자신감을 얻기 힘들었어요. 춤과 노래와는 다르게, 연기는 노력해도 얼마나 성취해나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힘들었거든요. 요즘 무대에서 연기를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생겨요. 함께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과 연습실에서 매일 함께 호흡하고 연기를 맞춰나가는 것만큼 의미 있는 연습이 없는 것 같아요. 우선 지금은 주어지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리고 조금씩 성장해서 점점 큰 무대에 도전하고 싶어요. 영화 오디션도 보러 다니고 싶고, 드라마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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