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무려 6억..이곳에서 유일한 30대, '된장남'입니다

조회수 2020. 10. 4. 15: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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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하면 순창? 된장하면 강진을 떠올려주세요"
된장마을 영농조합법인 오영배 사무장
농촌 싫어 농촌 떠났다가 가능성 보고 귀향
연매출 6억원, 못생긴 메주 팔아 부자마을로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에 가면 ‘된장마을’이 있다. 직사각형의 메주들이 볏짚을 몸에 감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당에 줄선 1000여개의 장독대는 된장을 품고 숨을 쉰다. 1984년 마을 부녀자들이 함께 메주와 된장을 담그기 시작한 게 된장마을의 시초다. 마을 사람들은 1년 내내 메주와 된장을 만들기 위해 움직인다. 2005년부터는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메주와 된장을 판다. 강진군은 이곳의 정식 명칭을 ‘된장마을’로 정했다.


이곳에서 유일한 청년인 오영배(34) 사무장.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에서 일하는 15명 중 30대는 오씨 뿐이다. 나머지는 50대부터 80대다. 오씨는 강진에서 나고 자랐지만 농촌이 싫어 고교 졸업 후 서울에 취직했다. 하지만 농업에서 미래를 보고 귀향했다. 그가 합류하기 전 된장마을은 작은 마을 공동체에 불과했다. 지금은 연매출 6억원을 내는 마을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대와 전통 사이 균형을 지키며 농업에 부가가치를 더하는 오씨를 만났다. 

출처: jobsN
된장마을 영농조합법인 오영배 사무장. 조합법인에서 유일한 30대 청년이다.

전통과 현대가 융합한 국내 유일 된장마을


음력 10월 보름이 지나면 메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6월에 심었던 콩을 수확해 씻고 삶고 으깬다. 한해 평균 40톤이 넘는 콩을 쓴다. 절반은 직접 재배하고 절반은 강진군 농산물 시장에서 시세보다 5% 높은 가격에 사들인다.


손으로 메주 모양을 만든다. 황토 발효실 아랫목에 볏짚을 깔아 네모난 메주를 눕힌다. 요즘엔 짚을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 현대화 시설을 갖췄지만 콩 으깨기 과정 이후에는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출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담가온) 제공
된장마을 장독대 전경. 장독대 개수는 1000개가 넘는다. 된장마을의 원래 이름은 '신기마을'이다.

“짚에만 있는 발효균이 있어서 꼭 짚을 사용합니다. 메주와 장은 발효가 중요해요. 방 온도를 27~28도로 유지하면 아랫목이 45도 정도입니다. 메주 발효균이 활발히 움직이는 온도이죠. 발효균은 무수히 많은데 좋은 균이 나쁜 균을 잡아먹어야 좋은 된장으로 태어납니다.”


발효 후 메주를 짚으로 묶어 천장에 매달아 건조한다. 한달 후 메주를 씻고 음력 정월 천일염으로 장독대에 담근다. “천일염도 3년 이상 자연건조하며 간수를 뺀 겁니다. 소금을 쥐었을 때 손에 묻지 않고 잘 떨어져야 간수가 잘 빠졌다는 뜻입니다.”


50일 이후 된장과 간장을 분리한다. 장에는 미리 만들어 둔 메줏가루를 섞어 항아리에 담가 발효한다. “여름에는 발효균이 활동해 된장이 부풀었다가 가을이면 가라앉습니다. 이때부터 햇된장을 팔 수 있어요. 된장은 2~3년 있다 먹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희는 미리 만들어 둔 숙성 된장을 팝니다.” 콩을 재배해 식탁에 된장을 올리기까지 적어도 5년은 걸린다는 소리다.


항아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정윤석 장인이 만든 옹기를 쓴다. “장을 담고 숙성하면 항아리 밖에 하얀 꽃이 피어요. 그게 소금인데 항아리가 숨 쉰다는 증거입니다. 항아리마다 소금꽃이 피는 시기나 모양이 달라요.” 

출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담가온) 제공
메주를 발효하고 건조하는 모습.

이 모든 과정은 해주최씨 현감공파 종갓집에서 대대손손 내려오는 방식이다. 지금은 백정자(82) 명인 중심으로 된장을 만든다. 백 명인은 대한민국식품명인 65호 명인이다. 오씨도 백 명인에게 된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우리 마을은 농한기가 없습니다. 3~4월까지 장을 담그고 나면 다시 콩·단호박 등 농사를 시작합니다. 농업에도 안정성이 중요해요. 한가지 작물 농사를 망쳐도 다른 농사로 보전할 수 있으니까요.”


영농조합법인이란 농업인 5인 이상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조합이다. 수확한 작물을 조합 명의로 팔고 수입은 조합으로 귀속한다. 이후 배당 형태로 조합원들에게 수입을 배분한다. 소득세 면제 등 다양한 세제지원 혜택이 있다. “무엇보다 전통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해서 수입을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출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담가온) 제공
백정자 명인.

젊은 세대도 찾는 메주와 된장


오씨는 고3 때 취업을 확정했다. 그가 다닌 강진공립농업고교(현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는 농업고다. 지금은 친환경 농업 분야 마이스터고다. 강진에서 상경한 그는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서 2년간 일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도시의 답답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군대를 다녀와서 좀 방황 했어요. 2006년 고향에 돌아와서도 바로 농사를 한 건 아니고 김 제조 설비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된장마을 법인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께 ‘같이 하자’는 권유를 받았다. 2009년 합류했다. “어릴 때 메주를 만들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어요. 전통을 지키겠다는 사명감보다는 어머니와 마을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단 생각이 먼저였습니다.” 

