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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쇼호스트→카페 사장..'살아남을 직업' 찾았어요

조회수 2020. 9. 25. 01: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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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쇼호스트→카페 사장님..인공지능 발달해도 살아남을 직업 찾기까지
인공지능 발달해도 살아 남을 직업 파티플래너
직장·방송 경험 살려 11개월만에 매출 6억원
꿈 찾아 방황하다 만난 천직

‘내 인생은 실패했어.’ 파티플래너 김정연(33)씨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혼자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성균관대에서 프랑스어·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김씨는 대기업에 입사해 촉망받는 인재였다. 쇼호스트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 후 방송 활동을 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수입에 꿈을 향한 열정은 흐릿해졌다.


진로를 방황하던 그는 파티플래너에 정착했다. 자신의 직업을 “제일 잘하고, 재밌고, 돈도 버는 ‘3박자를 고루 갖춘 일’”이라 말한다. 파티플래너란 기업 행사나 축제 등을 포함한 모든 파티를 기획하는 사람이다. 행사 기획부터 시작해 장소 대관, 식순 기획, 스태프 섭외, 장소·무대 연출, 진행, 철거까지 총괄한다. 파티를 진두지휘하는 감독인 셈이다. 김씨는 사단법인 한국파티이벤트협회와 리얼플랜 소속 프리랜서다. 

출처: jobsN
파티플래너 김정연씨.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진로를 찾아 방황하다 파티플래너로 직업을 바꿨다.

이 일을 시작한지 1년도 안됐지만 그를 찾는 곳이 많다. 약 30건의 파티를 기획해 6억원의 매출을 냈다. 아모레퍼시픽 같은 대기업 행사부터 대학 축제와 결혼식 등을 기획했다.


파티플래너는 유망직업이다. 책 ‘인간은 필요없다’ 저자인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 교수는 파티 플래너를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살아남을 직업’으로 꼽았다. 인간의 고도화된 감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김씨를 만나 파티플래너에 대해 들었다.


고객이 원하는 바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해


파티·행사 성수기는 대학 축제와 송년회가 많은 10~12월이다. 김씨는 이때 한달에 7~8건씩 파티를 맡아 월 10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린다. 기업 행사 위주로 기획하기 때문에 수입이 높은 편이다. 지금도 대학 축제와 기업 브랜드 행사로 여전히 바쁘다. 한달에 3~4건씩 파티를 기획하고 있다. 적게 40~50명에서 기본적으로 300~400명이 참석하는 파티를 만든다.


의뢰가 들어오면 5W1H(육하원칙)와 참가 대상, 예산에 맞춰 고객에게 제안서를 준다. 장소·음식·무대 등 항목별로 구체적인 예산과 함께 3~4개 후보를 제시한다. “가격이 합리적인 장소부터 차선책, 그 다음 순위까지 차례대로 보여줍니다. 참고할 만한 과거 파티 예시를 함께 보여드리기도 해요. 과거 제품 홍보 행사를 한다면, 제품을 쌓아놓고 현수막만 걸어 놓으면 끝이었어요. 하지만 요새는 귀신의 집이나 할로윈 콘셉트로 파티를 꾸미기도 해요. 음식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끔 포인트를 줘야 합니다. 직원들끼리 친해지기 위한 워크숍이라면 재밌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겠죠.”

출처: 김정연씨 제공
최근 국내에서 열리는 파티는 기업이 주도한다. 회사 이미지나 브랜드 인식을 높이기 위한 행사, 직원 워크숍, 송년회와 신년회가 대표적이다. 파티에 참가한 사람들이 SNS에 인증샷을 올리고 온라인상에서 화제되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제안서를 받아들이면 스태프와 장소를 섭외한다. “플래너에게는 사람이 자산입니다. 플래너마다 스태프 목록이 있어요. 스타일리스트 각자 가진 장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어떤 스타일리스트는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연출을 잘하고, 어떤 스타일리스트는 화려하고 웅장한 스타일링에 능해요. MC(사회자)도 행사 성격에 따라 다르게 섭외를 해야겠죠.”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중요하고 다방면에서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알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비용이 중요하지 않다고 했는데 실은 비용이 제일 중요한 경우가 있어요. 또 상상하는 그림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객과 전문가 간 의견 차이를 조정하는 것도 파티플래너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스타일리스트는 미적 감각을 고려해 화려한 꽃으로 장식했는데, 고객은 원하지 않을 수 있어요. 반면 고객이 원하는 대로만 하면 전체적인 연출 혹은 디테일한 부분을 놓칠 수 있어요. 의견을 잘 절충해야 합니다.”  

출처: 김정연씨 제공

김씨가 본격적으로 파티플래너로 일하기 시작한 건 2017년 9월부터다. 바로 직전에 한국파티이벤트협회에서 파티플래너 1급 자격증 과정을 6개월 동안 이수했다. 경력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내는 비결은 있다. 그는 직접 발로 뛴다. 대개 고객이 파티를 의뢰할 땐 전화로 서너군데를 알아보고 견적부터 요구한다. 김씨는 꼭 고객과 얼굴을 마주하고 미팅을 한다. 또 전국 행사 장소나 카페를 수시로 방문해 장소 특성을 연구한다. 일주일 내내 성수동 일대만 샅샅이 뒤지러 다닌 적도 있다.


“찾아뵙고 설명드리겠다 하면 ‘괜찮다’고 만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찾아뵙고 제대로 된 제안서를 드리고 싶다 말씀드립니다. 원래 저와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 제가 찾아가는 바람에 바로 계약한 경우도 있어요. 장소 같은 경우, 스타일링한 장소 전·후 사진을 비교해 보여드리려면 제가 직접 찾아야 해요.”


