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신입생 열광시킨 양복 입은 중년 남성들, 누군가 했더니..

조회수 2020. 9. 27. 22: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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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신입생 3천여명 열광..양복입은 '이대의 방탄소년단'

"오오오오오오 덩기덕 쿵더러러 얼쑤~"

22일 오전 10시 30분 이화여대 대강당 입학식. 양복차림의 중년 남성 10여명이 방탄소년단의 노래 '아이돌( IDOL)'에 맞춰 두 팔을 흔들며 무대에서 콩콩 뛴다. 객석을 채운 건 이대 19학번 신입생 3000여명. 환호성이 장난 아니다.


"이대 BTS!" "이대 방탄, 이대 방탄!"


수백여명 학생이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들어 영상을 찍어댄다. 한 곡이면 아쉽다. 블랙핑크 제니의 노래 '솔로'를 이어 부른다. 후렴구 '빛이 나는 솔로~' 부분을 개사해 '빛이 나는 이화'라고 외치자, 학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한다.

출처: 이화여대 제공
22일 이화여대 신입생 입학식에서 남성교수중창단의 공연에 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BTS, 제니에 이어 트와이스의 'Yes or Yes' 까지 메들리로 소화한 중년 남성들은 이대의 '중년 아이돌'로 불리는 남성 교수 중창단 멤버들. 채기준 교수(단장·컴퓨터공학전공), 장윤재 교수(기독교학과), 원영석 교수(한국음악과) 등이 뭉친 남성교수중창단은 1997년 결성됐다. 2013년까지 가곡과 성악곡을 주로 부르다 2014년 '이대의 엑소'로 변신했다. 엑소의 '으르렁'을 개사해 춤도 곁들이자, 인기가 이대 밖으로 뻗어나갔다. 지난해 입학식 때 '프로듀스 101'의 '나야나'를 개사해 부른 공연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 17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망가지는 공연에 많은 분이 관심을 보이시네요. 외부 강연, 정부·기업 관계자 미팅 때 '교수님 무대 잘봤다'는 이야기부터 꺼낼 때가 많구요. 인터넷에 올라온 공연 영상을 보고, 딸 친구들이 '정말 네 아버지가 맞냐'고 몇 번씩 되물어 보기도 한다네요. '교수도 먹고 살기 힘들구나'같은 댓글도 달리구요. 민망하죠. 그런데 행복합니다. 학생들만 좋아해준다면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습니다."(이상돈 환경공학전공 교수) 

출처: 이화여대 제공
이화여대 남성중창단 모습. 2015년 공연(왼쪽)과 지난 22일 공연(가운데, 오른쪽)

막내가 41세…노래방 돌며 단원 스카우트


이대 남성교수중창단의 평균 연령은 55세다. 막내가 유영민(41) 화학신소재공학전공 교수. 실제 아이돌이라면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 나이지만, "음정이 틀려 선배 교수님들에게 야단 맞기 일쑤"란다. 하지만 유 교수는 "이보다 즐거울 수 없다"고 한다.


엄연한 중창단인 만큼 주로 부르는 노래는 성악곡이다. 각자 바리톤·베이스·테너 등 파트도 갖고 있다.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원영석 교수는 KBS 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출신이다. 안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인 박신화(성악과)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덕분에 '고퀄' 화음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년 10차례 공연하는데, 학내 행사 뿐 아니라 이대 동창회나 외부 행사에 초청되기도 한다.


각자 일상이 바쁘지면, 1주일에 반드시 하루는 시간을 내서 오전 8시 이대 음악관 연습실에 모여 아침식사를 겸해 함께 연습한다. 단장을 맡고 있는 채기준 교수는 "여대에서 학과 전공이 다른 남성 교수들이 뭉치기 쉽지 않은데 노래를 좋은 계기로 삼고 있다"며 "방학 때도 연습하고, 아무리 바빠도 공연은 모두 필참한다"고 했다.


멤버는10명 내외. 누군가 은퇴할 경우 헤드헌터'를 자처한 채기준 단장이 학내 회식자리나 행사를 돌아다닌다. "노래방 등에서 노래 잘하는 교수를 '현장 캐스팅'합니다." 이렇게 중창단에 합류한 교수가 여럿이다.

"우리가 망가지면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그것이 최고의 선물"


"무대 포맷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요. 일단은 점잖고 따뜻한 축복송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하이라이트로 랩과 춤을 곁들인 아이돌 노래 2~3곡을 메들리로 엮어 부르는 거죠. 나름 반전과 감동을 주는 편곡 스킬입니다."


노래 실력을 수준급이지만 춤은 아무래도 엉성하다. 그래도 행사가 있을 때면 2~3주 이상 치밀하게 준비한다. 원영석 교수는 "직전 해 '가요대상' 시상식을 보며 어떤 가수가 인기가 많고 '트렌디'한지 분석부터 한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노래를 물어보기도 한다. 이화여대와 관련된 내용으로 개사할 수 있는 노래인지, 소화 가능한 춤인지 따져본다. 이렇게 곡이 선정되면, 치열한 연습을 거쳐 무대에 선다. 원 교수는 "처음 춤을 시작한 2014년에는 교수 2명만 대표로 나서 망가졌는데 '왜 소수만 망가져야 하느냐'는 의견이 나오더라"며 "이후부터는 열외없이 모두가 함께 망가지고 있다"고 했다. 끝난 공연에 대한 '모니터링'은 없다. 황규호 교수(교육학과)는 "내 노래와 춤을 내 눈으로 보는 게 민망해서"라고 했다.

출처: 크리에이터 D
(왼쪽부터)유영민, 장윤재, 이상돈, 채기준, 원영석, 황규호 이화여대 교수

올해 입학식 공연을 위해 교수들은 수십차례 반복해가며 BTS 노래와 안무를 연습했다. 가장 쉽다는 동작조차 완벽하게 구사하기 쉽지 않았다. 장윤재 교수는 "학생들도 우리가 엉성하다는 것을 안다. 다만 망가짐을 통해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했다.


"입학식이 가장 설레는 공연이에요. 어른들 말만 들으며 공부해 대학에 온 학생들이잖아요. 많이 경직돼 있죠. 이런 학생들에게 '교수는 엄숙하다'는 편견을 깨주고 싶어요. 그래야 교수와 학생이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거든요. 춤을 통해 먼저 말을 거는 셈입니다. 가끔 '교수가 그렇게 망가져도 되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어요. 하지만 우선은 학생이에요. 이들과 소통을 위해서라면 허리춤에 손 얹고 춤 추는 것 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삶의 활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유 교수는 "교수란 직업 특성상 연구와 강의를 홀로 책임져야 해서 외로움을 탈 수 밖에 없는데, 동료 교수들과 연습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글 jobsN 크리에이터 D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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