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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때문에 라디오 PD 꿈 접은 서울예전 대학생, 그 후..

조회수 2020. 9. 25. 01: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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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소거한 영상을 봐도 들린다는 이 사람의 목소리
남자 주인공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 강수진
팬들의 사랑이 느껴질 때 가장 행복해
“성우라는 직업을 대중화하고 싶다”

슬램덩크의 강백호,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 원피스의 루피, 타이타닉의 잭 도슨.


이들에게는 시청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캐릭터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우리 말을 할 때 모두 한사람의 목소리를 빌린다는 것이다. 강수진(53) 성우는 30년간의 성우 생활 동안 미워할 수 없는 악동부터 아련한 첫사랑까지 다양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20년 넘게 디카프리오의 한국 목소리를 담당하기도 한 그에게 '성우'는 어떤 의미일까.


1지망 직업이 아니었던 성우 생활 어느새 30년


-원래 성우가 꿈이었나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다. 서울예술대학을 다녔는데 방송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PD 일 말고도 라디오·TV·연극 등 연기도 배웠다. 당시 PD를 하려면 4년제 대학을 나와 공채에 붙어야 했는데 나는 서울예전을 다녀서 PD 시험 자격이 없었다. 어떻게든 방송일을 시작하려 자격 제한이 없는 성우 시험을 쳐보기로 마음먹었다. 1988년 KBS 성우 공채에 원서를 넣었고 한달쯤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운이 좋았는지 한번에 합격했다."

출처: jobsN
강수진 성우

-사람의 목소리는 정해져 있는데 다양한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나


"그게 성우의 기본적인 일이자 제일 힘든 일이다. 성우는 목소리로 연기하는 배우라 목소리로 캐릭터를 표현해야 한다. 배우들이 맡은 역할에 따라 분장·옷차림 등으로 외모를 바꾸듯 목소리 톤·말투를 바꿔서 표현한다.


한 사람의 음색은 정해져 있어 다양한 느낌을 내려면 톤·억양·말투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할 때마다 연구한다. 많은 성우 지망생들이 음색·화술이 어떤 인상을 주는지 공부한다. 또 배우가 생활 속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듯 성우도 평소 사람들의 말을 많이 관찰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더빙은 어떤 차이가 있나?


"애니메이션·외화는 어떻게 하면 립싱크를 잘 맞출지, 캐릭터의 특징과 나의 개성을 적절히 섞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외화는 유명 배우를 더빙할 때 그 배우의 특징과 우리말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게 어렵다. 배우의 개성에만 치중하면 말은 한국어인데 억양이 외국어처럼 들려 국적이 불분명한 나쁜 더빙이 된다.


게임 녹음은 지문만 보고 상황을 상상해야 해서 높은 집중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또 보통 녹음 현장에 연기 전문가가 없이 게임의 상황만 주어진다. 명확한 지시 없이 상상만으로 연기하는 것이 힘들다."


-최근 성우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고 있지 않은지


"많은 사람이 성우가 목소리로만 활동하는 직업이기에 그렇게 짐작한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고 미디어가 다양해질수록 성우가 필요한 콘텐츠가 더 많아지고 있다. 지금 인공지능(AI)의 목소리도 성우가 녹음한다. 또 공중파에서는 외화 더빙이 줄었지만 넷플릭스·아마존 같은 새로운 미디어에서 더빙 버전을 함께 보급한다."

출처: 네이버 tv 캡처
tvN 예능 SNL 코리아에 출연해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 강수진 성우

’주인공 성우’의 비결은…


-유명한 역할을 가장 많이 연기한 성우 중 하난데 그 비결은 뭐라 생각하나


"내 목소리가 당시 트렌드와 맞았던 것 같다. 80년대, 90년대 초까지는 중저음에 울림이 큰 목소리가 성우로서 좋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케이블 방송이 나오고 채널이 많아지면서 애니메이션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애니메이션 시장에서는 중저음보다 미성의, 소년 같은 목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내 목소리를 찾는 곳이 많았던 것 같다."


-그중 잊을 수 없는 역할을 꼽자면


"수많은 캐릭터 중 하나를 고르기 어려울 만큼 다 애착이 있지만 기억에 남는 건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어니 그레이'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십대 때 연기했던 지적장애를 가진 소년 역할이다.


디카프리오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었는데 정말 연기를 잘해서 실제로 장애가 있는 줄 알았다. 그걸 더빙하기 위해 나도 많이 연구하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또 그걸 잘한 덕에 이후 계속 디카프리오 더빙을 맡을 수 있었다."

출처: 유튜브 Popcorn Time TV 캡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 출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모습

-연기하기 어려웠던 역할이 있다면


"슬램덩크의 강백호 역할이 워낙 개성이 강해 어려웠다. 당시 내가 했던 다른 역할들은 미소년이거나 귀여운 면이 있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강백호는 너무 단순무식하고, 거칠고 체격도 큰 열혈 캐릭터라 성격이 너무 달랐다.


게다가 소리도 많이 질러댔다. 녹음이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쯤까지였는데 계속 거칠게 긁는 소리로 녹음하다 보니 많이 힘들었다. 성우들은 배우들과 달리 여러 역할을 같은 시기에 녹음하는데 목을 많이 써서 당시 맡았던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 힘들었다."


-성우로 일하며 가장 즐거운 순간은


"팬들이 성원해주는 게 느껴질 때다. 최근 미국에서 열리는 '오타콘'이라는 애니메이션 컨벤션에 초대받아서 다녀왔다. '수상한 메신저'라는 게임의 한 캐릭터를 더빙했는데 그 게임이 미국에 진출해 인기를 끌었다. 그 게임의 사용자들이 한국의 성우들을 보고 싶다고 초청해서 갔고, 사흘 동안 두시간씩 사인회를 하며 팬들을 만났다.


그걸 보면서 '성우 한류'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성우의 팬이 되고, 직접 보러 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성우들의 매력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강수진 성우 페이스북
미국 애니메이션 컨벤션 '오타콘'에서 팬들과 만난 강수진 성우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라고 생각


-성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하자면


"성우 지망생들이 애니메이션·게임을 좋아하다 꿈꾸게 된 경우가 많다. 어떻게 시작했든 성우도 배우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배우·연기가 무엇인지, 배우로서 기본기를 갖추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꼭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있나


"타이타닉 같은 영화에서 해본 적 있지만, 외화가 아니라 한국 애니메이션·라디오드라마에서 격정적인 멜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창작 콘텐츠라면 원작 없이 나만의 해석으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한번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 다른 일로 눈을 돌리고 싶진 않다. 다만 요즘 후배들이 1인 미디어 시대에 맞게 유튜브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다. 그게 성우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신중하게 고민 중이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성우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대중에게 이 직업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언제까지 성우 일을 하고 싶나


"꽤 오랫동안 언제 은퇴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문득 배우가 은퇴하는 날은 죽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나이를 먹고,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소년 캐릭터는 나이가 들지 않아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문제다.


한 성우가 오랫동안 연기해 많이 사랑받은 캐릭터라면 그 사실을 존중해줬으면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루팡 3세’의 주인공을 맡은 야마다 야스오씨는 70살이 넘도록 그 역할을 소화했고, 죽고 나서도 후배가 그 음색을 이어받아 연기했다."


jobsN 주윤규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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