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외고 시절 수능끝나고 신문보다 벼락 맞은 것 같았어요"

조회수 2020. 9. 25. 15: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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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서울대 출신 엘리트, 진짜 똑똑함이란 이런 것!

외국인 위한 여행 사이트 ‘펀타스틱코리아’ 신승현 대표

신승현 ‘펀타스틱코리아(Funtastic Korea)’ 대표는 외국 친구들의 필요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사업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당신의 한국 친구(Your Friend in Korea)’가 되어주겠다는 ‘펀타스틱코리아(www.funtastickorea.com)’사이트에 들어가면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400여 가지 여행상품을 예약할 수 있다. 가평 남이섬과 쁘띠프랑스 투어, 강촌레일바이크, 롯데월드, 에버랜드, 캐리비안베이 등 외국인 관광객이 좋아하는 곳을 예약하거나 할인 티켓을 살 수 있고, 한복 빌려 입고 경복궁 방문하기, 유명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 받기, 홍대 앞 술집 순례, 전통시장과 오래된 식당 순례, 스튜디오에서 직접 부른 K팝을 녹음해 앨범을 만들고 뮤직비디오 촬영하기 등 다양한 한국 체험 프로그램도 예약할 수 있다.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된다면 여행객 수에 맞추어 택시부터 밴, 소형버스, 대형버스까지 기사 딸린 교통편을 실시간으로 예약하면 된다.


신승현 대표는 대원외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나와 연봉이 높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집 장만을 해야 잘 산다고 인정받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압박에 더욱더 얽매이는 것 같았고 갑갑함을 느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1년 동안 일본 규슈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서서히 생각을 바꿔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 있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습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꿈꾸는 외국 친구들을 보면서 ‘남들이 모두 원한다고 그게 좋은 길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그의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는 컨설팅 회사나 다국적 투자은행이 인기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광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수능을 치른 후 신문을 보다 ‘우리나라의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설을 읽고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관광산업을 위해 뭔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초등학교 5~6학년 때 미국에서 생활했고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외국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교수에게 “관광산업에 몸담으려면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더니, “건설회사에서 관광개발 사업도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과 함께 대우건설에 입사했다.


“입사 후 처음 참여한 사업이 ‘세빛둥둥섬’이었습니다. 서울시와 건설회사, 설계회사, 금융회사 등이 함께 모여 회의하면서 뭔가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2009년 초에 입사한 그는 2010년 8월, 1년 8개월 만에 퇴사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개발사업 대부분이 중지된 데다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려운 한국의 기업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는 퇴사 전부터 작지만 이미 자기 사업을 하고 있었다.


페북 친구 1500명 중 700명이 외국인


“일본에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귄 데다 귀국한 다음에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외국 친구들이 점점 늘어났어요. 제 페이스북 친구 1500명 중 700명이 외국인이었을 정도예요. 한국에 놀러 온 외국 친구들을 100팀 넘게 안내했을 거예요. 그 친구들은 유명 관광지에 데려가는 것보다 제 생활 그대로를 보여줄 때 제일 좋아했어요. 제가 속한 대학 동아리의 단골 막걸릿집, 제가 좋아하는 찜닭이나 갈매기살, 보쌈집에 데려가면 즐거워했어요.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지도나 한국의 생활문화가 담긴 엽서를 보내고 싶은데 마음에 드는 엽서가 없어서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디자인을 의뢰한 후 엽서를 인쇄하면 되겠더라고요. 회사에 다닐 때라 ‘내 월급을 투자하면 되겠네’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인디트래블’이란 이름으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2010년부터 2017년까지 30여 종의 엽서를 제작해 인사동이나 국립박물관 기념품점 등에서 판매했다. 그는 퇴사하자마자 외국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숙박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에 이메일을 보냈다. 관광산업의 핵심이 사람인데, 홈스테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너희 회사가 너무 좋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한국 여행을 온 에어비앤비 직원을 만났고,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았다. 에어비앤비 웹사이트를 한국어로 번역하고, 외국인에게 숙박을 제공할 호스트를 모으는 일이었다. 호스트 모으기가 여의치 않자 비어있던 부모님의 이태원 집을 손본 후 직접 외국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40년 된 낡고 오래된 집인데도 인기가 많았어요. 그때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들이 에어비앤비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8년째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 일을 잠시 쉬고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한 분, 교수 등 재미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앉아서 세계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죠. 홍대입구, 동대문 등에서도 원룸을 빌려 점점 규모를 늘려나갔습니다.”


디지털 노마드족으로 1년 살아보니

얼마 후 그 자신이 디지털 노마드가 되었다. 1년 동안 방콕, 파리, 런던, 뮌헨, 로마, 샌프란시스코 6개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일했다. 어느 나라에 있든 번역과 엽서사업, 숙박관리 등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 ‘모아둔 돈을 까먹지는 말자’는 목표를 세웠고, 그대로 되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니 숙박비를 포함해서 한 달에 300만 원 정도로 생활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저를 얽어매는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걸 삶의 4분의 1이 지나갈 때 겪는 위기(quarter life crisis)라고 하더라고요. 사춘기를 별로 겪지 않았던 제가 그때 바로 25세였거든요. 그런데 로마에 있을 때부터 슬슬 한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만큼 안전하고, 물가 싸고, 맛있고 싼 음식이 많은 곳도 없더라고요. 어디에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죠.”


그는 한국에 돌아온 후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하고, 사업도 시작했다. 사업 초기에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자금원으로 활용했다.


“외국인 친구가 많고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보니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본 강촌레일바이크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친구가 많았지만, 외국인은 예약하기 어려워 저한테 부탁하곤 했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친구들은 스키장에서 눈을 실컷 보고 싶어 하지만, 교통편을 예약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한 번에 편리하게 한국 여행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13년 6월, 환상적인 한국(fantastic korea)일 뿐 아니라 재미(fun)있는 한국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펀타스틱코리아(Funtastic Korea)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시작했다. 2015년 3월에 한국관광공사의 ‘벤처관광기업’으로 선정되었고, 2016년 6월에는 ‘우수벤처관광기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전 직원 재택근무


“처음에는 좋은 상품들을 발굴해서 우리 사이트에 모아놓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용자들에게 할인 등 여러 혜택을 주기 위해 협상할 일도 많았죠. 그다음에는 IT기술을 바탕으로 외국인이 한국에서 부딪치는 온갖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여행하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한국 친구’가 되고 싶어요.”


‘펀타스틱코리아’는 올해부터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언제든 ‘디지털 노마드’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직원도 많았지만, ‘재택근무야말로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우리 회사의 가치를 보여준다’면서 고집했다.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니 한 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오히려 의사소통이 잘된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한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대만, 미국, 일본, 호주 여행 상품까지 판매하는 글로벌 서비스인 ‘인디웨이(Indiway)’도 출시했다. 그는 “회사가 계속 발전하면서 규모가 커져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노마드 정신’은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글 jobsN 이선주 객원기자

사진 김선아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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