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밥 한끼에 위로받은 성대생이 휴학까지 하며 벌인 일

조회수 2020. 9. 25. 01: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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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호점까지.. 명문대 휴학하고 그녀가 농촌가서 벌인 일은?
청송에서 제가 맛봤던 ‘따뜻한 한끼’로 위로를 건네고 싶어요
스물넷에 처음 느낀 농촌의 맛
도시 사람들에게도 농촌 밥상 맛보여주고 싶어
단순 식당을 넘어 위로를 주고 받는 공간

화학 조미료 하나 없이 저염으로 맞춘 밥상은 약간 밍밍하다. “병원 밥 같다”, "절 밥 같다"고 주변에서 말했지만 소녀방앗간 김민영(27) 대표는 흔들리지 않았다.


소녀방앗간은 "지속가능한 생산이 소비자의 식품안전을 지킨다"는 사명을 가지고 운영하는 한식 밥집이다. 생산자에게는 직거래만을 하고 소녀방앗간에서 판매되는 청정식재료 판매수익은 상당 부분이 생산자들에게 돌아간다. 처음에 2명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총 20여명의 동료들이 있다. 2014년 11월 성수점을 시작으로 어느덧 서울 점포가 6곳이다. 

출처: jobsN
김민영 소녀방앗간 대표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소녀방앗간을 운영하는 김민영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창업 후 3년간 휴학했다가 올 해 봄에 복학했습니다. 졸업은 꼭 할 생각입니다.”


- 소녀방앗간 이름의 의미가 궁금해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누구나 소녀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잖아요. 요리를 대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모두 ‘소녀’ 같은 설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소녀방앗간이라고 지었습니다.”


- 소녀방앗간을 창업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학교를 휴학하고 중소기업의 홍보팀에서 인턴으로 일했습니다. 정규직 전환에는 실패했죠. 취직 준비를 해야했는데 몸도 마음도 지쳤어요. 쉬고 싶은 마음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에게 연락을 했어요. ‘생생농업유통’을 운영하는 김가영 대표였죠. 생생농업유통은 농촌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도시로 유통하는 기업이에요.


저에게 경상북도 청송군에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청송에 머무는 2주간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그 때 식사로 매번 된장찌개, 오래 숙성한 장아찌, 채소 쌈 등을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따뜻한 밥 한끼가 위로가 되고 눈물 나게 맛있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정직하게 키운 농작물들이 유통 경로를 찾지 못해 단체 급식소나 군대에 헐값에 팔려 나간다는 얘길 듣고 이 농산물들을 어떻게 하면 지역의 어르신들과 도시의 소비자들을 연결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김가영 대표와 청송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소녀방앗간을 시작했습니다.”

출처: 김민영 대표 제공
농촌에서의 모습

- 창업하기 전에 인턴 말고는 또 무얼했나요?


“대학에 합격하고 직접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했습니다. 한달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 고깃집, 뷔페 등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강남의 유명 명품 백화점 식품관에서 고등어를 굽는 일도 했습니다. 당시 점심 피크타임이 끝나면 30평 정도의 작은 휴게실에 백 명이 넘는 직원들이 모였어요. 박스를 깔고 앉기도 하고 서서 각자 끼니를 해결했어요. 저는 고시원에서 얻은 공짜 밥과 김치, 김자반을 먹었죠. 그 때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싶다는 간절함을 느꼈어요. 그 때의 경험들이 창업에도 밑거름이 된 것이라 생각해요.”


- 친구들은 취업을 할 시기에 창업했는데 무섭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사업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 나 같이 평범한 사람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죠.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어요. 청송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가 오랜 휴학을 마치고 복학을 앞둔 시점이었거든요. 혼자였으면 해내지 못했을 일입니다. 시골 어르신들, 물류팀, 서비스팀, 재무팀 그리고 디자인팀까지 여러 사람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소녀 방앗간의 메뉴에는 재료를 주신 어르신들의 성함이 한 자 한 자 적혀있다. ‘방위순 할머니 간장, 장순분 어르신 들기름, 황태한 어르신 고춧가루.’ 한끼의 식사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어르신들을 기억해드리고 자긍심을 심어드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관광버스 타고 올라와 자신의 이름 석자가 박힌 메뉴를 직접 먹어본 어르신들은 물었다. “이런 시골 음식을 서울 사람들도 좋아한담?” “당연하죠, 어르신!” 어르신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게 신기한지 인증샷을 찍어 손자·손녀에게 자랑했다.


