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자소서 46번 대신 써줘도 다 떨어지더라고요"

조회수 2020. 9. 25. 15: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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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거꾸로 신는 여친 잡을 편지도 대신 써봤죠", 얼굴 없는 작가의 삶
10년차 대필작가 임재균씨
정치인 자서전, 유명인 에세이 등 40여권 대필
“유명 작가도 생계 때문에 대필작가로 활동”

최근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직업이 있다.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다. 영어로는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 글을 쓰지만 저자로 나서기는 어려운 ‘유령작가’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필작가를 엄연한 직업의 하나로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고 좀처럼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논문 대필, 공모전 수상작 대필 등 사회적 문제로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임재균(38)씨는 이러한 일을 10년째 하고 있다. 그는 2015년 한국대필작가협회를 만들었고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임씨는 “논문 대필이나 대회에 나가 상을 타려는 글 등은 대필하지 않는다”며 “대필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jobsN은 지난 10일 그를 만나 대필작가의 삶에 대해 물었다.

출처: jobsN
임재균씨가 자신이 대필한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자서전, 에세이, 전문서적 등 다양하게 대필


임씨가 일하는 곳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공유오피스 쪽방이다. 그는 이곳에 앉아 온종일 남의 글을 대신 쓴다. 보통 새벽 3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10시에 공유오피스로 출근한다. 책상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쪽방에서 협회 관련 일을 하거나 책의 공식적 저자와 상담을 한다. 그리고 오후 9시까지 또 글을 쓴다. 그는 “현재 시중에 나온 책 중 80% 이상은 대필작가의 손을 한두 번은 거쳤다”고 했다. 대필작가가 예상외로 많다는 뜻이다.


-언제부터 대필작가로 활동했나.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99학번이다. 대학생 때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글로 먹고살 생각은 없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컨설팅 업체에서 3년간 일했다. 컨설팅을 하려면 사람들을 만나 협의를 많이 해야 하는데 말주변이 없어 벅차더라.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하는 게 더 쉽고 편했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출판사에서 일감을 받아 일했다. 출판 전 글을 수정하고 대신 써주는 일이었다. 2008년부터는 ‘내가 대필작가구나’라고 스스로 인식했다. 올해로 대필작가 10년차다.”


-어떤 것들을 주로 대필하나.


“자서전, 전문서적, 에세이, 기술서적, 연애편지, 자기소개서 등 다양하다. 의뢰자의 이름값은 굉장히 큰데 글 수준이 이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의 손을 빌려 이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대필작가가 그 역할을 한다. 학위논문이나 시상하는 대회에 출품하는 글 등은 대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법이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내는 책들은 대부분 대필작가가 썼다고 보면 된다. 선거 1년 전부터는 자서전 쓰겠다는 정치인들의 문의가 급증한다. 나도 국회의원 자서전 10권 이상을 썼다.”


-대필은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


“자서전의 경우 의뢰자와 주기적으로 만나고 전화 통화도 자주 하며 그분의 인생을 듣고 얼개를 짠다.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많이 해 내용 하나하나를 끌어내야 한다. 한밤중에 갑자기 생각났다며 지난 일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다. 병상에 누워계신 분을 찾아가 자서전을 위한 인터뷰를 한 적도 있다. 기술서적이나 교양서적의 경우 저자가 초안과 아이디어를 주면 이를 보완하고 정리하는 식이다. 아무것도 없는 0의 상태에서 대필로 100을 만들 순 없다. 자서전 1권을 대필하는 데 평균 3~4달 걸리고, 600만~15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출처: jobsN
임재균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대필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인, 짝사랑 연애편지도 대신 써줘


-그동안 대필한 작품은 무엇이 있나.


“대필 작품을 구체적으로 거론할 순 없다. 대필 사실을 공개해도 좋다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꺼린다. 의뢰자와 협의 없이 대필 사실을 공개하면 법적 문제가 생긴다. 대필한 책이 엄청 잘 팔리면 추가 인센티브를 주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연락 한 통 없다. 그럴 때는 좀 서운하지만 대필작가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필작품이 기억에 남나.


