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회수 2020. 9. 27. 23: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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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 졸업, 영주권 신청할 수 있었지만 입대 선택했죠"
글자를 읽는 순간 암기해버리는 친구가 있었어요. 강의 교재를 한 번 보면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기억해 냈죠. 그런데 이런 학생조차 시험을 보면 1등을 못 했어요. 그만큼 무서운 학생이 많은 곳입니다.

미국으로 이민가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 뉴욕과 매사추세츠 주 변호사 자격증도 있다. 영주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군대를 가기 위해서다. 양정훈(29) 중위는 11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꿈을 안고 떠난 미국에서 사기를 당했다. 대학 입학도 불투명했다. 등록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낮에 일하고 밤에 수업을 들으면서 버텼다. 이제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공익변호사가 꿈이다.

출처: 본인 제공
양정훈 중위.

-공군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작년 3월 임관해 공군본부 법제과에서 법무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미국법이나 국제법 지식이 필요한 계약·합의서를 쓰거나 법률 자문을 한다. 예를 들면 국군과 미군이 연합훈련을 할 때 훈련 절차에 대한 합의서를 검토한다. 조종사가 해외 연수를 갈 때 쓰는 계약서 조항도 분석한다. 의무 복무기간 3년을 마치고 2021년 3월 전역한다.”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음에도 군 복무를 택했다.


"아내가 미국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미국은 간호사가 귀해서 영주권 취득이 상대적으로 쉽다. 영주권을 신청하면 늦어도 1년 안에 받을 수 있다. 아내가 영주권을 취득하면 남편인 나에게도 영주권이 나온다. 영주권을 취득하고 군 복무를 안 하려면 한국 시민권은 포기해야 한다. 앞으로 미국에서 살 계획이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군 복무를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사연이 궁금하다.


“2001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투자이민을 갔다. 외국인이 미국 내 사업체에 50만~100만달러(한화 약 5억6000만원~11억2000만원)를 투자하면 투자이민 비자(EB-5)가 나온다. 조건부 영주권을 취득하고 10명 이상 고용창출 효과를 내면 투자자와 가족에게 영주권을 준다. 부모님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오로지 경쟁만 부추기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자식 교육을 시키고 싶어하셨다.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공군 제공

-동업자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아버지의 지인이 미국 시민권자인 자신의 형제를 소개해줬다. 애틀랜타에서 주유소와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투자이민 비자를 받으면 나중에 시민권도 취득할 수 있다며 주유소 경영을 제안했다. 지인의 형제라고 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매출만 듣고 순진하게 미국행을 결정했다. 막상 주유소에 가 보니 손님도 없고 매출도 변변찮았다.


이미 한국 생활을 정리한 터라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주유소를 유지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모은 돈을 써 가며 7년을 버텼다. 나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주유소에서 캐셔로 일했다. 2008년 동업자가 공동 소유였던 슈퍼마켓을 몰래 매각했다. 고용창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서 영주권을 못 받았다.”


-10대 학생한테는 버거운 짐이었겠다.


"10대의 오랜 기간을 돈에 쪼들려 빠듯하게 살았다. 모든 걸 다 포기한 심정이었다. 부모님은 결국 주유소 운영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물었다. 당장 한국에 가도 처음부터 수능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일단 미국에 남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대학을 안 가려고 했다. 등록금도, 목표의식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투자이민 비자를 상실했다. 불법체류를 하지 않으려면 대학에 진학해 학생 비자를 취득해야 했다. 결국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본인 제공

-대학을 총 5년 다녔다고.


“2008년 8월 조지아 주 게인즈빌 주립대학에 입학해 한 학기를 다녔다. 은행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과 차를 압류당했다. 조지아 주는 차가 없으면 이동이 불편하다. 더 이상 조지아에서 살 수 없었다. 뉴욕에서 일하고 있던 누나를 무작정 찾아갔다.


뉴욕시립대 소속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BMCC에 편입했다. 2009년 1월부터 2년 동안 다녔다. 미국은 편입이 상대적으로 쉽다. 졸업하기 전 4년제인 뉴욕시립대 버룩칼리지로 편입했다. 버룩칼리지에서 2년 더 공부하고 졸업했다.”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시립대 등록금은 사립대보다 저렴하다. 2년제 대학에 다닐 때 등록금은 한 학기에 300만원 정도였다. 버룩칼리지 학비는 700만원이었다. 학교 장학금 혜택은 거의 못 받았다. 편입한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잘 안 준다. 조지아에서 뉴욕으로 이사하자마자 중식당에서 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이 안내원은 여자를 쓰는 게 맞는 것 같다며 3주 만에 해고했다.


누나가 뉴욕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법률사무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해고 소식을 듣고 누나 상관인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을 해보라 권했다. 그곳에서 로스쿨 입학 전까지 4년 반 동안 일했다. 간단한 계약서 초안을 쓰거나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시·주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작성했다.”


