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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접었습니다" 2억 기차 만들던 장인의 안타까운 사연

조회수 2020. 9. 28. 00: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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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짜리 기차 만든 장인.. 지금은
기차 모형 장인, 높은 인건비 때문에 제조 회사 정리
기차 박물관 카페로 제 2의 기차 인생 시작
아이들 위한 미니어처 테마파크 만들고 싶어

기차 인생, 기차 장인, 기차계의 거장...


모두 이현만(63)씨 앞에 붙는 수식어다. 30년동안 실제와 똑같은 모형 기차를 만들어왔다. 2000여 개의 황동 조각을 다듬어 기차 칸막이, 보일러실, 화장실의 수도꼭지까지 그대로 만든다. 해외 모형 매니아 사이에서도 ‘미스터 리’를 모르는 이가 없다. 기차 가격은 최소 200만원에서 최대 2500만원선. 비싸지만 해외에 수출한 기차만해도 3만대가 넘는다.


7년에 걸쳐 만든 미국 증기 기관차 ‘빅보이(Big boy)’를 2억 주고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지난해 11월 기차 모형 제조 회사를 정리했다. 왜 사업을 접어야 했을까. 이유를 묻기 위해 이현만씨를 찾아갔다.

출처: 잡스엔
(좌) 기차 모형 제작 장인 이현만씨. (우) 2억 주고 사겠다던 미국 증기 기관차 빅보이(Big Boy).

앞길 ‘깜깜’한 모형 기차 제조 산업


-모형 제조 사업을 왜 접었나.

“모형 기차 한 대를 만드는데 설계부터 샘플 제작까지 꼬박 1년이 걸린다. 노동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계 특성 상 인건비가 중요하다. 기차 한 대를 만들면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2500만원까지 받지만 부품 제작비, 공장 운영비, 그리고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반면 중국에서는 저렴한 인건비로 모형 기차를 대량 생산한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공장 운영이 어려워졌다. 3년 전부터 공장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하루에 몇 번씩 손에 마비가 왔다. 결국 작년 11월 회사를 정리했다.”


-모형 제조 업계 전망은.

“우리나라에 모형 기차를 만드는 곳은 이제 30여군데 밖에 없다. 올해 최저시급이 8000원대를 넘어서면서 사정이 더 어려울거다. 국내 모형 제조 업계는 죽은 거나 다름 없다. 업계 사정이 너무 어려워 제조업은 접었지만, 몸이 따라줄 때까지 기차를 만들고 싶다.”

출처: 잡스엔
(좌) 이현만씨의 모형 기차 (우) 오랜 세월이 담긴 손. 종종 마비가 온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기차 인생


-모형 제조 사업은 어떻게 시작했나.

“중학교 졸업 후 장난감 모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장난감 모형이 아니라 움직이는 모형 기차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패기 하나로 부천에 작은 공장을 냈다. 기차 제조업계는 바이어(Buyer)가 한정적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없어 주문 의뢰를 받지 못했다. 적자가 이어졌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를 통해 미국 바이어가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차 대신 직접 만든 모형 보트를 들고 무작정 바이어를 찾아갔다. ‘모형 기차 잘 만들 수 있다. 직접 보여줄테니 오더(Order·주문)를 달라’고 했다. 바이어는 기차 도면 하나를 줬다. 샘플을 만들어 다시 그를 찾아가니 기차를 주문하겠다고 했다.”


-첫 주문 이후 오히려 빚을 졌다고.

“모형 기차 1000대. 성공적인 첫 계약이었다. 하지만 모형 기차 제작 경험이 없어 제작 속도가 느렸다. 밤낮으로 직원들과 일해도 정해진 물량을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바이어는 계약을 해지해야겠다고 통보했다. 30년 전, 위약금으로 4억 5000만원을 내야했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40억의 빚을 진 셈이다. 죽고 싶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 바이어가 시간을 더 주겠다고 했다. 겨우 기차 1000대를 채웠다.


파산 직전까지 몰려 인생의 쓴 맛을 보고, 기차 공부를 시작했다. 밤낮으로 기차 서적을 읽으며 기차를 만들었다.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해외 바이어들에게 서서히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물관 카페로 제2의 기차 인생을 열다


‘기차는 내 인생’이라는 이현만씨. 지난해 11월 제조업 대신 새로운 기차 사업을 시작했다. 공장을 리모델링해 ‘기차왕국박물관 Cafe’로 만들었다. 제2의 기차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기차왕국박물관 Café/(좌) 유튜브 인스파이어 캡처, (우) 잡스엔

-기차왕국박물관 Cafe는 어떤 곳인가.

“기차왕국박물관 Cafe는 박물관 겸 카페다. 기차를 구경하면서 3000원대에 음료를 마실 수 있다. 55평 남짓한 박물관 안에 약 50여종의 기차를 전시했다. 연구 자료용으로 주문량보다 1~2대씩 더 만든 기차들이다. 알프스 산맥을 오르는 영국 산악기차도 그 중 하나다. 박물관 한 켠에서는 모형 기차를 움직여볼 수도 있다. 1000원을 넣고 8개의 선로 중 하나를 선택하면 해당 기차가 움직인다.”

출처: 잡스엔
(좌) 기차왕국박물관 Café (우) 움직일 수 있는 모형 기차.

-특별한 방법으로 서빙을 한다던데.

“일반 카페처럼 사람이 서빙하지 않는다. 손수 제작한 기차가 일본, 프랑스, 스위스 등으로 이름 붙여진 테이블에 음료를 배달한다. 기차가 테이블까지 이동하면 알고리즘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문이 열고 닫힌다. 기차가 서빙하는 게 신기해서 기차에 관심 없는 사람도 구경하러 온다.”

-사람이 얼마나 오나.

“박물관 오픈 초기에는 하루 최고 150명도 왔다. 지금은 수가 줄어 평일에 30~40명, 주말에 100명쯤 온다. 월요일은 정기 휴무다. 기차를 좋아하는 한 아이는 5번이나 왔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온다.”


-이용 가격은.

“입장료로 성인은 6000원, 소인은 4000원을 받는다. 입장료로만 월 400만~500만원가량 번다. 이 돈으로 박물관 내 조명시설이나 기차 부품을 고친다. 기차는 전류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2~3번은 꼼꼼히 신경써줘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박물관 카페 수익으로 19살 늦둥이 아들, 아내와 먹고 살 정도는 된다. 이제는 바이어에게 팔기 위한 기차가 아니라 한국에 남기기 위한 작품을 만들려 한다.


지금은 기차를 2층에만 전시했다. 1층에 150여종의 모형 기차가 더 있다. 기차, 자동차, 비행기, 헬리콥터, 중장비 모형을 한 데 모아 미니어처 테마 파크를 만들고 싶다.


영종도 공항을 모델로 꾸민 뒤 다양한 세계 건축물을 전시할 예정이다. 아이들이 외국에 나가지 않더라도 에펠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 그 중 하나로 콜롬버스 우주 왕복선 발사대 모형을 만들고 있다. 50~60%쯤 만들었다. 올해 4~5월이면 최종 완성할 예정이다.

출처: 잡스엔
현재 제작 중인 콜롬버스 우주 왕복선 발사대.

한국에 볼거리가 많이 없다. 이 테마 파크를 독일 함부르크 미니어처 원더랜드처럼 유명한 관광 명소로 키우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꿈이다. 벌써 63세다. 혼자서 힘들겠지만 몸이 따라주는 때까지 계속 미니어처를 만들어 박물관을 채울 것이다.”


글 jobsN 김나영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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