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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날의 상처..배우의 꿈 접고 지금 이렇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10. 4. 16: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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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까지 했지만..배우의 꿈 접고 신입사원이 됐습니다

뮤지컬배우 출신 기상캐스터 박하명


뉴스가 마무리 될 때 쯤 등장해서 날씨를 전해주는 기상캐스터의 이미지는 지적이고 화려하다. 주요 방송국 기상캐스터 공채 경쟁률은 몇 백대 일에 달할 때도 있다. 알고 보면 기상캐스터는 화면 밖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방송 몇 시간 전부터 실시간으로 기상 정보를 분석하고 멘트를 포함한 대본도 직접 써야 한다. 정보 분석과 원고 작성을 위해서 꾸준한 공부도 필수다.


뮤지컬 배우를 하다가 기상캐스터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국립극장에서 상연된 뮤지컬 ‘햄릿’에서 오필리어 역을 맡아 연기했던 박하명(28) 씨는 지난 8월 높은 경쟁률을 뚫고 MBC 기상캐스터로 선발됐다. 가을비가 막 그친 9일 서울 마포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따뜻한 허브차를 앞에 둔 새내기 기상캐스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풍부한 표정과 몸짓으로 뮤지컬 배우처럼 술술 풀어냈다.

출처: jobsN
박하명 기상캐스터

-옷차림이 막 화면에서 나온 것 같다.

“방금 방송을 마치고 왔어요. 오늘은 날씨 변동이 많은 날이라 힘들었습니다. 이런 날은 방송 세 시간 전부터 방송 직전까지 수시로 기상 정보를 체크해야 하거든요. 보통 방송이 끝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도 지우곤 해요. 오늘은 방송을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커서 편한 마음에 그대로 나왔어요.”


-입사한지 3달 됐다. 신입 기상캐스터로서 느낌이 어떤지.

“아직은 공부할 게 많아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기상캐스터가 화면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날씨 전달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일기도를 보고 바람 방향과 구름이 지나갈 경로를 예측하고, 기상 정보를 해석해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는 과정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지금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도전 의식도 생겼어요. 덩달아 일에 대한 열정도 강해졌습니다.”

출처: jobsN
박하명 기상캐스터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뮤지컬 배우였다고.

“한동대학교에서 공연영상학부를 전공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요. 배우로 데뷔한 건 대학교를 다니던 2011년이었어요. 국립극장 상연 뮤지컬 ‘햄릿’ 오디션에 합격해 주인공 햄릿의 연인 오필리어 역을 맡아 연기했습니다.”


-뮤지컬 배우와 기상캐스터는 전혀 다른 분야 같은데,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보면 관객이 내 감정 표현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희열을 느껴요. 내 연기에 반응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고 나와 관객이 한마음이 됐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전율을 느낍니다. 날씨를 전할 때도 같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제가 진심을 다해서 대본을 쓰고 설명했을 때, 화면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카메라 앞에 섭니다.”

출처: 박하명씨 제공
뮤지컬 햄릿 연습중(좌), 뮤지컬 햄릿 공연 당시 대기실에서 배우 조우진(오른쪽)과 함께

-기상캐스터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합격 과정이 궁금하다.

“저희 방송국의 경우 이번에 3명을 뽑았는데, 경쟁률이 300대 1이었어요. 방송사마다 선발 인원이 적다보니 경쟁률이 늘 치열합니다. 공채가 날 때마다 지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방송국 경력을 거쳐서 공중파로 입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한 번에 합격한 건 아니었어요. 방송국 아나운서로도 지원했었고, 홈쇼핑 채널에서 뽑는 쇼핑호스트도 지원했었는데 최종에서 몇 차례 좌절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기상캐스터 채용에 응시했는데 합격했어요.”


-어떤 선발 과정을 거치는지. 그리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는지.

“방송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MBC의 경우, 먼저 자기소개 하는 영상을 1분 분량으로 찍어서 올립니다. 여기서 통과되면 2차로 방송국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아요. 마지막 3차로 최종 면접을 통해 선발합니다. 선발 기준은 방송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우선 평가해요. 발음이나 발성 같은 오디오는 기본이고 신뢰감 있는 인상도 중요합니다. 최종면접에서는 인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직종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방송을 믿고 맡기기 위해서 올바른 성품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상캐스터가 되고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매일 날씨를 소개할 때 새로운 멘트를 담고 싶어서 늘 주변을 관찰하고 느낌을 기억해둡니다. 요즘 같이 밤새 날씨가 추워졌을 때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내딛었을 때 방바닥이 차갑다는 느낌을 기억해둬요. 샤워기를 틀었을 때 처음 느끼는 물의 감촉이 차가워졌다는 것도 기억하죠. 날씨를 소개할 때 꺼내 쓰려고 마음속에 고이 저장해 놓습니다.”

출처: 박하명씨 제공
화면 밖에서의 모습

-날씨 정보 방송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지금 맡고 있는 것이 9시 30분 아침뉴스에요. 새벽에 일어나 6시 30분까지 출근해서 기상청에서 나온 기상 정보를 분석하고 대본을 쓰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의상과 메이크업을 받은 후에, 그동안 변경된 기상 정보를 체크해요. 실시간으로 날씨가 바뀌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본이 완성되면 배경 화면을 만드는 CG(Computer Graphics)팀에 전달합니다. CG가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날씨 변화를 계속 체크하죠. 최종적으로 대본과 CG가 맞는지 확인한 후 방송에 들어갑니다.”


