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만 되면 입맛 뚝, 직장인의 유일한 낙 잃은 여자입니다

조회수 2020. 9. 18. 15:24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할리스 대표 메뉴 개발자 황정희 팀장
커피전문점의 핵심 부서 음료개발팀
할리스 대표 메뉴 개발자 황정희 팀장

회사생활의 낙 점심 식사의 즐거움을 모르는 직장인이 있다. 하루 종일 커피와 음료, 디저트를 맛보느라 늘 점심때 입맛이 없다. 바로 커피전문점 할리스에프앤비의 R&D(음료개발)팀 황정희 팀장(41)이다.


황팀장은 외식할 때 음료를 시키지 않는다. 오감(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을 이용해 음료를 맛보는 ‘관능 평가’를 위해 예민한 오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신 새 음료 출시를 앞두면 시제품 한잔을 모두 마신다. “첫맛과 끝맛은 어떤지, 따뜻한 음료라면 식었을 때 맛은 어떤지 등을 분석해요.”


점심시간의 낙을 포기한 덕분에 색다른 음료와 디저트를 만들 수 있었다. ‘7초에 1잔씩’ 팔리는 ‘딸기치즈케익할리치노’는 딸기와 치즈케이크라는 색다른 조합을 시도한 사례다. 딸기엔 생크림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할리스의 대표 메뉴 ‘시그니처 음료’로 만든 빙수 ‘시그니처 빙수’, 카페라떼 위에 크림을 얹은 '크림라떼', 커피 추출법을 달리한 리스트레또 시리즈도 대표 메뉴다.


1998년 국내 첫 커피전문점으로 문을 연 할리스의 2017년 매출은 1409억원, 영업이익은 154억원. 최근 5년사이 매출(104.1%)과 영업이익(114.3%)이 모두 2배 이상 늘었다. 매출 80% 이상은 음료에서 나온다. 음료와 디저트를 만드는 음료개발팀이 회사의 핵심 부서다. 황 팀장과 6명의 동료들이 함께 일한다. 황 팀장에게 음료개발자의 일하는 방식과 취업 비결을 들었다.

출처: jobsN
할리스에프앤비의 R&D(음료개발)팀 황정희 팀장

24시간 일상생활이 영감의 원천


음료개발자의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나눈다. ①음료·디저트 시장 조사와 트렌드 분석 ②신메뉴 기획·개발 ③기존 메뉴 관리 등이다. 할리스는 계절(시즌)마다 새로운 음료를 내놓는다. 케이크나 빵 같은 베이커리 메뉴까지 합치면 한해 100여가지 신메뉴가 나온다.


메뉴를 만들기 위해 1년 전부터 사전 조사를 한다. “1년 후 시즌 메뉴를 기획할 담당자를 미리 정합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니, 내년 겨울 음료를 내놓기 위해 지금부터 사전 조사가 필요하죠. 경쟁사 신메뉴 반응을 살펴보고, 해외 디저트 트렌드도 공부해야 합니다. 디저트는 타이밍이 중요해요. 너무 느려도 빨라도 안됩니다.”

출처: 황정희 팀장 제공
할리스에프앤비의 R&D(음료개발)팀.

참신한 아이디어는 별안간 떠오르는 게 아니다. 일상 속 관찰이 중요하다.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24시간 일상생활이 영감의 원천입니다. 잡지를 보다가,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색 조합이나 디자인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둡니다. 음료나 케이크에 응용할 수 있으니까요.”


2016년 봄 시즌 메뉴였던 딸기치즈케익할리치노는 오래전부터 ‘딸기와 궁합이 맞는 재료’를 찾다 탄생한 음료다. 딸기는 봄마다 늘 인기 있는 과일이지만, 최근 몇년새 가격이 떨어지면서 찾는 사람이 더 늘었다. “딸기와 초코, 딸기와 생크림은 누구나 좋아하는 플레이버(Flavor·맛과 향)입니다. 색다른 딸기 조합을 찾고 싶었어요. 처음엔 딸기와 치즈 조합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먹어보니 딸기와 치즈가 새콤달콤하게 어울려 좋았습니다. 새로운 맛의 조합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시 6개월 전부터 메뉴를 구체화한다. 팀원 회의, 전사 회의, 소비자 조사를 거쳐 시즌의 주제와 메뉴의 방향을 정한다. “‘마시는 케이크'를 콘셉트로 잡았습니다. 두가지 이상 재료를 섞은 혼합음료를 고객들이 좋아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오렌지주스보다는 망고오렌지주스가 뭔가 하나를 더 얻어 가는 느낌이라 하더라구요. 고객에게도 이런 인상을 줄 수 있겠다 싶었죠.”

