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놀던 남자, 우연히 '나체 행사' 갔다가 선택한 직업

조회수 2020. 9. 27. 23: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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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버리고 '김영하' 띄운 청년.. '나체 행사' 갔다가 선택한 직업
미국 스타트업 일하다 테드엑스서울 유치
디캠프 직원까지 이색 이력

돈, 명예, 보람, 사회에 대한 기여, 자기계발….

일의 목적. 가끔 한 번 고민해 볼 수 있지만, 바쁜 일상 속, 늘 상기하는 건 어렵다. 그래도 마음 한 켠, 일의 목적 하나 쯤 품고 있으면, 덜 지치며 달릴 수 있다. 스스로 자극을 얻기 어렵다면, 남의 삶에서 일의 목적을 발견해 보는 것도 좋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직업인. 류한석 EOS노드원 대표를 만났다.


4번의 변신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졸업 후 곧장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사람 감정을 분석하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였어요. 중국 지사 만드는 일에 투입돼 1년 반을 일했습니다.”


미국 있으면서 지식 강연 콘텐츠 회사인 ‘테드’와 연이 닿았다. 유명인이 출연하는 유튜브 강연 영상으로 유명하다. 테드 관계자와 만나며, 한국 내 라이센스를 얻는 데 성공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테드엑스 서울’ 등 행사를 열면서, 다양한 강연 콘텐츠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소설가 김영하 씨다. ‘지금 당장 예술가가 돼라’는 강연 시리즈로 197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영하 씨 강연을 다른 나라 사람도 볼 수 있게 영어 자막을 달았어요. 아시아권 연사가 자국어로 한 강연에 영어 자막을 단 건, 이례적인 일이었죠.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김영하 소설가가 뜨는 데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출처: 유튜브 화면 캡쳐
테드엑스서울에서 강연 중인 소설가 김영하 씨

-돈도 많이 벌었겠네요.


“아니오.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습니다. 애초에 돈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었거든요.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테드엑스서울을 한 겁니다. 운영비 정도만 충당할 정도로 수익을 냈어요. 그래서 오래는 갈 수 없었어요.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보람 있었구요.”


테드엑스서울을 나름 성공리에(?) 마치고, 디캠프(D.CAMP)에 들어갔다. 디캠프는 은행권이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8500억원을 출연해서 만든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사무국 조직이다. 스타트업 지원 및 투자와 관련된 많은 일을 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허브와도 같은 조직이었어요. 많은 걸 배웠습니다.”


디캠프에서 3년 반을 일하고, 삼성전자 C-랩(Lab)에서 분사한 벤처기업 ‘이놈들연구소’에 마케터로 들어갔다. 손가락에 붙여 통화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줄의 마케팅을 맡았다. 제품을 통해 미국 크라우드펀딩 회사 ‘퀵스타터’에서 16억원 투자 유치를 이끌어 냈다. 30만건이 넘는 퀵스타터의 역대 투자 유치 기록에서 상위 0.03%에 해당하는, 역대급 기록이다.


재밌었다. 그런데 또 그만뒀다. 이번엔 대책도 없었다. 1년을 쉬었다. 돈이 필요하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냥 놀고 싶더라구요. 내 삶. 내가 설계하는 겁니다. 저는 돈이 목표가 아녜요.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핵심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도 중요합니다. 쉴때 그런 자유가 있었어요. 가족과 많은 시간 보낼 수 있었던 그때가 더 없이 좋았습니다.”

출처: 이오스노드원 제공
외국인 친구와 함께 한 류한석 대표

놀면서(?) 지내던 어느날. 미국으로 날아가 매년 네바다주에서 열리는 문화축제 ‘버닝 맨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해마다 8월 마지막주에서 9월 첫째 주 사이 미국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서 열리는 행사다. 외부와 완절히 단절돼 각 참여자가 스스로 다양한 예술 이벤트를 열고 참여한다. “7만명 넘게 참여하는 큰 축제에요. 평소 허허벌판이던 곳인데, 행사 기간 하나의 도시로 변해요. 축제 기간 필요한 게 생기면, 각자 갖고 있는 걸 물물교환해서 해결합니다. 특별한 룰은 없어요. 내 몸 내가 챙기면 됩니다. 분위기가 자유로워 기괴한 복장을 하거나, 아예 옷을 입지 않고 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무척 히피적인 행사죠. 이 행사에 엘런 머스크 같은 실리콘밸리 거물이 대거 참여합니다. 미국인들이 커뮤니티 문화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잘 알 수 있어요.”


-행사에서 뭔가 깨달은 게 있나 봐요.


