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콤플렉스', 지방대 문과생 출신인 전 이렇게 깼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6: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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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 나와서 또다시 대학 '유턴'한 청년
달소프트 웹개발자 박상현씨
기자 꿈꾸던 문과생이 10개월만에 웹개발자로

스타트업 달소프트에서 웹개발자로 일하는 박상현(27)씨는 원래 문과생이었다. 2017년 2월 한서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고 스터디를 하며 스펙을 쌓았지만 좀처럼 그를 부르는 기업이 없었다. 취업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은 그는 폴리텍대 하이테크 과정 데이터융합SW과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거듭나기 위해 10개월 동안 노력한 끝에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박씨처럼 대학 졸업 후 기술 교육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딩, 전기, 용접 등 실무 기술을 가르치는 특수대학에는 사회로 나가지 않고 재교육을 택한 '유턴' 입학생이 많다. 폴리텍대는 2018년 2년제 학위 과정 신입생 8662명을 뽑았다. 이중 1334명(15.4%)이 다른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이다.


박씨가 다닌 융합기술교육원의 하이테크 과정(10개월)은 아예 4년제 대졸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구직자들이 특수대학에서 실무 기술을 배워 스펙을 올려 취업한다. 박씨에게 문과생이 1년 만에 웹개발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었다.

출처: jobsN
박상현씨.

신방과 졸업 후 취업 고군분투기


기자를 꿈꾸며 신방과에 입학했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고 스펙을 쌓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멘토링 6개월, 인천아시안게임 서포터즈 1년, 결혼식 영상 촬영 아르바이트 2년, 영상 동아리 활동 등을 하며 바쁜 대학생활을 했다.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 자격증을 땄다. 학점은 4.5 만점에 3.7점으로 무난했다. 방송·언론 취업을 희망하는 다른 대학생들과 스터디도 했다. 정기적으로 모여 논술을 쓰고 시사상식을 공부했다.


4학년 때부터 방송·신문사에 입사 지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번번이 최종 단계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대 출신이 발목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토익이 700점대이니까 점수가 낮아서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보통 방송이나 신문사 취업하려고 몇년씩 준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1년 해보니 미련이 안남더라구요. 준비를 더 해도 발전 가능성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기업으로 취업을 노릴 수도 있었지만 문과생이 취업할 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이때 눈을 돌린 직무가 IT 개발자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이폰, 갤럭시가 나오고 스마트폰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학년 전공과목 이름이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뉴미디어’로 바뀌었어요. 페이스북·트위터가 유행이었습니다. 시대가 격변하고 있었죠. ‘종이 신문은 망한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자도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을 알아야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양과목으로 코딩 수업을 들었습니다. 홈페이지와 앱을 만들어 봤어요.”


박씨는 교양 과목을 즐겁게 배운 경험을 떠올렸다. 내친김에 코딩을 전문적으로 배우기로 했다. 2017년 9월 폴리텍대 하이테크 과정에 지원서를 냈다. “친구가 먼저 입학해서 전기 관련 기술을 배우고 취업을 했어요. 친구가 조언과 응원을 해줘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또 사설 학원이 아니라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이란 것도 좋았어요. 비용은 무료이고 취업까지 연계해주니까요.”  

출처: 폴리텍대 제공
하이테크 과정 입학 전 보는 영어, 수학 시험 예시.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수학 필기시험을 봤다. 담당 교수와 면접도 봐야 했다. “교수님이 면접에서 ‘각오 단단히 해야 한다’고 겁을 주셨어요. 집에 못 갈 거고, 주말에도 나와야 한다구요. 어려워서 드롭(drop·수업 중도 포기)하는 학생도 많다고 했어요. 하지만 교수님도 열심히 가르칠 테니 믿고 따라오면 취업까지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10개월간 통학 거리만 ‘지구 반바퀴’


프로그래밍 언어 기초부터 애플리케이션·웹·서버 등 응용 소프트웨어 제작, 데이터베이스 관리·운영 등을 배웠다. 지금까지 쌓은 모든 걸 뒤로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동기들이 17명이었습니다. 그중 공대생이 5~6명 정도였고, 카이스트 졸업생과 연대 졸업생도 한명씩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4년 동안 공부한 공학도를 따라잡을 엄두가 안 났어요. 첫 수업에서는 정말 ‘머리가 쪼개진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어려웠습니다. 잘못 들어온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처음 3~4개월 동안 가장 힘들었습니다. 우선 수학을 오랜만에 보는 거라 기초부터 다시 해야 했어요.”


매달 훈련비 20만원, 교통비 5만원을 지원받았다. 학교는 분당에, 집은 인천에 있었다. 자정~새벽 1시에 귀가했다. 주말에도 학교에 나갔다. 통학시간만 왕복 5시간이었다. “졸업할 무렵 제가 통학한 거리를 가늠해보니 지구 반바퀴였습니다.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을 반드시 활용해야 했어요. 개발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영상, 블로그 게시물을 보며 통학했습니다.”

