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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실력 갈고닦은 곳엔 한겹한겹 이 ‘얼음장인’ 있었다

‘피겨 퀸’도 엄지척? 김연아의 은반 닦은 이 사람은?
jobsN 작성일자2019.02.10. | 339,865 읽음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에서 2008 ISU그랑프리 파이널이 열리기 하루 전날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빙판 표면으로 자꾸 페인트가 올라오는데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고 도와달라는 거였죠. 가보니 정빙기(빙판을 다듬는 데 쓰는 차량 형태 대형 기계) 칼날을 잘못 설정해 놓고 빙판을 손질했더라고요. 망가진 얼음 틈새로 페인트가 나왔던 겁니다. 가서 사고 원인을 알려주고 정빙기 상태를 점검해 줬죠.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붙어서 각각 2위, 1위를 차지했던 대회에요. 하마터면 국제대회 못치를 뻔 했죠.”

2008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열연하고 있는 김연아(좌)와 아사다 마오(우).

출처 : 조선 DB

경기도 과천 시민회관 빙상장의 김동욱(65) 주사는 오늘도 빙판을 닦는다. 과천 빙상장은 피겨 퀸 김연아가 태릉선수촌으로 가기 전인 중학생 시절까지 머물던 곳. 김연아 외에도 유영‧윤예지‧곽민정 등을 배출한 빙상 메달리스트의 인큐베이터다. 지금도 다음 ‘피겨 정상’을 노리는 빙상 키즈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과천 시민회관 빙상장의 김동욱 주사.

출처 : jobsN

1995년 빙상장이 오픈할 때부터 이곳에서 일한 김 주사의 빙질관리 경력은 어느덧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김연아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의 걸음마 시절부터 그들의 ‘발판’을 닦은 셈.


“ISU그랑프리 같이 국내에서 열린 피겨·쇼트트랙 주요 대회 아이스링크 빙질은 제가 거의 다 관리했어요. 어린 선수들이 연습하는과천 빙상장도 최선을 다해 관리하고 있죠. 김연아 선수가 타봐도 최고라고 할 만큼 빙질 관리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빙질관리를 시작한 계기는?


“1991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 버스 운전‧정비사로 취직한 것이 계기였다. 서울 광진구 능동에 있는 시설인데, 당시는 어린이회관을 방문하는 사람이 많아 버스도 운영했다. 그 전까진 카센터에서 차량 수리하는 일을 했다.

과천 빙상장 정빙기 후방 사진. 왼쪽 상단에 운전대가 있다. 아래 넓은 검은 판 안쪽에 물을 분사기와 빙판 손질 날이 있다.

출처 : jobsN

회관에 있는 스케이트장에도 손님이 많았다. 그곳엔 아주 낡은 정빙기가 한 대 있었다. 취직한 해에 위로부터 ‘자네 카센터에서 일했으니 이 기계를 관리해보라’ 지시 받은 게 약 30년 빙질 관리 인생의 시작이었다. 육영재단에서 4년 정도 일 하다 1995년 경기도 과천 시민회관 빙상장이 문을 열 때 옮겨와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정빙기 관리는 어떻게 배웠는가.


"‘정빙기를 다뤄보라’는 말을 듣자마자 30만원을 들여 정빙기 영어 설명서를 통째로 번역을 맡겼다. 이후 설명서를 부여잡고 달달 외웠다. 단순히 정빙기를 운영만 할 줄 알았지, 고장 나면 구체적으로 어딜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 혼자 배워야 했다.  

김 주사가 정빙기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 jobsN

그때만 해도 빙질관리가 생업이 될 줄은 몰랐고, 그저 주어진 일이니 열심히 했다. 설명서 보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기계를 만져보고 뜯어보고 하는 것을 즐겨서 해낼 수 있었다. 원래 좋아하는 것에는 깊게 빠져드는 성격이다. 설명서를 다 뗄 때쯤에는 ‘여기가 고장나면 이런 부품을 쓰면 되겠구나’ 개념이 잡혔다. 과거 자동차 정비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어느새 시설에서 정빙기를 제일 잘 다루는 사람이 됐고, 버스 관리가 아닌 정빙기 운영을 전적으로 맡아했다."


-그동안 빙질관리사로서 참여한 행사는?


