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없어지는 게 목표"라는 이 이상한 사장님의 정체

조회수 2020. 9. 25. 14: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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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없어지는 게 목표"라는 이상한 창업자의 정체
우리 회사가 망하는 게 목표라는 이상한 창업자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
폐지 줍는 어르신 돕는 예비 사회적 기업

폐지 1㎏을 1000원에 사들이는 착한 기업이 있다. 보통 폐지 가격은 ㎏당 50~140원. 시중가 보다 약 20배 비싸게 사는 셈이다. 얼핏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이곳은 예비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다. 러블리페이퍼는 구매한 폐지로 캔버스를 만든다. 어른 손바닥만 한 폐지 캔버스 위에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 캘리그라피, 그림 등을 입혀 판매한다. 판매 수익으로 쌀, 방한용품 등을 독거노인에게 나눠준다. 러블리페이퍼는 기우진(36)대표와 4명의 팀원이 함께하고 있다. 대안학교 교사이기도 한 그가 소셜벤처를 시작한 사연을 들었다.

출처: 러블리페이퍼 제공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가운데)

중국에서 창업 실패 후 귀국


어릴 적부터 체육 쪽에 관심이 있던 그는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지인과 함께 중국으로 가 CCTV(Closed circuit television)사업을 시작했다.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6개월 후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한국에 돌아가기 아쉬워 2년 반 정도 중국에 머물면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2008년 한국에 돌아왔다. 졸업 후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엔 독서학교로 봉사활동을 다녔다. 봉사활동이 인생을 바꾼 계기였다.


"푸른꿈비전스쿨이라는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작은 독서학교였죠. 처음엔 사회와 시사를 가르치는 봉사자로 들어갔어요. 2010년에 학생 수가 늘어 대안학교로 전환했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어요. 나름 스카웃 제의를 받고 2011년 2월 담임 선생님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출처: 러블리페이퍼 제공
폐지를 수거하는 러블리페이퍼(좌), 폐지로 만든 캔버스 위에 그림과 캘리그라피를 입힌 작품

허리에 박스 묶은 노인보고 굿페이퍼 시작


2013년 어느 날 폐지 줍는 노인을 보고 생각해왔던 일을 실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많이 나오는 폐지를 보면서 ‘모아서 팔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던 중 한 어르신이 손수레도 없이 허리에 폐지를 잔뜩 묶고 머리엔 박스를 이고 골목을 오르는 것을 봤습니다. 생각해오던 아이디어로 폐지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폐지를 줍는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노인복지, 통계자료 등을 찾아보면서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봉사단체 '굿페이퍼'를 시작했다.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나오는 폐지를 기부받아 파는 단체다. 판매 수익으로 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돕는 것이다. 모교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폐지를 전부 달라고 했다. 좋은 취지에 공감한 교장이 폐지 6t을 흔쾌히 기부했다. 이것을 판 수익금으로 노인에게 쌀, 방한용품 등의 생필품을 지원했다.


학교 외에도 학원, 회사, 관공서를 돌아다니면서 한 달에 한 번 종이를 받아왔다.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파는 과정에서 폐지 가격 등락 폭이 크기 때문에 수익이 일정하지 않다는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은 1kg에 80원이었다가, 어느 날은 140원으로 오르기도 했다. 폐지 가격이 싸다는 것도 문제였다. 매달 1.4~1.5t의 폐지를 팔았지만 수익은 10만원 정도였다.


"돈을 벌어야 어르신들을 지원할 수 있는데 폐지만 팔아서는 부족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수익구조를 생각해야 했죠.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업사이클링(upcycling)입니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입혀 본래 가치보다 높게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어르신에게 폐지를 사서 그 폐지를 가공해 판매할 방법을 고민했죠. 한 블로그에서 택배 상자로 캔버스 만드는 법을 보고 폐지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바로 만들어 봤습니다."

