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북로 막힐 걱정, '유치원 대란' 걱정 같은 건 전혀 없어요

조회수 2020. 9. 21. 19: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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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파 재택근무한다 해도 눈치 주는 사람 없습니다"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회사 농심켈로그
일과 가정 양립, 혼자선 못해요
양육 고민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한국 노동시장은 여성이 일하기 좋은 구조는 아닙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8년 2월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29개국 중 6년째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세계에서 처음 0명대에 진입한 합계출산율(0.98명) 수치 역시 워킹맘이 얼마나 일하기 힘든지를 보여줍니다. 어렵사리 취업해도 결혼 후 육아를 감당하기 만만치 않으니 가능하면 아이를 아예 낳지 않으려는 경향이 전보다 뚜렷해진 겁니다. 이렇다 보니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회사가 각광받고 있습니다.


농심켈로그는 한국 농심과 미국 켈로그 합작사다. 미국 켈로그 본사가 지분 90%를 갖고 있는 사실상 외국계 회사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글로벌 회사도 한국 지사에서만큼은 수직적인 분위기가 된다는 ‘한국 패치 장착’ 공식을 비껴갔다.


2015년부터 여성가족부가 농심켈로그를 4년 연속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했다. 본사 직원 72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7%(34명). 임원 8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여성 임원이 한명도 없는 기업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결혼한 여직원 비율도 68%(23명)다. 결혼 후에도 경력이 끊기지 않고 회사에 다닌다는 뜻이다. 평균 근속연수는 13년. 10년 이상 다니는 직원 비율은 53%다. 이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 김정아(37) 재무부 과장, 김희연(36) 홍보부 과장에게 일과 가정을 어떻게 양립하고 있는지 들었다. 

출처: 농심켈로그 제공
매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다. 2019년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밸런스(Balance for Better)'를 주제로 전문 강사와 운동하는 시간을 가진다. 과거에는 '딸들을 위한 행복한 세상 만들기 토론회', '무의식 편견 워크숍' 등을 열었다.

제도보다 ‘양육’ 배려하는 분위기가 중요


남양주에 살고 있는 김정아 과장은 아침 8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한다. 퇴근할 땐 눈치 보지 않는다. “8시가 넘으면 강변북로에서 잠실까지 30분 거리가 1시간 20분이 걸립니다. 1시간 출퇴근 시간을 조절하니 길에서 버리는 시간도 줄일 수 있어요. 귀가 후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이 회사가 첫 직장으로 13년째 다니고 있어서 다른 회사와 비교가 힘든데요. 다른 회사에서 이직한 분들이 모두 이렇게 제시간에 퇴근하는 회사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재택근무도 가능하다. 보통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이라도, 특정 직무만 가능하다거나 분기 혹은 월마다 사전 신청을 해야만 한다. 켈로그에선 부서장 재량이다. “재무부에서 회계 마감 기간에는 야근할 때가 있어요. 아이가 아프거나 볼일이 있다면 집에서도 업무가 가능합니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회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요.”


출산을 했을 때는 상사 승인 없이 육아휴직을 간다. 남자 직원 역시 배우자가 출산 시 출산 휴가 5일을 쓸 수 있다. 정부는 2019년부터 배우자의 출산 휴가를 3일에서 5일로 늘렸다. 켈로그는 정부 제도 훨씬 이전부터 ‘배우자 출산휴가 5일’을 보장했다. 회사 내부에는 수유실도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자녀 학자금도 지원한다.


야근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김 과장은 저녁 회식을 해본 기억이 없다. “친분이 있어서 퇴근 후 술 한잔을 기울일 수는 있어도, ‘팀 회식이어서 빠지면 안된다’ 이런 말은 절대 없어요. 점심때 팀 회식을 하긴 합니다. 전사 회식은 시무식 때 오후 2시부터 뷔페를 먹었을 때가 최근이에요.”


2015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WOK(Woman of Kellogg)라는 사내 단체를 만들었다. 채용·승진에서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다. 여성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워킹맘, 워킹대디에게 필요한 제도를 수시로 점검하고 개선한다. 양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회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어서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엄마들이 양육 어려움을 호소해요. 아이가 점심 먹고 집에 오면 오후 1시쯤인데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엔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아이를 학원 2~3곳에 돌린다든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육아휴직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고충을 회사가 듣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검토 중입니다.” 

출처: jobsN
김정아 과장. 그는 "자녀를 둔 직원들이 많아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양육 고민을 털어놓으며 '배틀'한다"고 했다.

