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더 늘고 연봉은 반토막 났지만 상관없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5: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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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반토막 상관없다'..1년 기다림 끝, 해결한 '여자의 고민'
남편 질문에 떠올린 사업 모델
포인트 쌓아 저소득층 아이 도와
국내 최초 생리컵 판매

말못할 고민? 말해야 해결할 수 있다. 여성의 가장 큰 고민, 생리를 정면에서 풀어 보겠다는 스타트업 ‘이지앤모어’를 찾았다.


식당과 남편 질문이 바꾼 인생 경로


이지앤모어는 생리대 등 여성용품을 기획, 판매하는 회사다. 자체 쇼핑몰을 갖고 있다. 외식업체 마케터 출신의 안지혜 대표가 창업했다.


안정적인 길만 갈 줄 알았다. 2014년 ‘오요리 아시아’란 식당을 찾으면서 인생관이 달라졌다. 아시아 요리 전문점으로,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건너온 이주 여성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고용을 통해 정착과 자립을 돕는 곳이에요. 창업을 원하는 이주 여성에겐 집기 세팅 등 지원도 해주죠.”


‘이렇게도 기업이 운영될 수 있구나.’ 궁금했다. 마침 오요리 아시아가 직원 채용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지원했다.


-규모가 작은 곳으로 옮긴 셈이네요.

“프랜차이즈 기업에 있으면서 생계형 점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할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돕고 싶은데 제 위치에선 힘들었죠. 회의감이 컸던 상태였습니다. 오요리아시아에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 확신이 들더라구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큐텐츠컴퍼니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기획 업무를 맡았다. 7년 경력자였지만 신입처럼 일했다. “큰 회사 있을 때와 다르더군요. 온갖 일을 다했어요. 가게 간판 거는 일부터 각종 인허가 등 안해 본 게 없어요.” 일은 늘었는데, 연봉은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이주 여성이 자립하는 과정을 보는 게 좋았다.


회사 옮긴지 1년쯤 지난 어느날. 남편과 대형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생리대가 화제에 올랐다. “생리대가 원래 이렇게 비싸냐”는 남편 질문이 시작이었다. “인터넷에서 사면 좀 싸.” “그럼 한꺼번에 인터넷으로 많이 사놓으면 되는거 아냐? 왜 마트에서 그때그때 사는거야?” “공간 차지하잖아. 생리대가 얼마나 부피가 큰 물건인데. 원룸 사는 독신 여성이라면 공간 압박은 더 심하지. 그리고 미리 사놓는다는 생각 하기도 사실 어렵고.”


‘불편을 해결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인터넷 최저가 수준으로 매달 생리대를 필요한 만큼만 정기 배송해 주면 되는 것 아냐?’ 마트 회담(?) 후 일주일만에 사표를 내고 창업에 도전했다.

출처: 이지앤모어
이지앤모어 임직원들

인터넷 최저가로 판매, 처음부터 완판


이왕 보내는 것. 여성이 주기적으로 쓰는 상품을 모아 배송하기로 했다. 생리대 외에 마스크팩, 티슈 등 용품을 패키지로 구성했다. 시장 조사와 구매층 인터뷰를 통해 매달 보내주면 좋겠다는 물건을 모았다.


사회적 기업이 일하는 방식을 가져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고객이 하나 구입하면 똑같은 한 상자를 저소득층 아이에게 기부하는 1+1 형식을 도입했다.


뜻이 좋으니 반응이 따라왔다. 인터넷 최저가 수준에 판매가 가능하도록, 관련 기업이 생리대 등 물품을 싼 값에 공급해줬다. “제품을 그냥 주겠다는 곳도 있었어요. 하지만 엄연한 사업인 만큼 공짜 생리대는 받지 않았어요. 자체 수익성을 확보해야 지속가능하거든요.”


2016년 4월 두근대는 첫 판매에 나섰다. 성공이었다. 계획한 150박스(270만원 어치)를 다 팔아, 150명에게 기부했다.


-출발이 좋았네요.

“첫 판매 나선지 얼마 안돼 ‘깔창 생리대’가 화제가 됐어요.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이나 휴지 같은 대용품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알러젼 거죠. 그런데 심지어 한 업체가 생리대 가격을 올리는 거에요. 집중포화가 쏟아졌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우리가 부각이 됐어요. 한 팩 사면 어려운 학생에게 한 팩 준다는 스토리가 통한거죠.”


다만 이슈가 오래 가지는 못했다. 3개월 정도 판매가 잘 되다가 꺾이기 시작했다. “한 번은 사는데, 재구매로는 연결되지 않았어요. 계속 기부하는 건 부담 가는 일이니까요.” 변화가 필요했다. 상품 구성부터 바꾸기로 했다. 생리대 단품만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리대만 사고 싶다는 소비자들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만큼 가격이 내려갔다.


