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은 할때도 있지만, 도청장치·GPS는 절대 쓰지 않습니다"

조회수 2020. 9. 27. 22: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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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명탐정 코난을 만날 수 있다?' 전국에 10명 있는 신직업
불법 ‘탐정업’ 바꿔 만든 ‘탐문지도사’
탐문·관찰·미행으로 자료 수집해
“이혼 소송에서 유리하게 쓸 수 있어”

“진실은 언제나 하나!”


명탐정 코난 시리즈에 항상 나오는 말이다. 이제 우리 일상에서 이 대사를 들을 수 있다. 탐문지도사라는 신직업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에서는 탐정업이 불법이다.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탐정이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다. 몰래 살펴 알아낸다는 뜻의 ‘탐정’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출처: 잡스엔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캡처.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모든 탐정업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으면 신용조사업·경비업 등 개별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탐정업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 예컨대, 도난·분실로 소재를 알 수 없는 물건 등을 찾아주는 것이다. 덕분에 탐문지도사라는 신직업이 만들어졌다.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 김종식 소장은 탐정업을 자료탐문업, 탐정을 탐문지도사로 이름을 바꿨다. 업무 원칙을 세우고 300여개의 업무 대상을 정선했다. 하는 일은 탐정의 업무와 똑같지만 원칙을 세우고 합법적으로 일한다는 점이 다르다.


박헌영 탐문지도사협회 부협회장은 37년 동안 정보과 경찰로 일하다 정년퇴임한 뒤, 인생 제2막으로 ‘탐문지도사’의 길에 들어섰다. 2019년 1월 제 1기 탐문학술지도사 자격 취득한 박 부협회장을 만나 탐문지도사와 자료탐문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잡스엔
(좌) 박헌영 탐문지도사협회 부협회장 (우) 자료탐문업 원칙과 300여개의 업무 대상을 담은 자료.

-탐문지도사는 무슨 일을 하나.

“개인적 궁금증 해소부터 사건·사고·사적 분쟁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 단서, 증거를 찾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잃어버린 실종자를 찾는 것부터, 곗돈 사기범의 소재를 알아내는 일, 짝퉁 생산 업체를 찾아내는 일 등을 한다. 그런데 경찰의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 민간 기술력이 정교하지 않아 공권력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다.”


-탐문지도사가 왜 필요한가.

“경찰 수가 한정적이다. 개인의 추측성 제보만으로는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경찰서, 관공서, 국민 센터 등에 사건 수사를 요청하러 가면 ‘자료나 증거를 함께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인이 제대로 된 자료나 증거를 모으기 힘들다. 또 경찰 권한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공직자는 개인이나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없다.


20년 전 수사대장 시절. 한 신고 전화를 받았다. 특허 제품을 불법으로 만드는 공장이 있다는 것. 신고자 A씨는 해당 제품에 특허권을 가진 사람이었다. 유사 상품이 계속 나와 공장이 도산 위기에 처해 공장 운영을 중단하고, 직접 불법 생산 유통 업체를 찾아나섰다고 했다. A씨에게 경찰에 신고했느냐 묻자, 접수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가 없어 수사에 진전이 없다고 했다. A씨는 동대문 시장부터 돌아다니면서 불법 생산 업체가 있을만한 지역을 추리했다. 그의 신고를 통해 ‘짝퉁’을 만들어 반출하던 범죄자를 검거했다. A씨의 사연을 들으며 수사기관의 제도적·현실적 고충을 효율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출처: 잡스엔
영화 '탐정 : 리턴즈' 캡처.

-기존 심부름센터(흥신소)와 다른 점은.

“탐문지도사가 합법적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5가지 원칙이 세웠다. 의뢰를 받을 때 조사를 통해 공익을 실현할 수 있는지, 의뢰 대상의 사생활이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업무 수행 과정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개별법을 준수하면서 증거를 모은다. 불법 도청 장치나 위치정보시스템(GPS) 등은 절대 쓰지 않는다. 5대 원칙은 △‘탐정’ 호칭 사용 금지 △대인적(사생활) 영역 조사 거부 △개별법 위반 행위 회피 △침익적 활동 거절 △활동 수단의 표준화다.”