출처: 박상현씨 제공
박씨가 사용한 공부 노트.

과제가 하루에도 몇개씩 쏟아졌다. 티켓 발권 프로그램, 미세먼지 알림 앱, 웹사이트 개발 등 다양한 과제를 했다. 교수들도 밤 10시까지 남아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줬다. 22명으로 시작한 동기 중 5~6명이 수업 난이도를 따라가지 못해 중도 포기했다. 박씨도 처음에는 수도 없이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를 끝까지 괴롭힌 개념은 ‘알고리즘’이다. 수리 개념에 능할수록 알고리즘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아무리 수학책을 파고들어도 그에겐 어렵기만 했다. “교수님이 ‘책에 매달리지 마라’고 하셨어요. 개발할 때 알고리즘이 필요한 부분은 협소하고, 다른 부분을 잘하면 된다는 조언을 듣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수리 개념은 약했지만 그는 ‘비즈니스 로직’에 강했다. “‘기획 설계’라고도 말합니다. 코딩이 건축과 비슷해요. 철근을 박고,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야 하죠. 웹사이트를 만들 때 비즈니스 로직이 철근을 박는 것과 비슷합니다. 만약 비즈니스 로직을 잘못하면 코드가 복잡해지고 나중에 업그레이드를 하거나 수정하기가 어려워요. 시멘트를 부수고 철근을 뽑아 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박상현씨 제공

그의 코딩 공부법은 ‘잘하는 사람이 짜놓은 코드를 보고 따라 해보기’다. 교수가 깔끔하게 짜놓은 코드나 전세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다른 개발자가 올려둔 코드를 보고 따라 했다.


“어떻게 더 간결하게 코드를 짜야 할지 개발자들이 서로 의견을 공유해요.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게시물을 올리면 댓글이 주르륵 달립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공부 잘하는 친구가 어떻게 푸는지 보고 배우는 것처럼, 좋은 풀이법을 자꾸 따라 하면 어느새 저도 그 풀이법대로 풉니다. 처음엔 전문 용어가 가득한 문서를 영어로 보고, 해외 개발자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부담이었지만, 하다 보니 되더라구요.”


문과생 습성 벗고 IT 개발자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대비할 때도 ‘문과 티’를 벗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문과 자소서에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능력을 어필하기 위해 경험을 바탕으로 재밌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교수에게 자소서 첨삭을 받을 때 박씨는 ‘소설 쓰냐’는 지적을 받았다.


“개발자 자소서에서는 ‘이야기’보다 ‘기술 역량’을 강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언어를 썼고, 이렇게 접근했으며, 그러므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출처: 박상현씨 제공
취업 후 취미생활을 하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면접 대비를 위해 강의실에서 PPT를 화면에 띄워놓고 모의 발표(PT) 면접을 연습하기도 했다. 면접에서는 섣불리 ‘할 수 있다’는 답변을 해선 안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신입사원을 패기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개발자에게는 ‘허풍’으로 들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면접관이 ‘재고 알림 프로그램’ 만들 수 있냐고 했을 때, 내가 정말 만들 수 있을 때만 ‘그렇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답하면 ‘어떻게 만들 수 있냐’, ‘유사한 걸 해본 적이 있냐’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기술 면접은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수업 과정 막판에는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했다. 기업에서 의뢰한 프로그램이나 솔루션을 개발해 과제로 제출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해당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박씨는 수업을 수료하기도 전에 조기 취업했다. 학교에 방문한 달소프트 대표와 즉석에서 면접을 봤다. 현장에서 기술면접-인성면접을 거쳐 취업을 확정했다. 달소프트는 콘텐츠 플랫폼을 제작하는 스타트업이다. 직원수는 11명으로 박씨가 창립 멤버와 다름없다.

출처: 박상현씨 제공
근무하는 모습.

“IT 개발자로 욕심이 있다면 스타트업이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개발뿐만 아니라 고객사 요청을 처리해야할 때도 있고, 문서 작업도 해야합니다. 제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야 할 때도 있어요. 다양한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 업무를 배울 수 있습니다. 때론 업무가 과중하다 느낄 때도 있지만, 늦게 시작했으니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아요. 회사와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IT 개발자로 진로를 바꾸고, 한때 느끼던 지방대 콤플렉스를 깼다. “이 분야에서는 기술이 뛰어나면 학벌을 보지 않습니다. 아마 제가 방송사에 미련이 남아 이뤄지지 않는 꿈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면 지금까지 괴로웠을 겁니다. 진로를 바꾸는 결단을 빨리 내리고, 좋은 교수님과 친구들을 만나 천운이라 생각합니다.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다만, 진로를 바꾸고 나서는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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