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아픈' 직원에게 시급 1만2000원 주는 회사의 정체

조회수 2020. 9. 25. 01: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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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시급 1만원 주는 스타트업의 정체
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
카카오톡 이모티콘 만들고 퇴사
목표는 ‘포도송이 구조 만들기’

발달 장애인 A씨는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는 회사가 있다. 회사에서 독서대를 접고 독서대에 들어갈 디자인을 기획한다. 그의 시급은 1만2000원이다. 이것 말고도 그는 두가지 방법으로 추가로 돈을 번다. 제품 디자인 완성 보수도 받고 제품을 팔고 난 수익을 회사와 나눠 갖는다.


다양한 방법으로 발달장애인 경제 활동을 돕는 스타트업. 김민양(39)대표가 이끄는 ‘그레이프랩’이다. 그레이프랩은 친환경 제품으로 사회문제, 환경문제를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는 회사다. 포도는 송이가 커지면 더 이상 몸집을 키우지 않고 옆에 새로운 송이를 맺는다. 포도처럼 몸집을 키워 다른 조직을 해치지 않고 작은 조직이 서로 연결돼있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싶어 그레이프랩이라고 이름지었다.


대표 제품은 100% 재생용지로 만든 종이 독서대 지스탠드(G.Stand)다. 접착제를 쓰지 않고 코팅도 하지 않았다. 버리면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이런 제품은 발달장애인, 경력단절여성 등과 함께 만든다. 종이접기, 디자인 등 사회적 약자가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디자인으로 환경 문제와 사회 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김민양 대표를 만났다.

출처: jobsN
지스탠드와 그레이프랩 김민양 대표

이모티콘 사업으로 발견한 상생


김대표는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SBS, KBS 등 방송국 디자인 팀에서 일했다. 2008년 막 시작한 카카오로 이직했다. 웹디자이너였지만 작은 회사다 보니 UX·UI 디자인, 일러스트 등 다양한 일을 맡았다. 회사 초기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중 이모티콘을 수익화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작가와 협업하는 형태의 이모티콘이었다.


"주변에 웹툰 작가를 찾아가 '안녕' '잘자'를 이미지로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사용자들이 쓰기에 적합한 방식으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이말년, 서나래, 강풀 등 작가들과 함께했죠. 기존에 없던 서비스였기 때문에 개발 과정이 힘들었어요. 처음엔 사내 반응도 시큰둥했고, 작가들에게 큰 액수의 계약금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모티콘으로 들어온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이모티콘을 출시하자마자 반응이 좋았다. 다른 작가들이 이모티콘을 만들고 싶다고 먼저 연락했다. 회사에서도 지원을 늘렸다. 이모티콘이 많이 팔릴수록 회사는 물론 작가들도 함께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을 직접 경험한 김대표는 유학을 결심했다. 수익을 나눠도 한쪽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닌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는 것을 보고 이 모델을 더 공부해보고 싶었다.

출처: jobsN
그레이프랩 지스탠드. 로사이드 소속 작가와 협업한 아트 에디션이다.

유학 후 그레이프랩 창업


2012년 말 카카오를 나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상생 모델 연구가 활발하기도 하고 전공과 연관 지어 ‘지속가능한 디자인’(sustainable design)을 공부해보고 싶었다. 2013년부터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전공했다. 환경 디자인도 배웠다. 사회학 수업에서는 사회 약자들이 주류 경제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도 만들었다.


"웹툰 작가과 상생하는 것을 보고 또 다른 사회의 그룹과도 시너지 낼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제 3세계에서는 여성들이 활발하게 수공예를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 여성은 밖에서 장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상인이나 남편이 대신 가져가서 팔죠. 제품을 만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돈은 적습니다. 만든 사람이 판매까지 직접 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생각했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현지에 있는 사업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앱을 출시하지는 못했죠."


2015년 한국에 돌아왔다. 결혼하고 임신을 했지만 뜻밖의 시련을 겪었다. 아이를 가진 지 7개월째에 유산을 한 것이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장애인 복지관과 비영리 예술단체 ‘로사이드’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봉사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워크숍 프로그램을 짜고 미술 수업도 했다. 1년 동안 봉사로 시간을 보냈다.


