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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 망했다며?’ 그날의 상처…제 옆엔 이것밖에 없었어요

기상캐스터 관두고 책방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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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언어의 정원’ 운영하는 김정원씨

아늑한 공간에서 독서 모임을 하고 다양한 문화 강좌를 열기도 하며 동시에 책을 판매하는 책방이 있다.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작은 책방들이 다양한 형태로 생겨나며 인기를 끌기도 했었는데, 요즘 우리나라에도 개성 있는 독립 책방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방 ‘언어의 정원’을 혼자 운영하는 김정원(29) 씨는 1년 전 기상캐스터를 그만두고 서울 청담동에 독립 책방을 열었다. 인터뷰를 위해 첫눈이 내린 24일 청담동 골목길에 위치한 ‘언어의 정원’을 찾아갔다. 책방 이름만큼이나 우아하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한 쪽에는 책장에 예술 문학 책들이 꽂혀 있었고, 다른 쪽은 와인 병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가운데는 길이가 4미터 쯤 돼보이는 긴 테이블이 자리잡고 있다. 책방은 무엇을 하는 곳이고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궁금해졌다.

책방 '언어의 정원'을 운영하는 김정원씨

출처jobsN

- 책방은 책만 파는 곳인 줄 알았는데 생소하다. 독립 책방은 무엇을 하는 공간인가.


“책방은 이름 그대로 기본적으로는 책을 파는 서점이에요. 그런데 교보문고 같은 대형 서점이나 학교 앞 서점과는 달리 독립 책방은 운영 방식이 무척 자유로워요. 책방 주인이 관심 있는 주제로 서가를 꾸미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죠. 책을 파는 것만으로는 이익을 남기기 힘들어서, 저는 책을 매개체로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과 연계해서 이곳을 다양한 독서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곳 이름도 ‘언어의 정원’으로 지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술을 만드는 조주 기능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와인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해서 플로리스트 자격증도 가지고 있어요. 이곳 책방에서 꽃과 와인을 선별해서 판매하기도 합니다.”


- 여기서 어떤 모임들을 하는지 궁금하다.


“우선 일주일에 일곱 번 독서 모임을 해요. 평일에는 매일 저녁 한 번의 독서 모임이 열리죠. 각각 주제가 다른 모임이에요. 문학, 미술사, 철학, 영화, 자유독서 등을 주제로 매주 책을 정해서 읽고 모여서 그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독서 모임을 진행하면서 와인을 한두 잔 마시기도 해요. 와인에 관심이 많아서 새로운 와인을 소개하며 가끔 시음회를 열기도 합니다. 토요일에는 조금 독특한 모임을 여는데, 브런치 독서 모임이에요.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으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책방 '언어의 정원'을 운영하는 김정원씨

출처jobsN

- 모임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오는지. 모집 방법과 모임의 규모도 궁금하다.


“독서 모임에는 30~40대 직장인들이 주로 오세요. 혼자 오는 사람이 많아요. 남녀 비율은 반반입니다. 인스타그램(@garden.won)과 블로그를 통해서 모임을 공지해요. 한 달 단위로 회원을 모집합니다. 20명이 넘는 모임도 있고, 작게는 12명이 모인 그룹도 있어요. 다양한 직업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같은 책을 읽어도 그걸 보는 시선이 다 달라요. 이야기 나누다보면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그게 독서 모임의 매력인 것 같아요.”


- 꽃과 와인을 판매하기도 한다는데.


“한 주는 꽃을 한 주는 와인을 선별해서 공동구매 형식으로 판매해요. 플로리스트로서 꽃에 대해 공부한 다음 한 가지 꽃을 선정해서 인스타그램에 소개해요. 그러면 팔로워 분들이 주문을 하시는데, 주문 수량에 맞춰서 수요일 새벽 꽃시장에서 대량 구매를 합니다. 그 싱싱한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놓으면, 손님들이 목요일부터 주말 사이에 찾으러 오세요. 와인도 같은 방식으로 격주로 판매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만명이 넘다보니 대량구매가 가능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돈을 벌기 보다는 꽃과 와인을 좋아하는 분들을 책방 단골로 만드는 게 목표이자 저의 영업 전략이에요.”


- 생각보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아이템이 많은 것 같다. 매출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


“독서 모임 회원들에게 한 번 오실 때마다 4만원 씩 참가비를 받아요. 독서 모임 중에 원하시는 분들에 한해서 와인이나 커피 값은 따로 받구요. 책과 꽃 와인 판매까지 하면 다양한 곳에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책방을 운영한 직후 4달 만에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꾸준히 독서 모임에 나오는 회원 숫자도 80명이 넘었고, 매출도 계속 늘어서 지난달은 1500만원이 넘었어요.”


- 책방의 분위기가 아늑하다. 어떤 전략으로 이 공간을 꾸몄는지.


“공간이 주는 느낌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모임을 하고 싶은 공간,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한 쪽은 책장을 놓았고, 반대쪽은 와인을 진열했어요. 천장은 풀이 자라는 느낌으로 꾸몄습니다. 그리고 음악도 신경 썼어요. 이곳에 오는 손님들의 오감을 자극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런 곳이 있었다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스카이TV 아나운서 시절

출처김정원씨 제공

- YTN 기상캐스터였다고. 다른 방송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방송을 시작했어요. 교통방송에서 캐스터를 했었고, KBS 6시 내 고향에서 리포터도 했습니다. 대학교에서 경영을 전공하며 은행 홍보대사로 인턴을 해봤었는데, 사무실에서 일하는것이 답답했어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서 방송 분야의 일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대학교 졸업 후에는 포항 MBC 기상캐스터, YTN 기상캐스터, SBS 모닝와이드 연예뉴스 등 프리랜서로 방송 일을 많이 했습니다.”