“폐지를 주우며 생활하던 76세 할머니의 자서전을 쓴 것이 기억에 남는다. 폐지를 줍다가 한 자서전을 봤는데 자신도 죽기 전에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의뢰였다. 공식 단가보다 적은 200만원을 전 재산이라며 대필 비용으로 내놓는데 모른 척 하기가 어려웠다. 할머니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았지만 예전 일을 이야기할 때는 정신이 멀쩡해지더라. 일본강점기부터 한국전쟁 피난길, 각종 한국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삶을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하는데 나도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았다. 힘든 삶을 마무리하는 한 분의 인생을 내 손으로 정리했다는 만족감이 있다.”


-연애편지도 대필하나.


“연애편지 대필은 당사자들 사이에 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잦다. 나이 차이가 많은 짝사랑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를 대필한 적도 있고, 고무신을 거꾸로 신으려는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군인의 연애편지를 쓴 적도 있다. 답장이 오면 다시 대필해서 보내는 경우도 있다. 대필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이 왜 싸웠는지,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을 알게 된다. 편지를 아무리 열심히 써도 상대방 반응이 좋지 못할 때도 있다.”


-자기소개서를 대필 맡겼는데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는 사람도 있다.


“대필작가가 써줬다고 기업 인사담당자가 자기소개서를 읽고 감동하는 건 아니지 않나. 대필작가가 쓰면 문장 측면에서는 질이 좋아진다. 하지만 없던 개인의 경험이나 적성, 특성을 만들 순 없다. 3년 동안 이직을 반복한 사람에게 자기소개서를 46번 써준 적도 있다. 의뢰자는 대필한 자소서가 마음에 든다고 하는데 계속 (입사에서) 떨어지더라.”


-직접 이름을 걸고 문단에 등단하고 싶지는 않나.


“등단을 하려면 작가들 문벌에 줄을 서야 하더라. 그게 싫었다. 등단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등단을 했다고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등단했다고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등단한 작가들도 대필작가로 많이들 활동한다.”

출처: jobsN

“대필작가 양성화 필요해”


임씨는 2015년 8월 31일 한국대필작가협회를 세웠다. 부정적 사회적 인식 속에서 숨어만 지내던 대필작가들을 양지로 끌어내자는 취지였다. 그는 “대필작가는 지식 자영업자”라며 “하지 말아야 할 대필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정해놓으면 대필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대필작가협회를 만든 이유는.


“대필작가로 활동하다 보니 직업의 사회적 정체성도 없고 부정적 인식이 많아 당황스러웠다. 이를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지만 혼자선 어려워 협회를 만들었다. 처음엔 회원 수가 15명이었는데 현재는 300여명으로 늘었다. 대필작가들을 위한 세무·노무·법무 지원을 하고 일감도 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협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가입해 있나.


“기자, 의사, 변호사, 등단한 시인, 작가 등 다양하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 등단 작가도 있다. 의사, 변호사 등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해 활동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생계 때문에 대필작가로 나선다. 전체 회원 중 3분의 1이 문인협회에 등재된 정식 작가다.”


-대필작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아직 많은데.


“협회가 처음 생겼을 때 문단에 계신 분들이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고 하더라. 대필이라고 하면 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서, 논문, 법률적 문서 등은 대필이 불가능하도록 명확히 정한다면 대필작가도 엄연한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필작가를 정식 직업으로 여긴다. 우리 사회도 대필작가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대필작가의 삶을 후회한 적 없나.


“대필작가를 후회한 적은 없고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후회한 적이 한번 있다. 최근엔 전체적으로 출판업계가 어렵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고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대필작가로서는 부끄럽지 않다. 아이들에게도 어디 가서 아빠 직업이 대필작가라고 말하라고 한다. 이것은 내 생계 수단이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위법도 아니다. 부끄럽지 않다.”


글 jobsN 김성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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