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보다 뒤처졌구나"라고 생각한 제주도 청년이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7. 23: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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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보다 뒤처진 한국의 결제 시장 바꾸자" 제주도 청년이 벌인 일
국가간 결제 전문 서비스 '티엔디엔'
2015년 제주도에서 창업해 동고동락
중국에서 하듯이 한국에서도 똑같이

2015년 9월, 티엔디엔(tndn) 이민석(29) 대표를 중심으로 8명이 제주도에서 모였다. 이들은 핀테크(금융기술) 분야에 도전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생인 청년이 도전하기에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한국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은 각종 규제 때문에 사업을 시작하기도, 살아남기도 어렵다.


이들은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환전 없이 자국에서 쓰던 서비스를 한국에서 쓸 수 있는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통합 서비스 ‘티엔디엔’을 만들었다. 별도 앱을 내려받거나 기기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늘 쓰던 간편 결제 앱을 켜서 결제대에 있는 QR코드만 스캔하면 된다. 2018년 한해에만 요우커들이 티엔디엔으로 210억원을 거래했다. 알리페이·위챗페이·유니페이·페이코·토스·엘포인트·하나멤버스 등 국내외 금융사·결제사와 정식 파트너로 일한다. 3700여개 가맹점에서 티엔디엔을 쓸 수 있다.


제주도에서 시작한 티엔디엔은 이제 서울과 상해, 북경에도 거점을 두고 있다. 20여명의 직원이 함께한다. 이 대표는 제주도 출신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지구과학시스템을 전공했다. 이 대표를 만나 티엔디엔의 창업 이야기와 경쟁력을 들었다. 

출처: jobsN
티엔디엔 이민석 대표. 티엔디엔이란 중국어로 달콤한 디저트를 뜻한다. 창업 초기 중국인들에게 달콤한 여행을 선물하겠다는 포부로 시작했다. 티엔디엔은 요유커와 간편송금 앱 ‘토스’ 등을 사용하는 국내 이용자 대상으로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를 운영한다. QR코드를 스캔해 환전 없이, 별도 앱을 내려받지 않고 결제한다.

중국보다 뒤처진 한국 오프라인 결제 환경


중국은 모바일 결제 대국이다. 2018년 중국의 모바일 결제 규모는 166조위안(3경원). 길거리 고구마 장수도 모바일 결제를 쓴다. 심지어 위챗페이로 구걸하는 걸인의 모습이 웨이보에 올라올 정도다. “중국에 출장을 갔을 때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현금을 내니 배달 직원이 ‘왜 현금으로 주냐, 위챗페이로 달라’ 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팁 줄 때도 서빙 직원 가슴께 붙어있는 QR코드를 찍어서 보내줘요.”


자국에서 모바일 결제가 당연한 중국인은 해외에서도 모바일 결제를 선호한다. 닐슨이 조사한 ‘2018 중국인 관광객 모바일 지불결제 해외 이용 실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인은 해외에서 미화 3409달러를 지출했다. 이중 69%가 모바일 간편결제다.

출처: 웨이보·조선DB
(왼쪽) 걸인이 휴대전화 결제를 할 수 있는 QR코드가 찍힌 종이를 목에 걸고 구걸하자, 행인이 전화를 꺼내 스캔으로 ‘적선’하고 있다. (오른쪽) 2019년 1월 10일 중국 선전시 지하철 푸톈커우안(福田口岸)역 매표기기 앞. 퇴근시간임에도 현금으로 표를 구매하는 고객이 별로 없었다. 매표기 위에는 ‘잔돈이 없나요? 위챗 미니앱으로 탑승 QR코드를 얻으세요’라는 광고판이 설치돼 있었다. 승객들은 스마트폰으로 위챗에 있는 지하철 미니앱을 열고 승차료를 지불한 뒤 개찰구에서 QR코드를 찍고 통과한다.

하지만 한국 모바일 결제 시장은 아직 과도기다. 오프라인에선 여전히 모바일 결제보단 카드를 선호한다. 여러 회사에서 ‘OO페이’를 내놓지만 사업주와 소비자는 여러 결제 시스템 사이에서 피로감을 느낀다. 페이마다 각기 다른 결제 방식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티엔디엔은 난립하는 페이 시스템을 통합했다. 틈새시장을 공략해 ‘페이 피로감’을 해소했다.