출처: 할리스에프앤비 공식 블로그
(왼쪽) 딸기치즈케익할리치즈.

메뉴를 만들 때 필요한 소스나 시럽도 할리스가 직접 개발한다. 원하는 맛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레시피는 개발팀뿐만 아니라 전직원 대상 사내 테스트에서 의견을 수렴해 수정의 수정을 거듭한다. 마케팅 요소인 비주얼도 고려해야 한다. 고객이 음료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고 싶게끔 만들어야 한다.


딸기치즈케익할리치노는 지금의 제조법을 만들기까지 100여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고객이 음료를 받아 보면 전체적으로 색이 하얗고, 딸기잼이 천천히 스며들어 색이 변합니다. 처음에는 하얗게 할지, 첨부터 재료를 모두 섞을지 고민이었어요. 이 과정에서만 레시피가 최소 50번은 바뀌었습니다. 고다·체다·마스카포네 같은 다양한 치즈의 조합, 음료 안에 들어가는 레몬즙·레몬주스 등 재료 배합도 서른번이 넘는 시행착오가 있었죠. 또 휘핑 위에 올라가는 딸기잼 개발할 때 스무번은 레시피를 고쳤을 겁니다.”


음료개발팀은 매장을 관리하는 운영팀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음료는 전국 매장에서 같은 맛을 내야 한다. 고객에게 빠르게 내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법이 번거로워서도 안된다. “처음엔 제조법이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딸기잼을 굳이 올리지 않고 섞으면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섞어버리면 고객이 치즈의 고소함, 딸기의 상큼함을 다양하게 느낄 수 없었어요. 이 부분만은 저희팀 의견을 고수했죠.”

출처: 할리스에프앤비 공식 인스타그램
크림라떼. 카페라떼 위에 자체 개발한 크린티 크림이나 밀크티 크림을 얹었다. 음료 바닥에 깔려 주목받지 못했던 그린티, 밀크티 음료의 층을 뒤집은 발상의 전환 사례다.

최종 완성 메뉴는 직영점을 중심으로 테스트하다 500개 매장으로 확대한다. 음료를 출시했다고 맘을 놓을 순 없다. “예기치 못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요. 매출 추이를 보면서 시즌이 끝날 때까지 관리를 해야 합니다.” 딸기치즈케익할리치노 원래 특정 기간에만 파는 시즌 메뉴였지만 반응이 좋아 상시 메뉴로 자리 잡았다. 시즌메뉴가 한달에 7만잔 이상 팔리면 상시 메뉴 검토 대상이다. 장기적으로 재료를 수급할 수 있는지 등을 파악해 계속 판매할 여건이 된다면 시즌메뉴가 상시메뉴로 자리 잡는다.


베테랑 음료전문가 되기까지


황팀장은 서울여대 식품영양학과 96학번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를 꿈꿨다. “당시 학원이 있던 것도 아니고 배울 곳이 없었어요. 알아보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푸드스타일링을 배울 수 있었죠. 수강생은 전부 어머니였고 저만 대학생이었어요.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넘칠 때라 제가 반장을 하겠다고 먼저 나섰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 조은정 선생님이 강사였는데, 그 인연으로 선생님을 도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출처: /jobsN

광고 어시스턴트로 일한 경력을 살려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취업 준비를 했다. “대기업에서 조직생활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사회초년생이 프리랜서로 사회 속에 뛰어들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알바 경력이 있었지만 외환위기 직후인데다 말을 조리 있게 못 해 취업이 쉽진 않았어요. 도움받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 거울 보면서 웃는 연습하고, 자기소개를 달달 외웠죠.”


