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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몰라 외국인과 불평등 계약한 변호사, 이후의 삶은..

조회수 2020. 10. 4. 15: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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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몰라 외국인과 불평등 계약'..4대로펌 박차고 나온 변호사의 스타트업 도전, 왜?
대형 로펌 '태평양' 16년 베테랑 변호사
스타트업 법률 자문 특화하면서
법률 특화 스타트업에도 도전

스타트업 열풍이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도 불고 있다.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은그들은 왜 스타트업을 할까. 스타트업 전문 로펌 ‘딜라이트’의 조원희 변호사를 만났다.


영어 때문에 불평등 계약 맺는 스타트업들


조원희 변호사는 1998년 사법시험 합격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4대로펌 중 한 곳인 ‘태평양’에서 16년을 일했다. 지적재산권팀 소속으로 기술 거래 관련 법률 자문이나 기술기업 간 M&A 등을 진행했다. 2017년 3월 태평양을 떠나 동료 변호사 3명과 함께 스타트업 전문 로펌 ‘딜라이트’를 만들었다.


-왜 나왔나요.

“스타트업들이 좋은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좋은 로펌은 아무래도 자문 비용이 비싸니까요. 그런데 스타트업들도 기술 거래나 M&A를 많이 합니다. 대기업 못지 않게 복잡한 법률 서비스가 필요하죠. 그 틈을 제가 메워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서비스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거죠.”


-스타트업들은 주로 어떤 법률 서비스를 필요로 하나요?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 유치가 중요한데, 투자자와 추후 분쟁이 없도록 계약 관계를 법률적으로 잘 정리해줘야 하구요. 법인 설립이나 인수합병, 비즈니스 계약, 해외 계약 등에도 법률 수요가 있습니다.”

출처: 딜라이트 제공
조원희 딜라이트 대표 변호사

-좋은 스타트업 로펌은 어떤 역량이 필요합니까.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구요. 다양한 법적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투자, 수출 등 분야에서 해외 파트너들과 연계가 많아지는 만큼 글로벌 업무도 가능해야 하죠. 아쉽게도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미국 등 몇몇 국가에선 전문 로펌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국내는 아직 드물어요. 우리 법조계가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대형 로펌들이 대기업 등 주요 클라이언트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개인 변호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한국 경제에서 스타트업 중요도가 계속 커지는 만큼, 빨리 전문 로펌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 생각에서 창업했습니다.”


-법률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스타트업을 만나보셨나요.

“법률 자문없이 해외 투자 계약을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내용 보니 황당하더라구요. 외국인 A가 우리 기업 B에게서 적은 돈으로 지분을 받았는데, 앞으로 B가 얼마나 투자를 받건 A의 최초 지분율을 그대로 유지해주기로 한 겁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B가 추가 투자를 받을 때마다 회삿돈으로 A에게 추가 지분을 제공해야 합니다. 얼마나 불평등한 계약입니까. 드문 사례가 아닙니다. 그 이상으로 불리하고 엉성한 계약이 수두룩합니다. 추가 투자 받기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을 걸어놨거나, 사전에 승인을 받으라는 등 유형도 참 다양합니다.”


-왜 그렇게 계약한 건가요.

“영문 계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심지어 계약 조항을 훑어 보는 것 조차 못했다는 곳도 만나 봤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미국 같은 곳의 투자자들은 거의 책 한권 분량의 계약서를 들이밀거든요. 업무도 바쁜데 일일이 읽어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잘했겠지’ 하면서 그냥 돈 받는 기업이 많습니다. 변호사만 제대로 선임했었도 이런 계약하지 않았을 겁니다. 일일이 조항 읽고 검토해줬을테니까요. 아쉽습니다.”

