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회사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사람 안뽑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5: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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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봉 2억인 곳에서 일하는 문과 출신 한국인의 성공 비결
[해외취업 허와 실①]에어비앤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유호현씨
미국 대학원서 박사과정 밟다 실리콘밸리서 취업
“조직 헌신보다 자기 실력 키우는 사람 원해⋯전문성 갖추는 게 급선무”

<편집자주> 2017년 해외 취업자 수가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내 고용 한파가 계속되면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본,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들도 있지만 적응에 실패해 한국으로 U턴하는 쪽도 적지 않습니다. jobsN이 해외취업 성공, 실패담을 들어봤습니다.


“여기는 회사에 충성을 다해 성실히 일하겠다고 말하는 사람 안 좋아합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IT(정보기술) 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6년째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유호현(38)씨는 “근면 성실한 여러 명보다 전문성을 갖춘 한 사람을 원하는 곳이 실리콘밸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유 씨는 텍사스주립대 오스틴 캠퍼스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다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서 인턴으로 일한 것을 계기로 현지에서 취업 한 경우다. 

출처: 본인 제공
유호현 씨.

문과 출신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취업하기까지


에어비앤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유 씨는 공대 출신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지만 대학은 인문계로 진학했다. 연세대 인문학부에 입학해서도 컴퓨터에 미련이 남아 영문학과 함께 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문헌정보학을 함께 전공했다. 미국서 문헌정보학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유 씨는 대학 졸업 후 위스콘신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2010년 문헌정보학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텍사스주립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난관이 생각보다 빨리 닥쳤다.


“지도교수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분이었어요. 첫날부터 컴퓨터 전공도 아닌 저에게 리눅스 컴퓨터를 주고 일을 시키는데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너무 어려워서 매일같이 조교를 쫓아다니며 질문하기 바빴어요. 정말 꾸역꾸역 수업을 들었어요. 괴롭고 힘들지만 열심히 공부했어요. 제가 연구한 분야는 컴퓨터 언어가 아닌 사람들이 쓰는 자연어 처리 정보검색이었어요. 그다음 해에는 빅데이터를 접목해 연구를 이어갔어요. 그러던 중 오스틴에 있는 스타트업으로부터 인턴 제안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는 박사과정 중 경험을 쌓기 위해서 기업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 흔한 일이죠.”


미국에서 첫 인턴은 인포침스(Infochimps)라는 데이터를 다루는 스타트업에서 시작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다룰 줄 아는 엔지니어가 필요했던 회사는 유 씨를 적임자로 봤다. “제 백그라운드가 문과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회사는 빅데이터를 연구한 사람을 찾는다는 점에 중점을 뒀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였다면 문과 출신이라 아마 서류에서 탈락했을 겁니다.” 그곳에서 3개월간 인턴을 마친 후 학교로 돌아온 그는 틈틈이 스타트업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후 구인구직 사이트인 인디드닷컴(indeed.com) 인턴을 거쳐 트위터에서 3년을 일했다. 지금은 에어비앤비에서 3년째 페이먼트 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박사과정을 하면서 기업에서 일해 보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링크드인에 이력서를 올려뒀죠. 2012년 링크드인을 통해 트위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 트위터는 ‘정보검색을 잘하면서 자연어 처리를 할 줄 아는 한국인 엔지니어’를 찾고 있었어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본토 사람을 찾고 싶었던 것이죠. 마침 제가 이런 자격들을 갖추고 있던 사람이었고요.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우리나라처럼 공채로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요. 상시로 필요한 역할에 맞는 사람을 뽑죠. 모든 회사가 엔지니어를 채용할 때 '공대를 졸업한 프로그래밍 실력이 최상인 사람'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 간 트위터에서 3년 일했어요.”

출처: 본인 제공
한국에서 한 미디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유 씨.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어떠냐고요? “연애하는 기분”


트위터에 입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애초 미국 땅을 밟은 이유는 교수가 되려는 꿈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네 살. 우리나라에서는 신입으로 취직하기 쉽지 않은 나이다.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회사를 갈지, 공부를 이어갈지 고민이 많았어요. 당시 지도교수를 포함해 미국 동료들은 공부는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반면 한국에 있는 분들은 반대였어요. 박사 학위 공부를 마치고 취업해도 늦지 않다는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죠. 가다 중단하면 아니 간 것만 못하다는 것이죠.”


결국 유 씨는 대학원을 중단하고 실리콘밸리 직장인의 삶을 택했다. 이런 기회를 지금 잡지 않으면 후회가 더 클 것 같았다. 박사과정에서 연구한 경력을 인정받아 들어간 첫 직장인 트위터에서는 정보검색과 자연어 분야를 연구하는 엔지니어로 3년간 일했다. 트위터에서 일하던 중 에어비앤비에서 연락을 받았다. 링크드인에 올려둔 유 씨 이력서를 보고서다.


