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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흑인 그렸더니..미국에서 먼저 인정받았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6: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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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흑인 여성' 그려 본토에서 먼저 인정받았죠
2016년 미국에서 남긴 작품으로 유명세
고3때 그래피티로 먹고 살기로 결심
보수적인 아버지도 묵묵히 지원해줘
심찬양 작가 제공

그는 한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실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정부로부터 O-1비자(특수재능비자)도 받았다. O-1비자는 예술·과학·체육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외국인의 미국 체류를 허가해주는 비자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거나 상업적으로 성공해 다른 종사자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는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에게만 준다. 국내에선 유재석·차인표·이병헌 등이 이 비자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심찬양(30) 그래피티 작가다. 그의 태그네임은 ‘로얄 독’(Royyal Dog). 태그네임은 그래피티 작가의 필명이다. 자신은 ‘개’(dog)지만 아버지가 ‘성대하시니’(royal) ‘Royal Dog’이고, 이유 없이 ‘로얄 독’으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왜’(y)가 붙었다고 했다.


그를 세계적인 그래피티 작가로 만든 작품은 2016년 8월 LA 아트 디스트릭트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더 컨테이너 야드’(800 E 4th St, LA) 벽에 그린 ‘꽃이 피었습니다’다. ‘흑인 여성’과 ‘한복’이라는 이질적인 소재가 현지에서 먹혔다. 그는 그래피티를 그려서 먹고 살겠다고 결심한 지 약 10년 만인 2016년부터 전업 작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만 약 1억원을 벌었다.

출처: 심찬양 작가 제공
미국 LA '더 컨테이너 야드'에 그린 '꽃이 피었습니다'.

-그래피티는 어떻게 시작했나.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스트리트 댄스를 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수용 작가의 만화책 ‘힙합’을 보고 그래피티를 처음 접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미대 입시를 준비했지만, 공부나 입시를 위한 그림 그리기에 흥미가 없었다. 고3때 그래피티를 그려서 먹고 살기로 결심하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로 '한복 입은 흑인 여성'을 그리는데.


“2016년 7월 처음으로 그래피티의 본고장인 미국에 갔다. O-1비자가 아니라서 최대 90일까지만 체류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미국 사람들과 그래피티를 그렸는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40년 전 지하철에 낙서하면서 시작한 자신들의 놀이문화가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졌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도 낯선데 한국인이 자신들과 그래피티까지 그리고 있으니 좋게 봐줬다.


특히 작품에 한국적인 소재를 담았을 때 반응이 좋았다. 내가 따라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의 개성이 들어간 작품을 보고 박수를 쳤다. 그래서 한복을 그리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한국 사람 대신 흑인을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그래피티 작업을 기획했던 사람이 그 의견을 듣고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주제 중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줬다.”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


“작업 시간은 벽의 크기나 그림의 난이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미국에서 반응이 가장 좋았던 ‘꽃이 피었습니다’는 3일 동안 그려서 완성했다. 작년 길거리 예술축제 ‘파우와우 코리아’에 참가해 서울역 근처에 남긴 작품은 약 일주일 동안 그렸다. 보통 하루에 8~9시간 그림을 그린다. 의뢰가 들어와서 작업하는 경우 의뢰인이 작업장 근처에 숙소를 잡아준다.”

출처: 심찬양 작가 제공
작년 길거리 예술축제 '파우와우 코리아'에서 일주일 동안 그려서 완성한 작품.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나.


“의뢰인에게 그래피티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올 때도 있고, 마음에 드는 벽을 보면 직접 건물주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연락하기도 한다. 그래피티를 그려달라는 연락이 올 때가 더 많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벽화가 굉장히 많아서 작가가 먼저 건물주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작업 비율은 한국과 미국이 2대1이다.”


-’좋은 벽’의 기준이 뭔가.


“면적이 넓고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벽이 좋다. 창문이 없는 깔끔한 벽이면 더 좋다. 그래피티 작가들 사이에서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서 노출이 많은 벽이 인기다. 자동차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에 숫자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흰 벽을 종종 볼 수 있다. 매일 출·퇴근을 할 때마다 보는 벽이다. 언젠가는 그곳에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


-그릴 때 쓰는 재료는.