-그러면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나.

“기본적으로 탐문과 관찰 기법을 이용한다. 접근에 특별한 제한이 없거나 이미 공개되어 있는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오류와 함정을 발견한다. ‘모든 정보의 95%가 공개적 출처에서 나온다. 단 5%만이 비밀 출처에서 나온다’.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이 한 말이다. 경제학자 빌프레드 파레토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의 80%가 이미 주변에 널려 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의 저명한 정보전문가 랜슨의 조사 결과, CIA를 비롯해 각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이 막대한 돈을 들여 수집한 첩보의 약 80% 이상이 이미 공개된 출처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에 따라서는 미행을 하기도 한다. 주로 배우자의 외도 정황에 대한 자료를 수집할 때다. 현행법상 간통죄는 사라졌다. 하지만 배우자의 외도 정황에 대한 증거가 있다면, 이혼 소송에서 매우 유리해진다. 재산분할 청구, 위자료 소송, 양육권 분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미행을 통해 모은 사진, 녹취 등 증거가 이혼 소송의 결정적 자료가 되는 셈이다. 개방적 장소에 공개된 자료를 기록, 녹화, 녹취하기 때문에 수집한 자료는 법적 효력이 있다.”

출처: 잡스엔
미행하는 탐정.

-미행이나 몰카는 범죄가 아닌가.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면서 불안감을 조성하면 경범죄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 하지만 현행 형법에 따라 당사자가 미행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경우 범죄로 보지 않는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마음에 들어서 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범죄’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오후 11시 B씨가 한 여자와 경기도 한 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사진 찍어 자료로 수집한다고 치자. 이들에게 해악을 끼치거나, 불안감을 느끼게하지 않는다면 범죄가 아닌 것이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몰래 찍었지만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지 않으면 범죄라고 볼 수 없다.


사람들은 ‘몰래’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몰래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다. 탐문지도사가 사건을 의뢰 받을 땐 비교형량(이익형량)을 따져본다. 두 사안에 대한 이익을 비교해 이익이 큰 쪽으로 결정한다는 비교형량 원칙을 적용한다. 미행이나 몰카로 인해 의뢰 대상이 받을 수 있는 피해보다 사회적 이익이 클 경우 의뢰를 받는 식이다.”


-자료탐문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6만여명의 공인탐정이 활동하고 있는 미국은 주에 따라서 탐정에게 체포권 같은 사법 권한을 주기도 한다. 보석 중인 수형자가 다른 주로 도망가거나 돈을 제 때 납부하지 않으면 탐정이 체포해 사법기관에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자료탐문업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어려운 점이 많다.

채널 A '한국판 셜록 홈스 나오나' 캡처

의뢰 업무에 따라 위험한 상황에 처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살인 사건 용의자를 조사하다가 그 범죄자가 나를 위협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경찰처럼 범죄자를 체포할 수 없다. 또 미행을 하다 불안감을 조성으로 신고를 당했을 경우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출처: 잡스엔
영화 '탐정 : 리턴즈' 캡처.

-어떻게 탐문지도사가 됐나.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자료탐문 교육을 50시간 들었다. 탐문 기술부터 정보 오류와 함정을 피하는 법, 법적 효력을 갖는 증거 판별법 등에 대해 배웠다. 교육을 수료한 뒤 제 1기 탐문학술지도사 자격 시험을 봤다. 1차에서 탐문 일반론과 정보론, 2차에서 탐문 기술론과 증거론 시험을 봤다. 각 과목 40점 이상,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 자격증을 땄다. '자료조사 서비스업'으로 사업자 등록 후 프리랜서 탐문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2월 안에 회사를 꾸릴 예정이다.”


-현재 탐문지도사 나이대와 성별은 어떠한가.