출처: 러블리페이퍼 제공
CJ 임직원 봉사활동과 작품들

'러블리페이퍼' 폐지에 그림을 입히다


2016년 1월 굿페이퍼에서 함께 봉사를 다니던 대학생 3명과 ‘러블리페이퍼’를 시작했다. 처음엔 3개월짜리 단기 프로젝트였다. 폐지를 줍는 한 할아버지께 폐지 ㎏당 1000원에 사들였다. 시중 폐지 가의 약 20배다. 폐지를 사서 캔버스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폐지를 여러 장 덧대 만들었다. 폐지 1kg으로 8개의 캔버스를 만들 수 있다. 완성한 캔버스에 작품을 그려줄 작가가 필요했다.


“작가 모집 공고를 카드뉴스로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재능기부여서 작가들이 지원할 지 반신반의했어요. 3개월 프로젝트에 맞게 40명 정도만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글을 올린 지 4시간 만에 150명이 모였습니다. 작가에 맞추려니 그만큼 캔버스 만드는 손이 부족했습니다. 프로젝트 기간을 1년으로 늘려 분기마다 전시해서 그 수익으로 도와 드리기로 했습니다. 1년에 400만원이 모였고 모든 수익은 어르신들을 위해 썼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더 연구했다. 스토리펀딩에도 올렸다. 펀딩을 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로 풀어 제품 후원자를 모으는 것이다. 러블리페이퍼를 설립한 계기, 캔버스를 만드는 과정, 노인을 돕는 방법 등을 올리면서 캔버스를 팔았다. 하반기에는 아예 법인을 설립해 ‘함께일하는재단’에 지원했다. 함께일하는재단은 한국 사회적 기업 진흥원과 함께 소셜벤처를 뽑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운영한다. 소셜벤처 미션, 비즈니스 모델의 지속성, 파급 및 기대효과를 평가해 선정한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7기로 뽑혀 지원금도 받았다.


2016년 선행을 실천하는 이웃을 소개하는 tvN 휴먼 다큐멘터리 ‘리틀빅히어로’ 송년회에 참여 했다가 CJ나눔재단 눈에 띄었다. 2017년 CJ나눔재단과 함께 폐지 캔버스 체험키트를 만들어 교육도 나갔다. 매출도 올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러블리페이퍼를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출처: 러블리페이퍼 제공
생필품 지원 말고도 어르신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했다.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선정, 목표는 러블리페이퍼가 없어지는 것


정기구독 서비스도 시작했다. 한 달에 1만원을 내면 연 4개의 작품을 보내준다. 지금까지 100여 명이 작품을 받아보고 있다. 구독 서비스, 기업과의 제휴 등 다양한 활동으로 하루 최대 300만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올해 초 예비사회적기업으로도 뽑혔다. 고용지원금을 받고 있고 사업개발비도 신청했다. 3년 동안 매출, 고용의 성과, 사업 안정성을 평가해 높은 점수를 받으면 사회적기업으로 인정한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당기순이익의 3분의 1 이상을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4대 사회보험료를 지원,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다.


사업시작부터 지금까지 순조롭게 일이 풀린 것 같지만 러블리페이퍼를 포기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법인을 설립 후 수업과 업무를 병행하니 신경쓸 게 많아졌죠. 회사를 처음 운영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결국 건강이 안 좋아져 러블리페이퍼를 맡아줄 사람을 찾았습니다. 대표가 바뀌면 팀원도 바뀔 것이라는 대답을 듣고 마음을 바꿨죠. 그때 저를 따르는 팀원들도 자진해서 월급을 줄일 테니 러블리페이퍼를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팀원은 물론 이루고자 했던 목표를 보면서 견뎠어요.”


다른 어르신에게도 비정기적으로 폐지를 사 오고 있다. 폐지를 사 올 땐 각종 생활용품도 나눠준다. 지금까지 67명의 어르신에게 560만원 상당의 생필품 지원을 했고 나들이도 보내드렸다. 이렇게 폐지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기우진 대표의 목표는 러블리페이퍼가 사라지는 것이다.


“'폐지 줍는 빈곤 노인들'이 아닌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마련될 수 있을 때까지 운영할 것입니다. 예비 사회적기업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노인 복지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회사가 될 겁니다. 그리고 결국 러블리페이퍼가 없어도 노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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