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원밖에 없던 그가 이룬 62억 대박..이 1500원 아이템은?

조회수 2020. 10. 4. 17: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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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김치왕, 이제는 베트남 진출 한국인 돕는다
김태곤 OKTA 호치민 지회 회장
베트남 재료 ‘옹킴 김치’로 김치 열풍 일으켜
새롭게 커피사업도 도전

베트남에서 직접 김치를 담궈 베트남 사람에게 판매한 사람이 있다. 매일 1200개 매장에 김치 500g 한 세트를 1만개 이상 판매했다. 베트남 김치 주역 ‘옹킴 김치’를 만든 김태곤(63)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호치민 지회 회장. 옹킴 김치는 매운 음식이 많은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김치를 한국인의 밥 반찬에서 베트남인이 사랑하는 식품으로 변신시켰다. 2016년 CJ에 매각할 당시 매출은 550만 달러( 약 62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현재는 OCTA 호치민 지회장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인을 돕고 있다

출처: 사진 jobsN
김태곤 OKTA 호치민 지회 회장

베트남 수교 직후 정착 “베트남은 내가 살 곳”


1975년 월남전을 끝으로 국교가 끊긴 베트남과 한국은 1992년 다시 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은 한국 국민에게 못사는 동남아 공산권 국가일 뿐이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베트남에 투자를 하거나 이민을 가려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김태곤 지회장도 처음부터 베트남에서 사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한국에서 광고출판 쪽 일을 하면서 나름 이름을 날렸고, 1993년 대전엑스포에서도 광고업무를 맡기도 했다. 1994년 지인의 부탁으로 베트남 투자환경을 조사하기 위해 호치민을 찾았다. 남의 부탁으로 찾은 베트남이 김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덥지만 습하지 않은 쾌적한 날씨도 좋았고, 순박한 사람들의 마음씨도 좋았다. 베트남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다 아예 눌러앉아 버렸다.”


베트남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옥외광고였다. 베트남은 이제 막 시장을 개방해 자본주의를 배우고 있었다. 새로운 시장이 보였다. 한국에서 옥외광고를 할 자재를 가져와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에 옥외광고 수준은 아주 열악했다. 자재와 사람 모두 한국에서 데리고 왔다. 당시에 제법 성공했다.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마다 모두 광고를 의뢰했다.”

옹킴 김치(왼쪽)와 CJ가 판매하는 옹킴 김치

75달러 들고 다시 찾은 베트남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인 상당수가 짐을 싸 귀국했다. 김 지회장도 그 행렬에 동참했다. 1998년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것저것 사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하는 것마다 실패했다. 결국 5년만에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2004년에 베트남을 다시 찾았다. 수중에 있는 돈은 75달러 밖에 없었다.”


베트남에 복귀한 김태곤 회장은 한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전자상거래 분야를 주목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준비하면서 사람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베트남도 인터넷 보급을 시작했고, 국가가 길고 대중교통이 불편해 가능성이 보였다. 하지만 베트남 복귀는 순탄하지 않았다. 아직 사람들이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았다. 물건을 보지도 않고 산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사업 시작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팀원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뭘 하든 수익이 나는 사업을 해야 했다. 신규 사업 구상에 골몰하던 그에게 어느 날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베트남 직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다. 식사 때는 직접 담근 김치를 내놓았다. “서로 남는 김치를 싸 달라고 난리였다. 베트남 직원들 입맛에 맞는 김치라면 사업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눈대중으로 만든 김치에 난리가 났다면 제대로 배워서 담근 김치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베트남에 아직 한국 김치를 판매하는 회사가 없다는 점도 김지회장의 결심을 굳히는 데 한 몫했다.

출처: 사진 jobsN
김태곤 회장

1500원 김치로 ‘옹킴 김치’ 신화 쓰다


2005년부터 김치 사업을 시작했다. 제대로 담그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가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서 배추를 가져와 담그는 게 아니라 베트남 배추를 썼다. 한국 식당을 찾아다니며 김치 담그는 겻눈질로 훔쳐 배우기도 했다. “3개월이 넘게 매일 같이 김치를 담궜다. 아침에 담근 김치를 저녁에 맛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레시피대로 한다고 같은 김치 맛이 나는 게 아니었다. 재료가 달랐다. 베트남 재료로 3개월쯤 매일 같이 하니까 팔 수 있는 김치 맛이 났다. 그걸 친구들에게 먹어보라고 하니까 모두 김치라고 했다. 용기를 얻었다.”


곧바로 작은 플라스틱 반찬그릇 20개에 김치를 포장했다. 그걸 가지고 가까운 슈퍼마켓 관리자를 만나 매대에 진열해달라 부탁했다. 개당 1500원을 받았다. 마침 한류 붐에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을 때라 관리자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 때 슈퍼가 한국인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곳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 지 궁금했다. 한국 사람들 상대로 하면 작은 반찬가게 수준이지만 김치를 하면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찾는지 보려고 한시간에 한 번씩 슈퍼에 갔다. 갈 때마다 한두개씩 사라지는 모습을 봤다. 저녁 5시경 모두 팔렸다. 호기심에 사나 싶어 다음 날에는 40개를 내놨다. 30개 정도가 팔렸다. “그 슈퍼 말고 다른 곳에도 판매를 했다. 그 곳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한 번 맛본 사람이 다시 사간다는 걸 확인했다.”


김태곤 회장은 e커머스 사업을 정리하고 김치 생산 공장 설립을 준비한다. 점차 판매처를 넓혔고 당국에서 식품제조 판매 허가도 받았다. 작은 용기에 500g 박스 20개로 시작한 김치 사업이 11년이 지나고 베트남 전역에 하루 1만개 이상 판매하는 김치 기업 ‘옹킴 김치’로 성장했다. 옹킴 김치에서 김치를 받아 판매하는 곳도 1200곳에 달했다.

김태곤 회장이 운영하는 옐로 체어 스페셜티 커피

옹킴 김치 매각 후 ‘한국인 지원 사업’ 활발


김치 사업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두부사업에도 진출했다. 주위에서는 김치와 두부로 큰 돈을 번 줄 알았지만 그의 고민은 여전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비용도 함께 늘어났던 것. 이때 베트남 시장에 도전하는 CJ가 찾아왔다. 베트남 김치 시장 80%를 차지하는 옹킴 김치를 인수하고 싶어서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CJ도 직접 브랜드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전략을 바꿨다. 하지만 CJ은 김 회장을 다시 찾았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거절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해외에서 창업해 대기업에 매각하는 좋은 엑시트(exit∙상장이나 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 사례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뒀다.” 결국 11년간 키워온 옹킴 김치를 2016년에 CJ에 매각했다. 이제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커피사업이다. 호치민 중심가에 ‘옐로 체어’이라는 커피 쇼룸도 만들었다. 베트남에 있는 우수한 커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아쉬워서 시작한 사업이다. 그곳을 이제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젊은이를 위한 공간으로 바꿀 생각도 하고 있다. “코워킹스페이스처럼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하는 게 아니라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인을 위한 허브로 만들고 싶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필요하면 법률적 문제나 제도적 문제 등을 상담해 주고 싶다.”


이제는 김치왕 옹킴이 아닌, OKTA 호치민 지회 회장과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 국제자문역으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태곤 회장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글 jobsN 호치민=최광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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