“10명의 탐문지도사 평균 나이는 50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본업을 마무리 하는 단계에서 제 2의 직업으로 선택한 경우다. 이들의 본래 직업은 수사 기관, 언론인, 건설업 CEO 등 다양하다. 10명 중 9명이 남자다.”


-자료탐문 일은 얼마나 들어오나.

“하루에 2~3건 정도 상담 전화가 온다. 하지만 ‘결혼 대상자의 차량에 도청 장치를 달아줄 수 있냐’는 등 현행법을 위반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자료탐문업 5원칙에 따라 이 같은 불법 의뢰는 받지 않는다. 자료탐문업이 널리 알려지면 의뢰 건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잡스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 캡처.

-자료탐문 의뢰 가격은 어떻게 정하나.

“사건 난이도와 업무 수행 기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결혼 배우자의 행적을 따라다니며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라고 치자. 의뢰 대상의 지인 탐문을 기본 난이도로 본다. 현장 사진, 현장 동영상 녹취 등 증거 자료 수집을 추가할 경우 난이도가 높아진다. 가격도 더 비싸다.


불법 도청 장치나 위치 추적 시스템을 이용하는 심부름 센터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알려져있다. 법에 걸릴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소재를 찾는 데 수천, 수억원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탐문지도사는 불법 수단을 사용하지 않아 이 같은 위험 부담이 없다. 가격 거품도 적을 수밖에 없다.”


-업무 성과가 없으면 어떡하나.

“일주일의 탐문 끝에 강아지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의뢰인은 허탈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자료탐문업은 신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료 수집을 위한 노동을 했기 때문에 돈을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업무 태만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보완책이 있다. 탐문지도사는 업무 수행 전 미리 자료 조사 방향과 일정을 제시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의뢰자에게 현재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 조사 진행이 불성실하거나, 더 이상의 조사가 무의미할 경우 중간에 조사를 취소할 수 있다. 기간에 따라 계약금만 내고, 중도금, 잔금을 안 내도 된다. 기본 계약금은 전체 의뢰 가격의 25~30% 정도다. 조사 착수에 필요한 최소 비용이다.”

출처: 잡스엔
영화 '탐정 : 리턴즈' 캡처.

-실제 탐문지도사로 활동한 사례가 있나.

“폐기물 처리업체 보다 아래 지역에서 장사하는 음식점이 있었다. 대형 폐기물 차량이 오갈 때마다 먼지, 소음으로 10년 이상 피해를 받았다고 했다. 증거 자료를 제출해야 재판에 더 유리하다며 자료탐문을 요청했다. 항공 드론을 띄워 불법으로 폐기물 형질을 변형한 정황, 폐수가 흘러 음식점에 피해를 준 증거를 찾았다. 소송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했다. 현재 의뢰인은 손해 배상 소송 진행 중이다.”


-필요한 자질은.

“가장 중요한 것은 탐문 능력이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 인터뷰이가 솔직하게 대답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준비한 답변에 현혹되면 안 된다. 첫째, 탐문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 둘째, 인터뷰이가 상황을 모면할 수 없도록 핵심 질문을 던지는 것. 이 두 가지가 탐문의 요체다. 이밖에 상대방의 말에 공감하고 경청하는 능력, 사실과 추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탐문·추리 서적을 읽거나, 매일 신문을 읽으며 훈련한다면 이 같은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게티 이미지 뱅크 제공

-자료 탐문업 전망은.

“2014년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 공약 중 하나가 공인탐정 법제화다. 2018년 12월 홍남기 부총리가 일자리 늘리기와 관련해 공인탐정법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 국가 공인 직업으로 ‘탐정업’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긍정적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앞으로 공인탐정법이 만들어지면 자료탐문업이 더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일평생 경찰로 일하면서 사법 기능을 보완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곗돈 사기를 당하거나, 짝퉁 물건이 버젓이 만들어지는 등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탐문지도사로 활동하면서 앞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로 인생 2막을 채워나가고 싶다.”


글 jobsN 김나영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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