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무시하던 챔피언, 우승하니까 악수 청하더라고요"

조회수 2020. 9. 24. 23: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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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이라고 무시하던 챔피언 지고 나니 '악수하자', 짜릿했죠"
바닥에 구르고 머리 찧어도···
스트리트 댄서 김태현씨
아시아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
"오래도록 춤꾼이고 싶다"

김태현(29)씨는 스트리트 댄서다. 미리 짜둔 동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춤을 선보인다. 그때의 분위기, 느낌대로 춘다. 김씨는 스트리트 댄스 중 ‘크럼프’ 분야 국내 1인자다.


크럼프(Krump)는 스트리트 댄스의 한 장르다. 자기 표현이 강한 춤이다. 한 팔로 공중에서 몸을 돌리고, 모자 한 개로 행복한 기분을 표현하기도 한다. 김씨는 최근 스트리트 댄스 세계대회 크럼프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아 참가자중 최초다. 세계대회 기록을 4개나 갖고 있다. 10년 동안 춤 외길을 달려오며 이룬 성과다.

출처: jobsN
'프라임 킹즈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태현씨

“원래 학교 장기자랑 무대도 못 설 만큼 수줍음이 많았어요. 고3이 됐을때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트리트 댄스 공연을 봤습니다. ‘이거 뭐지’ 가슴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제대로 알고 싶어 ‘김영우 댄스 아카데미’에 들어가 기초부터 배웠습니다.


그때부터 춤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춤으로 대학 가는 전형이 있단 것도 알았죠. 당시 춤 관련 학과는 백제예술대학교, 서울예술종합학교, 서울예술대학교 3곳뿐이었습니다. 그중 한 곳은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고 결심했죠.”


19살은 전문적으로 춤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다. 발레, 현대무용처럼 스트리트 댄스도 보통 초·중학생때 시작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춤에 필요한 유연성, 순발력을 키우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소 4~5년 늦게 시작한 김씨는 당연히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남보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쳤다. ‘잘할 수 있을까’보다 ‘잘하자’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학교 수업 시간 외에는 학원에서 살았다. 종일 연습만 했다. 그 결과 2009년 백제예술대 실용댄스과에 수시 합격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더 춤에 매진했다.


“대학 2년 동안 24시간 개방하는 학교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죠. 탭댄스·재즈댄스·한국무용 등 모든 춤을 다 배웠어요. 춤은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라 뮤지컬 연기도 했습니다. ‘크럼프’에 가장 관심이 많았어요. 내면의 에너지를 맘껏 뿜어낼 수 있거든요.”

에너지를 주고 받는 것은 크럼프의 특징이다. 댄서가 춤을 추면 관객들이 호응하는 식으로 즉석에서 하나의 공연을 완성한다. 기본동작은 스텀프·체스트팝·암스윙이다. 각각 다리로 땅을 찍기, 가슴을 힘껏 밀어 올려 치기, 팔 휘두르기다. 이런 기본 동작에 직접 창작한 안무를 추가한다. 김씨는 크럼프로 최고가 되겠단 꿈을 안고 오로지 연습에 몰두했다.


졸업 후엔 댄스 특기병으로 군복무를 했다. 공군 홍보단 소속이었다. 댄스병은 팝핀, 비보이 댄스를 추는 사람만 뽑지만, 심사위원이 그의 크럼프 댄스를 보고 선발했다. 군 행사와 장병 위문공연 무대에 섰다. 그 기간 계속 춤을 출 수 있어서 움직임에 대한 감을 잃지 않고 제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14년 Mnet ‘댄싱9 시즌2’에 출연했다. 각 분야의 최고 춤꾼 9명이 모여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3달 동안 출연하며 팀 우승을 이끌었고 시즌3에도 참여했다. 댄싱9으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면의 성장이다.


“이전까진 자신감 하나로 살았어요. 댄싱9 무대에 처음 설 때는 당연히 제가 1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엔 나보다 더 노력하고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크럼프는 체력을 많이 쓰는 춤이라 늘 어깨에 근육이완 테이프를 붙여놔요. 그런데 현대무용가 김설진씨가 상의를 벗었는데 테이프가 온몸에 붙어있었습니다. 발레리노 윤전일씨는 무릎에 물이 찼는데도 새벽까지 연습하곤 했어요.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꿈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겸손을 배웠습니다.” 

출처: Mnet 댄싱9 캡처
(왼쪽부터) '댄싱9' 데뷔 무대, 그를 심사한 가수 박재범

다음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2015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유로피안 벅 세션’에 참가했다. 10개국 대표들과 경쟁했다. 세계대회는 첫 출전이었지만 아시아 참가자중 최초로 준우승했다. 2016년엔 같은 대회에서 개인전 준우승, 팀 배틀전은 ‘프라임 킹즈’란 이름의 팀으로 참가해 우승했다. 개인전에서도 꼭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목표로 열심히 연습했다. 마침내 2018년 7월 러시아에서 열린 ‘더 크럼파이어’에서 참가자 300명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더 크럼파이어에서 평소 동경하던 미국 챔피언을 만났어요. 인사했더니 동양인은 싫다면서 무시하더군요. 제가 세계대회 첫 출전한 무명 신인이기도 했으니까요. 오기가 생겼습니다. 실력으로 보여주자고 결심했죠. 우승하니까 와서 악수를 청하더군요. 성취감에 뿌듯했습니다. 지금은 대회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예요.”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고민은 있다. 경제적인 문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스트리트 댄스는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다. 가수들의 안무를 기획하거나 백댄서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 세계대회에서 우승해도 보상은 별로 없다. 김씨가 가장 많이 받아본 상금 액수는 150만원이다. 상품으로 후드티 한 벌 받은 적도 있다. 스트리트 댄스 대회를 지원하는 후원사가 적어 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7년간 춤 추던 후배가 최근 보험설계사로 취업했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저도 춤 연습 외 생계활동을 합니다. 국민대 실용무용학부에 일주일에 한번씩 4시간 동안 강의를 해요. 크럼프 개인 레슨과 다양한 행사도 나갑니다. 춤만 추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들이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선 스스로 생계를 꾸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출처: 유튜브 'Russian Krump' 제공
춤을 출 때 가장 자유롭다고 한다.

서른살 전 세계대회 우승이란 목표는 이뤘다. 앞으로 꿈은 두 가지다. 춤으로만 먹고 사는 일이 가능해질 정도로 크럼프를 국내에 널리 알리고 싶다. 유명 비보이 댄스팀 ‘진조크루’, 평창올림픽 오픈 공연을 한 ‘저스트 절크’처럼 팀을 키우는 것도 목표다. 그는 춤을 추면 모든 기쁨과 슬픔이 소중해진다고 말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녹슬지 않는 춤꾼’으로 남고 싶다고 한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암투병을 하셨어요. 성공한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달렸어요. 작년에 돌아가셔서 결국 제가 우승하는 모습은 못보셨죠. 너무 아쉬워요. 그래도 저는 춤출때 늘 관객 속에 어머니가 계신다고 상상해요. 발 동작, 손 끝 하나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한 춤꾼’이 되는 것, 제가 갈 길입니다.”


글 jobsN 김민정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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