기부 방식도 바꿨다. 1+1은 정해진 물품만 기부되는 제약이 있다. “제품 가격 일부를 포인트로 쌓는 걸로 바꿨어요. 그 포인트를 아이들에게 주고, 우리 쇼핑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한 거죠.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지원을 해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 별로 최대 월 1만2000원까지 지급한다.


고객 판매 가격은 기본적으로 인터넷 최저가에 준한다. 그런데도 포인트를 쌓아서 지원하다 보니, 회사 이익 희생이 불가피하다. “마진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들 지원이 더 중요합니다.”


지원하는 아이들 수가 560명을 넘어섰다. “사회 단체 등에서 소개를 받은 후 자체 기준에 따라 선정합니다.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 중에서도 엄마 돌봄을 받기 어려운 조손, 편부 가정의 아이를 주로 돕습니다.” 물품 외에 올바른 생리대 사용법 같은 교육도 제공한다. “그날이 오면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있던 아이가 있었어요. 지금은 그날이 와도 맘껏 학교에 갑니다. 지원 덕분에요. 뿌듯합니다.”

출처: 이지앤모어
이지앤모어 홈페이지

생리컵 국내 최초 품목 허가


올해 초 생리컵을 출시하면서 성장 2라운드를 맞았다. 생리컵은 ‘종’ 처럼 생긴 실리콘 컵으로, 인체에 삽입해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 세척할 수 있어 위생적이다.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을 호소하는 분이 많아요. 최근 라돈 공포도 불거졌구요. 그 대안으로 외국에선 월경팬티와 월경컵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하죠.”


국내 생산하는 곳이 없어 미국의 한 업체와 수입 계약을 체결했다. 수입으로 끝이 아니다. 몸에 직접 닿는 생리컵은 ‘의약외품'으로 식약처 품목 허가가 필요하다. 이게 난관이 됐다. 외국에선 학술지 등재 사례가 나올 만큼 일반화됐지만, 한국에선 아직 생소해 허가를 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 “고생 많이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호 생리컵 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놓은 보람이 있었다. 생리컵이 인기를 끌면서 올해 매출이 작년의 4배로 늘었다. 매출의 70%가 생리컵에서 나온다. 가장 큰 비결은 가격이다. 생리컵 가격은 4만4000원. 우리나라 식약처 평가 기준으로 2년까지 사용 가능한데, 비슷한 제품을 10년까지 사용하는 나라도 있다. “한 달 생리대 구입 부담이 3만원 정도 됩니다. 연간으로 하면 30만원을 훌쩍 넘죠. 그에 비하면 생리컵은 부담이 훨씬 작습니다.”


판매 상품을 계속 다양화할 계획이다. “안전성을 1원칙으로 삼고, 믿을 만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물색하고 있습니다. 직접 테스트해 안전성 등을 확인하고 판매합니다.”


직접 개발 및 출시도 한다.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만드는 거죠. 괜찮은 일회용 팬티라이너를 찾기 어려워 최근 전문 업체와 손잡고 새 제품을 내놨습니다. 이런 식의 콜라보를 계속 할 계획입니다.” 곧 자체 제작 생리컵을 출시한다. 독성 실험 등을 거쳐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는대로 출시한다. “회사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출처: 큐텐츠컴퍼니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난관 이기는 게 즐겁다


-창업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나요.

“여자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내 문제였어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새로 도전하는 데 희열을 느껴요. 식약처 심사 통과도 난관이 많았지만 그 과정을 즐겼어요. 포기했다면 생리컵 출시는 불가능했겠죠. 관문이 어려울수록 통과할 때 기쁨도 커집니다. 직장인일 때는 여기 저기 아픈 곳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많이 일하는데도 아픈 곳이 없어요. 365일 일해도 좋고, 내일이 오는 게 좋아요. 여자들의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공명심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력 증 하나에요.”


-창업하기 전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되던가요.

“프랜차이즈 업체 있으면서 창업부터 폐업까지 흐름을 지켜봤던 거요. 내가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간접 경험은 충분히 한거죠.”


-창업하고 보니 아쉬운 점은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지식이요. 전공자 수준의 화학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의약외품’ 다루려면 수입 관리, 심사 통과 등에 화학 지식이 필요합니다. 지식이 충분했다면 생리컵을 좀더 빨리 출시할 수 있었을텐데, 뒤늦게 공부해서 따라가려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창업하는 분들께 조언할 부분이 있다면요.

“다양한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많이 생기는데요. 적극 활용해 보세요.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구요. 비슷한 사람과 네트워킹하면 얻는 게 분명 생겨요. 저도 처음부터 적극 참여했다면 도움을 많이 받았을거에요. 모임에 활발히 참여해 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글 jobsN 박유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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