“사업주는 별도 기기를 설치하지 않고 티엔디엔 QR코드가 그려진 게시판만 올려두면 됩니다. 소비자가 위챗페이를 사용한다면 위챗페이 앱으로 가게에 놓인 QR코드를 스캔합니다. 그다음 가격과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끝이에요. 중국 관광객도 위안화로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 없이 한국 가격만 입력하면 됩니다. 즉시 위안화로 계산한 금액이 바로 아래 떠요. 알리페이를 쓰면 알리페이 앱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사용하는 앱이 지정하는 환율로 계산하는데, 은행에서 환전하는 비용보다 저렴합니다.” 

출처: 티엔디엔 제공
티엔디엔을 이용한 오프라인 모바일 결제 사용 방법.

티엔디엔의 고객은 사업주, 즉 가맹점주다. 위챗페이나 알리페이를 도입하려면 각기 다른 바코드 리더기, 포스기, 카드 리더기가 필요하다. 또 기기 도입 비용을 내야 한다. 반면 티엔디엔은 가맹비나 설치비를 받지 않고 수수료만 받는다. 해외카드 수수료보다 낮다. 해외카드 가맹점주 수수료는 3~4%대다. QR코드 결제 이외에도 앱을 내려받아 쓰는 폰투폰 방식, 포스 결제도 가능하다.


“저희 경쟁자는 다른 모바일 간편 결제 시스템이 아니라, 비자나 마스터카드 같은 ‘해외카드’입니다. 이제 결제 시스템은 카드가 아니라 모바일로 바뀌고 있어요. 한국에서 그 환경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저희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주도, 서울 홍대·명동·가로수길 등 요우커가 자주 찾는 음식점이나 옷가게에서 티엔디엔 QR코드를 쉽게 볼 수 있다. 

출처: 티엔디엔 제공
티엔디엔 가맹점에서 볼 수 있는 QR코드.

원룸에서 동고동락하고 꽌시 만들어가


이 대표는 원래 비영리 시민 단체(NGO)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부모님도 NGO에서 일했다. 전역 후 푸른아시아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다. 몽골 사막화 방지를 위한 청년 활동을 기획했다. “시민참여, 사회혁신이 필요하지만 ‘지금 시대 NGO 방식이 맞을까’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빨리 바뀌고 있었어요. 혁신적인 기술을 모른 채 이대로 괜찮을까 싶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로 창업을 택했다. 2014년 게임포인트를 기부로 연결하는 소셜 벤처(사회적 기업)를 창업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나 IT 지식이 부족해 사업은 잘 풀리지 않았다. 4학년이었지만 컴퓨터과학을 복수전공했다. 한 학기를 필수전공만으로 빡빡이 채웠다. 여러 창업 경진대회에 참여하며 IT와 창업을 공부했다.


요우커 시장에서 가능성을 봤다. NGO에서 일할 때부터 중국에 자주 갔기 때문에 중국이 친숙하기도 했다. 창업 멤버부터 모았다. 군대 선임, 대학 연합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 지인의 지인, 창업 경진대회에서 만난 사람 등을 모았다. 방 하나 있는 원룸에서 8명이 합숙생활을 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집중 타깃으로 하려면 제주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때 기발한 아이디어도, 돈도 없었어요. 무작정 내려갔습니다.”


중국인 유학생인 손위준 이사는 막판에 합류한 창업 멤버다. “중국의 환경과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했어요. 손 이사의 큰 아버님을 먼저 소개받았는데, 마침 조카가 같은 학교 유학생이었습니다. 손 이사였죠. 그런데 알고 보니 개발자 모임 메신저 단체방에 이미 있었던 친구였어요. 운명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2~3일치 짐만 싸서 내려오라 해놓고 저희가 2~3주 동안 안보내줬어요.”


중국인 대상 관광 스타트업은 티엔디엔이 아니어도 많았다. 티엔디엔은 차별화를 위해 애플리케이션 안에서 메뉴를 보고 주문까지 할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서비스를 만들면서 예기치 못한 위기에 봉착했다.

“저희가 놓치고 있던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요우커가 한국에서 묵는 기간은 3~5일 정도입니다. 중국 현지에서 쓰던 그대로 전세계 어디를 가든지 쓸 수 있어야 했습니다. 중국에선 테이블마다 붙어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메뉴 정보가 나오고 주문까지 가능해요. 유사 서비스를 한국에서 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한국에선 선결제가 보편적이지 않았어요. 그때 한국의 결제 시장이 보였죠.”


