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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비닐봉지 때문에 단식투쟁 한 10대 소녀의 일침

조회수 2020. 9. 21. 22: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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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사용하지 말라'라며 단식 투쟁까지 한 자매
청소년 주축 환경운동단체 BBPB
발리에서 사는 10대 자매가 창업
발리 주지사·제인 구달 등 지지 이끌어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관광 장소이자 서핑 명소였던 인도네시아 발리가 이제는 ‘쓰레기 섬’으로 불린다. 관광객이 버리고 가거나 바닷물에 밀려온 각종 쓰레기가 발리 해변을 뒤덮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건 비닐봉지. 발리에는 하루 68만 리터의 비닐봉지가 쌓이는데, 재활용률은 5%에 불과하다. 

쓰레기 속에 파묻힌 발리를 구하기 위해 나선 건 정부나 유명인이 아닌 어린 소녀들이었다. 주인공은 발리에서 나고 자란 멜라티 위즌(melati wijsen·17)과 동생 이사벨(isabel·15)이다. 이들은 2013년 환경운동단체 ‘바이바이플라스틱백스’(BYE BYE PLASTIC BAGS·BBPB)를 만들어 세계적인 조직으로 키웠다. 25개국 청소년들이 BBPB와 함께하고 있다. BBC·CNN·포브스·알자지라 등 유력 매체가 앞다퉈 자매를 취재했다.


2015년엔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선 청소년을 대표해 연설을 했다. 런던에서 강연한 TED 영상 조회수는 150만건을 넘는다. 제주도에서 열린 ‘세계리더스보전포럼’에 연사로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멜라티 위즌을 만났다.

출처: 2018 세계리더스보전포럼 제공
10월 3~5일 제주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리더스보전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멜라티 위즌.

주지사 서명 얻기 위해 단식투쟁도


자매가 BBPB를 창업한 건 발리 그린 스쿨(Bali Green School)에서 받은 교육 영향이 컸다. 그린 스쿨은 친환경을 중시하는 대안학교다. 대나무로 건물을 만들었고 태양열에서 전기를 얻는다. 캐나다 출신 보석 디자이너 존 하디(John Hardy)가 설립했다. 자매는 학교에서 넬슨 만델라, 다이애나 황태자비 등 세상을 변화시킨 ‘체인지 메이커’들에 대해 배웠다. 자매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대학 졸업장을 딸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비닐봉지에 주목했어요.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서핑하면서 해변에 비닐봉지가 너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미 40개 국가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발리에서 비닐봉지를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업 계획도, 예산도 없었지만 열정 하나만 갖고 시작했어요.” 

출처: BBPB 제공
(왼쪽부터) 멜라티와 이사벨.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서명 운동부터 시작했다. 시민단체 아바즈(Avaaz) 홈페이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서명을 받기로 했다. 멜라티는 소셜미디어의 강력한 힘을 이용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 비닐봉지가 일으킨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렸다. 발리의 비닐봉지 문제를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이슈로 떠오르게 만든 것이다. “10대 청소년들은 소셜미디어에 영향을 받고, 또 소셜미디어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짧은 시간 안에 접촉할 수 있죠. 저희가 진정성을 갖고 좋은 의도로 이런 운동을 한다는 걸 소셜미디어로 알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습니다.”


발리 공항에 한해 1600만명이 출·입국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공항에 찾아갔다. BBPB의 취지에 공감한 공항 측은 자매가 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출국장에서 테이블을 깔아두고 발리에서 놀다 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발리에서 머물며 비닐봉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아니까요. 사람들이 캐리어를 놓고 쉴 때 펜을 주고 서명을 부탁했습니다.”


10만명에게 서명을 받았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망쿠 파스티카(Mangku Pastika) 발리 주지사의 서명이 필요했다. 자매는 마하트마 간디에게 영감을 받고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단식 전 영양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등 계획을 철저히 세웠다. “저희가 어리기 때문에 24시간 단식은 할 수 없었습니다. 해가 뜬 순간부터 해가 지기 직전까지만 단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저희 단식 투쟁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알렸어요. 많은 분들이 지지를 보내줬습니다.”


자매의 단식 투쟁은 발리에서 화제였다. 단식 3일째 날 주지사가 자매를 불렀다. “발리 주지사의 서명이 뭘 의미하냐면, 발리 시민들이 비닐봉지를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노력하겠다는 겁니다. 또 2018년까지 발리를 플라스틱이 없는 섬으로 만들겠다는 공식 문서에도 발리 주지사가 서명했습니다.” 

출처: BBPB 제공
(왼쪽부터) 망쿠 파스티카 발리 주지사가 '발리 사람들이 비닐봉지를 쓰지 않도록 만드는 데 동의하겠다'는 청원서와 서명, 망쿠 파스티카 발리 주지사가 2018년까지 발리에서 플라스틱을 없애도록 하겠다는 서명.

정책이나 법적 문제 자문을 받기 위해 지역 변호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BBPB에는 3명의 변호사가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자매는 비닐봉지 대신 ‘대안 가방’을 만들어 지역 상점 등에 나눠주는 ‘파일럿 빌리지 프로젝트’도 했다. 800가구가 사는 페레레난(pererenan) 등 특정 지역 상점에 대안 가방을 나눠주고 다른 지역으로 비닐봉지 금지 운동이 퍼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역 정부가 적극적으로 BBPB를 도왔다. 또 초등학생 대상 교육 책자를 만들어 학교에 배포하고 전세계에 강연을 하러 다녔다.

