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용 트렁크 입어보니 신세계..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18. 15: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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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속옷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취지로 시작한 케인피오니어
불편한 속옷 입던 경험이 발판
언젠가 트렁크 입은 여자 마네킹 봤으면

“대학에서 옷만 공부했는데, 정작 속옷 만들려니 너무 배울 게 많더라고요.” 케인피오니어 조상훈(25) 디자이너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로 저희는 말하고자 했던 바를 모두 말했으니 성공 아니겠어요?” 옆에 있던 조수현(24) 디자이너가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은 케인피오니어를 공동 창업했다.


‘편한 속옷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취지로 시작한 케인피오니어는 지난 8월 한 달간 호평을 받으며 크라우드 펀딩을 마무리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다. 10월 2차 펀딩을 앞둔 그들을 jobsN이 만났다. 

출처: 케인피오니어 제공.
케인피오니어의 공동창업자 조상훈(왼쪽) 디자이너, 조수현 디자이너.

불편한 속옷을 입던 경험에서 시작한 케인피오니어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상훈) “현재 남성복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조상훈입니다. 케인피오니어의 남성 제품을 디자인 했어요. 케인피오니어가 ‘여성용 드로즈’(W.drawers)로 유명해졌지만 남성 이너웨어도 만듭니다.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이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수현) “케인피오니어의 여성 속옷을 디자인한 조수현입니다. 대학에선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패션은 졸업 이후 배우기 시작했죠. 저희 둘을 남매로 많이 보시는데 그냥 같은 유학원에서 만난 동기사이에요.”


드로즈는 몸에 딱 붙는 짧은 사각 속옷으로, ‘복서 브리프’(Boxer brief)라고 한다.


-케인피오니어란?


(수현) “케인피오니어(Kein Pionier)는 독일어로 ‘선구자가 아니다’라는 의미에요. 'Kein'은 독일어 발음대로 읽은 '카인'보다 미국식 발음이 덜 어색하다고 생각해 '케인'으로 표기했어요.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존 문제의식에 공감해 확대해보고자 만든 기획입니다. 대부분 속옷이 불편한 현실에서 저희 제품의 편안함이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올 수는 있겠죠.”


케인피오니어를 통해 ‘여기 편한 속옷도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티팬티, 삼각팬티, 레이스 달린 속옷을 입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저도 꽉 끼는 바지 입을 때는 여전히 삼각을 입는걸요.”


(상훈) “저희 제품을 ‘젠더리스(genderless)’ 속옷이라 불러요. 디자인을 할 때, 남녀의 신체적 차이점은 고려했지만 겉보기로는 여자 팬티도 남자 것과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저희도 옷을 만져봐야 알지 맨눈으로는 구별 못해요.”


(수현) “ ‘편한 여자 속옷’이라는 선택지를 하나 늘리고 싶었어요. 성별을 이유로 굳이 불편한 이너웨어만을 입을 필요는 없잖아요.


성인 여성 속옷은 대부분 8살 아이 속옷 사이즈와 같고 레이스나 리본 같은 장식이 있습니다. 허벅지나 엉덩이 부분도 매우 짧아요. 가족밖에 없는 집에서도 속옷만 입고는 다닐 수 없습니다. 위에 뭘 입지 않아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홈웨어(home wear) 속옷’을 만들고자 케인피오니어를 시작했습니다.”       

출처: 닷페이스 '그리고 팬티에 레이스는 왜 달아?' 캡처
조수현 디자이너가 8살 남아와 성인 여성 속옷 크기를 비교하고 있다.

-어떻게 케인피오니어를 시작했어요?


(수현) “어느날 친구가 남성용 복서 브리프를 사입고 나서 엄청 편하다는 말을 했어요. 저도 한 번 입어보니까 정말 너무 편하더라고요. 신세계에 온 기분? 그전까진 저도 그렇게 작은 여자 팬티가 불편한지도 모르고 살았죠.


그런데 막상 이걸 입고 밖에 나갈 수가 없잖아요. 남성 속옷은 앞부분이 돌출형이니까. 치마나 츄리닝안에 입기도 민망하고. 그래서 내친김에 여성용 드로즈를 만들어보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상훈) “유학원 수업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는데 수현이가 함께 하자고 했어요. 마침 꽉끼는 속옷이 질염의 원인이라는 뉴스를 보고 여성도 편한 속옷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죠. 이게 올해 1월이었는데, 마침 유학 시험 합격 발표가 딱 나와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여유가 있었습니다.”    

출처: 케인피오니어 제공.
케인피오니어의 남성용 드로즈(좌)와 여성용 드로즈(우).

-다른 브랜드에도 비슷한 제품이 있지 않나요?


