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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시작, 연봉 6천 가능한 과거와 현재 잇는 직업

조회수 2020. 10. 4. 16: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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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사도' 저희가 있기에 명작으로 탄생했죠

몇 백년 전 옛 말을 21세기 말로 바꾸는 ‘고전번역’은 어렵고 전문성이 필요한 작업이다. 점점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요즘 ‘고전번역가’는 생소한 직업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문을 번역하고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은 ‘한국고전번역원’을 끊임 없이 찾는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서울 은평구에 있는 국가 연구기관이다. 현재 130명이 번역원에서 일하고 있다. 이중 번역가는 40여명이다. 이외에 번역원과 해마다 계약을 맺는 외부(프리랜서) 번역가가 약 80명이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캡처.
고전번역이 있기에 우리가 즐기는 역사 소설, 사극이 탄생할 수 있었다.

프리랜서 번역가는 보통 200자 원고지 1장 당 가격을 1만7000~1만8000원 사이로 계약한다. 1년 평균 2000~2500장을 번역하는데, 연봉은 3000만원대 후반에서 6000만원 선이다. 물론, 번역가의 능력이나 계약 분량에 따라 다르다. 번역하는 데 문학적 재능이 필요한 한시 번역 등이 역사문헌보다 단가가 조금 더 비싸다고 한다.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원이자 강사를 맡고 있는 이규옥(58) 연구원을 만났다.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나온 그는 경력 32년차 베테랑 고전번역가다. 고전번역가란 어떤 직업이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물어 보았다.


-어떤 책들을 번역했나.


“최근엔 2015년 조선 중종 때 발간한 역사서 자치통감강목을 번역했다. 이전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일기,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에서 기록한 승정원일기, 영조시대(1760년)부터 1910년까지 왕의 활동을 기록한 일성록 등을 옮겼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이규옥 수석연구원과 고전번역원 캐치프레이즈.

-고전번역가란 어떤 직업인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직업이라 할 수있다. 고전번역물은 역사·한문학 연구뿐 아니라 TV드라마·소설 제작에도 많이 쓰인다. 드라마 작가나 소설가들도 제작에 앞서 우리가 번역해 놓은 자료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소설 ‘남한산성’은 김훈이 고전번역물을 꼼꼼히 읽은 결과 탄생한 작품이다. 영화 ‘사도’도 조선왕조실록 번역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했기에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를 잘 보여줄 수 있었다.”


현재 교육부 산하 학술연구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은 원래 민간기관인 ‘민족문화추진회(민추)’였다. 1965년 설립한 민추는 꾸준히 고전번역 사업을 했다. 2007년 ‘한국고전번역원법’이 생기며 국가출연기관인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발전했다. 현재 고전번역원 외에도 고전을 번역하는 대학교 연구기관이나 사설 단체가 있다. 대부분 고전번역원과 협업 관계다. 번역가는 이런 기관에서도 일할 수 있다. 다만, 사설 기관은 법에 따라 ‘한국고전번역원’과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앞으로 해야 할 번역도 아주 많다고 들었다.


“고전번역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앞으로 번역할 것들도 많다. ‘역사문헌’만 봐도 일성록은 515권 중 249권(48.3%)을, 승정원일기는 2386권 중 545권(22.8%)을 번역했을 뿐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한 번 다 번역을 했지만 옛 말투를 요새 말로 고치기 위한 재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재작업은 현재 574권 중 75권(13.1%) 완료했다. 

출처: 고전번역원 홈페이지 캡처.
한국고전종합 온라인 DB로 편하게 원문·번역문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다산시문집’, ‘율곡집’ 등 옛 인물들이 남긴 문집이 총 93종 491권이다. ‘연암집’, ‘이이집’ 등 끝도 없다. ‘종묘의궤’ 등 특수 고전도 56종 239권이다.


한 번 번역한 문헌도 세대가 변하면 다시 번역해야 한다. 1970년대와 2010년대에 쓰는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2010년대와 2050년대에 사용하는 말도 다를 것이다. 고전번역가에긴 시간이 일감을 마련해준다.”


-번역할 고전은 어떻게 구하는지


“번역원은 고전문헌 정리·번역·연구 등에 필요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국가기관, 법인 또는 단체에 해당 자료 열람·복사·대여 등을 요청할 수 있다. 번역원의 요청을 받은 곳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 물론 번역원이 대가를 지급한다. 모두 ‘한국고전번역원법’이 규정한 사항이다.