- 방송 일을 활발히 하다가 왜 돌연 책방을 열게 됐는지.


“갑자기 내린 결정이 아니었어요. 3년 전 프랑스를 여행하다 동네마다 마주치는 작은 책방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책을 워낙 좋아해서 책방에 들어갔을 때 풍겨오는 공간의 느낌이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에는 제가 좋아하는 꽃과 와인이 흔했는데, 이 세 가지를 한 곳에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방과 꽃, 그리고 와인을 결합하면 분명히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3년 동안 책방을 준비해왔습니다.”


- 책방을 열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준비했나


“기상캐스터를 하던 시절인데, 회사 출근하기 전 새벽에는 매일 꽃을 배우러 다녔어요. 퇴근 후에는 칵테일을 배웠습니다. 참 바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땄어요. 책을 좋아하니까 밤에는 책을 읽고 독서 모임도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3년을 그렇게 준비했어요. 커피도 배워놓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바리스타 1세대 할아버지가 하시는 유명한 커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드립 커피도 배웠어요. 남들이 보면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해왔다고 생각해요.”


-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강남에 근사한 책방을 열었다. 부모님 도움 없이 가능한 일인가.


“책방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끔 ‘금수저 아니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부모님 도움 전혀 없이 시작했습니다. 책방을 열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부동산을 40군데 이상 돌아다녔어요. 강남 지역인데도 골목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곳이 많았습니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오랜 기간 공실로 비어있는 곳이 있더군요. 보증금과 초기 인테리어 비용을 합해서 6000만원 중 3000만원은 청년창업자금대출을 받았어요. 나머지는 제가 벌어놓은 돈으로 시작했습니다. 인테리어 비용도 줄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20명 넘게 앉을 수 있는 책상을 들이고 싶어서 수원에 있는 가구공장을 돌며 발품을 팔고 사장님을 설득했어요. 빈티지 의자도 할인 행사 기간을 기다렸다가 이태원 매장에서 저렴하게 사왔어요. 사업 초기에 적자였을 때는 운영비를 메꾸려고 기존에 하던 방송 3개를 병행하기도 했어요. 매출이 늘면서 4개월 만에 방송을 그만두고 책방 운영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내일' 표지모델을 했던 대학생 시절(왼쪽)

출처김정원씨 제공, jobsN

- 독서 모임을 진행하려면 책도 읽어야 하고 꽃과 와인도 공부해야 할 것 같은데, 무척 바쁠 것 같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오전에는 주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해요. 일주일 3~4권을 읽고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 할 것들을 준비하죠. 오후에는 가게 운영과 관련한 일을 해요. 금전적인 부분을 정리하고 꽃과 와인을 공부해요. 그 중에 괜찮은 것들을 골라 주문도 합니다. 저녁에는 책방에서 독서 모임을 해요. 평일은 저녁 8시부터 11시까지, 주말에는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독서 모임이 있어요. 토요일 브런치 모임은 오전 11시부터 2시 까지 진행합니다.”


- 독서를 중심으로 사는 것 같다.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나.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하고 16년 동안 일기장을 쓸 정도로 글 쓰는 것도 즐겼어요. 이곳 책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판매하는 책들이 모두 예술 문학 관련 책이에요. 특별히 예술 문학을 좋아하는 건 개인적인 사연이 있습니다. 경북 문경이라는 지방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당시 사업을 크게 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IMF 때 건축 자재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 회사가 부도를 맞았어요. 빚을 갚으라는 전화가 빗발치고, 부모님도 힘들어하시고 다툼도 많아지셨어요. 주변에서는 ‘너네 집 망했다’고 놀림도 당하고, 어린 나이에 상처를 많이 받았죠. 그런 상황에서 위로가 되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문학 밖에 없었어요. 소설 속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 세계가 그려졌고, 꾸며낸 이야기지만 인간의 본질과 삶의 따뜻함을 잘 담아내고 있었어요. 제 마음 속 상처를 위로받는 느낌이었어요. 저를 이해하고 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며 중심을 잡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줬던 것이 책이었습니다. ”


- 20대에 홀로 창업을 했다. 비슷한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방을 열겠다고 결심하고 3년 동안 준비했어요. 혼자 어떻게든 수익 모델을 만들고 싶어서 꽃과 술에 대해서도 공부하며 준비해왔는데, 그 과정이 무척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이 길이 옳은지 잘못 됐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책방을 열고 초기에는 혼자 모든 걸 처리하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자신감이 없어서 손님들 눈치도 많이 봤어요. 독립 책방이 겉으로는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매출 관리도 필요하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 수익 구조의 다변화도 계속 연구해야 해요. 도전을 꿈꾸는 분들에게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후 시작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신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에너지가 넘쳐야 사람을 대하고 만나는 것도 즐거워서 흥이 나거든요. 매장에 와서 좋은 인상을 갖고 돌아가는 손님들은 반드시 다시 찾아오세요.”


글 jobsN 오종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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