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미루고 준비한 8개월동안 코피가 마를날 없었어요

조회수 2020. 10. 4. 16: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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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프로 테스트(Pro-test) 준비, 스파링보다 굶는게 더 힘들었다

복싱(Boxing) 프로 테스트(Pro-test)는 ‘프로 복싱 라이선스(자격증)’를 취득하기 위한 심사다. 프로 라이선스가 있어야 ‘웃통 벗고 싸우는’ 프로 경기에 나갈 수 있다. 프로 복서, 즉 ‘직업 권투선수’를 꿈꾸는 사람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 복싱에 열정을 가진 마니아에게는 그 자체로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시험이다. 도전자들은 몇 개월 전부터 운동량을 늘리고 감량을 하며 그 날을 준비한다.


현재 우리나라 프로 복싱 인정기구는 한국권투위원회(KBC)·한국권투협회(KBA)· 한국권투연맹(KBF)·한국프로복싱연맹(KPBF)·복싱M 등 총 다섯 개다. 각 주관 단체의 공고를 확인하고 시기에 맞춰 신청해야 한다. 보통 신청비는 5만원이며 테스트 합격 후 따로 ‘라이선스’ 발급 신청을 해야 등록이 절차가 끝난다.


11월11일 일요일은 KBF가 개최하는 제36회 프로 테스트가 있는 날이다. 이번 테스트는 경기도 포천에서 열린다. 2011년 ‘제 170회 KBC 프로 테스트’에 도전해 합격했다. 마냥 복싱이 좋아서 시작했고 관장의 제안에 테스트를 봤다. 11일 테스트를 앞둔 예비 프로들도 막바지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을 것이다.

출처: jobsN
제 170회 KBC 프로테스트에 도전했다. 파란 바지가 본인.

군대도 미루고 프로 테스트에 도전하다


“얌마, 너도 한 번 준비해봐. 다 할 수 있어.” 복싱을 시작한지 1년 1개월 쯤 지난 2010년 12월, 관장이 툭 던진 한 마디가 프로 테스트의 시작이었다. “특별한 놈들만 하는 게 아냐. 하다 보면 실력도 늘고 합격도 하는거야. 내년 8월이 적당하겠다. ”


프로 테스트를 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스파링(모의 대련)도 많이 해야 했다. 감량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21살 겨울에 갈 생각이었던 군입대도 계획보다 반년 넘게 미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평생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량을 몇 배로 늘려야 하는 프로 테스트는 대학교 1~2학년 때가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결국, 3일을 더 고민한 끝에 관장님께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저 준비해보겠습니다.” 2010년에 두 차례 전국생활체육대회를 준비할 때보다 마음이 떨렸다.


준비부터 테스트까지 약 8개월


본격적인 훈련은 테스트 4개월 전부터 했지만 문자를 보낸 날부터 사실상 프로 테스트 준비에 들어갔다. 코치와 스파링을 하고 난 뒤에도 쉐도우 복싱(혼자 하는 복싱 훈련)을 하고 샌드백을 치는 등 운동량을 늘렸다. 다음 날부터 원래 5R씩 하던 쉐도우와 샌드백 훈련을 8R씩 했다.


심폐력을 기르기 위한 달리기인 ‘로드웍(roadwork)’도 꾸준히 했다. 흔히 아침 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일 하지는 못했지만 월‧수‧금 아침에는 빼먹지 않고 집 근처 공원에서 3~5km를 달렸다.


스파링은 준비 초반부터 자주 했다. 코치 등 나보다 먼저 프로 테스트를 준비하는 다른 관원들의 상대를 해 줘야해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링에 올랐다. 덕분에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 말까지 코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출처: jobsN
프로 테스트 후에도 복싱을 하고 있다. 치아 보호를 위해 입에 끼는 마우스 피스(좌) 등 현재 사용 중인 용품.

본격적인 훈련은 4월 말, 대학교 중간고사가 끝나는 시점부터였다. 운동을 더 해야 겠다는 마음에 쉐도우와 샌드백 훈련을 10R로 늘렸다. 많이 하는 날에는 15R를 하기도 했다.


스파링 횟수도 늘렸다. 일주일에 3일은 스파링을 했고, 하루에 2~3명과 하는 날도 있었다. 몸무게가 20kg 더 무거운 형에게 ‘라이트 훅’을 맞았을 땐 정말 별이 번쩍였다. “취미 삼아 하는 정도로는 머리 안 나빠진다”며 시작한 복싱이었지만 ‘이러다가 진짜 머리 나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침밥은 걸러도 ‘아침 운동’은 빼먹지 않았다. 맞는 것보다 숨 달리는 게 더 힘들다’는 나름의 생각 때문이었다. 숨이 차 헐떡이다가 옆구리를 맞으면 글러브를 벗고 그대로 집에 가고 싶었다. 또 프로 테스트에서 중시하는 ‘가드(guard)’ 등 자세를 경기 중 유지하기 위해서도 심폐력은 중요했다.


아침 운동의 압권은 ‘산 뛰기’였다. 토요일이나 휴일 아침 서울 도봉산 등산 코스 하나를 정해 달렸다. 차도 갈 수 있는 길이었다. 함께 프로 테스트를 준비하는 관원 2명과 함께 뛰었다. 관장은 차를 타고 올라가고 우리는 뛰어갔다. 도봉산 등산 코스를 주파하는 데 처음에는 25분 걸렸다. 나중에는 20분 정도로 줄었다. 5월 중순부터는 아침 운동 코스에 동네 뒷산을 추가했다. 