"마냥 봉사만 하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일단 스튜디오만 차렸어요. 문득 친환경 패키지 수업에서 만든 샌드위치 포장지가 생각났어요. 기존 포장지는 부피도 크고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이를 오리가미(종이접기 예술을 이르는 공용어)를 통해 버릴 때 납작하게 접어 부피를 줄이고 100% 재생용지로 만들었어요. 이걸 생각하면서 계속 여러 방법으로 종이를 접었습니다. 그러다 접은 종이 위에 물건을 올려놨는데 제법 잘 서더군요. 이것이 종이 독서대 ‘G.stand’의 시작이었습니다.”

출처: jobsN
그레이프랩 직원 신승호씨가 직접 디자인 한 제품. 종이를 선에 맞춰 접으면 독서대로 변한다. 승호씨의 아트 에디션은 9월 말에 출시할 예정이다.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그레이프랩


재생용지로 오리가미 기법을 사용하면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첫 번째가 G.스탠드다. 종이 독서대를 미술 봉사를 통해 만난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예술 작품을 봤지만 장애인 학생들의 그림 세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밋밋한 독서대에 학생들의 그림을 얹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웹툰 작가들과 했던 것처럼 수익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서울에 있는 한 대안학교 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신)승호씨를 스카웃 했습니다.”


2017년 1월부터 그레이프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독서대를 접는 방법부터 디자인까지 기획했다. 모든 작업을 신승호씨와 함께했다. 그는 독서대 접는 일과 그림을 그렸다. 당시 그의 시급은 1만원이었다. 아직 회사의 성과가 없는 상태여서 부담스러운 결정이기도 했지만 하는 만큼 챙겨주고 싶었다. 김 대표는 신씨의 활약을 보고 2018년 5월 발달 장애인 3명을 새로 채용했다. 일주일에 1~2회 출근하는 이들의 시급도 1만원이다. 새로운 직원에게 독서대 접는 법을 알려주고 디자이너와 매니저 역할을 하는 신씨의 시급은 1만2000원으로 올랐다.


“제 역할은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가 참여할 수 있는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고 그들과 협업해 그 제품을 상품화하는 것입니다. 고용과 수익 배분으로 경제활동을 돕는 것이죠. 승호씨는 세 가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있어요. 회사 시급, 독서대 디자인 제작비, 자신의 에디션 판매 수익입니다. 회사에 나오지 못해도 제품 판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죠.” 그레이프랩은 지난해 비영리 예술단체 로사이드 소속 발달장애인 작가 2명과 협업해 아트 에디션을 판매했다. 판매수입의 50%는 작가의 몫이다. 9월 말에는 신씨의 에디션을 출시한다.

출처: 그레이프랩 제공

목표는 ”포도송이 구조를 만드는 것”


판매량은 많지 않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레이프랩을 알렸다. 2017년 10월 와디즈를 통해 펀딩을 올렸다. ‘이걸 살까?’ 하는 생각에 목표액은 100만원으로 잡았다. 예상과 달리 사이트에 올린 지 5분 만에 목표액 50%가 모였다. 최종 달성 금액은 약 2000만원이었다.


“반신반의했는데 후원해주시는 분들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좋은 의견도 많이 얻었어요. 독서대 말고 종이 스마트폰 거치대도 함께 줬습니다. 한 후원자는 충전 중이면 거치대에 세로로 올려놓을 수가 없으니 충전기가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을 뚫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습니다. 상품화할 제품에 이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도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기념품으로 지스탠드를 주고 싶다고 해서 대량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제품을 납품하는 B2B 사업에도 신경 쓸 예정입니다.”


채널A, KBS 미디어, 와사비망고 등 다양한 기업에서 지스탠드와 지스탠드 사용을 논의 중이다. 그레이프랩은 지스탠드 말고도 조명기업과 협업한 무드등 지라이트(G. Light), 페트병에서 뽑아낸 섬유로 만든 에코가방(G. Bag) 등 친환경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레이프랩의 최종 목표는 회사 이름처럼 포도송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 경제구조는 피라미드형입니다. 큰 피라미드들이 작은 피라미드를 잡아 먹으면서 크고 있습니다. 꼭대기는 갈수록 한정적이고 최하층은 많아지죠. 한 마디로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이고 이런 경제 구조는 건강하지 않아요. 포도는 송이가 웬만큼 커지면 더 이상 송이를 부풀리지 않아요. 다른 곳에 새로운 송이를 맺죠. 다른 송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작은 송이들이 서로 연결돼 하나의 큰 포도나무를 이루는 것과 같은 사회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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