하지만 한국에서 핀테크는 진입장벽이 높다. 당시만 해도 전자금융업으로 등록하려면 최소 자본금 요건이 10억원 이상이었다. 기술 개발을 위한 인력을 구하거나 시스템 등 물적 자본을 갖추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티엔디엔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였다. “누가 봐도 무모해 보였어요. 하지만 저희 아이디어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도전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알리페이’ ‘위챗페이’를 이용한 QR 결제가 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두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이 90%를 넘는다. 중국인이 현지 시스템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했다. 아이디어만으로 밀어붙인 지 3개월 만에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K-글로벌 커넥트@상하이’에서 한국 대표 14개 기업 중 우승을 한 것이다. K-글로벌 커넥트는 미래창조과학부가 해외 벤처투자사를 대상으로 하는 투자대회다. “사실 저희가 막판에 겨우 합류했습니다. 꼴찌로 갔는데 우승까지 했죠.”


이때 인연을 맺은 중국 투자자에게 2016년 5억원의 엔젤 투자를 받았다. 손 이사가 상하이 창업 카페에서 티엔디엔을 발표했다 투자자 눈에 든 것이다. 중국에서는 사무실을 공유하면서 창업자·투자자와 교류할 수 있는 창업카페가 활성화돼있다.


“발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하이 간 김에 발표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경직된 한국 결제 시장에서 여러 도전을 하기 위해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지위가 안정적인 기존 플레이어보다는, 저희 같은 스타트업이 ‘혁신’을 위한 파트너로 유리하다 어필했습니다.” 엔젤 투자금으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6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후 캡스톤파트너스·에버그린투자파트너스에서 15억원 투자 받았다.


아무리 중국인이 창업 멤버로 있는 회사라지만 중국의 꽌시(關係) 문화는 장벽 중 하나였다. “꽌시가 없었기 때문에 꽌시를 만들어 갔습니다. 알리페이와 계약할 때도 원래 아는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알리바바코리아에 먼저 연락해 설득했습니다. 그다음 중국 본사와 접촉하기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어요. 저희 서비스를 이용할 가맹점주를 모집할 때도 영업인력들이 몇번이고 찾아갔습니다. 저희가 하도 발로 뛰면서 들이대니까 ‘또라이’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

출처: 조선DB
티엔디엔 덕분에 전통시장인 대림중앙시장에서도 위챗페이, 알리페이, 토스 등을 이용해 결제 할 수 있다.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으로


티엔디엔의 정식 서비스는 2018년 하반기에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2018년 3월 전자지급결제 대행업(PG:Payment Gateway)으로 등록했다. 이전까지는 다른 PG사와 함께 사업을 했다. 2년 동안 고생 끝에 진짜 ‘티엔디엔’ 이름을 내걸고 자체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기재부에서 외국환업무자격을 받아 보안성도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를 모두 쓸 수 있는 PG사는 티엔디엔이 유일하다.


“매출은 작년 하반기부터 나고 있어 아직 공개하긴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계속 성장세입니다. 관광업과 밀접해 저희도 처음엔 시기를 많이 탈 거라 보았는데요. 2017년 3~4월 사드 여파로 타격이 있긴 했지만 금방 회복했습니다. 저희가 요우커가 자주 가는 핵심 상권과 가맹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티엔디엔 제공
티엔디엔 단체사진. “아직 초창기이기 때문에 다들 고생하고 있습니다. 개발팀은 어딜 가든 노트북을 떼어놓을 수 없고, 영업팀은 24시간 대기해요. 새벽 4시에도 문의 전화를 받습니다. 정산 인력은 휴일에도 명절에도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는 꼭 정산 업무를 해요.” 9월에 결혼한 이 대표도 서울과 제주를 오가느라 아내를 한달에 4번 정도 본다.

원래 결제서비스 이외에 중문 메뉴와 중문 지도 서비스도 제공했다. 중국에서 알리페이는 결제 서비스를 기반으로 가맹점주의 마케팅·광고 전략을 돕는다. 하지만 티엔디엔은 지금 결제 시스템에만 집중한다. 조만간 온라인 통합 결제 시스템을 시작한다.


“저희보다 큰 공룡이 뛰어드는 게 두렵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요. 공룡이 뛰어드는 건 핀테크 분야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결국 ‘엣지’의 문제, 즉 실행력의 싸움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서비스를 검토해봤지만 한국에서 모바일 결제를 편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2년 전 제주도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있을 때 저희가 2년 주기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했는데요. 2년 지나고 보니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무모해 보여도 끊임없이 계속 도전할 겁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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