꿈 찾아 방황하다 만난 운명의 직업


지금은 천직이라 생각하는 파티플래너 일을 처음부터 꿈꿨던 건 아니다. 2010년 졸업 후 동부건설 해외사업팀에 입사했다. 주로 해외 현지 직원 대상 워크숍을 기획했다. “한번은 임직원 모두 모이는 행사에서 사회자를 맡았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아나운서인 줄 알았다, 원래 하던 일 아니냐는 등 칭찬을 받고 ‘내가 이런 일을 잘하는 구나’ 깨달았어요.”


말로 설득하는 직업인 쇼호스트를 꿈꿨다. 무턱대고 퇴사하진 않았다. 회사에 착실히 다니며 주말에 학원을 다녔다. 틈틈이 쇼호스트 공채 면접을 보러다녔다. “제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삼남매 장녀여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어릴 때부터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했습니다. 수입이 끊긴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어요.” 

출처: 김정연씨 제공
회사원 시절 모습.

부족한 방송 경력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네이버 웹방송, 이데일리TV, SBS CNBC, MTN 등에서 리포터로 활동했다. 오디션에 3번 합격하고 나서야 퇴사했다. 계약직 쇼호스트로도 일했다. “홈쇼핑을 보면 두명 다 쇼호스트 같은데, 왼쪽이 정규직이고 오른쪽은 계약직인 경우가 있습니다. 계약직을 게스트라 불러요. 방송 출연 한번 할때 마다 15만원을 받았습니다. 한달에 60만원 정도 벌었는데,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어요.”


쇼호스트는 경쟁률이 높은 직군이다. 매년 한자릿수를 뽑는데 수천명이 몰린다. 전직 아나운서, 개그맨 등 베테랑 경력을 가진 이들이 지원한다. 치열한 쇼호스트 취업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불안한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한발짝씩 차근차근 나아갔다. 공채를 노렸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 꿈은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너무 삶이 힘들면 꿈이고 뭐고 없습니다. 실수로 홈쇼핑 채널 틀까봐 TV도 안봤어요. 카페 운영할 때는 사람들의 민낯을 많이 봤습니다. 쇼호스트로 일할 때는 꾸미고 다니고 방송에 나오니까 함부로 대하질 않거든요. 반면 카페에서 일할 때는 ‘명문대 나와서 왜 이러고 있냐’, ‘공부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는 소리도 들어봤어요.”  

출처: 김정연씨 제공
쇼호스트, 리포터로 활동할 때 모습.

인생의 전환점은 2016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찾아왔다. 김씨는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결혼식을 직접 기획했다. 경기 가평에 있는 펜션을 빌려 야외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식순을 1, 2부로 나눠 1부에서 식을 올리고 2부에는 하객들과 게임을 했다. 하객들은 가까운 지인만 초대했다.


“양가 부모님의 연애시절부터 결혼식, 신랑과 제가 커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식장을 꾸몄습니다. 또 포토존을 만들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나눠줬어요. 의자에 풍선을 매달았다가 저희가 퇴장할 때 풍선을 다함께 날리는 이벤트도 했습니다. 2부에서는 신랑과 제가 듀엣으로 노래 부르고, 친구들이 폭죽을 들고 편지도 읽어줬습니다. 결혼 앨범을 보면 그날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요.”


허례허식이 싫어 직접 결혼식을 준비했던 것이 예기치 못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머릿 속으로 생각만 했던 아이디어가 결과물로 나오니 재밌었어요. 처음엔 파티플래너라는 직업도 제대로 몰랐고, 막연히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인구직사이트에서 ‘파티’, ‘기획’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 파티플래너 교육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설명회에 갔다가 파티플래너가 제가 꿈꾸던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설렜어요.” 

출처: 김정연씨 제공
김씨가 직접 기획한 자신의 결혼식.

사회적 의미 주는 행사 기획하고파


오래 방황했지만, 직장 생활과 방송 경력은 김씨가 파티플래너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회사에서 수많은 제안서를 만들고 발표를 했다. 또 예산을 관리하고 회계 장부를 썼다. 방송을 할때는 스태프들과 호흡을 맞췄다. 무대와 조명을 눈여겨 봤고, 의상 연출에도 신경썼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도 길렀다.


“천재지변 때문에 행사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번은 오후 6시까지 실내 행사를 하고 이후 밖에서 치맥파티를 하기로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실내에서 할 수밖에 없었어요. 원래 스태프들에게는 6시에 행사장을 정리하고 끝나는 걸로 약속했던터라, 한명씩 찾아가 양해를 구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어-’하며 당황할 시간도, 왜 이렇게 됐냐고 타박할 시간도 없습니다. 바로 해결책을 떠올려야 해요.” 

출처: 김정연씨 제공
파티플래너 직업·진로 교육을 하는 모습.

본업 이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 “화성시 SNS 서포터즈를 하고 있어요. 한달에 두번씩 지역 행사를 취재해야 합니다. 또 코스모폴리탄에서도 코스모비즈니스프렌즈로 활동하는데, 럭셔리 파티에 초대받을 수 있어요. 제가 기획하는 파티가 아니면 따로 공부하기 어려우니까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줍니다.”


국내에는 파티플래너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아직 남아있다. 클럽에서 손님을 모으는 사람, 허울뿐인 직업이라는 오해가 대표적이다. "파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생긴 오해 같습니다. 다방면에서 지식과 감각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파티를 열고 싶어하는 기업 수요에 비해 일할 사람이 부족해요.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입니다."


앞으로 꿈은 자체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행사를 직접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 ‘쉐어 위드 유’라고, 안입는 옷을 기부하고 함께 즐기는 행사를 협회에서 주최했는데 의미가 남달랐어요. 사람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던지는 기획자가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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