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하던 고졸 수포자였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6: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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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도전한 결과..공기업 입사 한방에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종운씨
1년 간 전문기술 배워 자격증 4개 취득

“한국전기안전공사를 한국전력과 많이 헷갈려하시는데요. 한국전력을 전기를 판매하는 시장형 공기업입니다. 전기안전공사는 준정부기관으로, 전기설비에 대한 설계, 감리 및 안전진단 등의 업무를 합니다. 예를 들어 가로등, 신호등을 제대로 설치했나. 관공서나 유치원에 전기 설비가 제대로 갖췄느냐를 봅니다. 부서를 크게 기술 검사부와 점검부로 나누는데···” 올해 1월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입사한 이종운(24)씨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맡은 업무를 막힘없이 줄줄 읊었다. 이씨는 김포부천지사에서 6급 기술직으로 일하고 있다.


3분기 청년실업률이 3년 연속 9%대를 기록했다. 극심한 청년취업난 속에서 이씨는 스물네살에 공기업 입사에 성공했다. 그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뭘 하며 먹고 살아야할지’ 앞길이 막막한 무스펙 청년이었다. 인문계고등학교 졸업 후 잠시 항공정비 일을 했지만 군입대로 그만뒀다. 그 흔한 영어 성적도, 자격증도 없었다. 전역 후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는 새삶을 위해 다시 도전했다. 1년 만에 자격증 4개를 따고 취업에도 성공한 비결을 들었다.

출처: jobsN
이종운씨.

평생직업 전기감리업무에 매력 느껴


이씨는 20년 경력의 전기감리술자인 삼촌 제안으로 전기감리분야를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 전기감리기술자는 전기 설비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직업이다. 전기 법규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전문직이다. 직업만족도가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7년 국내 621개 직업종사가 1만91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업만족도'를 보면 전기감리기술자가 5위였다. 급여만족도와 수행직무만족도에서는 1위였다.


“전기감리기술자가 자격증을 따고 기술을 배우면 취업 걱정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또 경력을 채우면 평생 직장이 보장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도전하기로 했어요.”


인문계 출신이 기술을 배우기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먹은 김에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 기술 공부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2017년 한국폴리텍대학 스마트전기과에 입학했다. 집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진주캠퍼스로 갔다. 이씨는 부천에서 살았다.


“집 근처에는 유혹이 많다보니 최대한 멀리 갔습니다. 스스로 저를 격리했어요. 정부에서 운영하는 특수대학이라서 교육비·실습비·기숙사비 등 모두 지원 받았습니다. 한달 25만원씩 생활비도 받았어요.” 공짜로 전문기술을 배운 셈이다. 

출처: 이종운씨 제공
자격증 일부.

근의 공식·삼각비도 낯설었지만···


소질 없던 공부를 하려니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학급 전체 34명 중 30등이었다. 기초가 없었다. “‘학교 가기 전 적어도 함수 공부는 하라’고 하는 삼촌의 말에 서점에 가서 중학교 수학책을 봤습니다. 근의 공식이나 sin, cos, tan 등 삼각비도 낯설어서 막막했어요. 유튜브에 기초 수학을 검색해서 공부했습니다.”


하루 일과는 고등학교 수업과 비슷했다. 오전 8시 30분에 점호를 하고 9시부터 수업을 듣는다. 전기이론, 전기 기기, 전기 설비 등을 배웠다. “예를 들어 현장에 전기제어함이 있는데, 그 제어함의 원리나, 버튼이 어떤 원리로 어느 선과 연결돼있는지를 배웁니다. 전기가 물이랑 똑같아요.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고, 높이가 다를 때 양이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흐릅니다. 또 제가 구성한 회로 대로 전기가 흐른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론을 실습에 바로 적용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실무 위주로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수업시간이 곧 실습이었다. 수업은 오후 4시 30분 까지. 이후에는 학교에 남아 공부를 했다. 학교 교수들이 잡아준 이론 뼈대 위에 스스로 공부를 하며 살을 붙였다. 공부 분위기가 좋아 밤 9시 학교 문이 닫을 때까지 공부를 했다. 이후에는 기숙사에서 새벽 1시까지 공부했다. 자격증 공부와 전공 공부를 하느라 1년 동안 부천에 있는 집에 3번 갔다.


그의 공부 원칙은 ‘반복’이다. 공부 요령이 없어 무조건 달달 외웠는데, 알고보니 그게 정답이었다. 암기가 모든 공부의 기초였다. 같은 책 두권을 사서 한번은 문제풀이집을 보면서 풀었다. 이후 문제풀이집 없이 나머지 한권을 풀어 지식을 내것으로 만들었다. 실제 다른 시험과 달리 자격증은 문제은행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기출문제를 반복해 푸는게 좋다.


