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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지옥’이란 걸 알지만…닭 튀길 수 밖에 없었어요

전 세계 맥도날드보다 많은 한국 치킨집, 한국이 자영업자 비중 세계 6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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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N 작성일자2018.10.12. | 7,475 읽음
한국 자영업자 비중 멕시코, 칠레에 이어 OECD 중 6위
후진국형 단순 음식·숙박업 자영업자 비중 높아
퇴직 후 재취업 어렵고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한 원인

“기승전 치킨집.”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어느 학교를 나와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결국엔 치킨 장사를 한다는 우스갯소리다. IT기업이 몰려있는 판교에는 “코딩하다 궁금하면 치킨집 사장에게 물으면 된다”는 농담도 있다. 이 말들 속엔 웃고만 지나갈 순 없는 뼈가 있다. 그만큼 생계형 자영업자가 많다는 뜻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2018년 8월 기준 568만1000명이다. 무보수로 가족의 가게에서 일하는 무급 가족종사자(118만1000명)를 합치면 총 686만2000명이 국내 자영업자다. 한국의 전체 취업자가 2690만7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비율은 전체 취업자 대비 25.5%(OECD 2017년 기준은 25.4%)다.


한국의 자영업자 규모는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과도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낮고 고용의 질적 구조가 좋지 못한 나라일수록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 ‘아시아의 푸른 용’으로 불리던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이 왜 이렇게 높을까. jobsN이 그 이유를 분석했다.

2017년 기준 OECD 국가별 자영업자 비율. 한국은 6위다.

출처 : OECD

음식점과 숙박업에 집중된 한국 자영업자


OECD 37개국 중 한국보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51.9%), 그리스(34.1%), 터키(32.7%), 멕시코(31.5%), 칠레(27.4%) 등 5곳뿐이다.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OECD 37개국 평균인 16.9%보다 8%포인트 이상 높다. 미국(6.3%)의 4배, 일본(10.4%)과 독일(10.2%)의 2.5배다. 단순 자영업자 수로 비교하면 한국의 자영업자 수는 미국(1299만8000명), 멕시코(1172만1000명)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많다.


한국의 자영업자 규모는 장기적으로 보면 지속 감소 추세다. 하지만 비슷한 GDP 규모의 타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이례적이다. 국내 자영업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도소매·음식숙박업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60대 베이비붐 세대가 창업 전선에 많이 나오고 있는데, 주로 치킨집 등 음식점에 쏠린다”며 “20대 창업은 대부분 커피 전문점에 집중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너도나도 치킨집을 내면서 한국의 치킨집 개수는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보다 많아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전국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2만2630개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동네 닭 강정집, 불닭집, 개인 치킨집까지 포함하면 4만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인 3만6000여개보다 많다.

일명 '치킨트리'라 불리는 표. 무슨 학과를 나와 무슨 일을 하든 결론은 치킨집을 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경직된 노동시장과 미흡한 사회안전망이 생계형 자영업 낳아


높은 자영업자 비율은 경제 정체나 쇠락의 상징이다. 산업화가 미흡하거나 경쟁력 있는 기업이 별로 없는 국가에서 자영업자 비율이 대체로 높다. 취업 희망자는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영업에 나선다. 하지만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육박한다. 삼성, 현대차 등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기업들도 있기 때문에 산업화 부진이 자영업자 증가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높은 자영업자 비율을 노동시장 경직과 사회안전망 미비에서 찾는다. 한국은 대기업에서 퇴사해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직도 다른 나라보다 자유롭지 않다.


고용보험 가입률이 낮고 실업급여 수준도 낮다. 직장 퇴직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치킨집으로 대표되는 창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김규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은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 현황’을 보면 그 실태가 드러난다. 올 7월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는 1만7998명으로, 2012년 2만명보다 줄어들었다. 이는 전체 자영업자의 0.3% 수준도 안 된다.


여기에 최근 금리가 상승하고 대내외 다양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의 주변 환경이 악화한 것도 자영업자 증가의 한 원인이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투자와 채용을 줄인다.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기존 일자리에서 이탈한 실업자, 직장 퇴직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자 대안으로 창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창업은 기술이 없는 생계형 창업이 대부분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신규 자영업자들의 창업준비기간은 1~3개월 미만 비율이 가장 높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생계가 급하기 때문에 기술형 창업보다는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카페, 식당, 치킨집 등의 업태로 창업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며 “20대는 카페, 60대는 치킨집이라는 말이 이렇게 나왔다”고 했다. 경기도 일산의 한 치킨집 사장은 “치킨집에 뛰어드는 사람들 모두 ‘장사=지옥’이라는 걸 다 안다”며 “하지만 자영업 외에는 별다른 생계유지 수단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너도나도 자영업자가 되는 이유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치킨을 튀기는 모습.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쓰러지는 자영업자, 국가 경제 휘청


국내 자영업자의 매출액 규모(통계청, 2015년 기준)를 보면, 연 매출액이 1200만원~4600만원 구간에 속하는 자영업자 비중(30.6%)이 가장 크다. 연 매출 8800만원 이하인 자영업자는 전체의 66.4%다.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 나서는 사람이 많지만 이들의 소득이 높지 않다는 얘기다.


최근엔 자영업자의 주머니 사정이 더 안 좋아졌다. 영세 자영업자는 경기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경제상황이 나아지면 가장 나중에 그 효과를 체감하는 특징이 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올 9월 발표한 외식산업 통계를 보면 쓰러져가는 자영업자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7월 음식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내 음식점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의 시장경기동향은 각각 52.1, 34.4였다. 지난 5월 60~70 수준이었던 수치가 급락한 것이다. 전통시장 동향지수가 30대 수준인 것은 통계가 공개된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이 수치는 100이 넘으면 시장 상황이 호전됐다는 것이고, 100 이하면 악화했다는 뜻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분식집 사장은 “자영업자에겐 희망이 없다. 당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위험성이 크다. 경기가 안 좋으면 자영업자는 1차로 피해를 받아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작년 자영업 폐업률은 2017년보다 10.2%포인트 상승한 87.9%로 역대 최고치였다. 국세청 국세통계를 봐도 도·소매업과 음식, 숙박업 등 자영업 4대 업종은 작년 48만3985개가 새로 생기고 42만5203개가 문을 닫았다. 10곳이 문을 열면 8.8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로봇이 커피를 뽑아주는 로봇 카페와 로봇이 호텔 접수를 맡는 로봇 호텔의 모습.

출처 : 유튜브 캡처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미래의 일자리의 52%가 컴퓨터나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음식·숙박업 자영업자 등은 생사의 기로에 몰리고 있다. 숙박업·음식점업·금융보험업·도소매업·건설업·운수업·부동산업 등은 로봇으로 대체될 고위험 업종으로 꼽힌다. 벌써 일본과 미국에서는 로봇이 음식을 내어주는 로봇 카페와 로봇 식당, 로봇이 접수대를 맡는 로봇 호텔 등이 생겼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영업자 고비율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산업 고용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기술형 지속 불가능한 자영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우고,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령화 추세 속에 노후소득도 안정적이지 않아 자영업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우선적으로 연금 체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규환 의원은 “최소한의 미래를 준비하기도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확대해야 한다”며 “고용보험의 중요성과 가입절차를 널리 알리고, 제도의 미비점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jobsN 김성민

디자인 플러스이십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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