“공유숙박이라는 사업에 매력을 느꼈어요. 아직 상장을 하지 않은 곳이라 주식 상장이 잘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이직을 결정한 주요 이유였습니다. 회사 주식을 받는다는 것은 실리콘밸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 중 하나에요. 연봉보다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니까요.” 현재 유 씨가 에어비앤비에서 맡고 있는 직책은 백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에어비앤비가 호스트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보낼 때 필요한 최적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삶의 터전으로 미국을 택한 것에 대해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이곳 생활의 가장 큰 매력으로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는 분위기’를 꼽았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적어도 잘리지 않기 위해 일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몸담고 있는 직장의 임원이나 CEO가 목표인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요. 몸값 높은 축구 선수들이 현재 리그에서 최선을 다해 골을 넣고 팀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몸값을 높여 그곳을 떠나기 위해서잖아요. 실리콘밸리도 비슷해요. 지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와서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곳으로 여겨요. 그래서 회사는 조직에 충성하겠다는 사람이 아닌 전문가로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뽑고 싶어 하고요.”

출처: 본인 제공
유 씨(사진 오른쪽)와 '실리콘밸리를 그리다' 저자들이 함께 한 모습.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복지나 근무 여건을 최고 수준으로 제공하는 이유는 직원들을 전문가로 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를 조명할 때 예쁜 오피스, 유연한 근무제 같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무작정 따라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것은 본질이 아닌 겉만 본 것이죠.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복지는 직원들을 전문가로 대하고 이들이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죠. 프로를 뽑고 프로처럼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실리콘밸리 스타일입니다."


실리콘밸리에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다. 유 씨는 실리콘밸리 생활을 ‘연애하는 것’에 비유했다.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도 한국에서는 회사를 또 하나의 가족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여기는 좀 달라요. 저는 회사와 연애하는 것 같아요. 나와 맞는 회사로 언제든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요. 회사가 나보다 잘 나가면 나를 차버릴지 모르고, 그 반대면 제가 회사를 떠날 수도 있는 것이죠. 저도 몇 년 후 어떤 모습으로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지만 불안하지 않아요. 내가 뛸 무대는 있다고 믿으니까요.”


“모든 사람이 미국 생활 맞는 것 아냐…자신의 성향 파악해야”


실리콘밸리 일대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한국인은 1만 명 정도. 실리콘밸리 물가가 살인적이기로 유명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연봉으로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 유 씨 설명이다. 대졸 초봉은 한국 돈으로 1억 5000만~2억 원 수준. 스톡옵션을 포함하면 액수는 더 커진다. 워킹맘 아내,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유 씨는 “침실 하나에 거실이 있는 원 베드 룸 아파트에 살려면 한 달에 3000~4000달러(340만~450만원) 세를 줘야한다”며 “연봉을 공개할 수 없지만 집세 등을 부담하고 생활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 씨처럼 안착한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한국으로 U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후회 없는 해외 취업을 위해선 무엇보다 자신의 성향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씨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동문들과 함께 쓴 책 ‘실리콘밸리를 그리다’에서도 이런 내용을 풀었다.


“책을 쓴 이유는 간단해요. 사실 우리도 여기 문화가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 회사가 직원들에게 왜 이렇게 잘 해주는 걸까 말이죠. 여기 정착한 대학 동문들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깨달았죠. 이것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도 아니고 단순한 수평, 수직 문화의 차이도 아니라는 것을요. 이곳의 문화는 혁신이 필요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의 일환인 겁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면접을 거의 하루 종일 봐요. 지원자가 갖춘 자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죠. 미국 기업은 성실하게 시키는 일만 잘 하는 사람이 아닌 전문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해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재를 원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아내와 함께 한 유 씨.

미국에서 직업을 갖길 원한다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미국에서는 대학원을 학위 따러 가는 곳이 아니라 전문성을 기르는 장소로 여겨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을 전제로 미국 취업을 원한다면 일반 대학원입학시험(GRE)부터 준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해외 취업자들이 비자를 받기 더 힘들어진 게 사실입니다. 여기 많은 회사들이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 후 일 년 동안 쓸 수 있는 임시 비자라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접 기회를 주려는 상황이고요. 하지만 물리적인 여건보다 앞서 고민해야 할 것은 내가 어떤 문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 위계 조직이 맞는 경우가 있고 미국 기업처럼 그 사람의 역할을 중시하는 조직문화가 맞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유호현씨가 꼽은 해외취업 성공을 위한 키워드>


-'시키는 일만 한다’는 자세를 버려라.

실리콘밸리는 성실한 사람이 아닌 '재능'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전문가로서 능동적으로 생각하며 회사를 이끌어갈만한 사람을 찾는다.


-회사가 아닌 나의 커리어를 위해 일한다는 마음을 가져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회사가 언제나 실력을 갖춘 전문가를 찾기 때문이다. 이말인 즉슨 '실력'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링크드인(Linkedin)을 활용하라.

유 씨가 박사과정 중 인턴 제안을 받고 이후 기업 입사 제의를 받는 것은 모두 링크드인을 통해 이뤄졌다. 링크드인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회 선점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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