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좋길래? 대기업·공기업 포기하고 찾는 '으뜸회사'

조회수 2020. 9. 25. 15: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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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등보다 복지 1등 하고 싶다"는 중소기업
직원이 행복한 회사 엘앤피코스메틱
한류 마스크팩 열풍 주역

마스크팩 ‘메디힐’로 유명한 엘앤피코스메틱은 국내·외 마스크팩 신화를 만든 주인공이다. 2009년 권오섭(59) 회장이 창업했을 때만 해도 마스크팩은 ‘1000원에 3장’하는 저렴한 제품이었다. 3000~5000원짜리 중고가 마스크팩 시장을 연 업체가 바로 메디힐이다. 품질을 명품 못지않게 만들고 가격은 조금 올리면 경쟁력 있을 거라 봤다.


예상은 적중했다. 창업 8년차인 2016년 연매출 4000억원을 넘었다. 2018년 상반기까지 메디힐 마스크팩은 중국·미국·일본 등 30여개국에서 13억장이 팔려나갔다. 국내 마스크팩 역사상 최대다. 화장품 단일 품목이 이렇게 많이 팔린 건 메디힐 마스크팩이 처음이다.

출처: jobsN
메디힐 본사에서 만난 권오섭 회장.

판매 1등을 달성한 회사는 이젠 복지 1등을 꿈꾼다. 서울 등촌동 메디힐 빌딩.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 사옥은 직원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호텔 못지않은 피트니스 센터·수면실·사우나 시설을 직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실내에서 골프·농구·탁구 연습을 할 수도 있다. 사내 카페 바리스타,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 안내데스크 직원, 면세점 직원까지 100%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2018년 뽑은 직원 40명 중 80% 이상이 청년이다.


고용노동부는 엘앤피코스메틱을 2018년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뽑았다. 엘앤피코스메틱의 직원수는 250여명.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이직한 직원들도 있다. 권 회장에게 사내 복지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를 들었다.

출처: jobsN
직원들이 이용하는 탁구 연습장, 피트니스 센터, 수면실.

아이디어 얻으려면 조직문화에 신경 써야


엘앤피코스메틱은 창업 이후 급격히 성장하면서 늘 인재에 목말라했다. 우수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을 부수는 것이었다.


“엘앤피코스메틱을 지금까지 이끌어 온 건 직원들의 아이디어입니다. 베스트셀러인 ‘N.M.F 아쿠아링 앰플 마스크’도 당시 과장, 실장이었던 이영숙 전무, 김미자 상무 아이디어였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려면 조직 문화와 복지가 중요합니다. 저도 직장생활할 때 졸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억지로 참는다고, 몇시간씩 모니터만 들여다본다고 업무 효율성이 오르진 않죠.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행복합니다.”


복지제도를 마련할 때도 직원에게 아이디어를 얻는다. 엘앤피코스메틱은 월세를 사는 미혼 직원들에게 한달에 35만원씩을 준다. 물류팀의 경우에는 미혼 직원들의 월세금 전액 지원한다. 50명 정도가 대상자다. “대전에서 온 과장과 이야기를 하다 월세 등 고정지출이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월세와 통신비를 합해 한달에 70만원을 낸다고 했어요. 부담을 덜고 주고 싶었습니다. ‘직원용 아파트를 임대하면 어떻겠냐’ 했더니 그건 직원들이 선호하지 않았어요. 각자 살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월세 지원금을 떠올렸습니다.”

출처: jobsN
직원들이 이용하는 실내 골프연습장.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불필요한 회식, 야근, 주말 특근을 찾아보기 어렵다. 매월 첫째, 셋째주 금요일에는 4시에 퇴근한다. 내년부터는 매주 금요일 조기 퇴근도 가능하다.


급여도 업계 최상위를 향해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직원 평균연봉이 화장품 업계 대기업 아모레퍼시픽의 85~90% 수준이다. 아모레퍼시픽 2017년 사업보고서에 나온 직원 평균연봉이 5300만원이니, 엘앤피코스메틱은 4000만원 중후반대인 셈이다.


정년도 없다. 나이가 많아도 퇴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단 조만간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인건비 부담을 덜 예정이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나이에 다다른 직원의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을 줄이는 제도다.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는 대신 월급이 줄어든다. 그래서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는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줘 줄어든 임금을 보전할 계획이다. 

출처: jobsN
고용노동부는 엘앤피코스메틱을 2018년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뽑았다.

“제일 안타까운 일이 회사에서 가정 걱정, 집에서 회사 걱정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되도록 능력 있는 직원이 오래 남아 있길 바랍니다. 가정이 안정적이어야 회사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출산·육아휴직도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금 카페테리아 직원 중 한명도 출산 휴직 중이다.


또 자녀 1명당 수당 5만원씩 지원한다. 본인이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비 50%를, 직원 자녀는 대학 등록금까지 100% 지원한다. 1년에 2번씩 성과 좋은 부서를 뽑아 격려한다. 2017년에는 권 회장보다 급여를 많이 받은 직원도 있다.  