출처: jobsN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및 공원과 이어진 오패산은 주요 아침 운동 코스였다.

계체량을 1달 반 정도 남기고 시작한 ‘감량’은 가장 힘든 과제였다. 적정 체중 이하로 살을 빼야 하는 감량은 일상에 지장을 준다. 허기로 받는 스트레스도 크고, 몸에 힘도 쭉쭉 빠진다. 선수들을 보통 감량 때문에 체력이 떨어지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 감량고(減量苦)를 겪는다. 몸에 힘이 없다보니 스파링을 할 때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에게 맞기도 한다. 나 또한 막바지에 감량고를 실감했다.


하지만 계체량을 통과해야 링에 오를 수 있다. 현재 프로 복싱 체급은 세계복싱협회(WBA) 기준 가장 가벼운 미니멈급부터 헤비급까지 총 17개 체급이 있다. 나는 10번째 체급인 수퍼라이트급(61~63.5kg)으로 출전했다. 평소 70kg이던 몸무게를 63kg까지 빼고 유지하기위해 점심과 저녁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밤에는 토마토 한 두개와 물만 먹고 잤다.


전국 ‘예비 프로’들의 집합지 프로 테스트


프로 테스트 전날은 죽을 것만 같았다. 내일 아침 계체량만 통과하면 한 달 반만에 무엇이든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당장 밀려오는 배고픔을 참기가 힘들었다. 테스트 마지막 주는 컨디션 조절 때문에 운동도 거의 하지 않지만 온 몸에 힘이 없었다. 그날은 저녁 8시에 누워 11시에 잔 것 같다.


제 170회 프로 테스트 개최지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ㅇ체육관’이었다. 당시만 해도 KBC 단일 협회 체제였다. 1년에 4번, 2·5·8·11월 열리는 프로 테스트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KBC가 지정한 시설로 모여들었다.


오전 10시 계체량은 무사히 끝났다. 감량 후 첫끼는 삼겹살이었다. 이후 먹었던 어떤 고기보다 맛있었다. 1달 반을 굶다 겨우 먹은 고기였지만 배가 든든하니 힘이 났다.


선수끼리 체급 별로 오후 2시부터 총 30경기를 치렀다. 나는 13번째 경기였다. 보통 남자의 경우 3분 2R를, 여자의 경우 2분 2R를 한다. 진짜 프로 경기에서 착용하는 글러브는 8온스(약 226g)지만, 프로 테스트에서는 보통 14~16온스 글러브를 착용한다. 당시는 14온스짜리를 꼈다. 2014년 이후로 헤드기어를 쓰고 테스트를 보지만 그 전에는 헤드기어를 벗고 진행했다.


프로 테스트에선 승패보다는 실력과 스포츠맨십, 잠재력을 평가한다. 결과는 심사 후 곧바로 나오는데, 두 사람 모두 합격할 수도, 탈락할 수도 있다. 경기로 치면 패배했더라도 좋은 기량을 보여준다면 붙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상대방을 때려 눕혔어도 마구잡이 식으로 싸웠다면 떨어질 수 있다. 

진행자가 내 이름을 불렀고 링으로 올라갔다. 진짜 경기가 아니었지만 막상 링 위에 서니 ‘꼭 이겨야지’ ‘한 대 맞으면 세 대 때려야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맨 얼굴로 맞을 것이 겁나진 않았다. 스파링을 자주 해 맞는 것에 무뎌졌기 때문이다.


공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했다. 서로 견제하다 내가 뻗은 ‘원투’에 상대방이 ‘꽈당’ 넘어졌다. 다운(down)이었다. 체육관이 조용해지고 카운트 다운 소리만 들릴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순간을 매 경기마다 느낄 프로 선수들이 부러웠다. 이어 진행한 경기는 2R를 다 채우지 않고 끝났다. 심판은 합격 표시로 내 손을 들었다.


과정도 결과도 잊을 수 없는 프로 테스트


긴 시간의 훈련 끝에 결국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다. 이후 ‘프로 라이선스’을 신청해 카드 모양 자격증을 발급 받고 체육관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보통 5년으로 하는 계약서를 작성한 뒤 다른 체육관 소속으로 ‘프로 시합’에 나가면 계약 위반이다. 

프로 테스트만 통과했다고 프로 선수라 부를 수는 없다. 지든 이기든 데뷔전인 첫 1전을 치러야 프로다. 다만, 프로 테스트와 그 준비 과정을 통해 자기 실력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프로들의 세계를 살짝이나마 맛볼 수 있다.


나 또한 ‘맛만 본’ 사람이다. 계약서까지 작성했지만 프로 경기는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약 8개월의 프로 테스트 준비는 뼈와 살을 깎는 듯 힘들었만 큰 뿌듯함도 안겨준 특별한 체험으로 남았다. 신입 공채 ‘자기소개서’에서 한계에 도전한 일을 물으면 꼭 써넣는 일화가 됐다. 그때로 돌아가도 반드시 다시 도전할 설레는 경험이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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