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싼 연어 정자 이용해 세계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조회수 2020. 9. 25. 15: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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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붙이는 주사', 투명망토 만들다 떠올렸죠."
붙였다 떼면 끝
한국기계연구원과
임상시험기업 ‘에이디엠’ 공동 개발
DNA 소재로 니들 패치 개발
환자와 환경을 구하는 기술

“아야!”


주삿바늘은 따끔하다. 눈을 질끈 감고, 주사 맞기를 기다리면 겁부터 난다. 주사 맞기를 유난히 두려워하는 증상을 '주사공포증'이라 한다. ‘전세계에서 10명 중 1명은 주사공포증을 겪는다’는 영국 국립의료원(NHS)의 조사 결과도 있다. 주사공포증을 가진 사람이 아무런 대비 없이 주사를 맞으면 실신하거나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주사공포증은 사실 주삿바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과학자들이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융합기계연구본부장 정준호(51)박사와 윤석민(52) 에이디엠바이오사이언스㈜ 대표가 이끄는 연구팀이다. 이들은 투명망토기술을 개발하다 2018년 8월 ‘나노마이크로 DNA 니들패치’를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천연 DNA 주사’다.


작은 대일밴드처럼 생긴 패치를 피부에 붙이면 된다. 패치에 미세 돌기들이 있긴 하지만 길이가 수백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이하라서 피부에 닿아도 아프지 않다. 이 미세 돌기가 피부 안쪽에서 녹으면서 약물이 체내로 들어간다.


대전 기계연 본원에서 정 박사와 윤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직접 DNA 니들패치를 사용해봤다. 반창고처럼 생긴 패치 안쪽을 자세히 보니 작게 튀어나온 돌기가 있었다. 만져보니 약간 울퉁불퉁했다. 체내로 투여할 약물을 여기에 넣어 패치로 만든다.


기계연에서 제공한 패치는 테스트용이라 화장품 원료가 들어있었다. 팔목과 손등에 패치를 붙이고 엄지손가락으로 가운데를 3초 동안 꾹 눌렀다. 무언가에 닿는 듯한 느낌만 들 뿐 통증은 없었다. 10분후 패치를 떼어내자 붉은 자국이 남았지만 20분후 말끔히 사라졌다.

출처: jobsN
(왼쪽부터) 주사패치를 붙인 모습과 떼어낸 후. 20분쯤 지나자 붉은 자국이 싹 사라졌다.

-어떻게 만든건가.


“먼저 DNA분산액이 있어야 한다. DNA분산액은 화장품이나 의약품 원료로, 국내 및 해외에서 사용하는천연 연어 DNA를 물과 섞었을때 만들어지는 액체다. DNA분산액을 만든 후엔 나노기술로 정교하게 제작한 몰드에 붓고 적절한 조건을 갖춰 말린다.


몰드란 쉽게 말해 붕어빵 틀과 같은 것이다. 몰드에 부은 DNA분산액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조립(Self-assembly·나선형의 DNA 가닥이 스스로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며 단단하게 굳는다. 그러면 비로소 니들패치가 완성된다.”


-의외로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다.


“그렇다. 니들패치의 원료인 연어 DNA는 화장품이나 의약품 원료로 승인받은 물질에 물만 첨가해 만든다.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서 인체에 무해하다. 또 제조 과정이 단순해 상품화가 쉬워 이미 화장품 원료로는 많이 쓰인다.”


-연어 DNA를 사용하는 이유가 또 있나.


“값이 싸다. 수컷연어는 자기 몸무게의 3분 1에 해당하는 많은 정자를 보유하고 있다. 산란기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부분이 강 하류에서 잡힌다. 이후 연어살은 통조림으로, 정자는 인공부화에 일부 사용되고 남은 정자들은 모두 버려진다.


그런데 연어 DNA의 세포 재생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화장품이나 의약품 회사에서 연어 정자를 구매해 제품화한다. 연어가 풍부한 나라에서는 연어 정자 가격이 물보다 싸다. 그만큼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연 DNA다. 그래서 연어 DNA를 니들패치 소재로 선택했다."

출처: 채널A '도시어부' 캡처
연어는 크기가 평균 60~80cm로 최대 1m짜리도 있다.

-그럼 니들패치를 현재 판매하고 있나.


“아직 전세계적으로 의약품으로 상용화한 사례가 없다. 우리 역시 개발 단계다. 의약품은 개발하자마자 바로 판매할 수 없다. 최소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임상시험 등 안전성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은 총 3단계인데 단계마다 2~3년은 걸린다.


