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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갖고 싶다는 아이폰 사줄 수 있으니 더 바랄게 없어요

조회수 2020. 9. 21. 1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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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반전은 없었다
배우 진선규

어디에나 있고, 누구와도 닮은


“근데, 이렇게 생긴 사람 진짜 있었는데.”

형사는 이렇게 말했다. 진선규가 〈범죄도시〉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당시 형사들을 만나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형사는 문득 진선규를 보며, “이렇게 생긴 사람이 진짜 많았다”고 했다. 어쩐지 관객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저 사람은 배우일까, 실제 거기 사는 인물일까.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어느 골목에 가면 이런 사람을 만날 것만 같은 예감. 그때는 눈을 마주치지 말고 황급히 골목을 빠져나와야 할 것만 같은 서늘한 느낌이다.


막상 만난 배우 진선규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수줍음이 많았다. 영화 포스터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것도, 시사회를 마친 뒤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일도 아직은 낯설다고 했다.


“저는 변하지 않았는데, 보는 분들이 변했다고 느낄까 봐 걱정되기도 해요.”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식구들과 함께. © ‘간다’ SNS

변하지 않은 건, 작품을 대하는 태도다. 그는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출신이다. 지금도 ‘간다’의 멤버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유도소년〉, 〈뜨거운 여름〉 등의 창작극을 만들어온 이 극단은 진선규에게 있어 “나의 밑거름이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앞걸음”이다.


“간다 멤버들은 가족이에요. 누군가 영화나 드라마에 들어가게 되면, 그 대본을 함께 연구해요. 워크숍도 같이 하고요. 이들에게는 내 작품, 네 작품이 따로 없어요. 같이 분석하고 캐릭터를 만들어가죠.”


간다 출신 배우로는 이희준, 오의식, 김민재 등이 있다. 이들에게 간다는 ‘잘돼서 나가는 곳’이 아니라 ‘잘되면 돌아오는 곳’이다.


“간다의 연출인 (민)준호는 저희 집에 쌀이 떨어지면 가져다주던 친구예요. 그래도 특별히 불행하다거나, 좌절하진 않았어요. 우리끼리는 ‘간다 유치원’이라고 불렀어요. 늘 놀이터에 가는 마음으로 신나게 공연을 했으니까요.”


윤계상의 연기 스승

연극 〈나와 할아버지〉에서 할아버지 역을 맡은 진선규.

변한 건, 이 동료들에게 ‘밥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전에는 밥을 얻어먹거나 더치페이를 했는데 이제는 선후배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살 수 있다.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이 그에게 선사한 선물이다. 그가 눈물의 수상 소감을 남길 때, 빼놓지 않은 두 사람이 있다. ‘자신도 배우이면서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 중인 아내 박보경 배우’ 그리고 진선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기까지 동고동락한 ‘대장 장첸 윤계상’이다. 윤계상은 실제로 진선규를 자신의 연기 스승이라 부른다.


“윤계상 배우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드라마 〈로드 넘버원〉이었어요. 제가 오디션을 통과해서 처음 찍은 드라마였고요. 윤계상 배우는 늘 주연이었음에도 배우는 태도를 갖고 있어요. 그 친구가 저를 ‘연기 스승’이라고 부르는 건 제가 (갑자기 연기톤으로) ‘아니 거기선 눈빛이 그게 아니지. 그렇지. 그렇지, 톤 좋아. 오케이’ 뭐 이렇게 가르쳐줘서가 아닙니다.(일동 웃음) 어떤 배역을 맡았을 때 같이 워크숍을 해보거든요. 서로 동작도 맞춰보고, 대사도 맞춰보고요. 마치 극단에서처럼요.”


〈범죄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첸파였던 윤계상, 진선규, 김성규는 작품을 준비하며 합을 맞췄다. 윤계상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분량을 진선규와 김성규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윤계상. 둘은 형제 같은 사이다.

“아내는 저에게 가장 좋은 동료입니다. 제가 계속 오디션에 떨어지고, 집에 쌀이 떨어졌을 때도 아내는 한 번도 저를 나무란 적이 없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 저보다 더 불타올랐죠.”


