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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게임회사들이 화학섬유식품 노조에 가입한 이유

조회수 2020. 9. 21. 23: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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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게임 기업에 부는 노조 바람, 출발부터 다르네
주40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노조 설립 박차
불합리한 근무조건 개선 한목소리
IT연맹 아닌 화섬노조 가입

공동성명(共動成明), 스타팅포인트, SG길드.


각각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게임 기업 네이버∙넥슨∙스마일게이트의 노동조합 이름이다. 네이버 공동성명은 지난 3월, 넥슨 스타팅포인트와 스마일게이트 SG길드는 9월 초에 출범했다. 노조라면 투쟁적인 이미지를 연상하기 쉽지만, 이들 명칭에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출발부터 다른 이들 노조는 민주노총 IT연맹이 아니라 화학섬유식품 노조에 가입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인터넷∙게임 기업에 부는 노조 열풍이 주40시간 근무제 시행에 맞춰 일하는 방식을 바꿔가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지 IT업계 종사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터넷∙게임 기업에 부는 노조 열풍 왜?


인터넷∙게임 종사자도 노조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어제 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4년 전에도 네이버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총대를 메고 노조를 만들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인터넷∙게임 기업에서 이직이 자유롭다는 점도 노조 설립에는 걸림돌이었다. 인터넷∙게임 기업은 평균 근속기간 5년 정도다. 삼성전자의 평균 근속 기간 11.4년, SK텔레콤 12.1년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그만큼 이직이 잦다는 의미다. 노조가 없는 업계 분위기를 생각하면 노조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직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인터넷 분야 종사자들은 스스로를 ‘한국 인터넷 산업에 기여를 하고 있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게임업계 종사자도 게임을 완성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 회사에 대한 불만은 늘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불만이 쌓이면 회사를 옮기거나, 아예 독립해 창업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인터넷∙게임 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게임업체 종사자들은 대규모 업데이트나 신작 출시를 앞둔 시기 아예 퇴근 없이 며칠씩 밤새 일해야 했다. 이른바 ‘크런치 모드’라 부르는 집중근무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그 결과가 노조다.


지난 3월 가장 먼저 노조를 설립한 네이버 공동성명은 설립 하루만에 조합원 700명을 모집했다. 현재 자회사를 포함해 네이버 노조 조합원은 3000여명이 넘는다. 9월 초 이틀 차이로 나란히 노조 설립을 선언한 넥슨 스타팅포인트와 스마일게이트 SG길드도 노조 설립 한 달만에 조합원 1000명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꺼지지 않았던 판교의 밤.

주40시간 근무제 이후 달라진 현실


예전엔 밥 먹듯이 밤을 세도 야근 수당을 받기 힘들었다. 인터넷∙게임 기업 대부분이 야근과 휴일 근무 수당이 연봉에 들어가 있는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근을 할 때 교통비를 주거나 식사 비용을 주는 것으로 야근 수당을 줬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40시간, 주말 근무를 포함해도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없도록 근로기준법이 바뀌었다. 추가 수당 없이 한 노동이 불법이라는 법적 근거가 생기자 기업들도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출퇴근 시간을 직원이 정하는 ‘자율근무제’(네이버 책임근무제)를 도입했고,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면 그에 상응하는 휴가를 보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 회사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상태다. 오세윤 공동성명 위원장은 “책임근무제는 도입 취지를 잘 지킨다면 매우 좋은 제도지만 초과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용자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초과 근무를 수당도 없이 반복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오세윤(왼쪽부터) 네이버 공동성명 위원장, 배수찬 넥슨 스타팅포인트 위원장,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SG길드 위원장

IT연맹 아닌 화섬노조 가입 왜?


이들 3개 기업은 모두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이하 화섬노조)에 가입했다. 지난해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와 카페기사(바리스타)를 중심으로 만든 파리바게뜨 노조도 화섬노조 소속이다. 화섬노조가 IT 분야에 전문성이 있지는 않지만, 조합원 평균연령이 젊어 인터넷 게임기업과 공감대를 만들기 쉬웠다는 분석이다.


노조가 없는 파리바게뜨에서 노조를 만든 이력도 IT기업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조를 만들어 회사와 교섭하는 과정에 필요한 협상 기술이나 노동법 등을 교육하면서 신뢰감을 쌓았다. 파리바게뜨 노조 설립 이후 네이버 노조 설립을 지원하면서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의 사무직 노조도 화섬노조를 선택했다.


특히 기존 노동운동은 회사의 어려움은 아랑곳 않고 과도한 임금인상을 주장하며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잃었다. 반면 인터넷∙게임 기업 노조는 투명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서비스의 공공성을 주장하며 노조에 대한 거부감도 줄이고 있다.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분당∙판교에 위치하고 있고,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근무환경도 비슷해 서로가 다른 기업의 처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노조 선배인 공동성명이 스타팅포인트와 SG길드 설립 과정에서 적극 지원했다.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는 노조 가입 독려 선전전을 공동으로 했다.


회사 측 반응도 우호적이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넥슨 노조 출범 뒤 사내 공지를 통해 “노조 활동을 존중하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원만한 합의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또 “회사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업계에 귀감이 되는 근무환경과 조직문화 조성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네이버 노조는 단체협약 교섭을 하고 있다. 넥슨 노조도 10월 초 상견례를 시작으로 사측과 단체협약 협의를 시작한다. 최근에는 스마일게이트도 사측에 교섭을 요청했다. 신생노조가 인터넷 게임업체들을 어떻게 바꿀지 모두가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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