“1997년도 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4대륙 시합 등 한국에서 열린 각종 피겨 국내·국제시합 대회 빙질 관리를 거의 다 했다. 크고 작은 대회 합하면 100회가 넘는다. 다만, 평창동계올림픽은 위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캐나다, 미국 사람들을 써 빙질을 관리했다. 빙상스포츠 선진국 사람들이 관리해서 그런지 빙질이 정말 우수했다. 우리나라도 평창 때 만큼의 빙질을 낼 수 있는 기술은 가지고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를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주최측이 결정한 사항이었다. 대회가 없을 때에는 강릉, 춘천, 고양, 부산, 인천 등 전국 각지의 빙질과 정빙기 관리를 도와주는 일을 한다."


-빙질관리란 무슨 일인가?


"빙판을 평평하게 깔고, 적절한 얼음 ‘표면 온도’를 유지해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빙기 관리도 할줄 알아야 한다. 빙판 두께는 평균 5~6cm다. 물은 호스, 기계 분사기, 정빙기 등을 사용해 공급한다. 얼음은 아이스링크장의 냉동기로 얼리고, 대형 건조기로 습도를 조절한다. 작업에는 보통 물이 50~60톤(t)이 든다. 얼음은 링크장에 설치한 냉동기로 얼리고 정빙기로 다듬어준다. 과천시민회관 빙상장 냉동기 용량(기계의 힘)은 약 300마력이다. 대형 기계를 계속 사용하다보니 한 달에 아이스링크장에 드는 전기세가 보통 1500만~2000만원이다.

과천빙상장 전경.

출처 : KTV국민방송 유튜브 화면 캡처.

넓은 링크장에 물 60t을 한 번에 채워넣고 얼리는 게 아니다. 전체 공간에 물을 뿌려 얇게 한 겹을 얼린 뒤 그 위에 다시 한 겹을 얼린다. 한 겹이 보통 1mm다. 이 과정도 60~80번 정도 반복해야 한다. 4mm 정도 쌓이면 정빙기로 한 번 다듬어주고 그 위로 다시 층을 쌓는다. 평평한 빙판을 겹겹이 쌓아줘야 스케이트로부터 오는 충격을 잘 흡수한다.


물은 찬물 아닌 뜨거운 물을 사용한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얼기 때문이다. '음펨바 효과'라고 과학계에서도 검증한 사실이다. 그래서 물 주는 호스에는 뜨거운 물이 항상 가득한데, 예전에 아무 생각없이 호스를 끌고 다니다 빙판을 녹여 재작업한 적도 있다.


한 번 얼린 빙판은 평균 2~3년 쓰고 새 걸로 싹 갈아준다. 태릉선수촌은 1년에 한 번씩 새 얼음을 얼린다. 또 1년에 한 두 번 정도 정빙기로 얼음 표면을 갈아줘야 스케이트를 타기 편하다. 빙판이 오래 되면 표면으로 아래 있던 먼지 등 이물질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빙판이 가만히 얼어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기온에 따라 조금씩 얼고 녹으면서 내부가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빙질관리의 중요성은?


“빙질관리는 선수들의 기술 발휘, 경기 결과 그리고 건강까지, 빙상스포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음의 ‘표면 온도’를 맞추는 일이다.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에서 사용하는 빙판의 표면온도는 보통 –10~-4도 사이다. 각 스포츠마다 선호하는 온도가 다르다 피겨는 –4~-6도, 쇼트트랙은 –7~-8도, 하키는 –10도가 적당하다. 오늘 빙질이 어땠는지 선수나 코치들에게 자주 물어봐야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김동욱 주사는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중학생 시절까지 연습하던 빙판의 빙질을 관리했다.

출처 : 올댓스포츠 홈페이지 캡처.

얼음 온도마다 단단함이나 미끄러지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스포츠마다 적절한 온도가 나뉜다. 보통 저온일수록 단단해지는데, 역설적으로 온도가 낮을수록 ‘점프’ 후 충격에 약하다. -10도 빙판에서 피겨 선수가 점프를 하면 빙판이 금방 깨져 선수가 다치거나 경기를 못한다. 한편 –10도 얼음에서 쇼트트랙선수가 고속질주를 하면 너무 미끄러워 발이 헛나갈 수 있다. 반대로 –4도에서 질주를 하면, 얼음이 물러 스케이트 날 앞부분이 바닥을 파고들어가 선수가 돌부리에 걸린 듯 넘어질 수도 있다. 가끔 이렇게 부상당한 선수의 소식을 들으면 ‘99% 빙질관리 잘못한 탓’이란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빙질관리, 어려운 점이 있다면?