“커뮤니티 자체요. 국가를 넘는 힘이 있습니다. ‘곧 커뮤니티가 경제의 판을 뒤흔들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커뮤니티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그래서 가상화폐 관련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가상화폐 기본 원리가 시장 참여자들 커뮤니티에서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디캠프 재직 시절 암호화폐 거래소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실무를 맡은 적이 있어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전세계에서 열리는 다양한 경제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다보스포럼 같은 행사를 돌면서 최신 트렌드를 공부하고 친구를 만들었다. “유럽, 두바이, 미국, 멕시코…, 갈 수 있는 모든 나라를 갔습니다. 제대로 창업해 성공하려면, 일단 지식과 사람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고 판단했거든요. 지금 일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이오스노드원 제공
류한석 대표

이오스 BP로 도전


류한석 대표는 여러 가상화폐 중 ‘이오스’ 거래와 관련된 일을 한다. “커뮤니티 정신에 가장 가까운 가상화폐거든요.” 지갑수 기준 전세계 60만명이 넘는 이오스 보유자들은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가상화폐 미래를 논의하고 협력방안을 도출한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그들의 지갑을 관리할 대표도 뽑는다.


그 대표를 ‘BP(블록 프로듀서)’라 하는데, 전세계 180여개가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오스노드원 등 8곳이 있다. BP는 이용자들의 지갑과 거래 체계를 관리하는 댓가로 커뮤니티에서 생성되는 가상화폐를 받는다. 지지자 수에 따라 BP별 순위가 생기는데, 순위가 높을수록 관리하는 이용자가 늘고 받는 댓가도 커진다. “이용자들은 본인이 지지하는 BP를 바꿀 수 있는데요. 지지도에 따라 BP 순위가 바뀝니다.”


BP로 성공하려면 결국 많은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용자들과 공감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커뮤니티를 관리해 구성원에 기여할지,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 어떻게 화폐 가치를 높여 나갈지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를 지지하는 이용자가 늘면서 순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밤마다 ‘키보드 워리어’가 됩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토론하면서 저를 알려야 하니까요. 100명 넘는 사람이 동시에 화상채팅하는 일이 매일 벌어집니다. 잠시도 쉴 수가 없습니다.”

출처: 이오스노드원 제공
이오스 컨퍼런스에 모인 이용자들

작년 류대표는 서울 역삼동에 있는 디캠프 행사장과 인근 호텔을 빌려 이오스 소유자들 간 글로벌 컨퍼런스를 주도하기도 했다. 35개국에서 400명이 모였다. “전세계 이용자들과 채팅하다 아이디어가 나와 3주만에 준비해 행사를 열었어요. 이오스가 생긴 뒤 처음 열린 글로벌 오프라인 행사였죠. 커뮤니티를 어떻게 키워 나갈지 다양한 토론을 했습니다. 뜻깊은 행사였는데, 그 덕에 BP로서 지지도도 올라가는 수확도 얻었습니다.”


-BP의 본질이 헷갈립니다.


“물론 비즈니스에요. 많은 지지를 받아 순위를 높임으로써, 커뮤니티에서 생성되는 가상화폐를 많이 버는 거죠. 하지만 분명 공헌적 성격도 있어요. 이오스 커뮤니티에 어떻게 기여할지 항상 고민하고 있어야 순위가 올라가니까요. 새로운 시스템 모색도 해야 하고요.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게 결과적으로 수익이 되는 새로운 모델입니다.”


-원하는 삶에 가깝나요?


“무척이요. 힘든 건 분명 있지만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나름 의미도 있구요.”

출처: 이오스노드원 제공
이오스 컨퍼런스에 모인 이용자들

-앞으로 계획을 알려 주세요.


“이른바 ‘토크나이제이션’을 해보고 싶어요. 농장, 건물 등의 실물을 기반으로 토큰을 발행하는 걸 뜻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기반으로 발행된 토큰에 투자하면, 소액으로 건물을 일부 소유할 수 있습니다. 농장을 기반으로 토큰을 발행한 뒤, 토큰을 가진 만큼 농작물을 배당하는 모델도 가능합니다. ‘주식과 같은 것 아니냐’ 할 수 있지만, 토큰은 그 자체로 화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주식이나 채권과 확실히 다릅니다. 발행이 훨씬 간편하다는 이점도 있구요. 이미 미국에선 부동산 기반 토큰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곧 실물에 기반한 토큰이 나올 겁니다. 그러면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상당 부분 개선시킬 수 있을 거에요. 전세계적으로 경제의 분권화가 대세가 되고 있는데요. 이게 진전될수록 토크나이제이션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될 겁니다. 지켜보세요.”


글 jobsN 박유연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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