(수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여성 드로즈는 온라인 홈쇼핑에서 ‘여성 팬티’를 검색하고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한 두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엉덩이 부분은 좀 내려오는데 앞은 타이트한 삼각 모양인 경우가 많아요. 여성용 트렁크는 여성용이 없다고 봐요.”


(상훈) “남자 팬티의 경우 앞의 소변구를 없앴어요. 사실 저도 그렇고 50명이 넘는 주변 남자 지인에게 물어봤는데, 소변구를 사용해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남녀 제품의 외양이 같아질 수 있었죠. 입기에 불편하다는 의견은 전혀 못들었어요.”


-그냥 여자들도 큰 팬티나 남자 것을 입으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수현) “여성들이 여유있는 착용감을 원해 큰 팬티를 입으면 윤곽선이 비쳐 민망합니다. 허벅지가 말려 올라가서 동작도 불편해져요. 저희도 드로즈 첫 번째 샘플이 허벅지가 말려올라가 4차 샘플링까지 한 끝에 말림 없는 속옷을 완성했습니다.


또 남자 팬티를 입으면 생리대를 부착할 수 없잖아요. 저희는 여성 드로즈 안에 날개를 부착할 수 있는 부분을 달아 놓았어요.”


(상훈) “여성과 남성은 신체적 차이가 있어요. 그걸 고려하지 않고 만든 속옷은 당연히 불편해요. 여자에겐 여자 속옷이, 남자에겐 남자 속옷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출처: 케인피오니어 제공.
조수현 디자이너가 작업을 하고 있다.

케인피오니어 별명은 ‘적자’피오니어


-제품 출시까지 많이 바빴다고 들었습니다.


(수현) “1월부터 시작해 첫 크라우드 펀딩이 끝난 9월 초까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끝무렵엔 거의 2시간밖에 못잤죠.”


(상훈) “제품 구상부터 기존 제품 리서치, 원단 선정, 디자인·샘플링·배송 등 A부터 Z까지 저희 둘이 다 했어요. 이너웨어를 판매하는 시중 매장은 고급 브랜드부터 동대문 시장까지 싹 다 가봤습니다. 저나 수현이나 팬티를 몇 벌 입어봤는지 셀 수도 없어요.”


-1차 크라우드 펀딩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수현) “네. 정말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셨습니다. 펀딩 목표 금액이 당초 500만원이었는데, 788만 4000원이 모였어요. 제품을 구매하신 분만 약 200명이고, 1000장 이상 팔렸습니다. ‘○○에게’라는 이름으로 주문해 여자친구에게 선물하는 남자분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적자가 났다고 했는데.


(상훈) “정말, 1차 크라우드 펀딩으로 번 돈은 하나도 없습니다(웃음). 약 9개월 동안 프로젝트하면서 쓴 비용을 합하면 2700만원이 넘어요. 펀딩 직전에는 빚만 700만원이었습니다. 788만원 후원액으로 빚을 갚고 적자일 수 밖에 없었죠.”


(수현) “애초에 이윤을 추구하려고 한 프로젝트가 아니지만, 사업 경험 없이 욕심만으로 덤빈 것 같아요. 재료비 등 고민 없이 ‘좋은 제품 만들어보자’는 생각만으로 시작했으니까요. 2차 크라우드 펀딩 때에는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제품 종류도 줄이려고요. 적자를 피하고 같은 질의 옷을 더 싸게 공급하려고 합니다.”

출처: 케인피오니어 제공.
조상훈 디자이너가 작업을 하고 있다.

유명 브랜드 쇼윈도에서 트렁크 입은 여자 마네킹 보고파


-첫 사업을 치른 소감은 어떤가요.


(수현) “이루말할 수 없이 뿌듯합니다. 특히, 한 매체와 진행했던 인터뷰 영상이나 저희 인스타그램에 달리는 댓글을 보고 기분이 좋았어요. 많은 분들이 응원의 메세지 읽으면, 우리의 작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훈) "네이버에 여성 드로즈 연관 검색어로 케인피오니어가 떴을 때, 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수현) “‘케인피오니어를 보고 나서야 얼마나 여자 속옷이 불편한지 알았다’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나부터 바뀌어보자’ 시작한 케인피오니어가 많은 사람의 시각을 바꾼 것만으로도 성공입니다. 케인피오니오의 모토는 이대로 쭉 나갈 거에요. 언젠가는 유명 속옷 매장 쇼윈도에서 트렁크를 입은 여자 마네킹도 봤으면 좋겠습니다.”


(상훈) “저희 둘 다 내년부터 영국 패션 스쿨(London College of Fashion)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나 케인피오니어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다면 다시 2019 컬렉션으로 다시 돌아올 생각도, 사업을 확대할 계획도 있어요. 케인피오니어가 더 커진다면, 속옷 하의 말고도 와이어리스(wireless) 브라나 가운 등 편한 홈웨어를 하나 둘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글 jobsN 정경훈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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