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에 갔고, 심장내과 교수 아버지처럼 의사될 줄 알았습니다

조회수 2020. 9. 27. 22:52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의사 대신 택한 사업가의 길 "당신의 화장대를 깔끔하게"
코스모체인 송호원 대표
의대생→사회적 기업→뷰티 블록체인 앱
카카오가 첫 투자한 블록체인 회사로 주목

2017년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투기 광풍이 일면서 블록체인이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블록체인이 어디에 쓰이는 기술인지 체감하지 못했다.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암호화폐 광풍을 닷컴 버블에 빗대기도 했다. 암호화폐가 곧 블록체인이라는 오해마저 생겼다.


2019년에는 일상생활에 블록체인이 스며들기 시작할 전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를 지역 결제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갤럭시S10에 블록체인 기능을 추가했다.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갤럭시S10에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갤럭시 이용자가 암호화폐 시장으로 넘어오면 시장이 빠르게 활성화될 수 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는 상반기 중에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을 선보인다.


스타트업 ‘코스모체인(COSMOCHAIN)’은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첫 블록체인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뷰티 SNS와 보상 토큰을 결합한 애플리케이션 ‘코스미(COSMEE)’가 이 스타트업의 주력 서비스다. 2018년 8월부터 11월까지 베타서비스 기간 동안 하루 3만명(DAU)이 사용했다. 보통 블록체인을 이용한 앱의 하루 이용자수가 1000명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출처: 코스모체인
송호원 코스모체인 대표

회사를 이끄는 송호원(34) 대표는 IT 출신은 아니다. 2011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의사 대신 사업가의 길을 택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사회적 기업 ‘프리메드(FREEMED)’를 창업한 게 전환점이었다. 2014년 스탠포드 MBA 졸업 후 ‘트릴리어네어(trillionaire)’를 세우고 중국인에게 한국 화장품을 파는 ‘후이서울’을 시작했다. 후이서울을 운영하며 깨달은 빅데이터의 중요성과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보고 2018년 코스모체인을 설립했다.


블록체인이 일상 속에서 실체 드러내야


이용자가 화장품 후기를 올리거나 댓글을 달면 보상 토큰인 ‘코스모파워’를 받는다. 이 코스모파워를 암호화폐 ‘코즘(COSM)’과 1:1로 교환할 수 있다. 코즘은 코스모체인이 발행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거래사이트에서 판매해 현금화할 수 있다.


뷰티를 다룬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은 코스미가 처음이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이용자들에게 ‘뷰티’보다 ‘블록체인’을 앞세우진 않는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을 강조해도, 대중은 실생활에서 가치를 느낄 수 없으면 관심 갖지 않습니다. 코스미는 이용자가 광고가 아닌 진짜 뷰티 후기를 공유하고 내게 맞는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 블록체인에 뷰티를 얹은 게 아니라, 뷰티 데이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블록체인을 이용하는 겁니다. 다른 뷰티 앱과의 경쟁에서도 자신 있어요. 베타 기간 동안 구글플레이 뷰티 상위 10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뷰티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 '코스미'.

앱에 글을 쓰고 댓글을 다는 활동을 일종의 채굴 행위라 볼 수 있다. 150만건의 콘텐츠를 누적할 만큼 반응이 좋았다.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SNS와 같은 플랫폼의 문제는 갈수록 ‘광고’가 난무한다는 점이다.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실제 게시물보다 광고 때문에 피로도가 높다는 소비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플랫폼 사업의 수익모델 상당 부분이 광고이기 때문에 비난을 피해 가기 쉽지 않다. 송 대표는 코스미가 이런 불필요한 광고를 거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콘텐츠 질을 유저가 평가할 수 있습니다. 게시물에 대한 의견 투표(업·다운 보팅)가 가능해요. 좋아요와 싫어요, 댓글 수에 따라 글을 쓴 사람의 보상이 달라집니다. 좋아요가 많을수록 보상이 크겠죠.”


앱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콘텐츠 자정작용이 일어난다. “이용자는 딱 보면 광고인지 아닌지 압니다. 저희는 광고를 어뷰징(Abusing)이라 표현하는데요. 코스미 베타버전을 시작했을 때 이용자 1000명 모두가 어뷰징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베타 기간이 끝날 때 어뷰저는 500명으로 줄고, 순수 이용자만 3만명이 남았습니다. 통계로 모두 나옵니다. 어뷰저들은 단체 메신저방에 서로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자고 모의를 해요. 이런 것도 추적이 가능합니다. 진성 유저를 위한 보상체계를 만드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야 블록체인에 저장할 데이터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어요.”


데이터를 제공하면 보상을 주는 '토큰 보상 모델'은 마케팅 비용도 줄인다. “유저에게 토큰을 주면 친구를 데려와요. ‘그럴 바엔 진짜 돈을 주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토큰 보상이 더 솔깃합니다. 기존 마케팅으로 이용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토큰 보상을 보고 찾아오는 이용자가 훨씬 많아요. 마케팅 비용을 저희가 환산했는데, 토큰 보상 모델이 마케팅 비용을 기존 대비 10분의 1 이하로 줄였어요.”


코스미 정식 서비스는 앞으로 1~2개월 안에 선보인다. 현재는 코스미 운영팀에서 서비스 개발 외주 사업으로 월 매출 3억~5억원을 낸다. 코스모체인 직원수는 27명이다. 수익모델은 데이터 판매 사업과 맞춤형 광고, 마켓 운영이다. 정식 버전에서는 앱 안에 마켓을 만들어 코스모파워 또는 코즘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업과 협업해 코스미가 쌓은 뷰티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어떤 기업이든 스스로 돈 벌 줄 알아야 한다


송 대표는 심장내과 교수인 아버지 영향으로 의사를 꿈꿨다. “어릴 적부터 실험실에 자주 들어가서 익숙했어요. 아버지가 하신 말씀 중에 ‘인류는 질병을 앞서갈 수 없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대학 들어가서도 의사가 되려고 공부했고, 의사가 될 줄 알았죠.”