출처: BBPB 제공
(왼쪽부터)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 상점에 붙이는 스티커와 대안 가방, 교육 책자를 보는 학생들

제인 구달 등 유명인의 지지도 얻어 내


동물연구가이자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BBPB를 지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제인 구달과는 2014년 플라스틱 프리 판타스틱 페스티벌에서 만났습니다. 저희에게 루츠 앤 슈츠(제인 구달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청년 환경운동단체)라는 단체를 알려주고 큰 영감을 줬습니다. 제안 구달도 비닐봉지 금지 청원에 지지하는 서명을 했어요. 반기문 전 총장에게는 서명을 받진 못했지만, 저희가 유엔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은 특정 청원서에 서명하지 않는다고 해요.”

출처: BBPB 제공
이사벨과 제인 구달. 제인 구달이 비닐봉지 사용 금지 운동에 서명을 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BBPB를 지지하는 글을 흔히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물론 전세계 유명인들이 응원을 보낸다. “세계적인 서퍼 스테파니 길모어,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서퍼 잭 존슨도 저희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어요. 셀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저희를 지지해줘서 놀랐고, 많은 사람들이 비닐봉지 규제에 찬성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 상점이나 호텔에는 BBPB가 만든 스티커를 붙이고 언론에 이름을 홍보한다. 이 프로젝트를 'One Island One Voice'라고 부른다. “로고는 공모전을 통해 만들었습니다. 창구(canggu)에 사는 한 학생이 만들었는데 그 학생이 다니는 반에 아이스크림을 보내줬어요. 스티커 로고는 25개입니다. 저희가 진출한 나라마다 고유의 스티커를 쓰기 때문입니다. 발리는 사원,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 호주는 오페라 하우스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을 로고에 넣었습니다.”

출처: BBPB 인스타그램 캡처
'One Island One Voice' 캠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One Island One Voice를 의미하는 제스처를 취한 모습.

2017년 2월에는 발리 해변과 강가, 길가를 덮은 쓰레기를 치우는 운동을 했다. 2만명의 청년들과 하루에 65톤의 쓰레기를 치웠다.


아직 발리 정부가 비닐봉지 사용을 법으로 규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BBPB와 멜라티, 이사벨 자매는 비닐봉지가 결국에는 인간의 목숨을 위협할 것이며, 비닐봉지 말고 대체 가방을 쓸 수 있다는 인식을 퍼뜨렸다.


“발리 시민 사이에서는 비닐봉지를 쓰지 말자는 인식이 눈에 띄게 확산됐습니다. 이제는 발리 정부가 나설 때에요. 2018년 10월, 지금이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발리가 올해 IMF-세계은행 총회를 엽니다. 또 오션 컨퍼런스(The Ocean Conference 2018)도 개최해요. 전세계 다양한 인사가 모이는 자리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앞서 2025년까지 비닐봉지 사용 70%를 줄이겠다고 선언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진전은 없어서, 인도네시아 정부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BBPB는 정부에 비닐봉지 사용을 규제하라고 계속 제안하고 있어요.”

출처: BBPB 제공
2017년 2월 청년들이 모여 발리 해변을 치우는 'One Island One Voice' 캠페인, 발리 해변을 치우고 쓰레기를 분류한 모습

발리 정부는 2017년 말 ‘쓰레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환경미화원 약 700명과 트럭 35대를 투입해 매일 약 100톤에 달하는 쓰레기를 근처 매립지로 옮기고 있다.


BBPB 정규 멤버는 30명. 모두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이다. 대부분 행사는 학교 수업에 지장 받지 않도록 주말에 연다. 시민·기업·단체 기부금으로 단체를 운영하다, 자립성을 높이기 위해 8개월 전부터 ‘마운틴 마마스(Mountain Mamas)’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와리가리 카우(Wanagiri Kauh) 마을에 사는 여성들이 오래된 호텔 시트나 천 등을 재활용해 대안 가방을 만든다.


“마운틴 마마스에서 만든 대안 가방은 지역 상점에서 팝니다. 수익 50%는 저희 단체 운영비로 쓰고 나머지 50%는 어머니들이 사는 동네에서 씁니다. 쓰레기 처리·교육·보건 분야에 쓰고 있어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치나 통계로 설명할 만한 데이터는 없습니다만, 어머니들에게 일자리를 드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현재 40명의 어머니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쌀농사가 주 수입원이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하고 있죠. 저희가 재봉틀 등 장비를 구비해 둔 장소에 언제든 어머니들이 와서 일을 합니다.” 

출처: BBPB 제공
UN과 세계 해양의 날, TED에서 강연하는 모습.

일회용품 규제? 새로운 산업 만들 기회


멜라티는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컵을 규제한 지금이 또 다른 산업을 만들어 낼 기회라고도 말한다.


“우선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컵을 규제했으니 그때부터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안 용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면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또 정부가 주도해 플라스틱 컵을 대체할 테이크아웃컵 공모전을 열 수도 있죠. 발리에서는 대나무나 파파야 줄기로 일회용 빨대를 대신하고 있어요.”


멜라티와 이사벨은 발리에서 입국 심사를 할 때 검역관이 “신고할 비닐봉지가 있나요”라고 물을 날을 꿈꾼다. “르완다에서는 비닐봉지를 갖고 있으면 경찰에게 비닐봉지를 압수당하고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케냐에서도 작년 말 비닐봉지 사용을 전면 금지했어요. 저희도 할 수 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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