그래도 우리가 만든 DNA니들패치 상용화는 이보다 빨리 이룰 수 있다. 니들패치의 원료인 연어 DNA를이미 의약품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패치 성분 자체의 안전성은 입증된 셈이다. 다른 신약처럼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 3단계를 모두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5년내 출시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7월 17일 대전 기계연 본원 내 나노융합산업진흥센터에 연간 주사패치 240만개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시설을 지었다."


-5년이면 긴 시간인데 왜 벌써 생산 시설을 마련했나.


“의약품 개발 분야에서는 5년이란 매우 짧은 시간이다. DNA니들패치 기술처럼 새로운 분야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플랫폼 기술'(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기반기술)은 기술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바로 적용 가능한 수준의 기술이어야만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설비부터 준비했다."

출처: jobsN
연어 DNA 파우더와 물을 섞어 만든 DNA 분산액

-상용화 이후 수익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구체적인 액수는 아직 알 수 없다. 에이디엠은 정부 출연 연구기업이기 때문에 기계연의 특허기술을 가치 있게 상용화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그래서 직접 제품화하기보다 의약품에 니들패치를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완성해 제약회사에 이전할 계획이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나.


“투명망토 제작을 위해 나노융합기술을 연구하다 우연히 떠올린 생각이다. 2014년부터 기계연은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의 일환으로 ‘파동에너지 극한 제어 연구단(단장 이학주)’ 소속으로 투명망토를 연구했다.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투명망토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특성을 갖는 소재 및 부품을 개발해왔다.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다. 나노융합기술을 적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노융합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1nm(나노미터)에서 100nm크기의 나노소재를 이용하는 기술이다. 2.5인치 크기 스토리지에 풀HD 영화 5700편 분량을 담을 수 있는 것도 나노기술 덕분이다. 

출처: jobsN
테스트용 주사 패치를 담은 키트

이처럼 나노소재를 활용한 투명망토기술 개발을 시도하던 중, 수 나노미터 두께의 DNA소재로 3차원 나노구조체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일반 소재로 사용하기엔 물에 쉽게 녹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던 중, 미세 돌기를 만들면 강도는 좋으면서도 물에 잘 녹고 인체에 해롭지 않은 패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즉, 단점으로 생각했던 DNA 특성을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찾은 셈이다."


-국내 특허 등록 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6개국으로 출원을 앞두고 있다고. 세계 최초 개발이라 더 의미가 크다.


“DNA를 소재로 나노마이크로 니들(미세한 바늘)을 개발했다는 점에서는 최초가 맞다. 그러나 마이크로 니들 자체를 처음 만든 곳은 미국이다. 연어 DNA 역시 화장품과 제약분야에서 이미 사용중이다. 하지만 누구도 연어 DNA를 마이크로 니들 소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꼭 우리가 이룬 성과만은 아니다. 다양한 나노소재에 대한 원천연구가 없었다면 우리도 연어 DNA의 뛰어난 물리적 성질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처: jobsN
(왼쪽부터) 윤석민 대표, 정준호 박사

-주사패치는 어떤 점에서 이로울까.


“DNA니들패치 기술을 모든 의약품에 적용할 순 없다. 간단하게 먹거나 피부에 붙여도 효과적인 약물을 굳이 DNA패치로 대체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단, 주사로만 투약이 가능한 약물에 대해서 '주사 공포증'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예방주사가 그런 경우다. 현재 대부분 근육주사 형태로 예방 접종을 하지만, 피부 층을 통한 접종이 항체 생성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 보고가 있다. 새로운 백신을 개발할 때 항체가 잘 생기지 않으면 연어 DNA를 백신에 첨가하기도 한다. DNA니들패치 백신은 상온에서도 보관이 가능하다.


또한 주사패치는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기존 주사기는 유리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폐기하면 쓰레기가 엄청나다. 주사패치는 물에 바로 녹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힘든 연구 끝에 얻은 성과에 보람도 크겠다.


“기계연은 기술 실용화 실적이 우수한 연구소다. 2017년 기준 연구원 1인당 기술이전 실적이 정부 출연 연구소 중 2번째로 높았다. 대형국책사업에 참여해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더욱 책임이 무거웠는데, 이번에도 기술을 실물로 구현해 뿌듯하다.


과학이 이론으로만 존재한다면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DNA 니들패치 상용화다. 이 기술을 올바르게 쓰기만 한다면 제약회사나 바이오벤처 등 누구와도 협업하려 한다. 기술은 선한 의도와 만날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글 jobsN 김민정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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