대학교 2학년 때 의료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의료 봉사의 한계를 느꼈다. 후원만 바라보는 의료 봉사는 지속하기 쉽지 않았다. “약값이 없어서 무료 진료를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단체든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인도의 아라빈드 병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라빈드 병원은 인공 수정체를 자체 개발해 백내장 수술 단가를 낮췄다. 환자가 몰리면서 이익이 늘었다. 늘어난 이익으로 가난한 환자를 치료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송 대표는 친구들과 함께 이 아이디어를 갖고 희망제작소 ‘대학생 사회적 벤처 경연’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해 ‘프리메드’를 창업했다. 프리메드는 지금까지 후배들이 대를 이어 운영 중이다.


“보통 의료 봉사를 하면 의대생과 간호대생으로만 이뤄집니다. 프리메드는 진료인력뿐만 아니라 개발팀, 홍보팀, 마케팅팀이 독립적으로 조직을 갖췄습니다. 또 무료 진료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개발했어요. 출산 키트(Childbirth Kit)가 대표적인데요. 아프리카에서 산모가 출산할 때 3분의 1이 출혈로, 또 다른 3분의 1은 감염으로 사망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출혈량을 가늠하는 패드, 출혈 억제제 등으로 구성된 키트를 만들었어요.”

출처: 송호원 대표 제공
프리메드 대표 시절.

이때만 해도 송 대표의 부모님은 그가 의사의 길을 밟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송 대표는 서울아산병원에서 1년간 인턴을 하다 2012년 MBA 유학길에 올랐다. 착실한 우등생은 그때 처음으로 부모님의 뜻을 크게 거슬렀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따이공(代工)’에 주목했다. 따이공이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대신 구입해주는 불법 보따리상을 말한다. 그는 이 시장을 합법·효율화하기로 했다. 2014년 10월 명동 건물 지하에 화장품 매장을 차렸다. 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인 전용 방문판매로 확장했다. ‘리듀어’라는 자체 화장품 브랜드도 만들었다.


트릴리어네어는 2017년 포브스아시아가 뽑은 10대 한국 스타트업에도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후이서울 앱의 일일 이용자수는 250만명에 달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게 ‘데이터’다. “방판이라고 해서 옛날처럼 직접 집에 찾아가는 게 아니라, 영업사원이 메신저 앱으로 고객을 관리했습니다. 이때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고객과 어떤 대화는 나눴는지, 고객 피부 진단, 추천한 상품, 구매 고객에게 해피콜은 언제 했는지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을 데이터로 남겼습니다. 패션회사 자라(ZARA)가 완벽한 데이터 회사예요. 판매 데이터로 수요를 예측해 디자인을 빨리빨리 내놓습니다. 자라 같은 데이터 비즈니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이용자가 데이터를 제공할 동기를 주기 위해 ‘토큰 보상 모델’을 떠올렸다. 송 대표는 2018년 3월 카카오에 접촉했다. 당시만 해도 카카오가 블록체인 판에 뛰어드느냐 마느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결국 카카오는 코스모체인과 손잡기로 했다.


“코스미가 성장하려면 이용자를 공격적으로 쏟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습니다. 카카오톡에 보면 쇼핑이나 스타일 메뉴가 있는데 뷰티 메뉴는 없었어요. 저희가 ‘뷰티’ 메뉴를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제안했습니다. 카카오와 어떤 식으로 협업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내용은 없습니다.”

출처: 코스모체인 제공
트릴리어네어 후이서울 직원들과 함께. 트릴리어네어와 코스모체인은 별도 법인이다. 송 대표는 "일하는 인력이 겹치지 않는 완전히 다른 회사"라고 했다.

화장대가 깔끔해지는 날까지


코스미는 종합 뷰티 플랫폼을 꿈꾼다. 앞으로 제품 제조·판매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뷰티 빅데이터를 근거로 시즌별 뷰티 유행을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기획·생산하는 것이다. 유행만 따르지 않고 개인별 피부 상태, 화장품 구매 성향 등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커스텀 제작도 가능하다.


사실 코스미 말고도 화장품 후기를 올리는 앱에서 시작해 커머스로 확장한 회사는 많다. 송 대표는 굳이 코인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다른 뷰티 앱과의 경쟁에서 자신감을 보인다. “뷰티 데이터를 크게 4개로 나눕니다. 상품 정보, 이용자 정보, 그리고 이 2개를 활용한 콘텐츠, 구매정보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업계에서 이 4개를 모두 잘하는 곳이 없습니다. 저희는 모든 데이터를 예리하게 다룰 수 있도록 갈 겁니다.”


2018년 6월에는 태국 11번가를 인수했다. 단순 온라인 쇼핑몰이 아닌 K패션과 K뷰티에 초점을 맞추고 코즘을 이용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외에 국내 여러 대기업과 기술 협업 중이다. 일본에도 진출한다. 일본 최대 암호화폐 커뮤니티 코인진자와 협업 중이다.


“포털에서 정보를 찾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내게 맞는 뷰티 정보를 정확하고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 내게 맞는 화장품이 뭔지 몰라 이것저것 사느라 많은 분들의 화장대가 지저분해요. 어지러운 화장대를 깔끔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