“그래피티를 그릴 때는 스프레이식 래커를 쓴다. 그래피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국산 ‘동서락카’ 제품을 썼다. 요즘은 스페인의 몬타나사(社)에서 만든 ‘MTN 94’를 주로 쓴다. 지금도 스케치를 할 때는 재료비를 아끼려고 동서락카 제품을 쓴다. 올해부터 아이언락·원테이크 등 다양한 수입산 래커가 들어오면서 가격도 많이 저렴해졌다. 얼마 전까지 한 통에 1만2000원이던 ‘MTN 94’는 7600원까지 떨어졌다. 동서락카 제품은 1600~2000원 가량 한다. 국산과 수입 제품의 가격 차이가 꽤 크다.”


-일부 국가는 그래피티를 법적으로 금지하기도 한다.


“그래피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가 벽화고, 두 번째가 몰래 벽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도망가는 ‘태깅’(tagging)이다. 세상에 주인 없는 벽은 없으니 주인의 허락을 안 받으면 다 불법인 셈이다. 그래피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자신의 이름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작업의 목표였다.


밤에 몰래 그림을 그리고 도망다녔던 태깅 문화에 빠져 이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정식으로 의뢰를 받고 그림을 그려서 보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는 걸 더 즐긴다. 태깅을 하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래피티를 그려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그래피티 문화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투자하는 것이다.”

출처: 심찬양 작가 제공
그는 2016년 7월 미국에서 현지 작가들과 그래피티를 그렸다.

-그래피티 작가로 돈은 얼마나 버나.


“조심스럽지만 다른 작가에 비해 많이 버는 편이다. 2016년 미국에 다녀온 뒤로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작년 한 해 동안 1억원 정도 벌었다. 올해도 4월까지 일을 많이 못 했는데도 약 1억원을 벌었다. 1년에 걸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열 개 약간 못 미치게 그린다. 자잘한 그림도 많이 그린다.


그래피티를 그려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그래피티 시장이 작아서 실력이 수입으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자신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어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필름지를 붙이는 일도 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은.


“아무래도 '꽃이 피었습니다'가 가장 특별하다. 처음으로 나만의 색깔을 완성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볼 때마다 새롭다. 지금까지 그린 작품 중 가장 많은 호평을 들었고,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있기도 하다. ‘꽃이 피었습니다’를 그리기 전까지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종종 헤매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 그림의 정체성을 찾았다.”


-앞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은.


“예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 우물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마음이 각별해서 흑인을 그릴 것이고, 내가 한국인이니까 한복도 소재로 쓸 거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와 결혼한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가 한복을 입은 모습도 그려보고 싶다.”


-왜 하필 아프리카인가.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할아버지도 목사님이셨다. 아버지가 ‘월드비전’이라는 NGO(비정부기구)를 통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후원해오셨다. 아버지가 후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어렸을 때부터 집에 걸려 있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겠다는 꿈이 생겼다. 35살쯤에는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지금도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다. 아버지에게도 자랑스러운 일일 것 같다.”

심찬양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아버지가 굉장히 보수적이고 엄격하셔서 어렸을 때는 버릇 없이 행동하다가 많이 혼났다. 하지만 그래피티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신 적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2년 전 미국에 가기 전까지는 굉장히 힘들게 생활했다. 돈이 없어서 밥도 아버지 카드로 사 먹었지만 싫은 내색 한 번 하신 적이 없다. 아버지가 말 없이 묵묵히 지켜봐주신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피티에 관심이 있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


“어쩌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나는 돈을 못 벌었어도 계속 그래피티를 했을 것이다. 만일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이 먼저였으면 이렇게까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래피티를 하겠다면 돈은 생각하지 말고 시작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그래피티로 돈을 버는 사람도 소수다. ‘그래피티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래피티 문화 자체를 사랑한다면 기꺼이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글 jobsN 송영조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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