-고전번역가가 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현재 고전번역원에서 운영하는 ‘고전번역교육원’ 번역가 양성 과정을 이수하면 된다. 번역원 과정은 대학교에서 대학원을 진학하는 코스와 비슷하다. 교육원 입학 시험을 치른 뒤 연수과정 3년, 전문과정 4년을 거치면 번역가가 된다. 4년제 대학에 다니거나 전통 한학자의 추천을 받은 사람이면 교육원 입학 시험에 지원할 수 있다.


연수과정 기본 교재는 사서오경(사서는 논어·맹자·대학·중용, 오경은 시경·서경·역경·예기·춘추)이다. 이를 통해 한문 번역법을 익힐 뿐더러 동양 고전의 내용을 공부한다. 고전의 내용을 알아야 조선 성리학자들이 쓴 다른 글의 뜻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비들이 중시하던 소학 등 중국 고전이나 대전회통 같은 조선 법전도 읽으며 독해 능력을 기른다. 매일 2~3시간 정도를 예·복습에 쓴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캡처.
번역원 학생들과 번역 결과물.

전문과정에서는 실전 번역훈련을 한다. 이때부터 자신의 특기 분야를 정한다. 분야는 승정원 일기·일성록 등 역사문헌 번역, 상소·시문 등 문집번역, 한시(漢時) 번역 세 가지다. 번역가가 된 후에도 자신이 전문과정에서 익힌 분야 문헌을 번역한다.”


-번역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보통 30대 초반에 번역가로서 첫 발을 뗀다. 대학을 졸업하고 최소 7년 동안 전문 번역가 과정을 이수해야 하다 보니 일반 회사원보다 조금 늦다. 그래도 평균 38세에 첫 번역을 시작하던 2007년보다는 많이 빨라졌다. 그 이후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 번역가 양성 교육의 질이 높아져 시기가 앞당겨졌다.”


-현재 고전번역원·교육원에는 몇명이 있나.


“현재 1학년 수업을 50명이, 2·3학년수업을 각각 30명이 듣고 있다. 교육원이 한 해 선발하는 1학년이 50명이다. 교육원 입학 시험은 1월이다. 전형료는 4만5000원이고 학비는 학기 당 50만원이다. 성적우수자에게는 장학금을 제공한다. 서울교육원 외에도 전주·밀양 분원으로 입학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고전번역 공부를 직장과 병행 가능한가.


“수업이 일주일에 4일로 적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수업이 보통 저녁에 있어 현재 직장에 다니면서 출석하는 학생도 있다. 혹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교육원에 입학하기도 한다. 연수과정 3년은 직장과 병행할 수 있지만 이후 전문과정 4년은 오로지 고전번역수업에만 전념해야 한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이 수석연구원과 책상.

공부하는 동안에는 번역 관련 작업을 통해 생활비를 낼 만큼 수입을 올릴 수는 없다. 학생들은 보통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등 부업을 하거나 직장에서 모아둔 돈으로 생활한다. 이런 점은 일반 대학원과 비슷하다.”


-번역 결과에 대한 평가가 엄격하다고 하던데.


“그렇다. 번역원 내 평가 관리만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둬 번역 결과물 품질을 평가한다. 기준에 못 미치면 엄격한 패널티를 부여한다. 다양한 평가 기준이 있지만 정확성(번역가의 한문 이해도)과 가독성(한글 번역의 자연스러움)이 가장 중요하다.”


-고전 번역의 어려운 점은?


“일단, 한자 한 글자가 수많은 뜻을 가지고 있다. 또 글자 하나의 뜻을 모두 안다고 정확한 번역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번역하고자 하는 글을 쓴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한다. 또 지금도 쓰이는 한자어가 옛날에는 완전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경제’(經濟)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economy의 번역어로 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었다.”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고전번역원. 청소년 대상으로 고전 대중화 사업도 진행한다.

-번역가들은 어떤 형태로 근무하는지.


“한국고전번역원에 입사해 연구원으로서 근무하거나 각 대학 고전 연구소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 다음으로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것이다. 고전번역원은 프리랜서 번역가들과 1년 단위로 계약하는데 번역가들이 고전 번역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계약 안정성을 보장하려 노력한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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