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던 외국선수들, 막상 제가 우승하니까..

조회수 2020. 10. 4. 16:39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세계적인 오토바이 랠리 우승한 정비공 출신 동양인의 정체
바하랠리(BAJA Rally) 우승한 류명걸 선수
오토바이 정비공에서 랠리 우승까지
“산업 발전에 도움 줄 수 있었으면”

사막, 산속 그리고 해안가로 이뤄진 총 1463㎞ 코스를 통과하는 극한의 오프로드(off-road) 레이스. 멕시코의 바하랠리다. 바하랠리는 1967년에 시작한 세계적인 오프로드 대회로 완주율이 50%도 안 되는 악명높은 대회다. RALLY PRO, UTV PRO, RALLY1, ROOKIE 등 8개 클래스가 있다. 우승자는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세계 유명 기업의 후원을 받는 선수들이다.


이런 세계적인 대회에서 오토바이 정비공 출신 동양인이 우승해 화제다. 100여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뒤로하고 모터사이클 랠리1 클래스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류명걸(37) 선수. 자동차 브랜드 기아와 쌍용 등이 팀을 이뤄 출전한 적은 있지만 개인이 자비로 우승한 것은 처음이다. 류 선수는 취미로 오프로드 레이싱을 즐기던 오토바이 정비공이었다. 그런 그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 사연을 들었다.

출처: jobsN
류명걸 선수

교통수단으로 타던 오토바이


충청남도 청양군에서 태어난 그가 오토바이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교통수단으로 탔다. 고등학생 때 친구 오토바이를 타다가 고장을 냈다. 돈이 없어 직접 고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의 사정을 들은 한 정비소 사장님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정비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졸업 후에도 계속 일을 했다. 이후 효성에서 정식 정비 교육도 수료하고 대리점에서 1년간 근무했다. 그러던 중 오프로드 레이싱을 처음 접할 계기가 생겼다. 바이크 대회는 경기장을 도는 온로드(on-road)와 산악·사막 등에서 타는 오프로드로 나뉜다.


"원래 온로드 레이싱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바이크도 비싸고 빠른 속도로 달리다 넘어지면 수리 비용이 어마어마하죠. 그래서 돈이 없는 친구들은 오프로드를 탔어요. 오프로드용 바이크는 웬만한 충격에는 버틸 수 있어서 넘어져도 괜찮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2001년에 처음으로 같이 교육받던 분을 따라 오프로드 레이싱에 참여했습니다.


바이크를 빌려서 탔어요. 길을 잃어버릴까 봐 앞에 가는 분을 필사적으로 따라갔습니다. 길이 고르지 않아서 그런지 체감속도가 빨랐습니다. 처음 느껴 보는 기분에 타는 내내 짜릿했죠. 그때 오프로드 매력에 빠져 주기적으로 작은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왼쪽부터) KTM에서 일하던 류 선수, 각종 국내 오프로드 대회에서 우승한 모습

정비공에서 전문 바이크 선수로


정비를 더 배워보고 싶었다. 2004년 한 전문대 자동차학과에 뒤늦게 입학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재밌게 공부했어요. 성적우수장학금도 받으니까 더 뿌듯했죠. 전문대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오토바이 제조회사 KTM에 입사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오프로드 레이싱에도 참가했죠.”


2007년 국내에서 오프로드 대회 중 가장 높은 클래스인 KMF 코리아 엔듀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했다. 이후 해외 대회로 눈을 돌렸다. 2011년부터 긴 코스를 달리는 랠리에 참가했다. 2012년 태국에서 캄보디아까지 가는 대회에 참가했다. "오프로드에 어느정도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자부심을 무너뜨린 대회였죠.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야 하는데 길을 잃고 헤매다 완주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랠리의 묘미도 느꼈죠. 이후 해외대회에 집중해서 출전했습니다."


2013년 몽골랠리 참가했지만 완주를 하지 못했다. 이듬해 같은 대회에 출전해 겨우 완주했다. 2015년에는 태국 대회에 참가해서 종합 2위에 올랐다. 2016년 몽골랠리에서는 구간 기록이 잘 나와 우승까지 바라봤다. 그러나 마지막 결승선을 앞두고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다. 부러진 팔로 바이크를 타 결승선을 통과했고 종합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 해 다시 출전해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해외 대회에 도전한 지 5년 만이었다.