“그래도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교수님을 찾아가 끈질기게 질문했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4회독을 했습니다. 반복해서 풀면 나중에 응용문제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힙니다.” 죽어도 외워지지 않으면 외울 때까지 깜지(빽빽하게 반복해 쓰기)를 썼다. 취업 후 책을 버리려고 모으니 3박스 넘게 나왔다.


이씨가 다닌 전문기술 1년 과정에서 수업을 같이 들은 동기수는 80명.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었다. “해군 원사를 전역하고 제2의 인생을 대비하는 60대 어르신, 정년퇴직 후 다시 도전하는 분도 있었어요. 스무살 친구도 있었습니다. 동기들이 나이가 많던, 어리던 다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1년 만에 전기산업기사·산업안전산업기사·전기기능사·승강기기능사까지 자격증 4개를 땄다. 탈락 없이 응시 단 한번에 모두 붙었다.

이종운씨 제공

공기업 입사도 한방에


이씨는 한국전기안전공사에도 ‘원샷원킬’로 입사했다. 기업 단 한곳에 처음 지원을 했는데 덜컥 붙었다. “원래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서 졸업 후에 취업준비를 하려 했습니다. 보통 공공기관에서 기술직을 채용할 때 ‘자격증 소지사’를 지원자격에 명시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지원자격요건을 갖추었으니 한번 지원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덜컥 붙었어요.”


자기소개서에는 회사 인재상을 나타내는 핵심 단어에 맞게 자신의 경험을 썼다. 일화란 일화는 모두 끌어다썼다. 하지만 경험을 부풀려 쓰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썼다. 안전과 절차를 중시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과장한 경험은 오히려 독(毒)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정해진 규율을 지킨 경험을 말해보라’는 질문에는 과거 건설 현장에서 일할 때 경험을 썼어요. 항상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작업순서를 지킨다고 썼습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차분하게 다음 해결책을 떠올렸다는 식으로 어필했어요. 실무 지식의 경우 자격증으로 증명하고, 채용 과정에서도 전공 시험이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써본 경험이 없어 동기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제가 쓴 자소서를 들고 무작정 저보다 나이 많은 형들을 찾아갔어요. ‘저는’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또 ‘나는 이런 사람이다’에서 끝나지 말고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에 맞는 인재다’라는 식으로 쓰라고 피드백 받았어요. 옆에서 형들 의견을 들으면서 바로 고쳤습니다.”


인적성은 평소 공부해본 적 없는 분야였다. NCS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료를 모조리 인쇄하고 시중에 나와있는 책을 사서 풀었다. “1분에 1문제씩 풀어야했기 때문에 모르는 문제를 과감히 버리고 아는 문제만 풀었습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기출 질문과 예상 질문을 정리했다. 한번에 전공 면접과 인성 면접 두가지를 봤다. 전공 면접의 경우, 평소 자격증과 학교 공부를 했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누전차단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보라’, ‘접지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보라’ 등이 질문으로 나왔다.


공기업·공공기관의 면접 질문은 지원자를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정답이 없고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지 판단이 어렵다. 이씨도 답변이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막상 예상 질문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어요. ‘상사나 윗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머리가 새하얬습니다. 순간 군대에서 겪은 일화가 떠올랐어요. 군대에서 운동하다 발목을 다쳤는데, 중대장께서 병가를 줄 수 없다고 해서 감정이 상한 적이 있어요. 결국 나중에는 사석에서 풀었습니다. 갈등이 있을 때 감정으로 맞서지 말고, 시간을 두고 풀 수 있다고 말했어요. ”


12월 최종합격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직무 성격상 외근이 많다. “출퇴근 시간 상관없이 하루 8시간 근무만 채우면 되는 스마트워크 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에 가정집에 점검을 하려고 들르면 대부분 회사에 있거나 볼일을 보러 나가 아무도 없을 때가 많아요.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일하고, 저녁 5시부터 9시까지 다시 4시간을 일하는 식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씨의 다음 꿈은 ‘30대에 기술사 자격증 따기’다. 자격증은 기능사, 산업기사, 기사, 기술사 순으로 난이도가 올라간다. 기술사는 ‘자격증계의 꽃’이다. 10년을 준비해도 자격증을 따지 못하는 수험생이 많다. 현장에서 십수년 경력을 쌓은 40~50대에 이르러야 합격생이 나온다.


“전기 분야에는 크게 4가지 기술사가 있습니다. 건축전기기술사, 송배전기술사, 전기기기기술사, 전기안전기술사가 있습니다. 이중 하나는 꼭 30대에 딸겁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공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서 인문계고에 진학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더 일찍 기술을 배울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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