출처: 엘앤피코스메틱 제공
(왼쪽) 엘앤피코스메틱은 4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2018 LPGA 메디힐 챔피언십'을 열었다. 한국 화장품 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골프대회를 개회한건 엘앤피코스메틱이 처음이며, 뷰티업게에서도 처음이다. 이날 우승자 리디아고에게 권 회장이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권 회장과 유소연 선수.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스포츠 마케팅을 위해 2017년 3월 유소연, 김나리 등 여자골프선수로 이뤄진 ‘메디힐 골프단’을 창단했다.

직원의 소중함을 아는 이유


권 회장의 어머니는 1969년 왕생화학을 창업한 고(故)유임순 전 대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헤어스프레이를 만들었다. 권 회장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 그의 어머니가 화장품 회사를 차렸다. 집 앞에 화장품 공장이 있어 그는 늘 화장품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가장이 됐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잘해야 상대가 잘한다’, ‘직원에게 뭘 원하지 말고 먼저 잘해줘라’.”

출처: jobsN
사내 사우나실.

고려대 지질학과 석사를 졸업한 권 회장은 연구원 생활을 잠깐 하다가 1992년에 어머니의 지인이 운영하던 화장품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1996년 국내 최초 화장품 프랜차이즈 업체를 세웠다. 지금은 ‘로드숍’이라는 개념으로 익숙하지만, 당시 방문 판매나 직영 판매 위주였던 화장품 업계에 없던 파격적인 판매 모델이었다.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운이 나빴다. 외환위기 여파로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뒤이어 색조 화장품 업체도 차렸지만 그마저도 경영이 어려워 2008년 매각했다. 매각 대금을 받지 못해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2009년, 과거 직원 3명과 함께 마스크팩 시장에 도전했다. 이 시기를 겪으며 직원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권 회장은 친형과 지인에게 돈을 빌려 사무실을 임대했다. 독립한 과거 직원들이 5억 원어치 제품을 외상으로 가져가라 했다. 권 회장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 아내가 번역 일로 가장 노릇을 대신했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아들은 현지에 사는 처제가 키우다시피 했다.


“망해도 잘 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회사가 망할 때 기업인은 살고 직원들만 죽는 건 말이 안돼요. 기업인도 처절히 힘들어야죠. 그래야 다시 일어설 때 도와줄 직원들이 있습니다. 창업하고 여유가 생기고 나서 제 월급을 모아 과거 직원들에게 늦게나마 퇴직금을 지급했습니다. 5년전 마지막 퇴직금을 갚았어요.”

출처: 메디힐 인스타그램, jobsN
배우 김지원 등 메디힐 모델들.

직원 면담도 회장이 직접


지금도 복지 제도를 늘리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빠른 변화 속에서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신동훈 부사장을 중심으로 경영진단팀을 만들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긴 하겠지만 수시로 보완하겠습니다.”


권 회장이 직접 직원과 면담하는 시간도 있다. 일주일에 2번씩 오전 9시 반부터 11시다. 직원들은 비서실에 면담 신청을 한다. 면담 종류는 힘든 일을 토로하는 것부터 적성에 대한 고민까지 다양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이라는 직원들이 있었어요. 저희가 장학 재단이 있는데 그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티오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가, 재단에 자리가 생겨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엘앤피코스메틱에는 직무순환제도가 있다. 입사 후 3년 정도 해당 직무를 경험하고 이후 원한다면 다른 직무로 옮길 수 있다. “신입은 자기 일이 적성에 맞는지 잘 모릅니다. 보통 입사할 때 시작한 부서에서 나중에 타 부서로 가기 힘들죠. 사람은 저마다 그릇이 다릅니다. 억지로 그릇에 넘치는 일을 줄 필요는 없다 봅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의 8할 정도만 발휘하게 하고, 역량을 키우면 또 그만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출처: jobsN
사내 카페와 대강당, 전화 부스, 물리치료실.

직원이 퇴사할 때 면담도 직접 한다. 1년에 한번씩 퇴사한 직원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회사와 퇴사한 직원이 서로를 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퇴사한 직원들도 저희 식구입니다.”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메디힐장학재단을 만들어 한국에 사는 유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한다. 모교인 고려대에 지금까지 150억원을 기부했다. 2017년 후배인 학과장에게 계좌를 물어 한번에 120억원을 기부해 고려대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다. 월 300만원 정도 사내 카페테리아 수익금을 지역사회 독거노인·장애인을 돕는데 쓴다.


엘앤피코스메틱은 아직 정기 공채는 없다. 부서별로 필요한 인원이 있을 때 수시채용한다. 서류전형-실무진 면접-임원 면접 순이다. 두 차례 면접 모두 면접관 3명이 면접자 1명을 심층 평가한다. 엘앤피코스메틱 이정일 인사총무 담당 이사는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 덕분에 복지와 근무조건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이어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가 높아 퇴사율은 5%를 밑도는 수준”이라고 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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