-방송을 보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멘트가 들릴때가 있다. 대본을 쓸 때 특별히 주의해야 될 점이 있는지.

“날씨를 전달할 때는 정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지켜줘야 할 기준이 있어요. 비가 내릴 때에는 ‘많이’오는지 ‘다소’오는지 ‘조금’오는지 단어를 선택해줘야 하는데, 강수량을 기준으로 어떤 범위에 들어가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강수량이 80mm 이상이면 ‘많음’으로 표현하구요, 5mm 미만이면 ‘조금’이라는 말을 씁니다. 날씨에 대한 느낌을 표현할 때도 지켜야할 선이 있어요. 지난 9월 태풍이 지나가고 화창한 하늘이 펼쳐졌던 날, 아침에 하늘을 보자마자 ‘오늘은 한강 가서 맥주 한 잔 하면 딱 입니다’가 생각났어요. 그런데 이런 말은 방송에서 쓸 수 없는 표현이죠.”

출처: 박하명씨 제공
유튜브에서 노래하는 모습

-유튜브에서 노래 부르는 영상을 봤다. 가수인 줄 알았다.

“저를 포함해서 이번에 입사한 세 명의 기상캐스터들이 최근에 ‘오늘비와?’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어요. 날씨 정보 뿐만 아니라 기상캐스터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요. 저는 예전 경험을 살려서 노래를 가끔 부르고 있어요. 얼마 전 비오는 날에는 태연의 ‘Rain’을 불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자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질문. 햄릿으로 뮤지컬 배우로 데뷔까지 했는데, 배우의 꿈을 버린 이유가 궁금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어요. 대학교 2학년 때 뮤지컬 ‘햄릿’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더 멋진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휴학을 하고 공부해서 어느 대학교 연극영화과로 편입했습니다. 연극영화과로는 최고라고 소문난 학교였어요. 그런데 그곳은 상상과는 너무 다른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연극영화과 내에 군기 잡는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어요. 컴컴한 지하 연습실에서 선배들의 폭언과 폭행이 연일 계속됐어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그곳을 나왔어요. 편입을 포기한 거죠. 그런데 그게 무대에 도저히 설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을 줄 몰랐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학업을 중단했어요. 큰일을 겪은 후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그걸 극복하고 예전의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출처: 박하명씨 제공
스튜디오 프로필 촬영

-지금은 무척 밝아 보인다. 상처를 극복한 과정이 궁금하다.

“학교 측에 공식적으로 항의도 해봤고 싸워보고도 싶었지만, 해결 과정조차도 상처가 되더군요. 다 내려놓고 나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봤어요. 왜 성공하고 싶었는지, 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고 스타가 되고 싶었는지. 그러다보니 그동안 너무 나 자신만 위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처를 치유하면서 봉사활동을 다니기도 했어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한 거죠. 내 재능을 살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훗날 돈을 벌게 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어요.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의학전문대학교를 가보려고 관련 공부도 해봤고, 상담심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원 준비도 했어요. 국제적인 감각도 키우고 싶어서 영어, 중국어까지 배우러 다녔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배우는 데 다 썼던 것 같아요. 한동대학교에서 공연영상학과 상담심리학까지 전공하며 졸업을 마쳤어요. 절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지만, 출발선에 다시 서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기상캐스터의 꿈을 꾸기 시작한 계기가 있었는지.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문득 방송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상캐스터를 목표로 정했다기보다는 방송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 뮤지컬을 하는 것과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었거든요. 항상 카메라 앞에 서는 꿈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시작은 늦은 편이였지만, 연기를 했던 것이 짧은 시간 내에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출처: 박하명씨 제공
스튜디오 프로필 촬영

- 학창시절이 궁금하다.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중.고등학교 때 남녀 공학을 다녔어요. 인기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있었고, 종이학 천개를 접어준 학생도 기억나요. 주변에서 주목을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중학교 때는 전교회장을 했습니다. 당시 다니던 학원에서 광고 모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SM엔터테인먼트에서 캐스팅 연락이 왔어요. 연예인에 대해서 보수적이었던 부모님의 반대로 정중히 거절했었는데, 지금도 부모님과 농담을 하곤 해요. 그때 부모님이 말리지만 않았으면 지금쯤 ‘소녀시대’가 될 수도 있었을 거라고요. 하하.”


-그러고 보니 최근에 어딘가 광고에서 본 듯하다.

“기상캐스터가 되기 전에 모델로 TV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위니아 딤채 광고를 배우 소지섭과 함께 찍었고, 경동 나비엔 광고에서는 배우 유지태, 농협은행 광고는 류현진 선수와 함께 찍었습니다. 메인 모델이 아니어서 그런지 못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요.”

출처: 박하명씨 제공
배우 유지태와 광고 촬영 현장에서

-취미가 무엇인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노래를 불러요. 평상시 길거리를 다니면서도, 집에서도 혼자 흥얼거리는 걸 좋아해요. 노래를 부르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래방을 가기도 하고, 휴대용 노래방 마이크를 회사와 집에 두고 틈만 나면 마이크를 잡아요. 춤을 추는 것도 좋아합니다. 남들이 보면 웃겠지만, 주로 집에서 무반주로 춤을 추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뮤지컬 배우와 기상캐스터의 공통점이 있다면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거예요. 배우가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준다면, 기상캐스터는 시청자들의 삶과 가장 밀접한 날씨와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시청자들과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어요. 열정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글·사진 오종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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