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빨간색·초록색 때문에 결국 경찰 못하게 됐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5:5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색약인데 경찰·조종사·소방관 될 수 있나요?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 속에서 경찰로 나오는 한우탁(정해인 분)은 적록색약이다. 빨간색과 초록색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드라마 속에서 동료 경찰이 그에게 충전기에 꽂아둔 무전기 상태를 물었지만, 배터리 알림 불빛이 하나 같이 초록색인데도 한우탁이 쉽게 답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출처: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 캡처
한우탁은 법정에서 증언할 때 색약임을 고백한다.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드라마 속 한우탁처럼 일상생활에서 초록색와 빨간색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의 색각 이상자는 경찰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일부 기업에서도 색약을 취업 제한 요건으로 두고 있다. 최근 의류 회사 한세실업이 올린 취업 공고에 ‘색맹·색약이 없는 자’라는 문구가 있다.


‘색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에 색약이 취업에 영향을 끼칠까 걱정하는 취업준비생이 많다. 취업 커뮤니티에는 ‘색약인데 경찰이 될 수 있냐’, ‘색약인데 조종사가 될 수 있냐’를 묻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자녀가 색약인데 어떻게 하냐는 부모의 걱정 어린 글도 볼 수 있다. 

출처: 커뮤니티, 지식인 캡처
색약에 관한 고민글들.

예술계통에도 색각이상자 많아


적록색약처럼 색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을 ‘색각 이상’ 또는 ‘색신 이상’이라 한다. 흔히 ‘색맹’이라 부르지만 색약과 색맹은 다르다. 연대세브란스병원 안과 전문의 배형원 교수는 “색맹 또는 전색맹은 어떤 색도 구분할 수 없고 모든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는 질환”이라며 “전색맹은 대체적으로 시력도 좋지 않고, 실제 색맹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했다.


색각 이상 대부분은 색 구분이 남들보다 조금 힘든 ‘색약’이다. 적녹색약 말고도 노란색과 파란색 구분이 어려운 청황색약 등이 있다. 국내 색각이상 증상자 비율은 경우는 남성이 5~6%, 여성이 0.4% 정도로 알려져 있다. 색각이상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기 때문에 XY염색체를 가진 남성이 이상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바로 색각이상이 나타난다. 반면 XX염색체를 가진 여성의 경우 이상 유전자가 하나만 있으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남성이 여성보다 색각 이상이 있을 확률이 높다.


색각 이상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증상이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도 적록색약이 있어 페이스북 로고를 푸른색으로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개그맨 신동엽도 적록색약임을 고백하며 “단풍이 지저분해 보이고 꽃을 안 좋아한다”고 했다. 

출처: SBS '미운우리새끼' 캡처, KBS '해피투게터 캡쳐', 조선DB, 이현세 작가 제공
색각 이상이 있다고 밝힌 유명인들. 개그맨 신동엽, 영화감독 장진,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디자이너 스티브J, 만화가 이현세

미적 감각이 중요한 예술계통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장진 영화감독도 적록색약이다. 그는 한 예능 방송에서 “그레이(회색)와 앰버(호박색)도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색 보정 작업을 할 땐 빠진다”고 털어 놓았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도 적록색약이었다. 만화계 거장 이현세도 마찬가지다. 그는 “미대 입학을 위해 신체검사를 하는데 적록색약이라 자격 조건에 맞지 않아 떨어졌다”고 했다. 지금은 제한이 없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적록색약이 있으면 미대와 공대에 입학할 수 없었다. 

출처: 조선일보 지면 캡처
(왼쪽부터) 색맹 색약 등 색각이상자의 입학을 제한하는 대학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 색약도 경찰 임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독자의견, 해당 독자의견에 경찰청이 답한 내용

유명 패션 브랜드 스티브J&요니P의 디자이너 스티브J도 대기업 디자이너 채용에 합격했지만 신체검사에서 적록색약 사실이 밝혀져 ‘합격 취소’라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활약하는 디자이너다.


직종별로 취업 제한 기준 달라


직종별로 색각이상자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과거 색약은 의사고시에 응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색각이상자도 의사가 될 수 있다. 의료법 제8조 결격사유에서는 색각 이상자를 명시하지 않는다.


경찰의 경우 1999년 이전까지 색맹만 취업을 제한하다 이후 색약까지 제한하는 것으로 기준이 엄격해졌다. 다만 중증 색각 이상이 아닌 약도 색각 이상은 지원할 수 있다. 종합병원이나 대형안과병원에서 색각검사결과 ‘약도 색신 이상’으로 판정받아야 한다. 해양경찰공무원도 약도 색각 이상자는 지원 가능하다. ㅁ

출처: 경찰청 홈페이지 캡처

소방공무원도 2016년부터 아예 색을 구분할 수 없는 색맹이거나 중증도 이상의 적색약만 지원을 제한한다. 일반공무원은 공무원채용신체검사 규정상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라면 색을 구분하는 업무 또는 연구‧기술직 등 특수 업무직을 제외하고는 지원할 수 있다.


육군은 색각 이상 관련 제한이 없다. 하지만 모든 색각 이상자는 공군이 될 수 없다. 조종사 등 항공 관련 직종도 어떤 이상도 없이 모든 색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철도운전업무종사자도 철도안전법에서 모든 색각 이상자는 지원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업무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색각 이상의 정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2018년 중앙경찰학교 졸업 후 순경으로 일하고 있는 장윤곤(25·가명)씨는 의경으로 근무할 때 색약 때문에 경찰의 꿈을 접은 동기들을 여럿 봤다고 한다. 그는 “필기시험 합격 후 건강검진을 해보니 색약이라고 나와서 결국 경찰이 못된 친구들이 있다”며 “본인은 색약인지 몰랐기 때문에 당황스러워했다”고 했다. 일상생활에서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가, 검진 후에야 알았다는 뜻이다.


학창시절 한번쯤 봤을 법한 색각 이상 검사는 이시하라 색각검사표다. 심도 있는 검사는 아니다. 색각 이상 중증도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려면 보다 정밀한 검사를 해야 한다. 중증도는 검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3단계로 나눈다. 배 교수는 “대부분 색약이 있다, 없다 정도만 알고 정밀검사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색약이라고 하면 ‘신호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궁금해하는데, 세세하게 분별하지 못할 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했다.  

구글에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는 이시하라 색각검사표.

본인이 색약임을 아는 경찰·소방공무원 지원자 중에는 색약검사책을 미리 외우고 색약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 색약을 보정하는 렌즈를 착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격사유를 피해갈 수는 없다.


약도 색각이상자 대부분 빨강·노랑·초록 3색등을 구분할 수 있는데도 완전히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사회적 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6월 색각이상자(약도 이외)를 채용하지 않는 경찰에 ‘차별 권고문’ 보냈다.


사실 인권위는 10여년 전부터 경찰청장에 수차례 권고했다. 인권위는 “색각 이상자 채용 제한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며 “정보통신분야처럼 색 구별 능력과 관련성이 적어 중증 색각이상자도 할 수 있는 업무가 있다”고 했다.


2004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한림대학교에 의뢰한 ‘색각이상자의 고용 등에 대한 연구’에서 인권위는 “1999년 이전 경찰 공무원으로 채용된 색각이상자가 사고 등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범인 추격과 검거 같은 업무 특성상 색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수적이고, 여러 분야 업무를 해야 하는 순환근무 체제 때문에 약한 수준을 넘어서는 색각 이상자의 응시 제한은 불가피하다”며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