출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담가온) 제공
전통 된장.

막상 합류해 일을 해보니 문제점이 보였다. 체계가 미흡했다. 제품은 훌륭했지만 포장에 신경을 쓰지 않아 제품이 조악해 보였다. “유통 경로나 발주·배송 시스템이 제대로 없었어요. 전화 주문이 90% 이상이라 어르신이 전화를 받으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객 상담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죠.”


오씨는 체계를 잡기 시작했다. 먼저 유통 경로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했다. G마켓·네이버 스토어팜 같은 오픈마켓을 이용했다. 대형 유통망은 뚫기 어려웠고 소규모 영농 법인에 적합하지 않았다. 또 블로그와 카카오톡 스토리 등을 통해 홍보했다.


“오픈마켓이나 SNS는 청년 사업자 사이에서는 기본 수단입니다. 하지만 어르신이 주로 있는 영농법인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어렵죠. 페이스북의 경우 10대와 20대가 많은데 저희의 주 고객이 아니어서 따로 만들지 않았어요. 제가 특별한 방법을 도입한 건 아니지만, 고령화된 영농법인에서는 이러한 청년의 아이디어가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제품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된장 만드는 과정, 마을 이야기 등을 올렸다. 여러 사람이 게시물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씨는 내친김에 광주 서영대 호텔조리과에서 공부하며 조리와 경영에 관한 이론 공부를 했다.


포장 디자인은 전문가에게 맡겨 젊은 세대도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담가온’이라는 브랜드와 메주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도 만들었다. “전통의 의미만 강조하거나, 제품의 우수성만 고집해서는 고객에게 어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품력은 당연하고, 브랜드 이미지나 마케팅에도 집중해야 고객의 관심을 끌 수 있어요.” 

출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담가온) 제공
담가온 브랜드와 메주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물과 소금의 양 등 된장 제조법도 규격화했다. “전통 방식을 살리되, 필요한 부분에는 표준 매뉴얼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방식으로 메주를 담글 소금물을 만들 때 물이나 소금 용량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소금물에 싱싱한 계란을 띄워 물 위에 계란이 올라온 부분이 500원 동전 크기만 하면 ‘염도가 맞다’고 봤죠. 그런데 제가 실험해보니 소금이 특정 양을 넘으면 아무리 많이 부어도 계란이 더이상 뜨거나 가라앉지 않았어요. 하지만 실제 염도 차이는 컸습니다. ”


어르신 세대 입맛과 젊은 세대 입맛 차이도 고려해야 했다. 젊은 세대에서는 저염식이 유행이었다. 그렇다고 싱겁게 만들면 쉽게 상하고 맛이 크게 변했다. 오씨는 어르신과 함께 여러 제조법을 실험하며 의견 차이를 좁혔다. 이젠 메주 10kg을 만들기 위해 물 20L와 소금 5kg을 넣는다. 염도는 18%다.


된장마을에서 한해 파는 메주만 24톤. 된장은 12톤, 고추장은 4톤을 판다. 의외로 메주 판매 비율이 높다. “집에서 직접 된장을 담아보려는 20~30대 분들이 부쩍 늘었어요. 30% 정도 차지합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도 늘고, 마트에서 사 먹는 똑같은 맛이 아니라 자신만의 장맛을 찾고 싶어 합니다. 저희가 같은 시기에 만든 메주라 해도, 발효균 때문에 하나하나 맛이 다 달라요. 이런 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캡처, 인스타그램 캡처
메주 담그기, 된장 담그기를 검색하면 집에서 직접 만들어봤다는 게시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씨는 홈페이지나 카탈로그 등에 된장과 고추장을 이용한 음식 조리법을 올린다. 끊임없이 새로운 조리법도 개발하고 있다. “제품을 사고파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일상생활에 우리 제품이 스며들 수 있도록 했어요.”


된장마을은 문화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된장·고추장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한해 3000여명이 방문한다.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유명 셰프와 음식점 CEO들도 전통 된장 제조법을 배우고자 들른다. “백정자 명인께서 ‘즙장’ 만드는 법을 가르칩니다. 즙장이란 된장과 달리 절인 채소와 메줏가루, 고춧가루, 누룩가루 등을 버무려 만든 겁니다. 비교적 빨리 만들 수 있어요.”

출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담가온) 제공
된장마을에서 체험하는 모습.

농업, 청년이 도전할 분야 무궁무진


강진군의 고령인구 비율은 32.6%.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다. 된장마을에서는 과거 60가구가 일했지만 이제는 10가구만 메주를 만든다. “농업은 ‘6차 산업’이라 불리는 유망 분야에요. 하지만 아직도 ‘농업’이 지나간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농업을 외면하는 청년이 있는 반면 농업에서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청년도 늘고 있다. “다른 청년 농부들과 종종 모여서 서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유통 경로 확보, 마케팅 등의 중요성은 다른 회사와 똑같습니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는 일에 자신 있다면 도전할만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에요.”


농업에서 자연재해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사전에 예방한다 해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된장마을은 2012년 태풍 볼라벤 피해로 공장이 날아가는 대형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런 자연재해를 대비하는 방법도 청년들이 연구해볼 수 있겠죠. 제 요즘 관심사는 농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연의 피해를 덜 입힐 수 있을까입니다. 단순히 ‘작물을 키우고 판다’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씨의 목표는 순창하면 고추장이 떠오르듯 강진하면 된장, 된장 하면 강진이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요즘 1인 가구다 뭐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고 싶어요. 모두가 같이 풍요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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