- 소녀방앗간만의 운영 원칙이 따로 있나요?


“보통은 어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를 구하잖아요. 여기는 반대예요. 좋은 재료가 있으면 그걸로 어떤 음식을 만들지를 정해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우리의 시그니처 메뉴 ‘산나물밥’이죠. 늘 같은 나물이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삼월엔 다래순이 들어가고 철 따라 어수리, 뽕잎이 들어가기도 하죠. 자연의 섭리대로 그때그때 땅에서 나는 것들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어요. 된장국은 멸치 육수에 된장 넣고 끓입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죠. 또 제가 아르바이트 할 때 식당밥 못 먹던 게 한이 돼서 직원들에게 매일 우리 식당밥을 먹여요.”

출처: 김민영 대표 제공
소녀방앗간 서울숲 시작점

- 지금 소녀방앗간에서 농산물을 받는 지역은 어디가 있나요?


“이제는 청송뿐만 아니라 영양, 태백, 하동, 산청 등 15개의 지역에서 농산물을 받고 있습니다. 풍년이든 흉년이든 상관없이 계약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라 농가도 원하는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손님이 많은 것 같은데 하루 몇 명 정도 오는지 궁금해요.


“6개의 지점에서 평균적으로 매일 500여분의 손님을 맞이합니다. 한달 매출은 1억500만원 정도입니다. 처음 성수동에서 시작한 날 손님이 20명 왔습니다. 그날 손님을 맞던 마음으로 앞으로도 밥을 지으려고 합니다.”


- 대표가 직접 매장 일도 하나요?


“새로 지점을 열 때 인테리어도 직접하는 걸요. 또 지점을 열면 2개월은 무조건 직접 지점을 맡아 일을 합니다. 제가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식당에서 손님들이 전달하는 눈빛이나 이야기 등 소비자들의 마음을 알아내는 게 제일 중요하죠. 손님들이 밥을 먹을 때 멀리서 조용히 지켜봅니다. 2년동안은 매일 밤 마감하고 나서 매장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빠르게 문제점을 해결하고 요구를 맞추기 위해서였죠. 이제는 2주에 한번 하고 있어요. 여전히 매일 저녁 운영일지를 쓰고 있어요.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을텐데 저를 따라와준 직원들에게 제일 고맙습니다.”

출처: 김민영 대표 제공
김민영 대표가 직접 그린 소녀방앗간 설계도(왼쪽), 감사의 인사가 적힌 냅킨

-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안해본 것, 어려운 것을 택하자’입니다. 안해 본 것을 해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서 좋아요.”


- 소녀방앗간 경영자로서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요.


“제가 그만둔 뒤에도 소녀방앗간이 계속 남았으면 하는 거에요. 그 공간이 계속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으면 해요. 깊은 소신을 가지고 운영해오는 100년 가게들처럼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오래오래 남고 싶습니다.”


- 소녀방앗간을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손님은 있나요?


“한 중년의 남자 손님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어요. 식사를 하시다 갑자기 우시길래 무슨 일이 있었나 그냥 잠자코 기다렸는데, 나중에 나가면서 아내 생각에 울었다고 하셨어요. 아내가 차려 준 집밥 생각이 났다고 하셨죠. 그 때 나왔던 음악이 슬퍼서 더 그랬었나봐요.


한 임산부 손님은 냅킨에 감사 인사를 적어 줬어요. 입덧에 밥을 못먹었는데 아침부터 소녀방앗간 생각이 나서 9시부터 서울숲에서 기다렸다고 했어요. 10일만에 밥을 먹었다며 좋아하셨어요.


주변에 젊은 회사원과 학생들이 많이 사는데 여기서 밥을 먹으면 집밥을 먹은 것 같다고 좋아하는 분이 많으세요. 청송에서 제가 맛봤던 ‘따뜻한 한끼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글 jobsN 최현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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