9번 연속 탈락의 고배를 마시다 10번째 도전한 아워홈(당시 LG유통)에 영양사로 입사했다. 성과 좋은 직원이었다. 최연소 우수사원 표창, 고객 감사패, 메뉴 개발 콘테스트 대상을 받았다. 8년 4개월을 일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쓰지조리학교 카페클래스에서 커피를 배웠다. “대학 시절 쓴 자기소개서를 보니까 ‘10년 후 메뉴개발 팀장이 되겠다’고 적었더라구요. 새로운 커리어를 고민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2000년대 후반 국내에서 카페가 생길 때라, 커피와 디저트 개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취업 준비가 그랬듯 유학도 맨땅에서 헤딩하듯 바닥에서부터 준비했다. “일어는 조금도 할 줄 몰랐어요. 당시 환율도 1엔당 1600원 할 때여서 유학하기 좋지 않았죠. 더 늦기 전에 빨리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출처: 황정희 팀장 제공
(맨 왼쪽과 맨 오른쪽) 일본 쓰지조리학교 카페클래스 유학 시절 황 팀장. "유학 시절 서비스업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세웠어요.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친구들에게 '아르바이트할 때 보람이 뭐냐'로 물으면 다들 뭐라고 답했는줄 아세요? '고객이 내 서비스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때 행복하다'고 했어요. 이전에 저는 승진이나 커리어 개발이 목표였는데, 일본 친구들 말을 듣고 서비스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2011년 카페베네를 거쳐 2014년 할리스로 이직했다. 그가 할리스에 입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빙수 개발이었다. 당시 할리스 빙수는 식감이 거친 얼음 빙수였다. 우유를 얼려 눈꽃처럼 간 눈꽃 빙수를 내놓기로 했다.


기존 기계로 눈꽃 빙수를 만들 수 없었다. 매장에 새로운 기계를 들여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점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황 팀장과 개발팀 직원들은 두달 동안 기계를 들고 전국 매장을 돌아다녔다. “눈꽃빙수가 대세이고 매출 향상에 도움이 되는 등 장점을 설명했습니다. 점주분들이 동의하지 않는 방식을 억지로 도입해선 고객에게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요즘 그의 고민은 상권별로 선호하는 음료가 다른 고객을 위해 어떤 메뉴를 만드느냐다. “주거·오피스·상업 상권별로 잘 나가는 메뉴가 다릅니다. 상업 상권은 케이크가 잘 나가고 오피스 밀집 지역은 식사류가 인기 있죠.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에요.”

출처: 할리스 공식 블로그
할리스커피 부산송정점.

지원자 면접 전 이력서·자소서 꼼꼼히 봐


할리스는 바리스타, 파트타이머 등 직영점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뽑는다.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경우 아직까지 경력직 채용이 많다. 파트타이머 등으로 할리스 매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대한다. 기업 연봉 정보 크레딧잡을 보면 할리스에프앤비 평균연봉은 2068만원이다. 직원수는 815여명. 여성직원 비율이 70%다.


황 팀장이 말하는 음료개발자에게 필요한 역량은 ‘음료 만드는 과정을 즐기고, 자신이 만든 음료가 인기를 얻어 매출을 증가시키는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음료개발팀 직원을 뽑는 면접에 황 팀장이 항상 들어간다. 면접을 보기 전 지원자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1시간 이상 꼼꼼히 살핀다. 지원자에게 물어볼 질문도 미리 정리한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면 금방 들통 난다.


“예를 들어 망고 빙수를 개발한 적이 있는 지원자라면 ‘망고 원산지 어디꺼썼나요’ 물어봅니다. 직접 개발하지 않았다면 잘 대답하지 못합니다. 간혹 다른 사람 혹은 팀에서 개발한 걸 자신이 개발했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또 기본적으로 저희 회사에 관심이 있어야겠죠. 특정 메뉴가 맛있다면 왜 맛있는지, 경쟁사와 대비에 어떤 강점이 있는지 정도는 정리해두는 게 좋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