박보경 배우와 진선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다. 아내는 진선규를 “후배들이 모두 좋아하고,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 했던 선배”로 기억한다. 지금도 큰 불만이 없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남편의 일정은 오직 ‘육아’다. 연기 외에는 다른 취미도, 흥미도 없는 남편은 “지금까지 화내는 걸 거의 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저희 두 사람은 정말 어렵게 시작했어요. 둘이 극단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지방에 작은 집을 구했어요. 청약을 넣었는데, 계속 안 되다가 딱 한 번 됐거든요. 작품 수가 많아지고 나서 좋은 건 명란젓을 매끼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웃음) 제가 명란젓을 엄청 좋아해요. 그 반찬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은 뚝딱 먹어요.”


걱정될 정도로 착한 사람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4년 전, 어느 영화의 뒤풀이 자리였고, 그는 아직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는 무명 배우였다. 이병헌 감독의 전작 〈스물〉을 워낙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병헌 감독 역시 이렇다 할 차기작을 내놓지 못한 침침한 시절이었다.


“둘 다 말수가 많지 않아서 그냥 술만 먹었어요. 그러다 어느새 새벽 4시가 되었더라고요. 제가 ‘감독님 작품은 언제든지 할 마음이 있으니, 불러만 주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이병헌 감독은 진선규를 “걱정될 정도로 착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어디 가서 손해 보지나 않을까 걱정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는 〈극한직업〉의 마형사로 진선규를 생각했다. 코미디 영화였지만, 과한 리액션은 지양했다. ‘조기축구회 같은 동호회에서 보면 밉상은 아닌데 왠지 분위기 파악 못하면서 아집은 있는 아저씨’ 캐릭터로 마형사를 주문했다.


“마형사 대사 중에 그런 부분이 있어요. ‘여름에 민어 먹고 겨울에 대방어 먹어도, 치킨은 매일 먹어야 하는 거 아냐?’, 이 대사를 해야 하는데 와닿지가 않더라고요. 여름에 냉면 먹고, 겨울에 붕어빵 먹고… 뭐 이 정도라면 모를까. 그래서 민어랑 방어를 직접 먹어봤어요. 먹고 나니까, 감독님이 대본에 왜 그렇게 썼는지 알겠더라고요.”


이런 리듬이 맞는지, 이런 반응이 맞는지 헷갈리는 순간도 많았다. 그럴 때는 ‘형제들’을 믿었다. ‘독수리 5형제’ 같은 마약반 동료들이 채워주리라 믿었다.


“류승룡 선배는 아빠고, 이하늬 배우는 엄마였어요. 저는 철없는 큰형 정도고요. 〈범죄도시〉 때도 다시 이런 팀을 만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극한직업〉의 팀워크도 엄청났어요. 지금도 단톡방에서 매일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요.”


차기작만 네 작품


형제들과 〈극한직업〉의 성공을 만끽할 새도 없이, 차기작이 쏟아지고 있다.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과 찍은 〈사바하〉, 〈범죄도시〉를 만든 강윤성 감독의 〈롱 리브 더 킹〉, 얼마 전 촬영을 종료한 〈퍼펙트맨〉과 저예산 공포영화 〈암전〉. 거기에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 〈킹덤〉도 있다.


“누군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고 하는데, 저는 ‘물 들어오면 지도를 펴봐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열심히 노만 젓다가 제자리를 맴돌 수도 있거든요.”


극단을 할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돈이 되는 작품을 할 것인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것인가.’ 그의 선택은 항상 후자였다. 지금은 아내가 갖고 싶다는 아이폰도 사줄 수 있고, 아이패드도 선물할 수 있으니 그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늦은 나이에 인지도를 얻은 덕분에 조금은 느긋하게 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지난 1년을 너무 달렸으니 이제 생각할 시간을 좀 갖고 싶어요.”


흥행 가도를 달리는 배우의 앞으로의 계획 역시, ‘반전’이었다.


글 jobsN 유슬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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