"빙판 온도를 맞추려면 결국 습도, 바깥 날씨와 계절, 관중석을 포함한 경기장 전체 온도까지 고려해야 해 힘들다. 경기장 공기가 건조하면 습도가 적당할 때보다 빙판이 덜 미끄러워진다. 또 습도가 너무 높으면 빙판에 성에가 껴 스케이팅을 방해한다. 너무 건조하면 연습 후 선수와 심판‧코치들의 얼굴이며 입술이 다 터버린다. 제습기를 통해 습도를 맞추는데, 보통 40~50% 정도 습도가 적절하다. 

정빙기의 하단 부분. 내부 칼날이 얼음을 갈면, 그 위의 스크류가 얼음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출처 : jobsN

낮과 밤의 온도가 다르듯,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는 기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계속 적절한 빙판 상태를 유지하려면, 하루 종일 지켜봐야 한다. 아침 5시10분에 출근을 해 곧바로 얼음 ‘표면 온도’ 체크를 한다. -6도로 빙판 온도를 맞춰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보통 낮에는 –2도까지 올라간다. 계속 –6도를 유지하려면 링크장 온도를 오전부터 낮춰야 한다. 한편, 온도가 너무 내려가면 얼음이 깨져버린다. 기온이 내려가는 새벽에 빙판을 그대로 두면 쩍쩍 갈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 퇴근 전에는 밤 10시부터 빙판을 –7도로 유지할 수 있게 실내 온도를 높여 둔다.


관객의 수나 바깥 날씨에 맞게 얼음 상태를 달리 해줘야 한다. 관객이 많은 경기에서는 난방기와 체열 때문에 아이스링크장 실내온도가 15도 넘게 올라간다. -7도로 얼음 표면온도를 맞추려면, 실제 얼음 온도를 더 차갑게 해야 한다. 날씨를 보고 습도나 얼음 온도에 변화를 줘야 한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이면 원래 습도가 높으니 제습기를 더 세게 틀어준다. 온도가 너무 내려가 빙판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겨울에는 실내 온도를 일부러 높여준다."

2010년 과천 빙상장을 방문해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김연아 선수.

출처 : 노컷TV 유튜브 화면 캡처.

-빙질관리 배우기 위해 해외도 다녀왔다고.


“2015년에는 일본으로 사비를 들여 다녀왔다. 평창올림픽을 앞둔 2017년 가을, 올림픽위원회 지원을 받아 캐나다 캘거리로 빙질 관리를 배우러 다녀왔다. 2주일 동안 잠보니에서 일하며 배웠다. 아직 한국에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살수기 등 최신 장비도 보고, 그들이 어떻게 빙질과 관련 도구를 관리하는지 벤치마킹했다."


-지금은 빙질 관리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기관이 있는가?


"내가 일하는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은 공공기관인데, 지금 내 아래서 4명이 빙질 관리를 배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따로 교육하는 교육기관은 없다. 일하면서 회사에서 배워야 한다. 정빙기도 운영해보고 고쳐 보면서. 이들도 일반적인 공기업 공채를 거쳐 들어와 이곳으로 부서를 배정받아 배우는 것이다.

잠보니 사에 방문해 빙질 관련 수업에 참관한 김 주사.

출처 : jobsN.

캐나다의 경우 정빙기 제조 회사 잠보니(ZAMBONI) 체계적으로 정빙기 정비, 빙질 관리를 가르친다. 정빙기는 캐나다 잠보니에서 특허를 내 독점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가 생산하기 힘들다. 예전에 일본 회사가 모방해 만들었다가 소송당해 생산을 접은 사례도 있다."


-앞으로의 목표는


"지금처럼 열심히 빙질관리를 계속 하면서 외국의 선진 기술을 계속 배울 계획이다. 또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들에게 빙질 관리에 대해 많이 가르쳐주고 싶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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