-학교 다니며 일도 했다는 말인가.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했다. 부모님한테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이 끝나고 저녁 6~7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다. 변호사님의 배려로 일을 빨리 끝내면 과제를 할 수 있었다. 틈틈이 과제나 시험 공부도 했다.”


-로스쿨 진학 계기는.


“이민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익변호사라는 꿈이 생겼다. 시민권자인 동업자한테 사기를 당했을 때 소송을 못 걸었다. 영주권도 없는데 시민권자를 고소했다가 추방당할까봐 두려웠다. 법도 몰랐고 소송 비용도 없었다. 그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살기로 결심했다.”

본인 제공

-하버드 로스쿨 입학 자격이 궁금하다.


“대학 성적(GPA)과 법학 대학원 입학시험(LSAT)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GPA는 4.0 만점에 3.9 이상이어야 한다. LSAT은 180점 만점에 170점 중반 이상 성적이 필요하다. 백분위로 따지면 상위 0.1%에 속한다. 내 GPA는 3.9, LSAT은 174점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입학하나.


“성격을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학부 때 이공계나 음악을 전공하고 입학한 사람도 있다. 공부벌레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편견이었다. 물론 부유한 집안 출신이나 명문가 자녀도 많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 중에는 미 상원의원 아들도 있었다.”


-성적은 어땠나.


“평범했다. 학부생일 때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로스쿨은 공부량이 많아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 다른 학생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어떤 친구는 매일 농구를 하러 체육관에 나왔다. 운동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졸업식 날 그가 1등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정도로 대단한 학생이 많았다.


대신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하버드 로스쿨은 학생 형편을 기준으로 장학금을 준다. 1년에 필요한 학비와 생활비가 8만달러(한화 약 8950만원)였다. 이중 40%를 장학금으로 받았다. 나머지 60%는 학교에서 융자를 받았다.”

출처: 플리커 제공
하버드 로스쿨 도서관 전경.

-로스쿨에서는 인턴 경험이 필수라고.


“2학년이 끝나는 5월부터 여름방학 동안 로펌에서 인턴십을 한다. 1학년 때 받은 성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1학년 성적이 중요하다. 인턴으로 일한 로펌에서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대부분 그 회사에 취직한다.


공익변호사가 꿈이라서 로펌에서 인턴십을 하지 않았다. 1학년 때는 뉴욕 주 법무부 장관 사무실에서 4개월 동안 일했다. 연방 대법원 판결문이나 인종차별 사례를 분석했다. 2학년 때는 ‘그레이터 보스턴 리갈 서비스’에서 일했다.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 법률 자문을 하는 공익 단체다. 공익 단체는 로펌과 달리 성적보다 지원자가 공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평가한다.”


-봉사활동도 했다고 들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운영하는 봉사 단체에서 2년 반 동안 활동했다. 공식 명칭은 ‘하버드 테넌트 애드보커시 프로젝트’다. 공공주택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저소득층 임차인에게 무료로 법률 자문을 해줬다. 학생이라서 변호사인 교수님 지도 하에 변호를 했다.”


-미국 변호사 시험은 한국과 어떻게 다른가.


“미국은 주마다 요구하는 변호사 자격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로스쿨 졸업 후 ‘UBE’(Uniform Bar Exam)라는 변호사 시험을 본다. 합격하면 뉴욕 주를 포함해 28개 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수 있다. 2016년 7월 이 시험을 봤다. 보통 학교를 졸업하는 5월부터 7월 시험까지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합격률은 70% 정도다.


UBE를 보고 매사추세츠 주 변호사 시험도 봤다. 당시 매사추세츠 주는 UBE 시험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인정하고 있다. 공부해야 하는 과목은 비슷하다. 다만 주마다 다른 공소시효 규정이나 범죄 성립 요건 등에 대해 세부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출처: 본인 제공
양정훈 중위와 그의 아내.

-귀국 후 한국에서 학원 강사로도 일했다.


“2016년 7월 변호사 시험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입대까지 1년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다. 공익 변호를 할 수 있는 로펌에 연락했지만 월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일자리를 찾다가 미국 변호사 시험 준비 학원에서 미국법 강사로 일했다. 수강생은 대부분 국내 세무사나 변호사들이었다. 2018년 1월 입대하기 전까지 1년 3개월 정도 일했다. 맡은 강의 수에 따라 한 달에 300만~700만원 정도 벌었다.”


-앞으로 계획은.


"전역하면 미국 로펌에서 3~4년 정도 실무 경험을 쌓으려고 한다. 공익 단체는 재정이 여유롭지 않아서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 변호사를 선호한다. 최종 목표는 공익변호사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벌어도 괜찮다. 남을 돕는 일이 더 가치 있다고 느낀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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