일과 가정 양립? 혼자선 불가능


한국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분위기라면 ‘육아 천국’ 회사다. 하지만 여전히 양육에 관한 문제는 남아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 사람이 달려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김정아 과장의 경우 친정어머니가 양육 대부분을 도맡고 있다. 김 과장이 오전 6시 30분에 집을 나올 때 친정어머니가 집으로 온다. 8시 30분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오후 5시 30분에 데려오는 일도 친정어머니 몫이다. 오후 7시쯤 김 과장과 남편이 돌아오면 친정어머니는 육아로부터 ‘퇴근’한다. 그는 월급 일정 부분을 어머니에게 드린다. “아이가 어릴 땐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들어요. 저는 친정 엄마 덕분에 가능했어요. 친정 엄마가 근처에 사는 것도 복입니다.”


2017년 출산 후 켈로그로 이직한 김희연 과장도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 오전에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보고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베이비시터(돌봄도우미)가 본다. 원래 친정 도움을 받을 생각이 아니었다. “처음 아이를 봐준 도우미분이 계세요. 양육법을 두고 좀 갈등이 있었어요. 그 모습을 친정 엄마가 보고 안되겠다 싶어서 오전만이라도 직접 본다고 하셨죠.”


최근엔 어린이집에 떨어져서 아이를 놀이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다들 맞벌이라서 맞벌이 만으로는 입학 점수가 안됩니다. 남편에게 육아휴직도 권해봤는데, 승진에서 불이익이 두렵다고 하더라구요. 아이 한명만 있어도 신경 쓸 게 산더미인데, 나라에선 애를 많이 낳으라고만 하니 힘들죠. 맞벌이 가정이 아이를 키우려면 누구 하나 아프면 정말 큰일 나요. 매사 긴장한 채로 삽니다.”


아무리 정시 퇴근하는 회사에 다닌다 해도 회사에 있는 시간에 돌봐줄 베이비시터가 필요하다. “베이비시터 구하기가 전쟁입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 다녀온 후 3~4시간 정도는 봐줄 분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렇게 시간제로 하려는 분들이 안 계세요. 돈은 별로 안되는데 하루를 다 쓰니까요. 친정엄마 있는 걸 싫어하는 분도 계시고 조건이 까다롭습니다. 다행히 지금 베이비시터께선 정말 전문적이에요. 아이 발달에 좋으라고 항상 원색 옷만 입고 오세요. 이런 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깁니다.”   

출처: 김정아 과장 제공
김정아 과장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양육은 '믿음'


정부는 영유아 학비(사립유치원 월 22만원), 아동수당(월 10만원) 등으로 아이 키우는 가정을 지원한다. 하지만 살림에 조금 도움을 줄지라도 ‘몇 만원 더 받자고 아이를 낳진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양육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갈수록 각박해진다. 한편에서는 맘충, 노키즈존이 다른 한편에서는 어린이집 아동학대가 논란이다.


김희연 과장은 올바른 양육 사회로 핀란드를 예로 들었다. “얼마전 반차를 내고 핀란드 교육 세미나를 들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핀란드에서 육아의 핵심은 ‘믿음’이에요. 학부모도 양육에 관한 교육을 받습니다. 또 교사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의대보다 유아교육과 졸업하는 게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 석사 이상이어야 유아교육전문가가 될 수 있어요. 교사가 되고 나서도 자격증을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시험을 봐야 합니다. 대우도 좋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대우도 좋지 않고 비교적 유아교사가 되기 쉽죠. 내 아이 키우는 것도 지칠 때가 있어요. 저도 너무 힘들면 TV 틀어줘요. 남의 아이를 봐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내 아이를 잘 돌봐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해요.”


이런 믿음은 회사에서도 필요하다. 사실 출퇴근 시간 조절이나 재택근무 같은 복지는 다른 대기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김정아 과장은 켈로그의 차별점을 ‘믿음이 있는 분위기’로 꼽았다. “아이가 아프다거나, 요즘 유치원 개학 연기 대란처럼 불시에 일이 생겼을 때 ‘회사가 얼마나 양해하는 분위기냐’는 양육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아이가 아픈데 당장 회사에 말하기 꺼려진다든지, 상사가 꼭 한마디라도 싫은 소리를 한다든지 그런 분위기에선 제대로 양육이 힘들어요. 또 누군가 ‘왜 저 사람만 혜택을 보느냐’ 말하는 순간 불가능합니다. 내가 하던 일을 갑자기 다른 사람이 맡으면 업무 효율이 떨어져요. 그런데 켈로그에선 이런 부득이함도 수용합니다.”


분기별로 임원 면담을 할 때는 직무나 회사 업무뿐만 아니라 양육에 관해서도 묻는다. 회사 임원의 주요 목표가 여성 인력 육성이다. ‘후배 양성’ 항목이 평가 제도에도 들어갈 만큼 신경 쓴다. “아이가 몇살인지, 아이를 누가 키우는지 등을 물어보세요. 직원마다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파악하고 그 고충을 덜기 위해 회사가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겪는 상황도 상세히 설명드릴 수가 있어요. 일이 있으면 ‘과연 가능할까’하며 긴장하고 두려운 게 아니라, 이해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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