2013년 몽골랠리에서 우승했던 선수와 류명걸 선수의 기록은 무려 13시간 차이였다. 당시 그 선수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 그 선수를 제치고 우승한 본인의 모습을 보고 다카르 랠리 참가를 결심했다. 다카르 랠리는 완주율이 30%밖에 안되는 세계 최고 오프로드 대회다. 1만km에 달하는 코스를 3주에 걸쳐 달려야한다. 대회 창시자 티에르 사빈을 포함해 60여명이 목숨을 잃어 '지옥의 랠리'라고도 불린다. 올해 초까지는 연차를 모아서 대회에 나갔다. 회사에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랠리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2018년 2월 회사를 그만뒀다.

출처: 본인제공
바하랠리 우승 후 류명걸 선수와 팀원들

다카르 랠리 연습 삼아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


바하랠리는 다카르 랠리의 축소판이다. 전지훈련으로 바하 랠리에 참가했다. 한 번 랠리에 참여하려면 선수 본인 및 서포터즈의 항공료와 숙박비, 모터사이클 2대, 비상 장비, 차량 운송비용 등 5억 정도는 필요하다고 한다. 후원이 없으면 자비로 가기 힘들다. 전셋집을 월세로 바꾸고 자금을 마련했다.


"다카르 랠리 참여 소식을 들은 주변 분들이 무료로 서포터와 통역을 지원하셨습니다. 본인의 바이크를 빌려주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포터즈를 꾸리고 출전 준비를 마쳤습니다. 바이크 운송비용이 많이 들어 미국에서 빌려서 갔습니다. 봅슬레이 대표팀이 썰매를 빌려서 대회에 참가한 것처럼요."


주최 측은 바로 전날 코스 로드맵을 준다. 약도가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다. ‘3km 전진 후 우회전, 20km 전진 후 좌회전’같은 가이드가 주어지면 선수들이 지형지도와 GPS를 보고 찾아가는 것이다. 새벽까지 로드맵에 위험지역과 대략적인 길을 표시하고 출발한다고 한다. 류 선수는 첫날과 둘째 날은 GPS장치 오작동을 일으켜 불이익을 받고 꼴찌로 출발했다. 그러나 한 선수 한 선수 추월하면서 선두권으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시아 선수라고 무시당했지만 순위가 올라갈수록 대접도 달라졌다고 한다.


우승을 생각하고 출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끝까지 경기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마지막 구간이 폭이 넓고 잘 정리된 코스였다. 류 선수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코스기도 했다. 그는 오후 3시 정도에 결승선에 들어올 거라는 주최 측의 예상을 깨고 12시에 랠리를 마무리했다. 바하랠리 클래스 1 우승과 함께 종합 순위 8위라는 성적을 냈다. 

출처: 본인제공
바하랠리 출전한 류명걸 선수

다카르 랠리 완주가 목표…관심 가져주셨으면


좋은 성적을 냈지만 류선수의 아버지는 아직도 그만 놀고 일하라고 핀잔을 준다고 한다. “주위 어르신들이 ‘명걸이 이번에 잘 했네’하시면 뒤돌아서 웃으시는 정도입니다. 어머님은 반대하시진 않습니다. 가난한 게 자랑은 아니지만 ‘물려줄 것 없으니 네 앞가림은 알아서 하라’고 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 선택해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이크를 탈 수 있었죠.”


류선수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프로드 대회는 선수들이 유명 기업의 후원을 받으면서 출전한다. 그러나 류선수는 특별한 후원 없이 본인의 힘과 주변 도움으로 참가해 우승했다. 아직도 그는 후원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헬멧과 몸 구석구석에 카메라를 붙이고 대회에 나간다.


그의 다음 목표는 2020년에 열리는 다카르 랠리 완주다. 필라테스, 수영 등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면서 출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뒤따르는 후배들이 꿈을 키우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저는 막연하게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두서없이 배웠습니다. 후배들은 쉽게 배우도록 강연 영상과 책을 만들 겁니다. 모터사이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출처: 본인제공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