출처: 딜라이트 제공
딜라이트 소속 변호사들

스스로 스타트업 지향하는 로펌


신생 로펌 치고 비교적 빨리 안착했다. 4명으로 시작한 변호사가 15명으로 늘었다. 정기적인 자문을 제공하는 기업이 100곳을 넘어섰다. “블록체인 업체들 외국 투자와 법인 설립을 잇따라 주선한 게 큰 힘이 됐습니다. 블록체인 업계는 국내에서 투자를 받는 데 규제가 많아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업체가 많은데요. 복잡한 법적 이슈를 영어로 해결하고, 외환 등 부수적인 문제도 대처해 줘야 합니다. 그걸 우리가 해결해 주면서 좋은 레코드가 쌓였고, 스타트업 전문 로펌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로펌에 머무르지 않는다. 또 하나의 스타트업을 자처한다. 딜라이트는 최근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계약서 체결 시스템을 출시했다. 어떤 계약을 체결하려면 당사자 간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 조항을 검토하고 사인을 한 뒤 원본을 각자 보관해야 한다. 최종 사인을 하기까지 수차례 계약 조건을 협상하고, 결렬될 경우 계약서를 다시 쓰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딜라이트는 이런 불편이 없도록 온라인 상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체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어떤 시스템이죠?

“온라인 상에서 양자가 같은 계약서를 보고 고치는 방식입니다. 내가 고치고 등록한 걸 실시간으로 상대방도 확인할 수 있죠. 최종적으로 전자서명 같은 인증 수단을 통해 체결도 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 파일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나눠 저장합니다. 어느 한 당사자나 제3자에 의한 위변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죠. 결국 오프라인에서 오가며 시간을 낭비하거나, 계약 서류 보관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됩니다. 간편하면서 안전하죠.”


-기존에도 온라인으로 계약 조항을 검토할 수 있지 않나요?

“이메일 같은 걸로 내용 주고 받으며 수정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상대 메일을 출력해서 보고 수정해서 보내주고. 답이 오면 또 출력해서 수정하고. 만나서 하는거보다 오히려 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시스템은 관련 실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편리한 툴이 될 겁니다.”

출처: 딜라이트 제공
법률 자문 중인 조원희 변호사

얼리어답터 변호사의 도전


서울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옛것을 배우지만, 새것이 좋았다. 인터넷과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 사이에서 얼리어답터로 통했다. 조직원으로 일하기 보다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어 변호사를 지망해 사시에 합격했다.


사시 합격 후에도 새것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연수원 시절 ‘전자상거래법’ 학회에 들어가 새로운 기술 동향을 계속 공부했다. “태평양에서 지적재산권팀에 있다가 딜라이트 창업까지 했으니 평생 새것과 함께 해 온 셈이네요.”


-즐거워 보이세요.

“새로운 아이디어 접하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스타트업 만나는 게 무척 즐거워요. 개인적으로 3건의 엔젤 투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스타트업을 발굴해 도와주는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공익이 로펌의 주요 이념 중 하나다. 매출 5% 이상을 공익 활동에 쓰고, 무료 상담 등을 하는 공익 변호사 채용도 하고 있다. ”사회적 선순환 모델 중 하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스타트업들이 요청하면 여건이 허락할 경우 무료 법률 상담도 해준다. 공익 목적 외에 잠재 고객 확보 의도도 있다. “완전한 초기 창업 보다는, 어느 정도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단계가 돼서 우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정도는 돼야 법률 이슈가 생기거든요. 자문료를 받아야 하는 이슈에 대해서는 저렴하게 서비스하려고 노력합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일원으로서 기여해야 한다는 목적 의식을 잃지 않으려 하죠.”


사무실도 스타트업과 함께 한다. 한화그룹이 스타트업을 키우는 ‘드림플러스’와 은행권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디캠프’에 사무실을 뒀다. 수시로 스타트업을 만나고 고민을 듣기 위해서다. 사무실엔 변호사별 개인 공간이 따로 없다. 공유오피스에서 전직원이 머리를 맡대고 일을 한다. “방은 권위의식을 만듭니다. 스타트업 정신에 어긋나죠. 공유 오피스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겁니다. 한국에도 꼭 좋은 스타트업 전문 로펌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 jobsN 박유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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